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들어서 의자 디자인은 과거의 장식성과 장인의 수고를 산업화와 기계화로 대치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소재를 스테인리스 스틸과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로 대치하고 색깔도 강렬한 원색으로 다양성을 보였다.


의자는 우리 몸이다. 사람들은 일생의 대부분을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의자는 인간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다. 발명은 필요에 의해서 생기는 필연이다. 의자는 인체공학의 발전과 심미안의 깊이와 맞물려 있다. 사람들은 앉기 편하고 봐서 아름다운 의자를 원했다.

의자 높이는 권력의 무게와 비례했고 디자인은 경제와 직결됐다.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가운데 으뜸이 의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의자 디자인이 세상에 나왔다.
레드 블루 체어, 게리트 리트벨트, 1923년
레드 블루 체어, 게리트 리트벨트, 1923년
전통적으로 의자의 소재는 나무였다. 여기에 가죽과 천을 씌워 만든 것이 대부분인데, 20세기 들어서 의자 디자인은 과거의 장식성과 장인의 수고를 산업화와 기계화로 대치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소재를 스테인리스 스틸과 플라스틱 같은 신소재로 대치하고 색깔도 강렬한 원색으로 다양성을 보였다. 그 시발점은 1859년 독일 라인 강변의 작은 도시 보파드에서 미하엘 토넷(Michael Thonet·1796~1871)이 만든 ‘토넷 넘버 14(Thonet No.14)’ 의자였다.
토넷 넘버 14, 미하엘 토넷, 1859년
토넷 넘버 14, 미하엘 토넷, 1859년
토넷은 나무를 가공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무쇠의 형틀에 수증기로 쪄낸 나무를 집어 넣고 우아한 곡선으로 휨목(bentwood)을 만들었다. 의자를 수공에서 공장 제품으로 대량 생산하는 데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1930년까지 토넷의 여러 제품 가운데 ‘토넷 넘버 14’은 이미 5000만 개 이상 팔렸고 15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모던 의자의 원조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의자 디자인 혁명은 독일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게리트 리트벨트(Gerrit Rietvelt·1888~1964)가 1923년 제작한 ‘레드 블루 체어(Red-Blue Chair)’다.


의자의 혁신

‘레드 블루 체어’는 의자라기보다는 조형물같이 보인다.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신조형주의 데 스틸(De Stijl)의 창시자 피엣 몬드리안의 순수기하학적 형태의 화면에 빨강, 파랑, 노랑 등 삼원색을 이용한 회화를 입체로 바꾸어 놓은 듯하다.

의자의 본분은 편안함이다. 따라서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여기에 우아함이 곁들여져야 비로소 자기 몫을 다한다. ‘레드 블루 체어’는 한눈에 봐도 불편하다. 각목을 가로, 세로로 이어서 거기에 판재를 덧대거나 붙여 등받이와 좌판을 만들었으니 앉기에는 딱딱하고 기대기에는 불편해 오래 앉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누군가 리트벨트에게 질문했다.

“왜 이렇게 불편한 의자를 만들었습니까.”
대답은 간단했다. “고급은 불편함입니다.”

그렇다. 이게 혁신이다. 순수 기능주의의 편안함을 추구했다면 이전의 푹신한 장식의자를 더욱 편하게 만들면 됐을 것이다. 형태와 구조의 순수함을 찾고, 선과 면이 강조된 명쾌한 구조가 당시 데 스틸의 조형 이념이었고 이를 의자에 적극 반영해 만든 것이 바로 ‘레드 블루 체어’다. 이것은 ‘모더니즘의 이상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의 형태로 옮겨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의자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
바실리 체어, 마르셀 브로이어, 1925년
바실리 체어, 마르셀 브로이어, 1925년
여기 1926년 바우하우스의 회화 교사였던 오스카 슐레이머의 그로테스크한 마스크를 쓰고 나를 응시하는 한 여인이 있다.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는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1902~1981)의 ‘바실리 체어(Wassily chair)’다.

‘바실리’란 이름은 데사우 바우하우스 사택인 바실리 칸딘스키의 칸딘스키 하우스에 필요한 의자를 디자인한 것에서 유래한다. 칸딘스키 역시 바우하우스에서 색채와 조형을 가르치던 동료 교수였다.

‘바실리 체어’는 철제 프레임에 직물로 간단히 구성한 의자다.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20세기 모더니즘 의자의 상징 같은 존재다. 의자는 나무로 만든다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강철 파이프를 구부려 사용했다.

