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 사진 서범세 기자] '가계부채 1500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초저금리 시대다. 전 세계 유례없는 급증세를 나타내며 위험 수위에 도달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통계상 오류를 조목조목 지적하며 "지금 당장 금융위기가 와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라며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SPECIAL] "가계부채, 부동산 거품, 금융위기 불러올 수도"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는 최근 수년간 반복돼 온 해묵은 이슈 가운데 하나다. 일단 통계상 수치만 따져보면 금융위기를 불러올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사회통념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부채는 1500조 원 안팎, 국제결제은행(BIS)에서 발표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7%로 비교 대상 43개국 가운데서 7위 수준이다.


하지만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가계부채가 지나치게 과소계상 됐으며, 실질 가계부채는 2300조 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이 수치대로라면 GDP 대비 가계부채는 스위스(128.6%), 호주(120.5%) 등 세계 1,2위 국가를 크게 넘어서게 된다. 그는 상황이 이런 데도 금융시장 전반에서 이에 대한 경각심을 찾기 어려우며, 만약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과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 애널리스트는 지난 2003년 '카드 사태' 발생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예측해 금융시장의 주목을 끌기도 했으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국내 은행의 유동성 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후 2011년에는 '가계부채의 실체는 자영업자 부채'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정부의 가계부채 구조조정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는 유동성의 위기였기 때문에 유동성이 해결되면서 빠른 속도로 시장이 안정됐다"며 "이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위기가 오면 오히려 투자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인식까지 엿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위기는 가계부채의 위기인 만큼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다는 게 더욱 심각한 문제다"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서 애널리스트와 일문일답.


최근 발간한 <대한민국 가계부채 보고서>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로서 세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한데.
"무엇보다 정부와 금융당국, 시장참여자, 그리고 시민들에게 금융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그동안 수차례의 금융위기를 통해 뼈아픈 경험을 했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죠. 과거 금융위기 때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시민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반대로 이런 사회 불안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 세력이 나타나면서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는 단초가 되기도 했죠. 지금의 가계부채 문제 역시 심각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 집필을 하게 됐습니다."


책을 발간한 배경으로도 언급했는데 가계부채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나요.
"비유적 표현을 빌리자면 '고장 난 자물쇠'로 표현하고 싶네요. 자물쇠가 고장 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 도난사고가 발생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죠. 도둑들이 이곳저곳을 노리다 발견될 수도 있는 거고, 우연히 지나던 사람이 고장 난 자물쇠를 보고 집에 들어올 수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막대한 가계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의 경우 당장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판단입니다. 물론 금융위기는 여러 요인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때 촉발된다는 점에서 현시점에서 금융위기를 거론하는 것은 비관론자들의 주장에 가깝습니다.
이를테면 주택가격 급락이 금융사의 부실로 이어지고, 또 외국인의 자금 이탈과 같은 외부 충격이 겹쳐져야 한다는 거죠. 외부 요인의 경우 외국계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조정할 때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연쇄적으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단 1% 가능성이라도 미리 차단하는 게 중요하겠죠."


