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제 163호 (2018년 12월)

[공간 탐구] 근대 한옥을 만나다 ②

옛집에서 ‘기억’을 공유하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스러져 가는 것들이 아쉬워지는 계절이다. 마른 낙엽을 보며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해 보기도 하고, 잠시 내 곁에 머물다간 것들을 소환해보기도 한다. 한 해를 보낼 때가 온 거다. 우리는 매일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버거웠다. 지금 필요한 건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주는 위로가 아닐까. 변하지 않는 것을 통해 변해 버린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한 사색의 공간으로 역사가옥박물관을 소개한다. 
사진 내셔널트리스트 제공


역사가옥박물관(Historic House Museum)은 건물이 곧 박물관이 된 공간을 말한다. 건물이 지닌 건축적 특성, 건물에 살던 사람, 건물에 깃든 역사를 조명한다. 역사적인 인물이 강조되면 역사인물가옥박물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 도심에 있는 역사가옥박물관들은 많은 경우 근대 한옥, 도시형 한옥의 모습을 띠고 있다. 격변기의 새로운 문물과 건축 재료, 생활방식 등이 반영돼 그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지어진 집들이다. 전통 한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근대 한옥의 멋을 엿볼 수 있다.

최근 근대문화유산의 재발견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근대 시기의 새로운 산업 시설이나 여러 형태의 산물들, 발전소, 염전, 가게, 창고, 그리고 집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한국의 문화유산의 개념이 확장돼 가는 과정에서 시기적으로는 근대, 공간적으로는 집이라는 범위에 이르며 역사가옥 보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국내 역사가옥박물관 도입에 앞장 선 내셔널트러스트에 따르면 이와 같은 현상은 2000년대 이후 생긴 흐름이다. 최근 20년 사이 서울 도심에 자리하던 근대 한옥들이 개발 논리에 밀려 상당 부분 사라지면서 상징적인 집들을 시민 모금으로 지켜낸 사례가 생겼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최순우 옛집이 대표적이다. 이후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가옥을 매입해 보존하기 시작했다.

송지영 내셔널트러스트 학예사는 “해외의 경우 일찍이 고성이라든지 오래된 주택들을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국내에선 이제 막 발걸음을 떼서 논의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라며 “후손들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거나 게스트하우스로 소비되는 곳과는 다르게 현대인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 되도록 역사가옥박물관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하나 둘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가옥박물관으로는 최순우 옛집, 고희동 가옥, 배렴 가옥, 권진규 아틀리에, 백인제 가옥, 홍건익 가옥 등이 있다.

특히 문화재청의 등록문화재 제도가 생겨나면서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는 다르다. 생긴 지 50년이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몇 십 년이 지나면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닐 예정으로 지금부터 보존하자는 개념에서 시작됐다. 신청을 통해 심의를 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미래유산이라는 개념을 들여와 3대째 운영하는 오래된 가게들까지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 3~4년 사이 그 수가 늘었지만 유럽에서 역사가옥박물관이 박물관의 한 범주로 분류되는 반면 아직 한국에선 소수에 그친다. 역사가옥박물관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좁혀 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근대 한옥, 역사가옥박물관
현대인에게 의미는

‘보존 시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사례를 보면 건물이 지어진 시점이 아닌 해당 인물이 살았던 시점으로 복원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가옥의 운영 주체들은 “안타깝게도 문화재들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변형이 되면서 옛 자취가 사라진 경우가 많고,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됐던 한옥의 경우 방이나 화장실이 늘어나는 반면 전통 공간들이 사라져 애로사항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근대 한옥, 역사가옥박물관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빌딩 숲 사이 호젓하고 한적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일 수도 있겠다. 또 누군가에게는 ‘기억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특정 인물로 인해 생겨난 관계나 생성된 문화를 모두 함께 ‘링크’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실제 공간의 문을 열어 놓으면 다양한 기억을 가진 분들이 찾아오곤 한다고. 인물의 삶에 감동했던 이가 다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먼 친척들이나 지인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또 학자들은 이곳에서 건축적 특성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은 아이들과 함께 사랑방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송지영 학예사는 “그래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 그 공간을 경험하고 체험한 사람들의 기억이 같이 쌓이는 셈이고 미래에는 더 많은 기억을 공유한 모두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역사가옥박물관 중 두 곳을 소개한다. 누가 살았고, 어떤 공간이며, 왜 의미가 있는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관전 포인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최순우 옛집

