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개인 취향 시대 힙하게 핫하게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가로수길, 이태원, 성수동, 연남동, 망원동, 을지로 일대. 핫 플레이스로 소문난 동네에는 공통적으로 공식 하나가 풍문으로 떠돈다. 한적하고 낡은 동네에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활력을 불어넣었고, 임대료가 올라 결국 쫓겨나듯 다른 동네로 옮겨 갔다. 그 실체가 모호했던 젊은 예술가들을 따라가면 ‘힙’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힙이 핫이 되는 과정을 따라가 봤다.
‘힙’과 ‘핫’ 사이, 시작된 언더의 역습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의 뜨는 ‘힙 플레이스’라는 서울숲길 인근을 걸었다. 붉은 벽돌의 연립 주택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작은 가게’들이 돋보인다. 느낌 있는 카페, 식물 편집숍, 레스토랑, 바 등이 1층에 자리하는데 규모는 작지만 손님은 많다. 한 카페에 들어갔는데 공간의 절반 이상이 로스팅을 하는 곳으로 사용되고, 손님들은 간이 의자에 앉아 바리스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카페 밖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이 카페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한다고 한다.

카페 바로 옆 매장은 매달 새로운 주제로 행사가 열리고 있다. ‘평양슈퍼마케트’라는 이름으로 평양과 관련된 물건을 팔기도 하고, 독립서점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곳은 ‘콘텐츠 큐레이션 스토어’로 개인이나 소규모 브랜드의 팝업 가게로 활용된다.

공간을 운영하는 브랜드 전문 회사 필라멘트앤코 관계자는 “작은 숍들이 모여 있는 거리는 각각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돼 있고 교류도 활발해서 자체적으로 재밌는 기획이나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며 “패션을 하던 친구들이 테이블 서너 개를 놓고 자기 스타일대로 술집을 운영하거나 커피 로스팅으로 해외에서 더 유명한 바리스타들이 로컬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등 재밌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거리 투어를 시켜달라는 요청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평범해 보이는 거리가 이국적인 풍경으로 비쳐진 데는 ‘힙한 문화’가 있었다. 특징은 개성 있는 작은 가게들의 출현이다.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와 독립카페, 개인이 운영하는 꽃집, 편집숍, 서점, 레코드숍, 술집 등이 칙칙한 거리에 다채로운 색감을 입힌다. 간판은 절대 화려하지 않고, 재활용되거나 오래된 것을 중시하며, 분필로 쓴 메뉴판과 손으로 만든 많은 것들을 선보인다. 대형 프랜차이즈나 유명 브랜드는 보이지 않는다. 소규모 브랜드가 자신의 가치관을 공간에 풀어놓고 손님을 맞이한다. 이러한 ‘새로운 문화 조류’에 젊은 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반응하면서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일종의 ‘생활 혁명’이 앞서 미국 등 해외에서,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직업으로 보면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게 또 하나의 특징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음악과 미술을 즐기고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작가 등으로 활동하면서 주류 문화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상품과 공간을 통해) 뭔가 다른 자기표현을 한다. 플리마켓이나 자체 기획한 행사도 종종 열린다. 젊은 창작자들이 자신의 일터이자 놀이터로 삼은 곳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렇게 유명한 거리가 되는 순서를 밟는다. 동네마다 자리해 전국구 지도까지 등장한 작은 서점들이 일종의 문화 기지 역할을 했고, 점차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돼 최근에는 개인의 취향으로 모은 잡다한 것을 파는 잡화점이나 만물상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1세대 독립서점 유어마인드를 운영하는 이로 대표는 이러한 흐름에 대해 “작은 가게들은 어떤 연합체나 협회가 없기 때문에 생겨나고 활동하다 사라지는 모든 과정이 전부 개별적이고 흩어져 있어서 쉽게 하나로 묶거나 가늠이 되지 않는다”며 “각자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활동을 하는데 그게 합쳐지면 중대형 산업보다 주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이 재밌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킨포크와 에이스 호텔의
성공이 말하는 것

