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데이(Wonderful Day), 70×20×42cm, 브론즈에 아크릴릭, 2016년
원더풀 데이(Wonderful Day), 70×20×42cm, 브론즈에 아크릴릭, 2016년
LIFE & ●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김경민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 사진 아라리오갤러리서울 제공]

춤사위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마음이 흥겨워야 몸도 리듬을 탄다. 척박한 세상살이에 춤 한 번 신나게 춰보기가 여간 쉽지 않다. 특히 생활전선에 내몰린 샐러리맨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기 젊은 부부 커플이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외출복 차림인 걸 보면 이제 막 출근길이거나 퇴근길의 맞벌이인가 보다. 두 사람은 그냥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게 행복이라고 보여준다. 김경민의 2016년 작품 <원더풀 데이> 조각 작품이다.

겉보기엔 화려한 컬러가 인상적이지만, 브론즈(청동)에 우레탄 도장(자동차 도료)을 입힌 견고한 조각품이다. 생각만으로도 축제의 복판에 들었다. 바라보는 시선이 간만에 만끽하는 부부만의 흥겨운 시간을 방해라도 할까 봐 염려스러울 정도다. 둘의 흥겨움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김경민 작가의 남편도 조각가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통하기 때문이다. 구상조각계의 중견인 남편 권치규(성신여대 교수)와의 사이에 1남 2녀의 아이들이 있다. 셋은 작품의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김 작가가 가족을 작품의 주요 모티브로 삼은 건 필연이자 숙명이었다. 여성 작가로서 육아와 작품 활동을 병행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한데 뭉친 가족이 뿜어내는 해학과 행복의 에너지는 이제 위로와 치유의 아이콘으로 인식될 정도다. 아마도 그 출발점은 고향일 것이다. 그의 고향은 우리나라 산업화와 현대화의 상징인 울산이다. 매일같이 눈에 들어온 사람들은 노동에 지친 근로자들이었다. 그들 역시 가정에 돌아가면 어엿한 가장일 텐데, 현실은 밤새 술을 권한다. 김 작가의 해학 코드는 바로 이런 현실의 아픔을 잠시 잊게 한다.

“작업의 주제는 동시대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내용이에요. 지극히 평범한 삶에서 한번쯤 경험했거나 느껴봤을 ‘누구나의 이야기’죠.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들과 상황들은 결국 ‘우리의 무의식적 습관’인 셈입니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할 때에 굳이 어떤 담론이나 이론은 무의미해요. 오히려 그 어떤 선입견도 없이 ‘최대한 무심코 바라보며 발견한 미학’과도 같습니다. 다만 상처와 고통으로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현대인에게 약간의 따뜻함과 치유의 기쁨을 전달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시련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축복받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만큼 시련과 축복은 양쪽의 바퀴나 날개와도 같은 셈이다. 간절히 바라는 축복의 진가일수록 무심히 반복되는 인생의 여정에 축적된 시련의 무게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김 작가가 스스로 체득한 인생의 지혜일 것이다. 조각가이기 전에 아내, 며느리, 엄마 등 일인다역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도 평범한 여성의 삶과 같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련을 운명처럼 혹은 일상의 반복처럼 받아들인 관조적 자세는 지금의 작품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됐다.
사랑(Love), 300×65×160cm, 브론즈에 아크릴릭, 2015년
사랑(Love), 300×65×160cm, 브론즈에 아크릴릭, 2015년
처음부터 김 작가의 조각이 ‘경쾌하고 발랄한 행복의 에너지’를 뿜어낸 것은 아니다. 20대 중반 대학원 시절만 해도 사회의 소외되거나 그늘진 곳에 시선이 닿아 있었다. 그를 조각계의 일약 스타로 등극시킨 1997년 ‘MBC 한국구상조각대전’의 대상 수상도 같은 주제의 작품이었다. 당시 중견작가들까지 참가해 그 공모전에서 대학원생이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만 해도 큰 이슈였다. 그 이후 틈틈이 서울, 일본, 대만,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20여 회가 훌쩍 넘는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2013년 홍콩 국제 자전거경륜장 국제공모 1등 수상, 2013년 포항스틸아트페스티벌 ‘시민인기상’, 2013년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시민이 뽑은 최고의 작품상’, 2015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심사위원 선정 특별예술가상’ 등을 수상하며 국내외의 활동 반경을 크게 확장해 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두바이 아트페어(두바이), 마이애미 아트페어(미국 마이애미), 아트부산(부산 벡스코) 등 비중 있는 미술전에서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특히 그의 작품은 일상생활 공간에서 만나는 ‘공공미술품’ 중에 섭외 1순위일 정도다.

여수해양엑스포 국제관, 부산은행 신축 본사, 연합뉴스 신사옥, 상암 MBC방송국, 강남 테헤란로 K타워, 강남 로데오 입구 상징물, 싱가포르 시외버스터미널 베독몰, 홍콩 국제자전거경륜장, 중국 청두IFS, 홍콩 하버시티 등 국내를 넘어 아시아권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진다. 아마도 ‘단순히 도심지 환경미화를 넘어 현대 도시인의 메마른 감성에 촉촉한 생기를 불어 넣는 중요한 역할’이 공공조형물의 순기능이라면, 김 작가야말로 작품의 태생부터 이미 준비된 격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에서 ‘조각은 육중한 것이 제 맛’이란 고정관념은 무의미하다. 난해한 개념이나 추상적 이미지는 걷어내고, ‘쉽고 편안한 회화조각’의 새 장을 열어 놓았다. 어쩌면 인간이 예술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소소한 교감의 기쁨을 보여주는 것 같다. 김 작가 작품의 중심 키워드인 ‘가족을 다루는 시선’이 바로 그 정점이다. 특히 2015년 작품 <친한 사이>는 ‘김경민 해학 코드’의 전형을 잘 보여준다. 목욕탕에서 발가벗은 채 남편이 아내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 온전히 등을 맡긴 아내나 힘껏 때를 밀고 있는 남편이나 행복에 겨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다.

그 장면은 세상의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형언할 수 없는 참 행복을 단번에 포착해 보여준다. 소소한 일상이 묻어나는 가족의 이야기에 작가적 상상력이 적당하게 가미된 장면들의 흡입력은 놀라울 정도다.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스토리텔링의 묘미야말로 김 작가 조각의 진수다.

그의 작품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 상승과 함께 작품의 경제적 평가 역시 높아지고 있다. 작품은 전시용과 야외 설치용 공공미술품으로 나뉜다. 전시용 소품의 경우 보통 크기에 따라 500만 원 내외에서 1000만~2000만 원 선이지만, <원더풀 데이>처럼 사람 실제 크기 한 쌍은 7000만~8000만 원 정도다. 에디션의 경우 5점 내외가 일반적이다. 야외 공공조형물은 보통 3~5m 크기가 2억 원 선에 형성돼 있다.
현대인의 행복한 일상을 포착한 스토리텔링 조각의 진수
김윤섭은…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세종대 겸임교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