최순우 옛집은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산 최순우 선생의 안목으로 리모델링한 공간이다. 마당의 꽃과 나무, 안채의 구조와 목가구, 현판과 창살 하나에 이르기까지 미감을 살려 놓았다. Ⓒ김재경


“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은 늘 사랑보다는 외로움이고 젊음보다는 호젓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은 공감 앞에서 비로소 빛나며 뛰어난 안목들은 서로 공감하는 반려를 아쉬워한다. 반려 없이 보는 아름다움은 때로는 아픔이며 때로는 외로움과 호젓함이며 때로는 그 의미를 잃는다. 사람을 잃은 사람의 눈에 세상이 빛을 잃어 보이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공감하는 사람끼리 그처럼 아름답게 바라보던 자연과 조형 작품이 하루아침에 허망해 보인다는 것은 아름다움이 그처럼 외로움을 잘 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불어 차 한 잔을 즐겁게 마실 수 있는 상대. 그것은 젊은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랑이란 항상 짙은 핑크빛 장막 속에만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즉, 같이 즐기는 차 한 잔의 예사로운 시간과 공간의 참 공감이 자연이나 조형의 아름다움일 경우, 그것은 사랑보다 더 아늑한 행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순우 <나는 내것이 아름답다> 중에서

서울 성북구 성북2동에 위치한 혜곡최순우기념관(최순우 옛집)은 1930년대 초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역사가옥박물관에 해당한다. 최순우 옛집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의 저자로 유명한 최순우 선생이 살았던 가옥이다. 지난 2002년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제1호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2004년부터 일반에게 개방하면서 가옥박물관으로 기능하고 있다.

인물
혜곡 최순우는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사학자로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냈고,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특히, 한국의 미감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자랑했다. 1916년생 개성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연히 박물관계에 몸담게 돼 평생을 박물관인으로 살면서 박물관의 기틀을 잡고 후배를 양성하며 우리나라의 문화재나 한국의 미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건축
최순우 옛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근대 한옥이다. 근대 한옥이라 함은 격변의 시대에 이전에는 없던 재료(시멘트, 벽돌, 유리 등)를 사용해 달라진 생활방식을 반영해 지은 한옥을 뜻한다. 최순우 옛집 앞마당에 위치한 함석으로 만든 물받이의 경우 전통 한옥에는 없는 생활의 편리한 요소를 들여온 것이다. 특히 한국의 미를 예찬했던 최순우 선생은 1976년에 이곳에 이사 오면서 자신의 안목을 살려 리모델링을 했다. 기존 부엌 자리를 안방으로 확장해 사용했고, 아궁이를 없애고 난방을 들여놓았다. 또 뒤편 정원에 나무나 석물을 갖다 놓고 숲속 정취를 느끼곤 했다.

공간
이곳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뷰 포인트’는 안방 앞에 걸려 있는 현판이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닫으면 이곳이 곧 깊은 산중)’이라는 친필 편액이다. 이사 오던 해 직접 쓴 글귀로, 본인의 삶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대목. 글귀처럼 살고 싶어 했던 최순우는 또 뒷마당에  ‘오수당(午睡堂: 낮잠 자는 방)’이라는 김홍도의 글씨를 새겨 넣었다. 전체적으로 기역(ㄱ)자형 안채는 사랑방, 안방, 대청마루, 건넌방 구조다. 조선시대 목가구와 현대작가의 작품을 함께 배치하고 있다,

