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me now, 캔버스에 유채, 116.8×91cm, 2017년
Take me now, 캔버스에 유채, 116.8×91cm, 2017년
Artist
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우국원
[한경 머니 =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우국원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남겨진 기억과 상상을 결합한 이미지들을 창출한다. 주로 단편적인 아이콘이나 혹은 우화 속에 등장할 것 같은 동물들을 의인화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정돈되지 않은 붓질에선 묘한 해방감의 자유로움이 감돌고, 의도되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감성마저 감돈다. 곁들인 글씨는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있다. 우 작가는 마치 붓끝으로 상상하는 듯하다.

학습된 방식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표출은 우국원 작가 그림의 남다름이다. 갈무리되지 않은 형태와 필치가 특징인 셈이다. 그래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이 중요하다. 작업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즉물적인 느낌’의 생생함이 곧 우 작가 그림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속에서 느낀 감정과 환상을 섞어 또 다른 도상들로 기록하는 작품들은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아마도 대개의 작품이 주로 책 속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화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이미지들은 극히 주관적인 작가적 시선에 따라 새롭게 각색된 것이다. 우 작가의 그림은 문자와 이미지의 경계가 모호하다. 심지어 삐뚤빼뚤한 글씨들과 뒤섞인 여러 도식이나 기호들은 아예 읽기 위한 시도를 무색하게 할 정도다. 그런데도 그의 머릿속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생생한 리얼리티를 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별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텍스트나 언어라기보다 무심결에 흥얼거리는 콧노래나 저절로 흥에 겨워 나오는 추임새를 닮아 더욱 정겹다.

“현실세계에서의 제 경험과 기억을 지극히 ‘퍼스널(personal)’하고 직관적인 구상을 통해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작품 제작 과정은 최소한의 에스키스만으로 시작해 진행하면서 일어나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바꾸어 가는 스타일입니다. 손이 가는 대로 즉흥적인 느낌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작업할 때 붓도 사용하지만 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할 때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합니다.”

우 작가의 그림은 책, 음악, 동화, 기억 등 일상의 다양한 경험을 모티브로 삼은 감각적이면서도 서정적 작품 세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간의 솔직하고 원초적인 감성에 충실한 그림들이다. 굳이 ‘어른 동화 같다’는 비유를 하지 않더라도, 왠지 모를 순수함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개인의 경험과 생각들을 표현하거나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사람이 갖는 공통적인 감정의 코드일 것이다. 그런 감성이 매개가 돼 그대로 묻어난 회화를 마주할 때 더욱 편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상상 속 곳간의 아이콘 같은 이미지들은 자유로운 배치와 색채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인공조명보다는 자연채광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어릴 적, 한번쯤은 잠자기 전까지 소설이나 동화책을 손에서 떼지 못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은 이미 나와 책 속의 주인공이 구분이 안 되는 무아지경에 빠졌기 때문이다. 마침 무한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내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련한 느낌의 마지막 꿈 자락을 놓치기 싫어서 좀처럼 잠에서 깨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어리광을 부리는 상황이 떠오른다. 솔직담백한 감정을 어린아이가 쓱쓱 낙서하듯이 무의식적 방식으로 화면을 채워 나간다. 즉흥적인 선과 색감을 통해 낯선 이미지도 어느덧 친숙한 나의 일부가 된다.

이처럼 우 작가 작품의 특징으로 ‘동물’과 ‘아이’에 관련한 모티브는 빠지지 않는 편이다. 한편의 동화책을 읽는 것 같다는 품평 역시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 2012년의 개인전에선 13권의 동화책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었다.

우 작가는 평소 “동물과 아이는 생명체 자체로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둘은 정말로 이 세상의 수많은 존재 중에서 가장 예쁘고 흠잡을 데 없는 공통점을 지닌 존재들일 것이다. 그림의 일부로 ‘낙서처럼 구불구불 그려 내려간 선들’에서 아이나 동물에서 만나는 무작위적인 행동의 친밀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작품 속에 등장한 텍스트는 ‘텍스트’ 자체로서 의미도 있지만, 화면에서 의외의 공간적 밸런스를 담당한다. 그래서일까. 간혹 외국 전시에서 만난 관객들이 “왼손으로 쓴 글씨냐”고 묻는다고 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간간이 인터뷰에서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한 우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Lacrimosa, 캔버스에 유채, 193.9×130.3cm, 2017년
Lacrimosa, 캔버스에 유채, 193.9×130.3cm, 2017년
그의 작품은 첫눈에 보면 ‘예쁜 그림’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모를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자유롭고 꾸밈없는 색채와 터치로 묘사된 갖가지 형상들에선 뚜렷한 표정을 파악하기 어렵다. 봄날의 밝고 경쾌한 한낮의 나른함, 환절기 새벽녘의 서늘함, 무료하게 멍한 고요 속의 행복감 등 여러 계절의 감성을 동시에 품은 듯하다.

워낙 변화무쌍한 여러 감정의 기복까지도 쿠션처럼 자연스럽게 흡수하다 보니, 한편으론 다소 종교적인 힘마저 느껴진다. 흔히 아티스트들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감성을 대변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통찰력이 내재된 작품으로 인해 종교적인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면모가 아닐 수 없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메시지’라는 것 자체를 담고픈 욕구 또는 의지가 있진 않습니다. 그저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존재함을 확인하고, 나아가 초월적인 어딘가에 닿을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그려진 작품이 관람객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갈지, 관람객 안에서 어떻게 공명할지는 궁금하지요. 작업 자체의 진정성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고민거리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주제의식’이나 ‘깊이’보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제 한계에 대한 진솔한 도전정신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어쩌면 제 작업의 주제는 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저를 드러내 캔버스에 잘 담는 것’이 주제의식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우 작가는 우화가 지닌 본래의 단단한 스토리텔링 구조의 힘줄은 지워낸다. 순간순간의 감흥과 기분에 따라 수많은 함축적인 단편 이야기로 끊어내고 다시 잇기를 반복할 따름이다. 무의식 속 습관적인 행동이나 몸짓들이 표출된 ‘자동기술법 회화 형식’이 엿보인다. 무질서해 보이는 듯 즉흥적이면서, 거친 선과 색감에선 추상표현주의적인 면모와 야수파적인 느낌도 동시에 풍긴다. 철저하게 솔직한 감정에 충실한 우 작가의 그림은 개념만을 앞세운 현대미술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에겐 피부에 내려앉은 공기처럼 더없이 편안한 안성맞춤의 안락처가 아닐까.

지난해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아트페어도쿄 2017’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다. 한 중년의 신사가 “내가 주목한 작가들은 모두 크게 됐다”는 말과 함께 몇 점을 한꺼번에 구입해 갔다. 바로 일본 혁신의 아이콘 츠타야(Tsutaya) 서점의 창업자였다. 그런 남다른 안목을 지닌 컬렉터가 선택한 우 작가는 올해도 바쁜 일정을 앞두고 있다. 오는 3월 도쿄와 홍콩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참여를 시작으로 5월 국내 개인전과 하반기엔 새로운 스타일로 도쿄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작품 가격은 경우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보통은 50호가 1100만~1500만 원, 100호가 1800만~2300만 원 정도다.
즉흥적인 붓끝으로 동화 같은 상상력 자극
김윤섭 소장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세종대 겸임교수, 2017 서울국제조각페스타 전시감독,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