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과 우정
ETIREMENT ● Longevity

[한경 머니 = 박상철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웰에이징연구센터장·석좌교수]

우리나라 백세인 중 배우자가 있는 경우는 3%에 불과했고, 평균 사별 시기는 남자 68세, 여자 62세였다. 배우자 사별 후 30, 40년을 홀로 살아야만 하는 백세인은 홀로 고통을 이겨내고 외로움을 견디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있다. 고독은 노인들에게서 가장 큰 문제인 우울증의 원인이 되고 결국 자살이나 치매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고독을 자녀에게 의존해 이겨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나름대로 대안이 있어야 했다.

결국은 가까이 사는 이웃이나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만이 도움을 주고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 강원도 화천군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철원군 조사 후 밤늦게 들어선 사창리에서 군인들이 불쑥 나타나 총부리를 내밀고 민통선을 침범했다고 해 되돌아 수피령 고개를 넘어 불빛이 희미한 화천읍으로 들어서면서 최전방 지대에 이르렀음을 실감했다. 다음 날 파로호를 돌아 제일 먼저 찾아뵌 분은 간동면 도손리의 유근철 할아버지였다. 어르신은 아들 내외와 함께 살면서도 98세 되도록 논밭을 직접 관리했으나 낙상 후 비로소 자식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예금통장은 별도로 관리하고, 필요한 옷가지라든가 물건들을 손수 구입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처리하는 철저한 모습이었다.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유 할아버지는 “그냥 심심해서 일해”라고 너무도 간단하고 심상하게 답했다.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도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는 너무도 엄중한 삶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유 할아버지에게 일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시느냐고 여쭈었다. “산 너머 동갑
내기 친구가 있어 놀러 다녀.” 산 너머 마을에 같은 나이의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산을 멀리 돌아 유 할아버지의 동갑내기 친구를 찾아뵈었다.

동갑내기 송기구 할아버지는 여직 할머니와 해로하고 계셨으며, 밀짚모자를 쓰고 뙤약볕 아래 콩밭에서 풀을 매시다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도회지에 사는 자식들이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송 할아버지에게 “왜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느냐”고 묻자 “내 땅이 있어서 여기 살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당신의 할 일과 땅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자신이 죽더라도 그곳에서 마지막까지 부인과 살다가 죽고 싶다고 하셨다. 송 할아버지에게 산 너머 사는 친구에 대해 여쭈었다. “응, 산 너머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서 좋아. 그래서 서로 오고가고 해. 요즈음은 그 친구가 몸이 아파 주로 내가 찾아가.” 산 너머 유 할아버지 집으로 지금도 일주일이면 한두 번씩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산 너머 길이라는 것이 시골 사람들이 으레 말하는 한 5리쯤 되는 거리다. 5리란 거리가 가다 보면 끝도 없는 먼 길임을 깨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보기에도 험한 산을 넘어가야 하는 보통이 아닌 거리를 그분들은 그냥 편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가는 데 4시간, 오는 데도 또 4시간이 걸린다는 산길이었다. 그런데도 이 두 분 백세인들은 이러한 산길을 넘어서 오고가고 있었다.

도대체 만나서 무엇을 하실까 궁금해 “그렇게 힘들여 가서 만나면 두 분이 무엇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하기는 뭘 해. 그냥 앉아 있다가 오는 것이지. 이 나이 되도록 친구가 있다는 것이 좋아. 그 친구 없다면 어쩌겠어.” 그야말로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었다. 그냥 그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는 너무도 진솔한 이야기였다. 이 두 분 동갑내기 친구 백세인들은 서로 믿고 의지하며 함께 늙어 가고 있었다. 첩첩산골 강원도 산속에서 만나뵌 백세인은 이런 우정을 바탕으로 거룩한 건강장수의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의 유 할아버지와 송 할아버지는 진정으로 축복받은 예외적인 분들이다. 100세가 되도록 마음을 나누며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백세인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모두 죽고 없기 마련이다. 이러한 경우 백세인은 어떻게 대체할까 궁금했다.

전남 보성군 율포 해수욕장을 지나 찾아간 마을 언덕에 사는 백세인은 우리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도중 한숨을 내쉬었다. 백세인이 조사단 앞에서 한숨 쉬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었기에 연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건너 마을 친구가 가버렸어.” 바로 얼마 전에 한 20리 떨어진 마을에 사는 95세 된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받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엇비슷한 친구가 그래도 가까운 동네에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가져왔는데 그나마 떠나버리니 허전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는 심정이었다. 아무리 가족이 잘해주어도 친구와 나누는 정이 바로 장수의 또 다른 필요조건임을 엿볼 수 있었다.

인류 역사에 최초의 기록으로 인정받는 점토판 설형문자 기록을 해독한 결과도 바로 우정과 불로장생이 가장 중요하게 등장했다. 메소포타미아문명 최초의 국가인 우룩(Uruk)의 영웅 길가메시에 관한 서사시가 바로 그것이다. 길가메시가 포악해 신들이 그와 대결할 엔키두를 보내어 싸우게 했으나 결국 이들은 절친한 친구가 됐다. 그러다 엔키두가 죽자 이를 슬퍼한 길가메시는 최고의 현자인 우트나피시팀을 찾아가 불사약을 부탁했고 그가 가르쳐준 대로 목숨을 무릅쓰고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불로초를 찾았으나, 기진맥진해져 바닷가에서 잠깐 쉬어 졸다 깨어보니 그 불로초를 뱀이 먹어 버린 것을 발견하고 통탄했다는 신화였다.

물론 인간이 영생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가를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인류 최초의 기록이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무릅쓰며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우정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며, 바로 장수의 조건에 우정이 포함돼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