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73호 (2019년 10월)

[big story]멋지게 나이 드는 ‘진짜 어른’을 꿈꾸다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누구나 원해서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듯 꼰대가 되고 싶은 중년이 어디 있으랴. 그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일했고, 세상의 이치를 몸과 마음으로 배워 가며 잘, 그리고 멋지게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돌아온 건 주름과 흰머리, 그리고 ‘꼰대’라는 주홍글씨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남자가 넥타이는 맬 줄 알아야지. 어른이 되는 건 ‘나 어른이요’ 떠든다고 되는 게 아니야. 꼭​ 할 줄 알아야 하는 건, 꼭 할 줄 알아야지. 손가락으로 코풀거나, 손바닥으로 땀 닦지 마. 아무데나 턱 앉지 말고, 깔고 앉거나 닦고 앉아.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주면 그게 말인 거야. 어른 흉내 내지 말고, 어른답게 행동해.”

-tvN 드라마 <미생> 중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자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디. 긍께 우리 딸이 쪼까 봐줘.”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중


어른이 되어도 슬픈 일은 슬프다

아픈 일은 아프다

어른이 되어도 서러운 날이 있다

외로운 날이 있다

어른에게도 끌어안고 울

곰 인형이 필요하다

- 강미영 ‘숨통트기’ 중


어른이란 무엇일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어른의 사전적 정의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어른에 대한 통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저 명제들에 부합하는 사람들에게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하고, 저런 사람이 돼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중년의 어른이 됐다. 전쟁 같은 일상이지만 꾸준히 각자의 일을 지속하고 있고, 직장 안팎으로 나이나 지위, 항렬도 높아졌다. 그런데 어쩐지 어른이라는 타이틀이 내 옷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어른이 되면 경륜이 쌓여 마치 달관하듯 세상을 볼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두려운 것 천지다. 지금의 중년들도 한때는 586세대로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견인한 주축이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자부심은 색 바랜 추억이 됐고, 아랫사람들로부터 존경 대신 꼰대라는 핀잔만 돌아올 뿐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제조업체 A사의 부장 김 모 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얼마 전부터 회사 내 조직문화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도된 ‘마음의 소리’ 코너에서 자신을 겨냥한 비판의 글들을 상당수 발견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은 선의로 했던 행동을 후배들은 듣기 싫은 잔소리로 여기고 있었던 것.
“예전에 싫어했던 꼰대 상사들의 모습을 저 역시 닮아 가나 봐요. 제 생각엔 후배들이 이 점만 고치면 더 잘할 것 같아서 충언을 한 건데 돌아오는 반응은 냉랭하거든요. 나름 젊게 살려고 노력도 하는데 도통 요즘 어린 친구들의 속내를 모르겠어요.”

비단, 이런 고민을 하는 건 김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좀 억울한 면도 있다. 과거에는 좋든 싫든 일터에서 상사를 어른처럼 모셔 왔다. 물론, 그때의 문화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는 건 아니다. 다만, 예전에는 통상적인 기준이던 것이 이제는 틀렸고, 그저 꼰대라고 지적하니 속상하고, 분하다.

그뿐인가. 과거의 기준을 버리고 요즘 기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알려주지도 않고, 기다려주지도 않으니 그 변화의 속도가 혼란스럽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후배들을 향해 “그건 아니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소통을 잘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세대 간 허물 깬 그레이트 그레이
“편(팬)들아 나 100만 된다. 편들 덕부(덕분)이다. 눈물 나와서 혼났다. 너무 고맙고 사랑하는 편들 덕이다. 사랑해.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문(눈물) 찡하구나.”
올해 8월 11일 유튜브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넘긴 박막례 할머니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다.


[사진 출처: 박막례 할머니 인스타그램]

박 할머니는 지난 2017년 1월 유튜브를 개설했다. 의사로부터 ‘치매를 주의하라‘라는 소견을 들은 뒤 손녀딸 김유라 씨의 제안으로 영상 촬영을 시작하게 된 것이 2년 6개월 뒤 이런 결과를 얻게 됐다.

박 할머니의 팬층은 다양하지만 특히 1030세대의 젊은 층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대충 비빔국수 레시피’, ‘치과 갈 때 메이크업’, ‘시장에서 산 천원 립스틱 5천원어치 리뷰’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박 할머니 특유의 직설적이고, 톡톡 튀는 화법과 어우러지면서 젊은 세대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한 온라인 공간 외에도 팬 미팅 등 각종 행사를 통해 끊임없이 팬들과 소통하고, 기부를 통해 사회적 본보기를 실천하는 박 할머니의 모습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바라는 어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 청년들이 바라는 어른의 덕목은 ▲책임감 ▲성실함 ▲배려심 ▲유연한 사고력 등으로 나타났다. 2016년 NBT의 모바일 잠금화면 플랫폼 캐시슬라이드가 성년의 날을 앞두고 만 19세 사용자 11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은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덕목으로 ‘맡은 일이나 의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임감(30.2%)’을 1순위로 꼽았다.
이어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성실함(20.2%)’, ‘상대방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배려심(16.0%)’, ‘나이가 들어도 여러 세대와 어울릴 수 있는 유연한 사고력(15.2%)’, ‘타인은 물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정직함(9.3%)’,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함(7.2%)’ 순이었다.

