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니버설 디자인인가
[Lifestyle Design]
[한경 머니 =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특별한 개조를 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차별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이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계획하고 제품, 환경,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음에 드는 상품을 만났을 때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시니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쓰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적극적인 소비 성향을 지니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주목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애초 신체가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유니버설 디자인은 점차 불특정 다수의 편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요즘 출시되는 제품들을 보면 기능이 첨단화되는 반면, 사용하기 위해 읽어야 할 매뉴얼은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이에 대한 반발로 직관적인 디자인이나 간단한 사용법이 오히려 각광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로 인해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누구나 신체 기능의 저하를 겪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폭넓은 공감을 얻게 된 또 다른 요인이다.

현재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의 26%를 훌쩍 넘어선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시니어 세대를 대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주택이나 가구를 개조하는 사업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유니버설 디자인을 응용한 시니어 용품의 출시도 활발하다. 일본 가전제품협회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요건으로, 조작법의 이해가 쉽고 부담 없이 편한 자세로 사용할 수 있으며 관리가 편하고 수명이 길어야 한다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미국의 건축가이자 교육자인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7가지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제창했다. 시니어라면 한 번 그 의미를 음미하고 실생활에서 소비를 하거나 주변 환경을 꾸밀 때 이 원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동등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체적 제약이 있는 첫째, 사람의 생활과 동작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편리하게 사용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결과물이라면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자판기나 공중전화가 굽히거나 손을 뻗치는 힘든 동작 없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가졌다면 이 요건에 부합하는 것이다.

둘째, 다양한 조건에서 사용이 자유로워야 한다. 누구라도 차별감이나 불안감,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왼손잡이나 오른손잡이 누구나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가위나 마우스 등이 이 원칙에 부합하는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셋째, 간단하고 직관적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 주위에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으로 싱글 레버형 수도꼭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수도꼭지는 냉수와 온수 꼭지가 별도로 있고 원형 손잡이를 돌려서 개폐했다. 악력이 부족한 어린이나 노약자들에겐 상당히 불편했다. 싱글 레버형이 나오면서 2개의 손잡이는 하나로 합쳐졌다. 레버를 올리고 내리면서 좌우로 살짝 돌리는 한 번의 동작으로 물을 쉽게 틀고 잠글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물의 온도까지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이제 수도꼭지는 손을 갖다 대면 자동으로 물이 쏟아지는 제품으로까지 진화했다.

넷째,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예를 든 싱글 레버형 수도꼭지에는 보통 색상으로 더운물과 찬물을 표시해 놓는다. 헷갈리지 않고 빠르게 찬물과 더운물로 이리저리 바꿔 가며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표시 덕분이다. 비상구나 화장실 안내표시 등에 사용되는 픽토그램(pictogram)도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사물, 시설, 형태, 개념 등을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간단 명료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지식의 유무나 사용 언어에 관계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훌륭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무심코 저지른 실수가 위험을 초래하지 않아야 한다. 가구나 집안 구조물의 뾰족한 모서리는 그 위로 넘어지게 되면 심각한 부상을 초래할 수 있다. 사고가 일어나더라도 큰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것도 유니버설 디자인의 목표 중 하나다. 모서리를 둥글게 디자인한 식탁이나 기둥 주변을 둘러싸는 형태의 소파 등이 좋은 사례다. 디자인도 아름답지만 부상을 방지하는 실용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는 부분의 이중 장치도 화상을 방지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여섯째, 최소한의 신체 부담으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노쇠해지면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뽑는 일이 손목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플러그 뒤쪽에 손가락걸이를 디자인해 넣는다면 이런 부상을 다소나마 방지할 수 있다. 한 번 누르면 콘센트와 플러그가 분리되는 기능을 가진 제품도 있다. 기존 제품과 비교할 때 절반 정도의 악력으로 사용 가능한 스테이플러도 따뜻한 마음의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일곱째, 접근과 사용하기 편한 크기와 공간을 가져야 한다. 만약 지하철 개찰구가 걸어서 통과하는 사람들만 고려한 넓이로 디자인이 됐다면 휠체어 사용자들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톨게이트나 주차장의 발권기가 너무 멀어 차문을 열고 나와야 했던 경험이 있다면 접근성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된다. 점점 작은 것을 잡기 힘들어지는 시니어를 위해 적당한 크기는 중요하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나라들을 살펴보면 시니어를 위해 특화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이 발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시니어들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제품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