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독서도
하일독서도
<하일독서도(夏日讀書圖)>, 107×159cm, 화선지에 수묵담채, 2016년

[Artist김윤섭 소장의 바로 이 작가 - 최영걸]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미술사 박사

“설마 그림은 아니죠? 사진이겠죠.” 최영걸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 중 하나다. 하지만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린 오리지널 회화 작품이다. 꽃잎이나 풀잎, 작은 돌멩이의 티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손수 세필(細筆)로 점을 찍듯 완성한 것이다. 사실 보고도 쉽게 믿겨지질 않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그의 그림을 두고 “압도적인 세밀함은 종교적 경외감과 영적 충만감을 느끼게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현대미술에 있어 동양화(한국화)와 서양화를 구분하는 것이 촌스러울지는 모르겠지만, 정녕 최영걸의 그림은 전형적인 동양적 미감으로 서양미를 발산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전통 매체의 장점을 살려 성실함과 정묘한 기법의 작품을 통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재발견하고 교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을 바탕으로 동시대인들이 어렵게 느끼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생활상을 담아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이를 통해 삶의 여유를 찾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작가인 제가 가장 먼저 감동할 수 있는 작품을 그리고자 노력합니다.”

최영걸 작가의 표현 중에 ‘정묘하다’란 표현은 그의 작품 세계를 함축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말 그대로 그 단어엔 ‘깨끗하고 묘하다’, ‘청정하고 무구하다’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전통 수묵회화가 지닌 고유의 특성을 대변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의 관심사는 ‘전통 한국화 기법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화풍의 현대적인 개념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제 최영걸의 존재감은 흔히 ‘한국화’라고 하면 ‘고루한 장르’로 치부되는 시각에 정면으로 맞서 오류를 바로 잡아준 대표적인 작가로 인식된다.
성하산수
성하산수
<성하산수(盛夏山水)>190×105cm, 화선지에 수묵담채, 2014년

최 작가 작품의 진가는 해외에서 먼저 발휘됐다. 그는 세계 미술 시장을 이끌고 있는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에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된 한국 작가다. 2005년 11월 처음 출품한 후 현재까지 거의 빠짐없이 50여 점의 작품을 선보여 ‘가장 높은 낙찰률’을 기록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또한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컨템퍼러리 경매의 표지 작가였을 정도로 ‘크리스티가 사랑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홍콩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디렉터 겸 수석부사장인 에릭 창이 한국에 오면 꼭 만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2008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당시에 웬만한 작품의 경매 낙찰가가 40% 이상 떨어질 때, 오히려 최 작가의 작품은 추정가를 크게 웃돌아 ‘최영걸풍 한국미의 진가’가 발휘되기도 했다. 해외에 그의 작품만을 수집하는 컬렉터 층이 그만큼 탄탄했기 때문이었다. 얼핏 흔하디흔한 사실적인 전통 산수화풍임에도 이토록 해외에서 먼저 러브콜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그의 작품은 남다른 성실함이 그대로 묻어나기에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평범해 보이는 풍광이지만, 결정적인 한 장면을 얻기 위해 같은 장소를 계절과 시간에 따라 수차례 다시 방문한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결정적 한 장면의 구성은 컴퓨터의 꼼꼼한 공정을 거쳐 보다 치밀해지고, 이는 다시 그만의 남다른 세필의 공력과 만나 완성되는 것이다.

전통 산수화의 제작 과정에서도 사생(寫生)은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치부된다. 최 작가가 자료 수집을 위해 현장에 나서는 여행을 중요시하는 것도 그 정신을 잇는 과정이다. 화면의 치밀한 구성과 균형을 위한 컴퓨터 작업은 현장 사생에 나섰던 옛 선인들이 화실에 도착해 먼저 스케치한 제각각의 장면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과정과 진배없다. 그 이후엔 오로지 수행 정진하듯, 한지에 수묵을 이용해 수만 번의 세필 작업과 담채를 가미해 비로소 온전한 한 작품을 얻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숙련된 붓질에 시간을 투자한다 해도, 1년에 고작 20여 점 남짓밖에 완성할 수 없다. 한번 붓이 가면 수정이 불가능한 재료의 특성상 대작(代作)도 불가능하다.

