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저항의 한 마디,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
[big story-
리더의 文章]
리더가 들어야 할 명언

[한경 머니 = 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고상하고 우아한 명언, 명문은 많다. 우리의 마음과 언행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거칠고 날선,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외침도 있다. 리더가 자신만의 도원경에서 살다 끝내 파국을 맞지 않으려면, 그런 혁명과 저항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을 구하라” 관행은 변명일 뿐이다

여기는 4천 년 동안 계속해서 사람을 잡아먹어 온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내가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껏 살아왔다는 것을 오늘에야 깨닫게 되었다. …(중략)… 나도 무심결에 사람의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 …(중략)… 사람을 잡아먹은 일이 없는 아이들이 아직도 어딘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구하라!

근대 중국의 문호, 루쉰이 1918년에 발표한 <광인일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미친 사람이 늘어놓은 미친 소리’라고 표면상으로 씌어 있지만, 그렇게 쓰고 ‘깨어 있는 사람의 깨어나라고 목 놓아 부르는 외침’이라 읽어야 한다. ‘미친 사람’은 옛 책을 읽다가 페이지마다 씌어 있는 인의도덕(仁義道德)이라는 글자를 보고, 그것이 사실은 ‘식인(食人)’이라는 글자임을 깨닫는다.

뭐라고? 인의도덕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이념이 아닌가? 모두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정의로우며,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게 삼가자는 말이 아닌가? 그랬다. 적어도 공자는 그런 뜻으로 말했을 거다. 그러나 4000년이 지나면서 인간 공자는 신성화됐고, 그가 남긴 말은 물신(物神)이 됐다. 실제로 부모에게 효도한답시고 자기의 다리 살을 베어내 먹이고, 군주에게 충성한답시고 자기 자식을 삶아서 바치는 이야기가 어엿한 미담으로 전해지지 않았나.

말 그대로의 식인은 아니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모두를 위해 개혁을 이야기하면 ‘버르장머리가 없다’, ‘그런 법도는 없다’, ‘너 빨갱… 아니, 이단(異端)이지?’ 하며 몰매를 때리지 않던가. 그리하여 어디까지가 성현의 말씀이고 어디까지가 기득권을 지키려는 악습인지도 모르면서 자아를 말살하고 ‘모나지 않은 어른’이 되도록 가정에서, 학교에서, 병영에서 수없이 강요당하지 않았던가.

루쉰은 이를 “사람 잡아먹는 것”이라 매도하며, “이미 머리가 굳어 버린 어른들은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친다. 낡은 악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정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닐진대 때려 부수고 태워 버리라고 말한다. 그 목소리는 1919년 5·4운동에서 “공씨(공자)네 집을 때려 부숴라(打倒孔家店)” 하는 구호로 재생되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도 반복된다. 그리고 시대와 체제를 초월해 어른들의 낡은 틀에 맞도록 젊은이를 억지로 몰아가는 일을 거부하는 외침으로 변주된다.

우리에게 교육은 필요 없어.
우리에게 사상통제는 필요 없어.
교실의 악랄한 다그침 따위 집어치워.
헤이, 쌤! 아이들을 내버려 둬!
니들이 그 아이들에게 벌이는 짓들,
거대한 벽에 들어갈 벽돌로 찍어내는 짓들을!
-핑크 플로이드, ‘벽’(1982년)

여기서 퀴즈. 201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구하라’는 한 마디와 정반대되는 한 마디란 뭘까?
‘가만히 있어라.’ 딩동댕.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현실은 몽상 가운데 있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체 게바라의 명언이라고도 하고, 1968년, 유명한 68혁명 당시 학생시위대가 외친 구호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버전도 조금씩 다르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그러나 현실주의자가 되라.’ ‘현실주의자가 되라.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현실주의자가 되라.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상식적’으로 씹어보면 이상한 말이다. ‘가능한 것’도 될까 말까 한 게 세상인데, 불가능한 것을, 불가능한지 뻔히 알면서 요구하라니? 그 옆에 붙은 ‘현실주의자’가 더욱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현실주의자라면 누구보다 가능한 것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아닌가? ‘이상주의자’를 잘못 썼나?

그래서 ‘그러나 현실주의자가 되라’는 말로 읽어, 이상은 원대히 품지만 그 실현 과정에서 ‘오버’하지 말라는 말로 읽기도 한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그러나’로 읽어서, 먼저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차차 양보해야 최대한을 챙길 수 있다는 협상의 노하우를 풀어낸 거라고도 한다. 그러나 체 게바라라면 몰라도, 파리 샹젤리제를 가득 메우며 온몸으로 체제에 저항했던 젊은이들이 했을 말 같지는 않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그리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가장 어리석고, 모순적인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무엇이 불가능하다고 누가 결정했는가? 사회가 변혁할 때 가능한 것에 충실했던 적이 있었는가?

“노예제를 없애자고? 경제가 노예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데? 불가능해.”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대하자고? 몇천 년 전부터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었는데?
성서에도 불경에도 코란에도 여자는 남자를 섬겨야 한다고 적혀 있는데? 불가능해.”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한다고? 쓰레기통에 장미꽃이 피는 걸 봤나? 불가능해.”