하지만 정부는 물론 시장에서도 가계부채 규모에 대해 '관리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이 결여돼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이는 통계상의 오류로부터 출발합니다. 국내 가계부채는 모든 종류의 가계 빚을 포함해야 하는데, 편의상 몇 가지가 빠져 있습니다. 전세보증금 대출과 개인사업자 대출이 대표적이죠. 둘째 오류는 부채의 위험을 산정할 때는 '평균치'만을 써서는 안 됩니다. 평균은 하나의 보조 지표일 뿐이죠. 위험 측정은 테일리스크, 즉 위험 발생 가능성이 높은 한계 계층을 살펴야 하는데, 기존 평균 중심의 통계치로 가계부채를 분석하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질적 측면입니다. 상당 규모의 대출이 부동산 투자 목적의 대출인데, 이런 대출의 경우 자산가격이 오르면 연체가 줄어들고 대출이 추가로 늘어나게 됩니다. 위험이 과소평가 되는 거죠. 부채가 계속 늘어나면서 소득 대비 상환 능력이 나빠지는데 오히려 차주의 신용등급은 올라가게 되죠. 신용평가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때의 가계대출 부실화 과정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실질 가계부채를 2300조로 추정했는데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부채의 총량도 문제지만 GDP 대비로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대 수준이라는 겁니다. 부채의 질 역시 큰 문제죠. 사실 부채의 질이 좋으면 이렇게까지 늘어날 이유도 없습니다. 이자만 내는 투자 목적의 대출이 급증한 걸로 볼 수 있죠. 반면 실수요자 중심의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은 대개 투자 목적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현재 정부는 주택담보대출의 60%가량이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이라는 점을 내세워 가계부채의 안정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25%가량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거의 이자만 내는 대출인 거죠. 전체 가계대출로 환산하면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은 20%가 채 안됩니다. 미국 등 해외 국가의 경우 주택 구입 과정에서는 주택담보대출만을 주로 활용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가능한 모든 대출을 끌어다 쓰는 경우가 많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신용평가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하는데, 다행스러운 점은 해당 작업들이 현재 진행 중이라는 점입니다. 이미 개인사업자 대출이 별도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전세보증금도 넣어야 하는데 집계가 쉽지 않은 상황이죠. 부동산 임대 통계 시스템 도입도 궁극적으로는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대다수의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서울 지역에 한해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서울을 빼놓고 보면 이미 하락세로 돌아선 지역이 꽤 많습니다. 지방과 경기 변두리 지역인데, 은행 대출을 기준으로 서울, 경기 인천, 지방이 각각 30% 안팎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계부채의 문제가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거죠. 서울 지역의 경우 자산 관점에서 가격 상승은 맞지만, 부채 관점에서 보면 부실 위험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주식처럼 집값 상승은 레버리지(leverage)를 얼마나 일으킬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반대로 부채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점을 가격 하락의 시점으로 추정해볼 수 있겠죠. 결국 서울과 지방의 가격 양극화는 부채 위험을 키우는 촉매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 부동산 거품은 어느 정도로 볼 수 있나요.
"첫째로 자산 관점에서 부채를 얼마나 감내할 수 있느냐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소득이 늘지 않는 상태에서 자산이 늘었다는 것은 부채가 영향을 미친 거죠. 물론 부채가 계속 늘어날 수만 있다면 자산 가격은 무한대로 늘어나겠지만 세계 주요국 가운데 한국의 가계부채가 가장 많다는 점에서 국내 부동산 가격의 상당 부분이 거품이라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재화 관점에서 적정 가격을 산출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택의 효용은 평생을 거쳐 나타납니다. 30년 만기 대출이 가능한 이유죠. 이때 추가 대출 없이 원리금을 갚아 나갈 수 있는 여력, 즉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역으로 추산해보면 적정 가격을 구할 수 있습니다. DSR의 글로벌 컨센서스가 40%인데, 연봉이 6000만 원가량이고 30년 만기 대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60%를 가정하면 서울 기준 약 6억 원 중반대가 나옵니다. 현재 평균 가격이 9억 원이면 3억 원가량이 거품이라고 볼 수 있는 거겠죠. 일각에서는 서울의 투자 매력을 간과했다고 주장하는데, 외국인들은 국내 주택 점유율은 1% 안팎에 불과합니다. 투자나 거주 관점에서 가격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거죠."


[SPECIAL] "가계부채, 부동산 거품, 금융위기 불러올 수도"


정부의 각종 부동산 대책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입니다. 정책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는데.
"정책 일관성의 실패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재임 기간에는 집값을 잡기 위한 효과적인 대책이 잇달아 도입됐었죠. DSR 도입과 채무 조정 활성화, 국제회계기준(IFRS)9 도입 등이 대표적이죠. 물론 8.2 부동산대책은 실패했지만 9.13 부동산대책은 가계부채의 강력한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정책입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이 물러나면서 구조조정 고삐가 풀려 버렸습니다. 이후 경기 부양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대출이 빠른 속도로 늘었고, 다주택자들의 손발까지 묶어 버리면서 급기야 집값도 9.13 대책의 전 고점을 뚫었죠.
사실 9.13 대책의 경우 서민들의 주택 구입까지 막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정책 방향은 거래 절벽에 따른 집값 하락을 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됩니다. 서민들이 고점에서 사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인 거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주택자만 더 손해를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9.13 대책도 결국 실패한 거죠."


결과만 놓고 보면 '의도된' 집값 상승이 아니냐는 시각까지 나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김 전 실장 퇴임 이후 가계부채 정책과 관련된 권한은 사실상 경제부처(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처의 정책 목표는 부동산 안정화가 아닌 금융 불안 차단이죠. 현 정권에서 급격한 집값 하락을 원치 않습니다.
기재부와 금융위, 국토교통부 등으로 부동산 대책의 권한이 분산되니 자연스럽게 정책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부동산 시장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당장 총선을 앞두고 경기 방어에 대한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죠. 같은 맥락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 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집값 하락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카드 사태'가 터지면서 정책 방향이 뒤집혔죠. 카드 부실이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이어졌고, 급기야 다세대주택 담보대출의 연체율이 8%에 육박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리 인하와 함께 재건축 규제 완화 카드를 꺼냈죠. 어느 정부에서나 부동산을 경기 부양에 이용하려는 욕구는 늘 존재해 왔는데 현 정부 역시 그런 비판에서는 자유롭기 어려워 보입니다. 부동산은 가계부채와 자산을 동시에 컨트롤해야 하는데 한쪽에서 아무리 공급량을 늘려도, 다른 한쪽에서 금리 인하를 통해 대출을 확대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타나겠죠."