“초기에는 바다나 계곡처럼 전통 회화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소재와 풍광의 사실적 표현에 치중했다면, 현재는 전통 회화의 현대적 폭넓은 재해석과 여행을 통한 풍광을 한국적 전통 기법을 응용한 현대적 묘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형식에 있어 변하지 않고 지켜 온 것이라면, 문인화 화풍만이 동양화의 근간이 아니라 북송(北宋) 때부터 있어 온 정묘한 필치의 회화 형식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이를 현대적인 기법으로 발전시키는 방편을 강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최 작가의 작품이 독보적인 브랜드를 형성하게 된 그 이면에는 정서적인 친숙함을 모태로 삼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정신적 고향인 자연의 표정을 담고 있다. 꽃들이 만발한 산과 계곡의 봄, 시원한 물줄기가 어우러진 여름, 오색 창연한 단풍 빛깔이 백미인 가을, 흰 눈이 가득 덮여 명상적인 겨울의 풍광까지 사계절을 아우른다. 인간에게 그 자연의 존재감은 위안이나 힐링 자체다. 그는 첫 개인전에서 생면부지의 아주머니나 지나가던 사람이 그 풍경 그림을 보고 감동어린 눈빛으로 사 가던 모습에서 본인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을 것이다.

성공한 이에겐 예외 없이 힘들었던 과거의 고비를 이겨낸 에피소드가 있다. 최 작가 역시 그렇다. 2000년까진 14년간 계원예술고등학교에서 이름난 실기강사 시절을 보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것은 오로지 ‘작가의 길’을 가고 싶었던 신념 때문이었다. 곰팡이 슨 지하 작업실이나 16.5㎡ 남짓 비좁은 상가 작업실을 전전하며 힘겹게 모은 전 재산을 쏟아 부으며 홀로 개인전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젠 옛말이 됐다. 지금은 최영걸의 신념에 박수를 보내는 국내외 팬층이 두텁다. 또한 대학교수로서도 본인의 신념을 후학에게 전수해주고 있다. 그들에게도 한국적인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하는 것이 바람이기도 하다.

최 작가의 작품 가격은 전시 가격과 경매 가격이 다르게 형성돼 있다. 전시 가격은 소속된 갤러리와 정기적으로 선보이는 개인전을 통해 협의된 가격이다. 반면 경매 가격은 한시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변동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매에 지속적으로 선보일 경우 어느 정도 평균 가격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그의 경우 국내 화랑의 전시 가격은 50호(116.8×91cm) 2500만 원 내외, 100호(162×130cm) 3500만 원 내외다. 하지만 홍콩 크리스티를 중심으로 한 해외 경매의 경우 100호 기준 평균 5000만~6000만 원 정도로 전시 가격보다 높은 것이 특징이다.

아티스트 최영걸
홍콩 크리스티가 사랑한 법고창신 한국미의 전령사
최영걸(1968년~) 작가는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동안 6회의 개인전(이화익갤러리, 갤러리 우덕, 갤러리 아트링크, 한가람미술관 등)을 가졌다. 또한 2015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 경매’(홍콩), 2014 크리스티 상하이 ‘아시아 서방 이십세기와 현대미술’ 경매(상하이), 2011 신소장품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신소장작품전(서울시립미술관)·아시아 탑 갤러리 호텔아트페어(웨스틴조선 서울)·삶의 스펙트럼 전(갤러리 우덕), 2010 코리안 아트 쇼(뉴욕)·아트 두바이(두바이) 등 많은 기획 단체전에 참여했다.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서울 백병원, 미술은행(국립현대미술관),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주 선양 총영사관, 하나다올신탁, 해태크라운제과, 한국민속촌박물관, 한국야쿠르트, 문화체육관광부, 하나은행, 대우건설, 인터파크,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안국약품 등 다수다.

김윤섭은
미술평론가로서 명지대 대학원에서 미술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및 서울시립미술관 작품가격 평가위원, (사)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전문위원, 대한적십자사 문화나눔프로젝트 아트디렉터, 교보문고 교보아트스페이스 기획위원, 숙명여대·세종대 미술대학 겸임교수 및 수원대 미술대학 대학원 객원교수,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