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박숙자 경기대 교양학부 조교수]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주인공인 ‘나’와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마음’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또한 마음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로 인간의 고뇌를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Great Teaching] 나쓰메 소세키 <마음>, ‘마음’의 길 그리고 ‘인간’의 길
한반도에 ‘봄’이 왔다. 남북 간에 얼어붙었던 마음들이 서서히 녹으면서 ‘평화체제’를 얘기한다. 분단 70년 만에 일어난 기적같은 일이다. 단단하게 굳어 있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부지불식간에 평화로운 공존과 공생을 얘기하니 ‘기적’이라는 수사가 과하지 않다. 놀라운 변화의 중심에 ‘마음’이 놓여 있다. ‘마음’은 때로 남북을 가로지르는 분단의 철책보다 더 무서운 적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에는 그 적대를 아무렇지 않게 흔들며 교란시키기도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다 보면 그 ‘마음’이 무엇인지 어설프게나 조금은 짐작하게도 된다.

일본 최초의 근대소설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년)는 100년 전 ‘마음’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는 메이지유신을 거치며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일본 제국의 중심에서 ‘문명’ 그 자체에 주목하지 않고, ‘자아’와 ‘마음’에 대해 묻는다. 사실 소세키는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는 일본의 모습에 다소 비판적이었다. 서양을 경유하는 ‘근대’가 서양 그 자체는 아니며, 그럼에도 마치 서양이 기원인양 서양을 복사해내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근대’를 얘기하며 있어야 할 질서를 생각했다. ‘1000엔 지폐의 주인공’, ‘일본 최초의 국비 장학생’, ‘일본의 셰익스피어’라는 화려한 수사의 주인공, 그는 왜 ‘마음’에 대해 물었을까.

<마음>(1914년)은 총 3부작이다. 1부는 ‘선생님과 나’, 2부는 ‘부모님과 나’, 3부는 ‘선생님과 유서’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나’와 일면식도 없던 ‘선생님’을 우연히 해수욕장에서 만난 후 가깝게 지내게 된 이야기다. 선생님은 “세상에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고, 그래서 “나 이외에 선생님의 학문이나 사상에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는 분”이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기준과 무관하게 ‘선생님’에게 외골수로 빠져 있다. “학교 강의보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더 유익”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1부의 내용은 이와 같은 선생님의 삶을 ‘나’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다.

2부는 아버지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고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과 지내는 이야기다. 부모님은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얼른 취직해 번듯한 지위와 수입을 가지기를 바란다. ‘나’는 “아버지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 말고 별로 남아 있는 게 없다고도 생각한다. 반면, 고향에 있는 동안에도 도쿄에 있는 선생님 생각뿐이다. ‘나’는 “선생님과의 관계가 끊기는 것이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도쿄의 선생님에게서 편지 한 통이 온다.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이 편지가 자네 손에 닿을 무렵이면 나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걸세”라는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다.

3부는 이 편지에 담긴 선생님의 유서 내용이다. 이 유서에서 선생님은 왜 사회활동을 하지 않으며 “사람들 속에 남겨진 미라”처럼 외톨이로 살아가게 됐는지 그 이유를 담담히 밝힌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고아로 숙부의 집에서 살게 되는데, 숙부는 선생님이 받은 유산을 상당 부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사촌누이(숙부의 딸)와 결혼하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은 재산도 잃고 사람도 잃었다고 느끼며 배신감에 괴로워한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도쿄에서 하숙을 구했는데, 하숙집 딸에게 연정을 느끼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 친구인 K를 하숙집에 데려오게 되는데 K가 하숙집 딸에게 애절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에게 고백하게 된 것이다.

선생님은 딸에게 먼저 청혼을 하거나 별도의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아가씨와 결혼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황스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하숙집 아주머니에게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해서 승낙을 받는다. 선생님은 K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도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약간의 눈치를 채고 있었던 아주머니는 K에게 빨리 얘기해야 한다며 선생님을 힐책하기도 했는데, 결국 아주머니가 K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놓게 된다. 그로부터 며칠 뒤 K는 자살한다. 하지만 K가 왜 자살했는지, 혹 그 이유가 선생님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친구의 죽음이 남긴 가책과 책임의 무게를 느낀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은 숙부에게 당한 배신으로 괴로워했지만, 실은 자기 자신 역시 숙부와 다를 바 없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이 사건을 경험하며 평생 자신의 욕망을 지워낸 채 ‘미라’처럼 살아가기로 마음먹게 된다. 또한 선생님은 친구의 죽음을 자기 삶 밖으로 내보내지 않은 채 삶 안으로 끌고 와 마음을 닦으며 살아간다. ‘선생님’이 평생 한 일은 자기 ‘마음’이 방자해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도, ‘마음’의 근육이 붙어 있지 않으면, 쉽게 물러지게 되고 그럴 경우 그 마음이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선생님은 평생 장모와 아내 이외의 다른 인간관계에 마음을 두지 않은 채 자기가 지켜야 할 그들만 지키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마음이란 타인의 삶에 대한 윤리적 책임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양심이 수십 번 반복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타인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나’가 ‘선생님’에게 존경심을 가지며 계속 옆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선생님의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생님은 오라고 한 적도 없으며 기대와 약속으로 ‘나’의 일상을 지배하려고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방식을 힘들어해 고향에서 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반면,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는 동안에도 ‘선생님’을 영영 보지 못한다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다고 하면서 선생님의 편지를 기다린다.

소설 속에서 ‘나’는 선생님과 같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자기 생각을 묻고 하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이는 선생님이 만들어낸 마음의 길이다. 타인에게 가벼운 온정도, 경박한 혐오도 가볍게 하지 않는 채 타인의 마음을 오가게 하는 것, 이것은 ‘선생님’의 마음이 만들어낸 자리다. ‘마음’은 인체 기관의 한 자리가 아니라, 타인의 삶에 책임을 통해 그 자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마음은 닦아야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가 보다. 소세키는 어쩌면 마음을 통해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엿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 전희성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59호(2018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