최근 발표한 분양가 상한제를 놓고도 논란이 분분합니다.
"분양가 상한제 등 재건축 규제 강화는 재건축 시장에 아주 치명적입니다. 멸실 주택이 사라지고 단기간에 공급량이 늘어나 당장 주택 시장에는 악재인 셈이죠. 하지만 투기 수요를 억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급량만 늘리면 오히려 수요를 자극해 가계부채가 추가로 늘어나는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주식시장에서 대세 상승기에 유상증자가 호재로 작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했더니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다시 재건축 아파트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경기 신도시로의 이주 수요가 서울 지역의 전세 수요로 전환되면서 서울 전셋값만 부추기는 상황이죠. 반대로 경기 외곽 지역은 가격이 하락하며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낮은 대출금리 역시 서울 지역의 전세 수요를 높이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부채와 자산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정부 부처끼리 엇박자를 내다 보니 역효과만 반복되고 있는 거죠."


그렇다면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경기 부양(방어)에 부동산 시장을 활용하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합니다. 지금은 부채 구조조정을 해야 할 시점이지 부동산 경기를 걱정해야 할 시기가 아니란 얘기죠. 특히 가계부채 증가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금리 인하 기조를 멈춰야 합니다. 기준금리 인하는 곧 구조조정 지연을 뜻합니다. 대폭 올리기는 올리는 것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한 미 금리 역전 상황은 정상화해야 한다는 거죠. 구조조정은 경기 회복의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대출금리를 내려 한계/좀비 기업을 연명시킬 게 아니라 이들 기업을 걸러내야 투자 수익률이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는 거죠. '내 임기 내에 구조조정은 안 된다'는 기조가 경제를 더욱 망친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기술적 부분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앞서 언급했듯 가계부채 통계부터 재정립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가계부채 보고서>에 적시한 2300조 원가량 역시 측정 가능한 범위 이내입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거죠."


정부는 여전히 기업들에 대한 자금 지원에 초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끼는 것 같은데.
"주변국에 비해 국내 경기가 유독 나쁜 이유는 내수가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마저 흔들리니 기댈 곳이 없게 된 거죠. 내수 부진의 핵심 원인은 어느 산업이든 진입장벽이 너무 낮아 과열 양상을 띠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죠. 이런 경쟁 과열을 막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통해 한계 기업(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배 이하)을 솎아내야 하는데 전혀 진전이 없습니다. 결국 해결 방법은 민간 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인데 IFRS9만 제대로 적용해도 한계 기업의 상당수를 솎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살아남은 기업들은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고, 자연스럽게 투자도 늘어나겠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산업 구조조정이 잘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수준에 그쳐야 합니다. 미국 금융시장의 경우 불안정한 자본시장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은행이죠. 반면 우리 정부의 경우 시중은행을 자금조달 및 배분의 수단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 은행의 경우 100%를 상회하는 부실채권(NPL) 적립률 커버리지 비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충분치 않다고 하셨는데.
"숫자의 함정이죠. 이 수치가 신뢰를 담보하려면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의 비중이 100%가 돼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죠. 이자만 내는 대출의 경우 평시에는 리스크(연체율)가 '0'인데, 위기 상황이 오면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부동산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대출의 경우 집값 상승기에는 연체율이 0이지만 하락기에는 연체율이 급등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은행의 자산 건전성은 차주의 채무 상환 능력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실상은 연체 채권(손상 채권)으로 평가하다 보니 채무 상환 능력이 급격히 나빠져도 대출이자만 잘 내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따라서 지금과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는 한계 기업들마저 정상 기업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은행의 기초체력인 자본력과도 연관이 있는데, 자산을 평가할 때 위험 가중 자산이 적게 적용되다 보니 높은 자본 비율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외국인 중심의 은행 소유 구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은행의 주인이 누구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해외 글로벌 은행들도 대부분 연기금이나 사모펀드 등이 대주주죠. 문제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입니다. 연기금이 대주주인 일부 대기업들 역시 정부의 무분별한 개입 탓에 본연의 가치에 비해 낮게 평가받고 있죠. 특히 배당 정책에 대한 개입의 경우 주주 자본주의를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죠. 정부조차 주주 이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데 굳이 일반 기업들이 주주 친화 정책을 펼 이유가 없겠죠. 은행에 대한 저평가 역시 대출금리, 수수료 등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물론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면 소비자 효용은 늘어나겠지만 공급자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어들고, 결국 인력 감축 등 비용 절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역효과가 더 큽니다. 물론 은행에 본연의 기능인 자원의 효율적 배분 기능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죠.
반면 정부 개입이 줄어들면 은행들이 역내 경쟁을 통해 적정 가격을 산출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위험 관리에 적극 나서게 됩니다. 적정 이윤을 낼 수 있는데 굳이 무리하게 대출을 늘릴 필요가 없어지는 셈이죠. 급격하게 늘어난 가계부채 역시 정부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이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서영수 애널리스트는...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 신한금융투자, 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 한누리투자증권(현 KB증권)을 거쳐 2006년부터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조선일보 등에서 총 7차례 금융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 1위에 선정될 정도로 독보적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