이와 반대로 결코 되고 싶지 않은 어른의 유형으로는 ‘어린 사람의 말은 무시하고 보는 꼰대형(31.4%)’, ‘다른 사람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형(27.5%)’, ‘맡은 일에 나 몰라라 하는 책임감 부재형’과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고 타협이 안 되는 일방통행형(각 17.2%)’, ‘돈 앞에서 매우 인색한 구두쇠형(5.5%)’ 순으로 꼽았다.



비단, 이런 멋진 어른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건 박 할머니의 사례만은 아니다. 최근 인생 제2막을 화려하게 여는 ‘그레이트 그레이(great grey)’가 주목받고 있다. 퇴직 이후에도 활발하게 소비 활동, 취미 생활 등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그레이트 그레이는 지성언 ㈜차이나다 공동대표가 그의 저서 <그레이트 그레이>를 출간하면서 그 개념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 대표는 책을 통해 “평생 젊을 수는 없어도 멋지게 나이 들 수는 있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나이가 들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 날은 반드시 온다. 보통 60세에 직장을 그만둔다면 20~30년의 인생 2막이 있는 셈이다. 인생 1막에서는 어느 정도 정해진 사회적인 시스템 안에서 제 역할을 하는 배우였다면, 인생 2막에서는 작가, 연출, 배우도 전부 혼자 해 나가야 한다. 지 대표는 빠르면 40대 후반부터를 ‘인생의 중간 휴식기’라고 표현하며 뮤지컬이나 오페라에서 1막과 2막 사이에 인터미션을 두는 것처럼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2막이 1막보다 재미있는 것처럼 인생 2막에 진짜 자신이 원하던 바를 도전해보며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그려 나갈 수 있다고 한다.

도전하고 행동하는 어른이 멋있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자신의 길잡이가 돼줄 ‘멋진 어른’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경할 만한 어른’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른의 의무>의 저자이자 만화가 야마다 레이지는 10여 년간 작가, 의사, 작곡가 등 ‘성공한 인생’이라 인정받는 유명인 200여 명을 만나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저자는 존경할 만한 어른들의 공통점을 찾게 됐다. 바로 ‘잘난 척하지 않고,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젊은 세대와 소통하면서 그들이 기성세대를 불신하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어른들이 고쳐야 할 의무 3가지를 제시한다. ‘불평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가 바로 그것. 그리고 농경사회부터 근대까지 이어온 ‘나이가 많으면 아는 것이 많고 경험도 많으니 배울 게 있다’라는 믿음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른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 이유는, 어른에게는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 인맥, 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연장자가 진심으로 변화하겠다는 각오로 행동에 옮긴다면 이 세상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그레이트 그레이의 모습은 그저 나이만 많은, 무뚝뚝한 어른이 결코 아니다. 끊임없이 꿈을 꾸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여기서 성취감을 느끼며 함께 나누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그레이트 그레이의 초상이 아닐까. 지금 당신은 진짜 어른이 될 준비를 시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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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체크리스트: 당신은 꼰대입니까?
▒  사람을 만나면 나이부터 확인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는 반말을 한다.
▒  대체로 명령문으로 말한다.
▒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 탓, 불평불만만 하는 건 사실이다.
▒  “00란 000인 거야” 식의 진리 명제를 자주 구사한다.
▒  버스나 지하철의 노약자석에 앉아 있는 젊은이에게 “비켜라”고 말하고픈 충동이 인다.
▒  후배의 장점이나 업적을 보면 자동 반사적으로 그의 단점과 약점을 찾게 된다.
▒  “내가 너만 했을 때” 얘기를 자주한다.
▒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가 거슬린다.
▒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 간부, 유명 연예인 등과의 개인적 인연을 자꾸 얘기하게 된다.
▒  커피나 담배를 알아서 대령하지 않거나 회식 자리에서 삼겹살을 굽지 않아 기어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후배가 불쾌하다.
▒  낯선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에게는 친히 제대로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 놓고, 나중에 보면 내가 먼저 답을 제시했다.
▒  옷차림이나 인사 예절도 근무와 연관된 것이므로 지적할 수 있다.
▒  내가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  연애사와 자녀 계획 같은 사생활의 영역도 인생 선배로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한다.
▒  미주알고주알 스타일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확인한다.
▒  아무리 둘러봐도 나보다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아이들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원론에는 동의하지만, 실제로 뭘 배워본 적은 없다.

0~3개
당신은 성숙한 어른임.
4~7개
꼰대의 맹아가 싹트고 있음.

8~15개
꼰대 경계경보 발령.
16~20개
자숙 기간 필요.
자료: 미국 창의적리더십센터 2015(<최고의 조직을 만드는 완전한 리더십>에서 재인용)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3호(2019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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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9-2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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