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후 전망은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강대강으로 치닫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1년 반 만에 1차 무역합의에 서명을 하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세계 경제의 앞길에는 순탄대로가 이어질까. 마지막까지 살펴봐야 할 변수는 없을까.

국제통화질서 역사상 지난해 하반기 이후 올해 초까지를 가장 긴박했던 시기 중 하나로 평가한다. 위안화 평가절하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 간 환율전쟁을 치르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기 때문이다. 위안화 가치는 미·중 무역마찰의 바로미터다. 마찰이 심화되면 ‘절하’, 진전되면 ‘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10일 미국의 보복관세가 부과되기 직전까지 달러당 6.6위안대까지 절상되던 위안화 가치가 그 후 추세적으로 절하되면서 넘지 말아야 할 포치(破七), 즉 ‘1달러=7위안’ 선이 뚫렸다.

당혹스러웠던 국가는 미국이다. 위안화 절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력해 왔던 보복관세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중국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포치선이 뚫리자마자 곧바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난해 8월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은 2가지 점에서 미국의 전통을 지키지 않은 파격적인 조치에 해당한다. 하나는 예정된 ‘시기’를 지키지 않은 점, 다른 하나는 정해진 ‘규칙’을 어겼다는 점이다. 2016년 대선 당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공약을 지키기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인 조치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에 환율 보고서를 발표한다. 환율조작국과 같은 교역국의 지위도 이때 결정된다. 지난해 상반기 환율 보고서가 당초 예정일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진 것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인가를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지난해 하반기 환율 보고서도 3개월 정도 연기됐다.

‘2015 무역촉진법’에 따라 새롭게 적용된 BHC(베넷-해치-카퍼) 요건으로 환율조작국에 해당하는 환율심층대상국으로 지정되려면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1년 중 8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그 비용이 GDP의 2% 넘는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중국은 첫 번째 요건만 걸려 있다. BHC 요건대로 라면 ‘환율관찰대상국’에서도 빠졌어야 했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됨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승인 없이 행정명령으로 100% 보복관세를 때릴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대중 무역적자 축소와 함께 2020 대선에 최대 약점인 재정적자를 관세 수입으로 메울 수 있어 매력적인 카드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이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는 국제금융시장과 세계 경제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최대 관심사였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대폭 절하하고 미국도 달러 약세로 맞대응할 경우 글로벌 환율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볼 보듯 뻔하다.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가 지금의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상황과 비슷하다고 우려한 것도 이 시기였다.

다행히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 중국은 무역과 환율과의 비연계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맞대응 차원에서 위안화를 대폭 절하시키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실익이 크지 않다. 경상 거래 면에서 수출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자본 거래 면에서는 자본 유출을 초래해 금융위기가 올 우려가 높아진다.

미국도 ‘위안화 절하’에 가장 명료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달러 약세’다. 하지만 초기에 나타나는 ‘제이(J)’ 커브 효과 때문에 2020년 대선을 치르기 이전까지 중국과의 무역적자가 확대돼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시뇨리지가 줄어들고 달러 자산의 자본 손실이 커지는 부담도 있다.

글로벌 환율전쟁은 당사국인 미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가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제1단계 무역합의안에 대해 언젠가는 공식 서명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제1단계 무역협상안 공식 서명 마감일인 지난 1월 15일 직전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내렸던 환율조작국을 전격 해제했다.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시진핑 정부도 향후 2년 동안 미국산 제품을 2000억 달러 이상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세계 경제로 봐서는 다행스런 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상향 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궁금한 것은 앞으로 미·중 간 경제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나는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해제 이후 양국 간 환율전쟁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제1단계 합의안 공식 서명 이후 양국 간 무역마찰도 마무리됐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NO(아니다)’다. 환율 문제에 있어서는 또 다른 형태의 전쟁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올해 상반기 중에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할 계획을 갖고 있다. 시기가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지만 국가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국가 주석의 야망이 담겨 있는 계획은 매년 3월에 열리는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정치협상회의)가 끝나고 곧바로 시행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4월에 디지털 위안화가 전격적으로 도입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후 전망은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후 전망은
◆디지털 위안화가 가져올 나비효과는

디지털 위안화는 종전의 가상화폐와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실물 화폐와 달리 그 자체적으로 가치(value)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등과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정화(legal tender) 여부와 발행기관이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해 2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1대1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으로 교체할 때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 거래 단위 축소)’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켰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 소비자(고객)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한 국가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디지털 위안화를 발행할 경우 의외로 빨리 정착할 가능성도 높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나라 밖으로도 세계 1위의 수출 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 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중이 빨리 올라갈 가능성도 높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 계획을 발표한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아마존, 구글 등을 견제하기 위해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하는 트럼프 정부의 방침과 관계없이 미국 중앙은행(Fed)은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는 평가다.

미·중 1단계 무역합의 이후 전망은
앞으로 디지털 위안화가 도입돼 정착된다면 금융위기 시스템이 없는(non system) 국제통화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닥칠 가능성이 높다.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탈(脫)달러화 움직임은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앞으로 도입될 ‘디지털 달러화와 디지털 위안화’ 간 2차원적인 기축통화 전쟁이 복잡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궁금증인 제1단계 합의안 서명 이후 미·중 간 무역마찰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주의 색채로 본다면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은 ‘역대 최고’로 평가된다. 대공황을 야기시킨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 시절(스무트-홀리법 탄생)에 비유될 정도다. 취임 이후 추진했던 트럼프 정부의 대외 통상정책에서 뚜렷한 4가지 특징이 그대로 보여 준다.

첫째, 미국에 직접적인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면서 부담과 책임만 지는 국제규범과 협상에 대한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와 범태평양경제협의체(TPP) 탈퇴 의사, 파리 신기후 협상 불참 통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혹은 폐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국가별로는 무역적자 확대 여부에 따라 이원적 전략(two track)을 추진하는 움직임도 뚜렷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 때문에 무역적자 확대국에 대해 통상 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해 왔다.

셋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든 통상수단을 동원하는 것도 종전과 다른 점이다.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 WTO 규범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수단뿐만 아니라 자국법에 근거한 수단까지 활용했다. 심지어는 새로운 상호 호혜세를 부과한다든가 미국 의회를 거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발동할 수 있는 ‘슈퍼 301조’까지 동원할 태세였다.

넷째, 통상정책을 다른 목적과 결부시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국 ‘통상법’ 232조에 근거해 통상을 안보와 연계시킨다든가, 대북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한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통상 압력을 높였다. 한국 등 해당 국가가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쉽게 대처해 오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섯째, 중국과의 마찰 과정에서 ‘미국의 승리다’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이 먹힌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도의 협상 전략가다. 성공한 욕심 많은 기업인 출신답게 참가자 모두가 이익을 취하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non zero-sum game)’보다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쉬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즐긴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중국, 한국 등을 대상으로 한 ‘통상 압력’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중국이 트럼프 정부의 통상 압력에 반발한다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대로 수용한다면 시진핑 정부의 ‘팍스 시니카’ 구상은 물 건너갈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마찰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범 이후 3년 동안 미국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극단적인 보호주의’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오히려 확대됐다.

올해 11월에 예정된 대선 이전까지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연임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환율조작국 지정 해제 직후 발표된 미국 재무부 환율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해 종전의 지위인 ‘환율관찰대상국’을 그대로 유지하고, 제1단계 무역합의안에서 핵심인 ‘보복관세 철폐’를 추후 협상 과제로 남겨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