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정채희 기자 l 사진 한국경제DB l 참고 도서 및 자료 <트렌드 코리아 2020>·통계청] 학문, 예술, 문화, 사회, 경제…. 전 분야에 뉴트로가 미치지 않은 영향이 없다.
지금 우리 시대에 파고든 뉴트로란 무엇일까. 각 세대가 열광하는 뉴트로의 속살 파헤치기.


뉴트로(new-tro):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일컫는 말.

뉴트로가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마치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모순된 이 단어를 한 줄로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터. 어느새 하나의 장르이자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한 뉴트로가 궁금한 이들을 위해 ㄱ부터 ㅎ까지 뉴트로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압축 정리했다. 이른바 ‘뉴트로 백과사전’.


<ㄱ> 기억

레트로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지난날의 향수에 호소해 과거를 파는 것이다. 흔히 추억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장수한 인물인데, 그는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미화된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 우리는 이를 ‘므두셀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중장년층이 소비하는 레트로는 바로 이 지점을 공략한다.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 즉 향수병을 말이다.

그런데 뉴트로의 출발점은 다르다. 1020세대에게 1980~1990년대의 기억은 없다. 본인들이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색다름에 끌려 과거를 뒤지고 있는 것, 그게 바로 뉴트로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은 뉴트로에 대해 이같이 설명한다. “뉴트로는 과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빌려 현재를 파는 것이다. 즉, 뉴트로는 재현이 아니라 해석이다.”


<ㄴ> 넥스트

뉴트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기존의 레트로처럼 반짝 유행에서 그칠까. 전문가들은 뉴트로가 레트로처럼 매번 돌아오는 트렌드가 아닌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사람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단순한 추억팔이가 아니라 개성의 영역에서 현대인에게 또 하나의 정체성과 취향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뉴트로의 넥스트는 복고에 얼마나 더 가치 있는 해석과 창조의 결과를 창출해 낼 것이냐가 결정할 것이다.


<ㄷ> 디지털

뉴트로의 시발점. 뉴트로의 알맹이는 아날로그이지만, 이를 전파하고 알리는 기능은 디지털이 한다. 뉴트로는 아날로그 감성과 디지털 감성의 결합물인 셈이다. 젊은이들은 레트로 감성이 풍기는 패션, 식품, 거리, 음식 등 모든 것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다. 과거의 낡은 스타일이 낯설고 신선하게 느껴지면서 그들 사이에 소비가 반복된다. 젊은이들의 SNS 문화가 음지에 있던 아날로그 문화를 양지로 끌어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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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지털 플랫폼의 중추가 바로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다. 유튜브 세대인 1020세대에게 콘텐츠 선정의 가장 큰 기준은 ‘재미’다. 방송사는 이미 흥행에 성공한 옛 TV 프로그램을 유튜브에 소환하기 시작했다. 가족형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음악 프로그램 <인기가요> 등이 대표적이다.


<ㄹ> 리사이클링

과거의 것을 다시 활용하는 리사이클링(재활용)은 그 단어 그대로 곧 뉴트로를 의미한다. 뉴트로는 패션이나 오락에만 그 쓰임새가 있는 게 아니다. 도시재생이란 더 광범위한 측면에서도 뉴트로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낡은 것을 허물고 파괴해 없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재탄생할 대상으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낡은 도심인 서울 중구 을지로 역시 낙후된 지역으로 대표되는 곳이지만, 최근에는 ‘힙지로’란 별칭을 얻으며 젊은이들이 찾는 거리로 재탄생했다. 건축 분야에서도 리사이클링이 대세인데, 외면받았던 낡은 건축물에 기능과 디자인을 새롭게 입혀 또 다른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재활용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서 ‘업사이클링(upcycling)’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낡은 목욕탕을 안경점으로 재탄생시킨 ‘젠틀몬스터’가 업사이클링의 대표적인 사례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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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밀레니얼 세대

‘뉴트로’를 이끄는 주축 세대다. 1982~2000년 초반 사이에 태어난 신세대를 일컫는 말로,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전환점에 태어났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디지털에 매우 익숙하며 SNS 활용에 능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의 전 세대들이 아날로그를 바탕으로 디지털을 경험했다면, 이들에게 아날로그는 처음 경험하는 미지의 영역이자 신비의 세계란 점에서 큰 차이를 갖는다.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개인의 만족도를 보다 중시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르며, 이들과 관련된 다양한 마케팅이 확산하고 있다.


<ㅂ> 불황

흔히 복고의 원인으로 ‘불황’을 꼽는다. ‘불황에 복고가 통한다’는 속설처럼, 불황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찾고 그 안에서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때문에 불황의 골이 깊을수록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마케팅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뉴트로 분석 시에도 ‘불황’은 빠지지 않는 키워드 중 하나다.