왜 이것이 특별한 문화 조류로 읽힐까. 미국 포틀랜드는 살기 좋은 곳으로 입소문을 타며 그 자체로 도시 브랜드로서 명성을 누리는 곳이다. 힙스터들의 도시로도 불린다. 주류의 문화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 손으로 만드는 독립 정신이 뿌리내린 곳, 또 이웃 사람과 거리를 가깝게 만드는 공동체 정신이 포틀랜드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이 전 세계적으로 힙한 도시로 알려진 데는 킨포크 잡지와 에이스 호텔의 공헌이 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내세우며 포틀랜드에서 탄생한 킨포크는 골드만삭스 출신의 윌리엄 네이선 편집장이 만든 계간지다.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모습이나 부모와 아이가 함께 노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으로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로망을 전한다. 또 이 포틀랜드의 중심에는 부티크 호텔, 에이스 호텔이 있는데 단순 숙박이 아닌 새로운 경험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게 특징이다. 힙한 호텔로 불리며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후 이즈 힙스터>의 저자 문희언은 “포틀랜드의 성공 이후 뉴욕이 다시 한 번 힙스터들의 도시로 떠오르고 문화적 파급력을 가지면서 산업적으로도 성장을 거두었다”며 “힙스터가 누구이고 왜 중요한지에 대한 언급에 앞서 하나의 특징을 꼽자면 바로 생산성, 창조적인 생산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힙하다’는 것들에는 ‘언더의 취향’이 존재한다. 주류 문화에 반하는 진영에서 벌어지는 ‘남과 다른 취향’이라 말할 수 있겠다. 비주류, 마이너, 인디라는 용어와도 통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진 않지만, 특정 진영에서 남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인생의 롤모델을 만들어가길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화이자 시장이다. 그리고 최근 취향을 권하는 사회에서 이와 같은 비주류 취향은 전에 없던 주목을 받고 있다.

이태원을 핫 플레이스로 만든 ‘장진우 거리’, 독립출판으로 주류 출판계를 뒤흔든 ‘유어마인드’, 인스타그래머로 전국의 장터를 뒤집어 놓고 있는 ‘띵굴마님’, 크리에이터이자 베스트셀러 <힘 빼기의 기술>의 저자인 김하나 작가 등 힙한 문화로 핫한 반응을 이끈 사례가 도처에 있다.

대규모 자본이 없이도,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담대한 행보를 하며 작지만 확실한 시장을 만들어 가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문화적으로는 힙스터, 경제적으로는 개인 브랜드, 스몰 브랜드의 의미가 있다. 개인이 곧 브랜드가 돼 주류와 경쟁하는 세상, 바야흐로 언더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커다란 배경이다. 비주류의 주류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성장 정체에 빠진 주류의 세상에도 시사점을 남긴다.


작지만 창대하게…비주류의 성공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청년 창작자 백세희 씨가 자신의 기분부전장애 및 불안장애에 관해 쓴 글을 독립출판을 하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다. 책에는 자신과 담당 정신과 전문의와의 12주간의 대화가 수록돼 있다. 올해 초 진행한 독립출판 프로젝트가 출판사 ‘흔’의 눈에 띄어 6월 정식 출간을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다. 정식 출간한 도서는 8월 첫째 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바 있다.
‘힙’과 ‘핫’ 사이, 시작된 언더의 역습
◀ 겨울의 옷, 한텐
두 명의 무대미술 전공자로 이뤄진 브랜드 ‘참새잡화'가 제작한 일본 전통 겨울 옷 한텐(hanten) 제작 프로젝트다. 2년 전 처음 한텐을 제작했을 때에는 총 330만 원가량을 모금했으나, 올해 여름에 진행한 두 번째 프로젝트에서는 1억5000만 원을 모금했다. 이번 참새잡화 한텐 프로젝트에서는 지난 펀딩에서 후원자의 피드백을 받아 업그레이드한 제품을 선보였다. ‘참새잡화’ 브랜드는 두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시작하게 된 브랜드로, 텀블벅을 통해 퀄리티 좋은 다양한 패션 및 잡화 제품을 여러 차례 제작했고, 커뮤니티 관리와 후원자 응대를 훌륭하게 해 다량의 팬층을 확보해 왔다.
‘힙’과 ‘핫’ 사이, 시작된 언더의 역습
◀알디프
알디프는 평소 취미로 차를 즐기던 이은빈 대표가 취미를 살려 창업한 브랜드다. 일반적인 차와 달리 ‘블렌딩 티’를 전문으로 선보인다. ‘우주’,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 등 독특한 이름을 가진 블렌딩 티를 만들고 이를 위해 다양한 연구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곳이다. 텀블벅 프로젝트를 통해 세련된 브랜딩과 패키지 디자인을 선보였으며, 충성고객층을 확보했다. 얼마 전 메쉬업엔젤스에서 투자를 받았다.
‘힙’과 ‘핫’ 사이, 시작된 언더의 역습
◀ 마더그라운드 스니커즈
패션 브랜드 ‘브라운브레스’를 운영하던 이근백 대표가 론칭한 자신의 감성과 원칙을 담은 브랜드 ‘마더그라운드’. 텀블벅을 통해 처음으로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독특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과 깊이 있는 브랜딩을 진행해 텀블벅을 통해 많은 팬을 모으고 브랜드를 안착시킨 바 있다. 본 프로젝트로 총 1억 원가량의 모금액을 달성했다.
‘힙’과 ‘핫’ 사이, 시작된 언더의 역습
자료:텀블벅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