강철관은 생산과 조립이 용이하고 등받이와 팔걸이, 엉덩이 받침만 천으로 연결하면 하나의 의자가 완성된다. 대량 생산으로 인한 합리적 가격과 이동의 간편함에 튼튼한 구조까지 모든 것이 새로웠다.

여기에 시각적 산뜻함까지 갖추었으니 바우하우스가 지향하는 단순성과 합리성에 잘 맞아 떨어졌다. 사실,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 목공공방 제1기 학생으로 너무도 가구를 잘 만들어 바우하우스 교수까지 이른 전설 같은 인물이다.

그는 바우하우스가 나치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자 1937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건축을 가르치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가 설계한 뉴욕 휘트니미술관을 보면 돌출된 정면이 마치 ‘바실리 체어’처럼 단순하게 설계돼 있다. 디자인과 건축의 관계를 새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MR 10 체어, 미스 반데어로에, 1927년
MR 10 체어, 미스 반데어로에, 1927년
현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는 두 개의 의자 디자인으로 현대 인테리어 역사를 새로 썼다. 하나는 바르셀로나박람회 독일관 설계를 계기로 디자인한 ‘바르셀로나 체어’이고, 나머지 하나는 ‘MR 10 체어’다.

‘MR 체어’의 특징은 하나의 강철관을 구부리고 엉덩이 받침과 등받이를 천으로 연결해 단순하고 가벼우며 유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 팔걸이를 더한 ‘MR 20 체어’는 반데어로에의 명성을 그가 설계한 뉴욕 맨해튼 매디슨 애비뉴 53가 시그램 빌딩만큼 유명하게 했다.

반데어로에는 원래 네덜란드의 건축가이자 가구디자이너인 마르트 슈탐(Mart Stam·1899~1986)이 한 해 앞서 처음 선보인 사각형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의 철제 의자를 부드럽게 변형시켜 우아한 곡선미를 강조한 새 의자를 개발했는데, ‘MR 체어’가 바로 이 의자다.

캔틸레버는 원래 건축에서 한쪽 끝으로만 떠받치어 나머지 한쪽이 공중에 떠 있게 만든 형식의 구조물로 아파트의 베란다와 같은 구조다. 반데어로에의 ‘MR 체어’는 캔틸레버 의자의 창안자는 아니었지만 이보다 앞선 슈탐과 브로이어의 의자보다 훨씬 더 많은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의자다.
플리아 접이식 의자, 지안 카를로 피레티, 1969년
플리아 접이식 의자, 지안 카를로 피레티, 1969년
의자의 기능적 심미안

일상에서 흔히 보는 접이식 의자 ‘플리아(Plia)’는 1969년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지안 카를로 피레티가 처음 디자인했다. 그 전까지 의자는 하나의 완성된 개체로 독자적인 부피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공간에 한정적으로 배치,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플리아’는 금속관 세 개를 구부려 좌판과 등받이에 철판을 대고 세 판이 한 점으로 조인트를 두어 접을 수 있는 혁신적인 방식의 의자다. 앉을 때는 평범한 의자지만 접으면 한 판의 패널이 돼 이동과 보관에 유리했다.

오늘날 군중집회나 야외 콘서트, 강변의 야유회장에 너무도 유용하게 쓰이는 접이식 의자가 바로 ‘플리아’다. 1969년 이 의자가 개발됐을 때 사람들은 “시대의 이미지로 정립되도록 운명이 예정된 제품”이라며 극찬했다.

우연이 아닌 예정된 필연을 위해 디자인된 제품들은 언제 봐도 유용하다. 일상에 깊이, 가까이, 흔히 사용되고 있어서 모를 뿐이다. 세상이 좀 더 품위 있고 편안한 세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숨은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노력과 열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셰이즈 롱 LC4, 르 코르뷔지에, 1928년
셰이즈 롱 LC4, 르 코르뷔지에, 1928년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는 ‘셰이즈 롱 LC4(Chaise Longue LC4)’ 의자 하나로 20세기 침대식 의자의 획을 그었다. 누워서 쉬거나 사색하거나 책을 읽기에 편해야 하는 침대식 의자는 말 그대로 몸이 편해야 한다.

기능 측면에서 몸을 받치는 시트 부분과 시트를 지탱하는 H자의 금속받침대가 완전히 분리돼 의자의 각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비스듬히 몸을 일으킬 수도 있고, 완전히 드러누워 다리가 상체보다 더 높이 올라갈 수도 있다. 때로는 금속받침대를 완전히 분리해 활처럼 둥글게 휜 금속 파이프로 흔들의자가 되기도 한다.