특히 뉴트로의 주축인 밀레니얼 세대가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누렸던 부모 세대(베이비부머 세대)들보다 가난한 세대란 점에서 이 같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한경 머니의 설문조사 결과는 이러한 가설을 뒤집는다. 1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별로 100명씩 총 500명에게 ‘뉴트로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뉴트로를 이끄는 1020세대의 과반(평균 60.6%)은 ‘과거의 것이 좋아서’란 답을 택했다. 이어 과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19.4%), 현실을 회피하고 싶어서(7.8%), 현실이 재미가 없어서(4.9%) 순이다(이상 1020세대 평균치). 현실에 대한 불만이 아닌 과거에 대한 동경으로 젊은 세대가 뉴트로를 좇았다는 것이다.


<ㅅ> 상표

뉴트로의 인기를 가장 빠르게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상표다. 신규 상표들의 출원 현황에서 뉴트로의 바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뉴트로 감성이 10~20대의 젊은 소비층에게 관심을 끌면서 복고풍 이름을 가진 음식점 등의 상표출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스쿱당, 미묘당, 만가옥, 술또옥 등과 같이 표장에 음식점을 나타내는 접미사인 ‘당’, ‘옥’을 붙인 상표가 대표적이다. 출원이 가장 두드러지게 증가한 것은 ‘○○당’ 상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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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2009~2018년)의 상표출원을 분석한 결과 2009년부터 2013년까지 118건의 상표가 출원됐던 것이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288건이 출원돼 2.4배 증가했다. ‘옥’을 포함한 상표도 같은 기간 167건 출원됐던 것이 317건으로 1.9배가량 늘어났다. 이 밖에도 ‘식당’이나 ‘상회’를 포함하는 상표도 2014년 이후 큰 폭으로 출원이 증가하고 있다. 식당 상표, 상회 상표는 최근 5년(2014~2018년)간 각각 548건과 120건이 출원됐다.


<ㅇ> 을지로

뉴트로의 정의를 한눈에 보여 주는 오프라인 공간. 을지로2·3·4가 등 한때 제조업의 메카였던 구도심 뒷골목이 뉴트로 열풍으로 재탄생하며 젊은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오래된 가게, 오랜 점포는 낡은 외관을 그대로 가져가되, 내부에 새로움을 담음으로써 ‘요즘 옛날’의 모습을 시각화한다. 허름한 철물점과 오래된 인쇄점포의 간판을 그대로 걸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현대적 감성의 카페와 주점이 자리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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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는 이른바 ‘힙지로(힙+을지로)’로 불린다.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서울 성동구 성수동·종로구 익선동, 동인천 개항로 등 전국 방방곡곡에 뉴트로 공간을 확대 생산하고 있다.


<ㅈ> 재출시

뉴트로는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며 유통업계의 판을 뒤흔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추억 속 물건이 된 과거의 국민 물병 ‘델몬트 유리병’이 젊은이들의 ‘핫템’이 되면서 2019년 한정 패키지로 재출시됐으며, 하이트진로는 1970~1980년대의 라벨 디자인을 복원·재해석해 출시한 ‘진로’ 제품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옛 감성을 새롭게 재해석한 상품들은 30~40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에겐 신선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인식되며 전 세대에 통한다는 장점이 있다.

매출 효과도 톡톡하다. 온라인 유통업체인 위메프에 따르면 올 2019년 1월 1일~10월 31일 기간 동안 복고 트렌드 관련 상품 판매량은 전년 대비 급증했다. 1990년대 배우 김희선이 유행시킨 헤어 액세서리 ‘곱창밴드’ 판매량은 446% 증가했으며, 실핀과 똑딱핀 매출도 각각 133%, 48% 상승했다. 식품에서도 복고 열풍이 불었다. 배달음식 애플리케이션인 요기요에 따르면 지난해 최고의 신규 배달음식 메뉴 1위는 ‘꽈배기’였다. 전년 대비 2430% 주문 수가 증가하며 폭발적인 신규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뉴트로 트렌드가 자연스럽게 배달 앱 주문에도 반영돼 과거에 대중적으로 즐겨 왔던 메뉴들이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ㅊ> 차별화

뉴트로 마케팅의 성공 포인트는 ‘차별화’에 있다. 뉴트로는 경험하지 못한 옛것에 젊은 층들이 열광한다는 점에서 중장년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존의 복고와 차별화해 등장한 문화 현상이란 것이다. 본인만의 차별화된 개성 표현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수요를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상충하는 2개의 가치를 접목하며 탄생한 뉴트로가 충족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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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 커뮤니케이션