최순우가 ‘가장 정갈하고도 조용할뿐더러 황금률이 적용된 쾌적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는 평을 한 용(用)자살 창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된다. 아침에 이 창살을 통과해 드리워진 햇살은 정원의 나뭇잎을 정확하게 비추고 그 옆의 딱 알맞은 자리에 석물이 놓여 있다고 한다. 무심한 듯 툭 놓은 듯한 돌 하나라도 얼마나 세심한 안목으로 돌보고 즐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최순우 옛집의 힐링 공간은 뒤뜰에 앉아 감상하는 풍경이다. 흔히 정원에 많이 심는 식물이 아닌 뒷산에 있을 법한 사계절의 꽃과 나무들을 심어 놓아, 그의 바람대로 ‘산속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권진규 아틀리에


조각가 권진규가 흔히 근대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고 그의 조각품은 진귀한 소장품으로 이름을 알린다면, 그의 아틀리에서 만나는 권진규는 또 다른 면모를 가진 인물이다. 권진규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의 아틀리에, 그곳에서 발견한 권진규는 고투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말하는 작가였다.

인물
권진규는 살아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 그가 살았던 동네의 한 교회에서 그에게 십자가 조각을 의뢰했는데, 정작 조각을 받아든 뒤 다시 돌려보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환영받지 못한 조각, 권진규에게는 자식과 같았던 조각들을 선반에 올려놓고 감상했다던 아틀리에의 풍경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는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몰려 왔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육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나 남달리 흙 만지기를 좋아했던 권진규는 일본 도쿄의 사설 아틀리에에서 미술 수업을 받으면서 조각가의 길로 들어섰다. 광복 후 1948년 무사시노미술학교에 입학해 재학 시절부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귀국 후 화랑계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1973년 그의 아틀리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그는 주로 인물이나 말이나 달과 같은 동물상을 흙으로 구워서 제작했다. <자각상>, <소녀의 얼굴>, <여인상> 등이 주요 작품이다.

건축
서울 성북구 동선동에 위치한 권진규 아틀리에는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면 당도하는 도심 속 작은 주택이다. 그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던 집으로 살림채와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권진규가 어머니를 위해 팠다는 우물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곳이 지어진 시기는 1959년으로 알려진다. 권진규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그 해에 작가로서의 꿈을 품고, 작업하기에 좋은 여건으로 기능을 살려 직접 지었다. 권진규가 생을 마감한 1973년 이후 한동안 굳게 닫혀 있다가, 그의 가족이 집을 기증하면서 일반에게 문을 열고 있다. 앞서 소개한 최순우 옛집에서 선비의 정취를 느꼈다면 이곳에선 권진규의 작가 정신, 그리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뇌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공간
권진규 아틀리에의 가장 인상적인 공간으로는 단연 그의 작업 공간이 꼽힌다. 그곳 한쪽에 아주 작은 방, 한 평짜리 쉼의 공간이 있다. 그는 새벽같이 일어나 규칙적인 작업을 한 작가로 알려지는데, 휴식을 취할 때는 아틀리에 한쪽에 있는 작은 방에서 쪽잠을 자면서 작업에 매진했다. 또한 ‘천장’을 의도적으로 높이 올린 부분도 울림이 있는 대목이다. 높은 천장에 닿을 만큼 큰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작가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아쉽게도 작가는 그 바람은 이루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이 공간은 기증의 의미를 살리고,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보존의 방향을 ‘현대 작가 지원’에 맞추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에게 일정 기간 작업 공간으로 제공하고, 전시회를 열어 대중에게 소개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일반에 상시 개방은 되지 않지만,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닫힌 철문이 활짝 열린다. 현재 보수 공사 중인데, 운영 주체인 내셔널트러스트는 부족한 공사비를 후원을 통해 모금하고 있다.

권진규 아틀리에는 그가 한국에서 작업에 매진했던 작가의 공간이자 살림채였다.기증을 통해 보존된 점이 특징이다.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 현재 젊은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로 활용되고, 한 달에 한 번 정기 개방을 통해 일반에게 문을 열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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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12-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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