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유언으로 배우자가 아닌 배우자의 친족을 수익자로 지정한 후에 그 배우자와 이혼을 한 경우, 미국에서는 어떻게 될까. 이번에는 ‘이혼에 의한 유언의 철회’에 관한 법령에 대해 알아보자.
이혼에 의한 유언의 철회
관습법(common law)에서는 혼인 전에 작성된 유언은 혼인 또는 혼인과 출산에 의해 자동으로 철회됐다. 이러한 관습법은 배우자와 자녀가 상속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그 효과는 유언 전체를 무효로 만드는 것이었다. 설사 유언자가 유언 이외의 방법으로 배우자와 자녀를 위한 배려를 해 두었더라도 유언은 무효가 됐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혼인에 의한 유언의 철회’라는 이러한 관습법을 폐기했다. 그 대신 거의 모든 주에서 ‘이혼에 의한 유언의 철회에 관한 법령’을 마련했다. 즉 이혼 전에 작성된 유언장에 있는 종전(former) 배우자를 위한 모든 조항들은, 유언장에 반대 의사가 명시돼 있지 않는 한 이혼에 의해 철회된다는 규정이다.

종전 배우자를 위한 조항이 아닌 나머지 조항들은 모두 그대로 효력을 유지한다. 이러한 법령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1969년 ‘통일상속법(UPC)’의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이혼에 의해 유언이 철회된 경우 종전 배우자를 위한 재산은 그 종전 배우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것처럼 처리된다.

그리고 이혼에 의해 철회된 유언은 동일한 종전 배우자와의 재혼에 의해 부활한다. 한편 법원의 별거 결정(decree of separation)은 배우자로서의 법적 상태에 변화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별거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유언은 철회되지 않는다.

1969년 UPC는 검인 대상 재산의 이전에 대한 철회에 관해서만 규정하고 있었으나, 1990년 UPC는 철회 가능 신탁, TOD계좌(Transfer-On-Death Accounts: 계좌주가 사망한 후에 예금을 지정된 수익자에게 이전시키는 계좌로 유언검인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생명보험이나 연금에 관한 수익자 지정 등 비검인 대상 재산의 이전까지 포섭하고 있고, 여러 주에서 이를 채택하고 있다.

유언장에 따른 철회 여부
유언으로 배우자가 아닌 배우자의 친족을 수익자로 지정한 후에 그 배우자와 이혼을 한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 배우자의 친족에 대한 유언은 철회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 법원의 대체적인 경향이다.

예컨대 클라이머 대 마요(Clymer v. Mayo) 사건의 피상속인은 남편과 남편의 조카들에게 재산을 이전하는 내용의 유언장과 생전신탁문서를 작성한 후 이혼을 하고 사망했다. 이에 대해 1985년 매사추세츠주 최고법원은 전 남편에 대한 유증은 철회되지만, 전 남편의 조카들을 위한 유증은 법령에 의해 철회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1989년 펜실베이니아주 대법원도 블룸 대 셀폰(Bloom v. Selfon) 사건에서 “남편이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하면 남편의 삼촌에게 재산을 이전하기로 하는 내용의 유언 조항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충적 수익자를 지정하는 전통적인 표현이지 절대적인 조건부증여의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남편이 피상속인과의 이혼으로 인해 유증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한 이후에는 남편의 삼촌이 그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판결했다.

그리고 케르의 유산 사건(In re Estate of Kehr)에서는 유언자가 배우자의 의붓자식에게 유증을 한 후 이혼을 했는데, 이혼 당시 유언자는 행위무능력자였고 유언을 변경할 기회도 없었지만, 1994년 미네소타주 법원은 유증은 철회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헤르몬 유산 사건(Estate of Hermon)에서 1995년 캘리포니아주 상소법원은, 유언장에 반대 의사가 분명히 표시되지 않는 한 의붓자식을 위한 유언은 이혼에 의해 철회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의 해석이 유언자의 의사에 부합하고 보다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UPC도 이러한 현실에 부응해 개정됐다. 그리하여 1990년 UPC의 규정에 따라 이혼에 의한 철회 규정은 배우자뿐 아니라 그 친족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