뉴트로는 단순히 기성세대의 추억 소비, 1020세대의 복고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세대 간 교감과 세대 통합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소위 ‘586세대’, ‘X세대’,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 간 끝나지 않는 갈등은 연령과 집단 간 서로 다른 이념과 가치관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현상이다. 전세대가 그다음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반목하는 현상이 계속되면서 세대 간 교집합을 만들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뉴트로가 등장했다. 2018년 최고의 화제작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연령별 관객 비중은 20대 32.5%, 30대 25.9%, 40대 24.4%, 50대 이상 13.6%로 고르게 분포됐다. 부모 손을 잡고 극장을 찾은 청소년들도 줄을 이었다. 영화를 본 딸은 엄마에게 당대의 그룹 퀸에 대해, 프레디 머큐리의 삶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단순히 기성세대의 추억 소비를 넘어 세대 간 교감과 세대 통합을 이끈 것이다. 가수 양준일과 김완선, LP판과 카세트테이프, 할머니집에서 보던 유리병과 일력….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뉴트로의 힘. 세대를 잇는 오작교의 등장은 계속되고 있다.


<ㅌ> 탑골공원(온라인)

2019년 생겨난 신조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인 유튜브를 통해 1980~1990년대 유행한 TV 쇼 프로그램인 , 등이 다시 실시간 재생(스트리밍)되면서 이 공간을 즐기는 이들이 채널을 지칭할 때 쓴다. 유튜브의 주 시청자인 1020세대가 오래된 1980~1990년대 문화를 보고 즐기면서, 노인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탑골공원에 이를 빗댄 것이다. 탑골공원은 서울 종로3가에 위치한 공원으로 중장년층, 노년층이 주 유동인구다. 1020세대는 당시 유행가요를 보고 듣는 것을 넘어 유튜브 채널 안에서 실시간으로 서로 소통하며 온라인 세상에서의 ‘아고다’를 실현하고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의 스타는 다양하다. 최근 제2의 전성기를 걷고 있는 가수 양준일이 대표적인 온라인 탑골공원의 스타. 가수 빅뱅의 지드래곤(GD)과 비슷한 용모와 차림새로 ‘탑골 GD’란 별칭을 얻으며 1020세대가 사랑하는 가수로 떠올랐다. 가수 김완선 역시 온라인 탑골공원의 수혜자다. 그의 히트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지난해에는 에버랜드와 협업해 동일 곡의 뮤직비디오 재촬영에 나서기도 했다.


<ㅍ> 패션

음악, 영화, 드라마, 음식, 생활소품, 건축양식…. 어느 하나 뉴트로가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시발점은 패션이다. 커다란 로고, 원색 컬러, 애니멀 프린트, 통 큰 바지 등 현재 뉴트로의 대상이 되는 오리지널 스타일은 1990년대 길거리 문화에 기반하고 있다. 이 같은 스타일이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색다름을 제공하면서 뉴트로 패션이 지난해 부터 거리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1969년에 처음 등장한 아디다스 ‘슈퍼스타’, 1990년대 출시된 나이키의 ‘에어맥스’의 최근 주 소비층은 1020세대다. 한물 간 브랜드로 불렸던 휠라와 명품 브랜드 구찌도 뉴트로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뉴트로 패션 아이템 중 하나인 어글리슈즈(투박한 모양의 밑창이 두꺼운 신발)의 인기를 견인한 휠라가 대표적인 뉴트로의 수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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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라가 1998년 출시 모델인 디스럽터를 복각해 2017년 내놓은 디스럽터2는 지난 2018년 미국의 한 신발 전문 매체가 발표한 ‘2018 올해의 신발’에 선정될 정도로 전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지난해 5월에는 휠라 홀딩스의 주가가 52주 신고가를 경신할 만큼 성장했다. 1020세대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는 온라인 패션 스토어 무신사 또한 2020년을 이끌어 나갈 신진 디자이너 오디션의 콘셉트로 ‘뉴트로’를 내세웠다. 뉴트로 패션은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ㅎ> 힙

‘힙하다’, ‘힙지로’, ‘힙패션’…. ‘힙’을 빼놓고 뉴트로를 논할 수 있을까. ‘힙하다’란 표현은 영어 ‘hip’과 ‘하다’를 합친 신조어다. 이 정체불명의 단어가 이제는 어디에 붙여 놔도 통용될 만큼 널리 쓰이고 있다. 히프는 엉덩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최근의 사정에 밝은’이란 뜻의 ‘hep’과 유사하게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은’을 뜻하는 슬랭으로 사용된다.

이른바 힙에 행위자를 뜻하는 접미사인 ‘-ster’를 붙이면 ‘힙스터’가 되는데, 유행을 따르지 않고 서브컬처를 지지하는 이들을 지칭할 때 쓴다. 즉, 2030세대 젊은이들에게 뉴트로란 주류가 아닌 서브컬처이자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로써 그 자체로 ‘힙’한 감성을 갖는다.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고, 1990년대 가수 양준일이 ‘힙스터’가 되는 바로 그 지점을 들여다보면 ‘힙’을 이해할 수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7호(2020년 0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