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항공업계는 독자적인 항공기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항공업계는 자국 고속철이 독자적인 기술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처럼 자국 여객기도 전 세계 하늘을 누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의 항공굴기
중국이 경제 대국 반열에 오르면서 중국 국민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여행객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국경절 연휴 기간(10월 1〜7일)만 해도 해외로 나가는 유커(遊客, 중국인 관광객)가 600만 명에 달했다.

또 같은 기간 중국 내의 관광지를 방문한 여행객들도 5억여 명이나 됐다. 이 때문에 중국의 각 공항들은 엄청난 숫자의 여행객들을 수송하기 위해 몸살을 앓아야 했다. 각 항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여객기들을 동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여행객들을 제대로 수송할 수 없었다.
앞으로 중국 국민들의 소득이 늘어날수록 항공 수요는 대폭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선을 이용한 승객 수는 총 8억2900만 명으로 5년 전에 비해 45% 증가했다. 국제선 승객 수는 8600만 명으로 전년보다 무려 74%나 늘었다. 중국의 국내선 승객 수는 2023년께 미국을 추월해 세계 1위 항공 시장으로 도약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와 항공업계는 앞으로 자국 항공 시장이 고속 성장을 거듭해 2030년에는 연간 항공운송여객 수가 15억 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중국 항공업계는 향후 20년간 자국에서 항공기의 신규 수요가 6020여 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표적인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과 에어버스도 앞으로 20년간 중국의 항공기 수요가 5400~6300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항공업계는 늘어나는 승객들의 수송을 위해 독자적인 항공기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이 독자 개발한 첫 여객기가 지난 6월 28일 상업 비행을 시작했다. 개발에 착수한 지 약 15년 만이다. 중국 내 항공사인 청두항공 소속의 여객기 ARJ-21은 쓰촨성 청두를 이륙해 2시간 35분 만에 상하이 훙차오국제공항에 착륙했다.

ARJ-21은 국유 여객기 제조사인 중국상용항공기책임유한공사(COMAC, 코맥)가 독자 기술로 제작한 첫 중소형(中小型) 여객기다. 좌석 90석에 비행 거리는 2225~3700km다. 청두항공은 2018년까지 ARJ-21 52대를 도입해 청두를 중심으로 베이징과 상하이, 선전 등을 연결하는 7개 중국 내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ARJ-21은 ‘21세기를 위한 첨단 역내 제트기(Advanced Regional Jet for the 21st Century)’를 뜻한다. 코맥은 2000년대 초 ARJ-21 개발에 착수해 상용화에 성공했다. 2008년 11월 상하이에서 첫 시험 비행에 성공한 데 이어 중국 민용항공국의 운항 허가를 받아 드디어 첫 상업 비행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ARJ-21은 미국과 유럽 항공당국으로부터 안전 등에 대한 인증을 받지 못해 국제노선 취항이 불가능하다.

중국산 중형(中型) 여객기도 이르면 올해 중 시험 비행을 거쳐 취항할 예정이다. 코맥은 지난해 11월 2일 중국 상하이에서 첫 중형 여객기인 C919의 출고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했다. C919는 코맥이 2008년부터 자체적으로 개발에 착수해 제작한 항공기다. 168석과 158석이 기본형이며, 순항 속도 마하 0.785, 무게 20.4톤, 길이 38.9m, 비행 거리 4075km다.