결국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그것은 대부분 누군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몽상가라고 비웃음을 받던 사람들, 그들이 진짜 현실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물론 불가능한 것을 요구한다고 당장 현실이 되지는 않는다. 적어도 당장은. 68혁명이 서구의 자본주의와 관료주의를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300명의 아이들은 단 한 사람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68혁명 이후 서구 사회는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녹색을 띤 국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국민은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무능하거나 무관심한 정부라면 참된 민주 정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감정은 끓어오르고, 타오르며, 우리의 벅찬 마음이
우리의 길을 밝힌다.
한 무리가 또 다른 무리를 따라 쓰러진다.
고귀한 죽음으로, 서로를 얼싸안으며 땅에 쓰러진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별들은 계속해서 떠오르리라.
그리고 나의 삶은 계속된다.

팔레스타인의 여성 시인, 파드와 투칸이 1968년에 쓴 ‘광야에서 잃어버린 얼굴’의 한 토막이다. 그는 여성에 대한, 민족에 대한 박해에 평생 저항했다. 살아서 그 저항의 결실이 해방으로 이어짐을 보지 못했지만, 숱한 실패와 좌절이 거듭될 뿐이었지만, 그녀는 매번 고개를 쳐들고 박해자들에게 외쳤다. ‘짜식들아, 나 아직 살아 있다고!’

시대가 너무 어둡고 체제가 너무 악랄해 언제까지나 빛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서 땅에 쓰러지는 동지들을 볼 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음으로써 계속 싸울 수 있다. 최고, 최대의 저항은 거부하는 자들의 삶이 계속되는 자체이기에. 이와 거의 비슷한 때 나온 비틀스의 곡명은 ‘오블라디 오블라다’였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족 말로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의 노래는 지루한 현실 속에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데스먼드는 시장의 행상꾼이라네.
몰리는 밴드의 가수라네.
데스몬드는 몰리에게 말했다네, 네가 좋다고.
몰리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네.
오블라디 오블라다, 삶은 계속되지.

‘삶은 계속된다(Life goes on)’는 말은 이후 숱한 영화, 노래, 애니메이션에 쓰였고,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역(?)으로 ‘삶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는 다다이스틱한 표현으로까지 나타났다(Life goes on, bra에서 감탄사인 bra를 브래지어로 해석하는 바람에). 그만큼 모든 현대인은 삶이 갑갑하다. 그래도 희망을 품으며 삶은 계속된다고 되뇐다. 그렇게 되뇌면서 ‘존버(X나게 버티기)’하는 우리는, 팔레스타인의 투사들, 나아가 천수백 년 전 후한(後漢)의 농민반란군들이 가졌던 각오를 공유하고 있다.

머리카락과 부추는
아무리 잘라도 다시 또 자라나네.
수탉과 두목은
아무리 목을 베어도 다시 또 일어날 때를 알리네.
관리 놈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백성들은 오늘도 살아있네.
백성들은 오늘도 살아있네.

함규진 교수는…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정약용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정치외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로 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보수와 진보 등 서로 대립되는 듯한 입장 사이에 길을 내고 함께 살아갈 집을 짓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왕의 밥상-밥상으로 보는 조선왕조사>, <역사를 바꾼 운명적 만남>, <정약용-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등이 있다.

그 밖의 혁명과 저항의 명언들


“불평등이 있는 한, 진보는 없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가 1879년 <진보와 빈곤>에서 한 말. 당시는 산업혁명의 부작용인 빈부격차 심화, 아동 노동, 한계 노동자의 증가 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런 한편,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적 도덕주의의 힘이 컸던 미국에서는 마르크시즘이 발붙이기 어려웠다. 이때 노동자 출신이며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헨리 조지는 마르크스처럼 사적 소유를 철폐하자고 하지는 않으면서도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해도, 사람들이 평등을 누리지 못한다면 진보했다고 할 수 없다”며 성서의 희년 제도에서 착안한 토지 이익의 공유제도를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좌파와 우파를 넘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으며 오늘날까지 토지 공개념, 기본소득제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베를 짤 때, 귀족이 어디 있었을까요?”

1381년 영국의 농민 반란, ‘와트 타일러의 난’에서 존 볼이라는 신부가 성난 군중들에게 했던 말. 이들은 미천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끝없는 착취와 온갖 수모를 당하던 끝에 봉기해 런던으로 진군, 리처드 2세 국왕에게서 신분 해방을 위해 힘쓰겠다는 약속을 받고 물러났으나 이후 귀족들의 군대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귀족이란 게 뭐냐? 신이 세상을 창조했을 때 귀족도 만들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물음은 존 볼의 명언과 함께 오래도록 살아 숨쉬었다.

“희망은 버려진 자들에게 있다.”

1994년, 미국과 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자 그에 반발해 멕시코의 치아파타에서 일어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 마르코스가 외친 말이다. 그는 갈수록 더 많은 경쟁과 능률 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을 구조조정하고 있다고, 다시 말해서 “쓰레기처럼 버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희망은 버려진 자들에게 있다. 그들이 스스로의 처지를 운명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함으로써 버려진 자들은 삶을 계속할 것이다. 아직 버려지지 않은 자들도, 각성하고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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