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한경 머니 기고=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최근 사모펀드,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군으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해외투자에서도 전통적인 증권 비중이 급감하고 있는 반면 부동산 펀드 등 대체투자의 수탁고는 최근 4년 새 2배 넘게 늘어나며 뜨거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자산운용 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로 2000조 원을 넘겨 새 지평을 열었다. 특히 주식, 채권 등 전통 자산군보다 사모펀드,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군으로 돈이 쏠리는 모습이다. 자유로운 운용 등을 통해 사모펀드와 대체투자가 고수익률을 실현한 것이 높은 인기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사모펀드의 인기가 너무 치솟으면서 특히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병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모펀드, 4년 새 160조↑…공모펀드 압도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 시장의 전체 수탁고는 총 2010조 원에 달했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에 이르는 수준이다. 그만큼 자산운용 시장 규모가 크게 부풀어 오른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펀드가 551조 원, 일임 586조 원, 신탁 873조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4년 말과 비교해 각각 46.2%, 49.5%, 59.9% 증가한 액수다. 특히 펀드 시장에서는 사모펀드의 약진이 놀랍다. 사모펀드는 최근 4년간 160조 원이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중 펀드 수탁고 증가분(174조 원)의 92%를 차지한 수치로 공모펀드를 압도했다.

따라서 2014년만 해도 총 수탁고에서 공모펀드(54.1%)가 사모펀드(45.9%)보다 비중이 컸으나 2016년 역전된 뒤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사모펀드의 비중은 60%에 이르렀다.

사모펀드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전문 사모펀드 운용사의 수도 대폭 늘었다. 2014년 86개였던 전문 사모펀드 운용사 수도 지난해 말 243개로 증가했다. 해외투자 펀드에서도 사모펀드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지난해 말 기준 해외투자 펀드는 149조5000억 원으로 2014년 말(62조7000억 원) 대비 138.4% 확대됐다. 증가분의 74%(110조 원)를 사모펀드가 차지했다.

사모펀드의 인기 비결로는 공모펀드보다 훨씬 규제에서 자유롭다는 점이 꼽힌다. 일례로 공모펀드는 설정액의 10% 이상을 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10% 룰’에 묶여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이런 제한이 없어 수익률이 높은 종목에 집중 투자할 수 있다. 그 밖에 보수 체계 획일화, 계열사 판매 비중 제한 등도 공모펀드의 발목을 잡는 제도로 거론된다.

운용자산별로 보면 대체투자의 인기가 눈에 띄었다. 대체투자의 일종인 부동산 펀드는 4년 새 수탁고가 30조 원에서 76조 원으로 급증하는 등 매년 26%씩 성장했다. 이에 따라 시장 내 비중도 7.9%에서 13.7%로 5.8%포인트 확대됐다.

해외투자에서도 전통적인 증권 비중이 4년 새 60%에서 38%로 하락하고, 대신 대체투자 비중은 25%에서 45%로 상승했다. 대체투자는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2009년 이후 5.3배, 약정액 기준으로 3.7배나 부풀어 올랐다. 이런 인기는 대체투자의 높은 수익률에서 비롯됐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4월 8일 기준 글로벌 리츠 재간접 펀드 13곳의 올해 초 이후 평균수익률은 13.82%를 기록했다. 또 펀드온라인코리아가 집계한 펀드별 수익률 순위에서도 글로벌 부동산 펀드가 상위권을 점령했다.
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기업 병들게 하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사모펀드와 대체투자의 고공비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모험자본 육성을 위해 사모펀드 시장을 적극 밀고 있다는 점이 크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사모투자 공모 재간접 펀드의 투자금 제한(500만 원)을 폐지했다. 덕분에 앞으로는 500만 원 미만의 소액으로도 사모투자 공모 재간접 펀드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사모투자 공모 재간접 펀드의 피투자 펀드 지분 취득 한도 규제도 기존 20%에서 50%로 완화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향후에도 사모펀드 산업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업계와의 소통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이다”라며 지속적인 규제 완화 의지를 표했다.

대체투자 역시 세계적인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지난 2013년 7조9000억 달러(약 8900조 원) 규모였던 세계 대체투자 시장이 내년 말에는 최대 15조3000억 달러(약 1경7211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사모펀드, ‘고공행진’…쏠림은 ‘우려’

◆‘부자보고서’ 투자 선호도, 사모펀드 > 직접투자

하나금융그룹 산하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19 부자보고서’에서 사모펀드에 투자하겠다는 응답자 비율(16.9%)이 주식 직접투자(15.6%)와 주식형 펀드(10.7%)를 웃돌았다. 안성학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는 부자들의 대체투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기업들은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적극적인 경영 간섭을 염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성이 결여된 행동주의 사모펀드들의 무리한 요구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행동주의 사모펀드 개입 1년 후 기업의 영업이익은 41.0%, 당기순이익은 83.6%씩 각각 급감했다. 고용과 투자도 18.1%, 23.8%씩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일반인들이 투자하는 공모펀드가 위축될 수 있는 점도 두통거리다. 이미 자산운용 시장에서는 전문 인력이 사모펀드 쪽으로 빠져 나가는 인력 유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김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공모펀드 시장이 훌륭한 펀드매니저를 양성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투자자에게 외면을 받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소액 투자자의 기회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공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세제 혜택을 늘리고 투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체투자와 관련해서는 “부동산으로만 쏠림현상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지나친 쏠림현상 때문에 향후 시장 여건이 변화할 경우 투자 손실을 볼 위험이 높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도 “시장 구조와 자산 구성 변화로 자산운용 시장의 리스크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며 “부동산 펀드 등 펀드 시장 건전성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 리스크 요인을 점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안재성 세계파이낸스 기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