운항 노선에 따라 5555km까지 비행할 수 있는 개량형도 제작할 방침이다. C919는 아직은 100% 중국산이 아니다. 특히 항공기 핵심인 엔진은 프랑스 사프란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합작사인 CFM 인터내셔널에서 만든 터보제트 엔진을 장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919는 벌써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선(先)예약 판매 대수가 517대에 이른다. 코맥은 향후 20년간 2000여 대를 판매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총 1조 위안(약 180조 원) 규모다. C919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인증을 받지 못해 미국과 유럽에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지만 자국 항공 수요만으로도 수주 실적을 충분히 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C919는 앞으로 중단거리 노선의 주력 기종인 에어버스의 A320, 보잉의 B737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또 300명 이상의 승객을 운송할 수 있는 대형(大型) 여객기 C929를 러시아와 함께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C929 개발은 코맥과 러시아 UAC의 공동 프로젝트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4년 방중했을 때 베이징에서 13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이뤄졌다. C929 좌석 수는 210~350석이며, 비행 거리는 1만2000km이고, 러시아제 엔진이 장착된다. C929는 보잉의 B787, 에어버스의 A330·A350의 라이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대형 여객기 개발에 박차
중국 정부와 항공업계는 자국 고속철이 독자적인 기술과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처럼 자국 여객기도 전 세계 하늘을 누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도 독자적인 항공기 제작은 항공 산업의 도약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왔다. 항공기에 들어가는 부품은 100만~200만 개에 달한다.

2만~3만 개가 들어가는 자동차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항공기 제작에 성공하면 제조업 전체의 기술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항공 산업은 제조업의 마지막 블루오션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중국 정부가 지난 8월 28일 항공기 엔진 개발과 연구 및 제작을 전담하는 국유기업인 중국항공발동기그룹(AECC, 중국항발)을 출범시킨 것도 ‘항공굴기(堀起: 우뚝 일어섬)’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항공기 개발과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엔진이기 때문이다. AECC는 중국 국무원 산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를 비롯해 우주선·군용기 제작사인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와 코맥 등이 자본금 500억 위안(8조4000억 원)을 투자해 설립했으며, 직원 9만6000명에 달하는 ‘공룡기업’이다. 민간 항공기는 물론 각종 전투기 등에 들어가는 엔진을 독자 기술로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AECC를 설립하면서 각 기업에 분산돼 있던 항공기 엔진 사업 부문을 비롯해 각종 연구기관 등 모두 40여 개 관련 부문을 통합시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회사 출범식에 보낸 메시지에서 “앞으로 독자 기술로 항공기 엔진과 가스터빈을 제조, 생산하는 데 주력해 항공 강국 건설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동안 항공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의 하나로 집중 육성해 왔지만 핵심 부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기 엔진은 주로 해외 기술에 의존해 왔다. 특히 중국 인민해방군은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젠(J)-20, 젠-31을 개발하면서 엔진 분야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이런 문제점을 타개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역량을 AECC에 집중시킴으로써 기술력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AECC는 앞으로 5년 내 민간 항공기와 전투기 엔진 국산화를 이룬다는 목표를 추진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600억 위안(10조7570억 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중국은 또 다목적 공항 시설을 갖춘 자국 최초의 대규모 항공 테마파크를 조만간 정식 개장할 예정이다.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는 후베이성 징먼시에 30㎢ 규모의 ‘항공 공원’을 건설하는 공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 공원에는 1800m의 활주로를 갖춘 다목적 공항 시설과 항공기 전시관, R&D 시설, 조종사 훈련 기지, 무인기 경연장 등이 들어선다. 이 공원은 중국 내에서 최대 규모의 특수 항공기 제조 기지의 역할도 담당할 계획이다. AVIC는 앞으로 이와 비슷한 항공 공원을 50여 개 더 건설함으로써 항공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중국 정부는 모든 지방을 항공망으로 연결하기 위해 앞으로 매년 공항 100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중국에서 민간 항공기가 운항하는 공항은 총 202개이며 이 중 연간 이용객이 1000만 명 이상인 공항은 24개다. 중국 정부는 2030년까지 공항을 2000개로 늘려 모든 현(縣: 우리나라의 군급 행정 단위)을 항공망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징 남부에는 무려 840억 위안을 들여 터미널 건축 면적만 140만 ㎡인 세계 최대 규모의 신공항이 건설되고 있다. 4개 활주로를 갖춘 신공항이 2019년 완공되면 개항 초기에는 연간 4500만 명, 2025년까지 7200만 명의 승객을 운송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중국 정부는 또 청두, 칭다오, 광저우, 다롄 등에도 신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다. 중국 정부가 공항 투자에 집중하는 이유는 항공 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다. 여객기 제작과 공항 건설을 양 날개로 중국의 항공 산업이 비상하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