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저승길 앞에서는 순서가 없다는 말처럼 때론 유언자보다 수증자가 먼저 이승을 떠나는 일도 빈번히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 그 유증은 과연 허용될 수 있을까.
수증자가 먼저 사망 시 유증의 효력은
‘관습법(common law)’에서는 수증자로 의도된 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그 유증은 허용되지 않았다. 특히 수증자가 유언장 작성 후에 사망한 경우에는 ‘소멸(lapse)’이라고 불렀고, 유언장 작성 전에 사망한 경우에는 ‘무효(void)’라고 불렀다. 그러나 무효인 유증은 소멸한 유증과 동일하게 취급됐다.

특정유증과 일반유증이 소멸하면, 유언장에 반대 규정이 없는 한 그 유증의 목적물은 잔여 재산의 일부가 돼 잔여유증의 수익자에게 귀속된다[통일상속법(UPC)]. 그런데 만약 잔여유증의 유일한 수익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잔여유증은 소멸하고 그 잔여 재산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된다.

잔여 재산이 둘 이상의 수익자에게 유증됐는데 수익자들 중 일부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해 그들에 대한 유증이 소멸한 경우, 그 소멸한 유증의 목적물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에 관해서는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잔여물의 잔여물은 있을 수 없다(no residue of a residue rule)’는 전통적인 관습법의 원칙을 고수해 소멸한 잔여분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된다는 견해와, 소멸한 잔여분은 남아 있는 잔여유증의 수익자들에게 각자의 지분에 비례해 귀속된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맥파랜드의 유산 사건(In re Estate of McFarland)에서 2005년 테네시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Tennesse)이 판결한 것처럼 지금도 전자의 견해를 따르는 법원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법원은 후자의 견해를 따르고 있으며, UPC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소멸의 법리는 ‘집단에 대한 유증(class gifts)’에는 거의 필요하지 않다. 예컨대 ‘자녀들’, ‘직계비속들’, ‘형제자매들’, ‘조카들’과 같은 식으로 집단으로 수증자를 지정하는 것이다. 집단의 구성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유언장이 작성되고 유언자가 사망하기까지 사이에 증감 변동이 있을 수 있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통상 유언자가 사망한 후에야 확정되고 그 당시 현존하는 구성원들에게 유증의 목적물이 분배된다. 어떤 구성원이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그 사람은 집단에서 빠지고 전체 유증 목적물은 생존해 있는 구성원들에게 온전히 귀속된다. 따라서 집단 구성원 전부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는 이례적인 경우 외에는 집단에 대한 유증에는 소멸의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없게 된다.

소멸 법리의 변화

‘관습법’의 소멸 법리는 반소멸법령(AntiLapse Statutes)에 의해 크게 변화됐다. 이 법령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한 수증자에 대한 증여를 그 수증자의 자녀에게 주기 위해 ‘관습법’의 원칙을 변경시켰다. 현재 루이지애나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반소멸법령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반소멸법령이 소멸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므로 이 용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즉, 반소멸법령 아래에서도 수증자가 유언자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요건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다만 원래의 수증자를 대신해 유증 목적물을 취득할 사람, 즉 대체수익자(substitute beneficiaries)를 위해 소멸한 유증을 전용하고 있다. 이러한 대체수익자는 보통 원래 수증자의 생존 자녀인 경우가 많다. 이 법령은 폭넓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요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① 사망한 수익자가 유언자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
② 적어도 한 사람 이상의 자격 있는 대체수익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지 않을 것
③ 유언장에 이와 반대되는 유언의사가 나타나지 않을 것

대부분의 법령은 사망한 수증자가 유언자와 가까운 친족관계(주로 유언자의 조부모 또는 그들의 직계비속)에 속해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일부 법령에서는 사망한 수증자가 유언자의 직계비속일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편 거의 모든 법령에서는 자격 있는 대체수익자가 사망한 수증자의 자녀일 것을 요구한다.

1969년 UPC도 반소멸규정을 두었으며, 상당수의 주에서 이를 채택했다. 1969년 UPC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수증자가 유언자의 조부모이거나 그들의 직계비속인 경우에 수증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면 그 수증자의 자녀가 사망한 수증자를 대신해서 유증 목적물을 취득한다. 다만 수증자를 대신해서 유증을 받을 사람은 유언자보다 적어도 120시간 이상 오래 살아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반소멸규정이 적용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유증이 어떤 이유로 실패하면 그 유증의 목적물은 잔여 재산의 일부가 됐다. 그런데 UPC의 반소멸법령은 1990년에 완전히 개정됐고 조항의 번호도 다시 매겨졌다.

개정법은 상당히 정교하고 복잡하게 규정돼 있는데, 여러 주에서 채택되고 있다. 개정법은 반소멸규정에 의해 보호되는 친족의 범위에 ‘의붓자녀’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반소멸법령과 마찬가지로 1990년 UPC 역시 유언자의 배우자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즉, 유언자가 배우자를 수증자로 지정했는데 그 배우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더라도 배우자의 몫은 그 배우자의 자녀에게 넘어가지 않고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처리된다. 이것은 배우자의 과거 혼인에 의해 태어난 자녀에게 유증 목적물이 넘어가는 것은 유언자의 의사가 아닐 것이라는 추정에서 기인한다.

한편 유언장 자체에 수증자가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할 경우 그 수증자의 몫을 대신 받을 사람을 지정할 수 있다. 1990년 UPC는 이러한 대체증여에 관해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유언자가 “갑이 나보다 오래 살면 나의 집을 갑에게 준다. 만약 갑이 나보다 먼저 사망하면 을에게 나의 집을 준다”라고 대안유증(alternative devise)을 명시한 경우에는 설사 갑에게 생존한 자녀가 있더라도 갑의 몫은 갑의 자녀가 아닌 을에게 넘어가게 된다.

유언자의 의사가 분명한 이상 이러한 결론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만약 갑과 을이 모두 유언자보다 먼저 사망하고 갑은 자녀 A를 남겼고 을은 자녀 B를 남겼다면 과연 누가 유언자의 집에 대한 권리를 취득하게 될까. 원래 갑이 을보다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갑의 자녀 A가 을의 자녀 B보다 우선권을 가진다고 보는 것이 유언자의 의사에 보다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1990년 UPC 역시 이러한 유언의사의 추정에 기해서 갑의 자녀 A에게 대체증여에 대한 우선권(primary substitute gift)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을이 갑의 자녀였다면 을의 자녀인 B가 대체증여에 대한 우선권(younger-generation substitute gift)을 가지게 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