보기에도 편안하고 사용하기에도 쉬워 보인다. 나는 거친 서부 광야에서 파이프담배를 피우며 발을 머리보다 높게 들어 굴뚝을 향하게 하고 있는 카우보이를 생각했다. 이 의자야말로 진짜 휴식을 위한 장치다. 참으로 누워보고 싶은 의자다. 가을하늘 구름 위를 넘나드는 기분일까. 젖소가죽으로 만든 ‘셰이즈 롱 LC4’ 의자만 봐도 캘리포니아 서부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어린 송아지 울음이 해맑게 들려오는 듯하다. 꿈의 의자다.
개미의자, 아르네 야콥센, 1952년
개미의자, 아르네 야콥센, 1952년
예술가의 자취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재료공학의 급속한 발전을 보게 됐다. 합판의 가공 기술과 플라스틱 성형 기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의자의 대량 생산은 경제적 가격으로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52년 덴마크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인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1902~1971)의 ‘개미의자(Ant Chair)’는 요즈음 공공기관이나 대형 식당, 도서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중적인 의자다.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등받이와 좌판의 연결 부위 때문에 이름 붙여진 이 의자는 합판을 휘어서 스테인리스 스틸 다리로 고정시키고, 파스텔 톤의 다양한 색깔을 입혔다.

밀라노 가구트리엔날레에서 대상을 받은 ‘개미의자’는 하나를 놓고 봐도 아름답지만 다양한 컬러의 조합은 공간의 분위기를 축제처럼 화사하게 만든다. 가볍고 의자를 포개어 쌓으면 보관이나 운반도 용이하다. 흑백 세상에서 컬러 세상으로 의자의 흐름이 바뀌어 간다.

미국의 건축가 찰스 임스(Charles Eames·1907~78)는 부인 레이 임스와 함께 다양한 곡면을 가진 새로운 성형합판 의자인 ‘라운지 체어 우드(Lounge Chair Wood·LCW)’를 선보였다. 이 의자는 핀란드의 건축가 알바 알토(Alvar Aalto·1898~1976)의 휨목 기술을 접목시켰는데 등받이와 좌판, 다리, 그리고 중심 틀을 따로 제작해 탄성고무로 연결시켜 하나의 의자로 완성했다.
라운지 체어 우드, 찰스 & 레이 임스 , 1945년
라운지 체어 우드, 찰스 & 레이 임스 , 1945년
판톤 체어, 베르너 판톤, 1959년
판톤 체어, 베르너 판톤, 1959년
플라스틱 수지를 금형 안에 넣고 한번에 사출 성형해 다리 없는 통의자를 만든 덴마크의 디자이너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1926~98)은 클래식 의자의 제작 방법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판톤 체어(Panton Chair)’를 만들었다.

플라스틱이기에 가능한 화려한 색상과 자유로운 형태는 1960년대 뉴욕의 팝아티스트들의 가볍고 대중적인 이미지와 딱 어울렸다. 메릴린 먼로의 화려한 몸짓처럼 ‘판톤 체어’는 대중의 마음을 흔들었다. 새로운 소재와 아이디어로 세상과 소통하는 디자인을 이제 막 시작했다. 신소재와 신기술이 접목된 의자의 르네상스가 열린 것이다.

1888년 2월, 빈센트 반 고흐는 더 이상 물감 걱정하지 않고, 더 이상 배고프지 않은 예술가 공동체를 꿈꾸며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 아를로 내려간다. 그해 10월, 고흐는 꿈에도 그리는 폴 고갱이 아를에 온다는 전갈을 받고, 그를 위해 론 강변 기찻길이 보이는 노란 집 2층에 한 무더기의 노란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 방을 장식했다.

그리고 고흐는 친구를 위해 ‘고갱의 의자’와 자신의 처지를 담은 ‘고흐의 의자’를 화폭에 담았다. ‘고갱의 의자’에는 세련된 팔걸이 의자에 두 권의 책과 촛불이 환하게 타오르는 촛대를 올려져 마치 밝은 미래를 기약하듯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있다.

반면 ‘고흐의 의자’에는 투박한 의자 위에 가난에 찌든 파이프와 잎담배만 쓸쓸히 놓여 있다. 결국 공동체의 소망은 바람처럼 사라졌지만, 잎담배 파이프의 쓸쓸한 의자에 남은 한 고독하고 가난한 예술가의 자취는 여전히 가을바람에 스친다. 의자로 보는 세상, 세상은 빈 의자다.
[최선호의 디자인 오디세이] 20세기 디자인 아이콘, 의자
최선호 111w111@hanmail.net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동 대학원, 뉴욕대 대학원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시카고 스마트뮤지움,

버밍햄 뮤지움 등 작품 소장. 현재 전업 화가. 저서 ‘한국의 미 산책’(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