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낸 대한민국은 곧 제2의 경제 부흥기를 맞을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중국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정글만리’의 작가 조정래는 소설의 배경을 중국으로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가 중국을 ‘우리의 미래’라고 표현한 이유는 분명하다. 경제 개방 30여 년 만에 미국에 이어 G2의 자리를 꿰찬 중국의 무서운 저력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이미 중국은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 상하이까지의 비행시간은 불과 1시간 40여 분. 지척에 있는 중국은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 그렇듯 ‘만 리에 걸쳐 펼쳐진 잔혹한 정글’이나 다름없는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100만 부 판매를 돌파하며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정글만리’ 열풍은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정글만리’를 읽은 중국통들의 독후감은 엇갈린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혹자는 “10년 전 중국 상황을 다룬 옛날이야기”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설을 통해 묘사되는 중국의 다양한 얼굴은 실제의 중국과는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SPECIAL REPORT] ‘정글만리’로 읽은 중국, 오해와 진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나라.”

중국에 진출해 기업을 운영해 본 사람들은 이보다 정확하게 중국을 표현한 말이 없다고 한다.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중국 특유의 관료적 통제에 발이 묶이기 십상이지만, 내부의 미묘한 코드를 잘 읽어내기만 한다면 그 어느 나라보다 ‘성공의 기회’가 널린 곳이란 이야기다. 그만큼 중국의 맨얼굴은 복잡하고, 때로는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 ‘정글만리’를 통해 중국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5가지를 뽑았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중국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풀어봤다.


key word 1 짝퉁 천국
“부유층·젊은 층은 짝퉁 멀리하기 시작”

#1. “애플의 정품에 비해 짝퉁은 4배가 쌉니다. 그런데 기능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직 가난한 인민들이 싼값에 문화생활을 누리게 하는 것도 정부의 일입니다. 오히려 짝퉁 애플로 홍보 효과를 누리고 있으니 진짜 애플은 억울해할 것 없습니다.”
(1권 310쪽 중에서)


소설에서 ‘G2(미국·중국)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짝퉁 천국 중국’에 대한 외신 기자의 질문. 중국 최고의 명문 베이징대 학생들의 대답은 너무나 태연하고 당당하다. 중국인들이 짝퉁을 얼마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할까.

홍창표 코트라 중국사업단장은 “중국인들은 짝퉁이라는 부정적 인식보다 하나의 아류 문화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러다 보니 짝퉁이 근절되지 않고 확대 재생산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컨설팅업체인 차이나다의 김선우 대표 역시 “중국 경제에서 짝퉁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소한 10% 이상”이라며 “그만큼 많은 인구가 짝퉁 경제에 종사하고 있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니 중국 정부도 점진적으로 정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으며, 중국 사람들 역시 짝퉁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때문에 죄책감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직접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짝퉁 경제는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패션 브랜드 코오롱FnC의 중국 현지 사업을 맡고 있는 원장석 동사장은 “짝퉁이 나온다는 건 한편으로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다는 방증”이라며 “많은 업체들이 짝퉁 상품에 법적 대응을 하고 있으나 늘어나는 소송비로 인해 곤란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다. 원 동사장 역시 짝퉁 제보를 받고 직접 현장을 찾았다가 낯선 남자들에게 쫓긴 경험담을 들려줬다. 무사히 몸을 피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훗날 공안당국으로부터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한국 코트라, 특허청 등에서 짝퉁으로 인한 한국 중소기업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역부족”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처럼 짝퉁이 만연한 중국이지만 최근에는 상류층과 젊은 층 등에서 변화의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상류층이야 굳이 짝퉁을 구매할 필요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최근에는 대학생 등 젊은 층들이 짝퉁을 멀리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한다.

가파른 경제성장 덕분에 서민층의 구매력이 커진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자문화 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중화사상이 최근 강해진 것도 변화의 요인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국의 브랜드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고 소유하려는 욕심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 동사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은 부유층과 젊은 층을 넘어 빠른 속도로 중국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key word 2 개방적인 성 문화

“다소 과장, 한국보다 개방적인 건 사실”


#1. “중국 천지에서 이런 데 나오는 여자들이 도대체 얼마일까.”
“그거 다 소문났잖아. 8000에서 1억이라고”
“날이면 날마다 농촌에서 도시로 밀려들고 있는 게 여자들인데. 1억2000 될 날도 머잖았어.”(1권 155쪽 중에서)


소설에 등장하는 일본 기업의 주재원은 “중국이 좋은 건 딱 하나, 여자가 흔하고 값이 싼 것이다”라고 표현한다. 굳이 화류계에만 국한될 것도 없다. 중국 여자들에게 결혼 전 동거는 당연한 수순이고, 동거 중에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중국의 현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다소 과장된 묘사’라고 일축했다.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 상위’란 말까지 나오는 중국 사회에서 성에 대한 관념이 개방적인 것은 맞지만, 이를 문란한 성 문화로 치부하는 것은 왜곡된 시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금융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중 금융시장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중국금융연구원을 설립한 이창영 대표는 “여성이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개념보다는 결혼해서는 서로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바로잡았다. 그는 이어 “쉽게 돈을 버는 술집에서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중국 여자들의 거부감이 우리보다 덜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술집 종사자가 1억 명이라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다만 중국의 인구수만큼 유흥 산업의 규모 역시 큰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중국은 일반적으로 부모와 같이 사는 자녀 수가 많지 않고, 여기다가 최근에는 지방 출신들이 도시로 나오면서 유흥업소로 유입되거나 같은 또래의 이성끼리 일찍부터 동거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도 요인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소설 속에서 중국 주재원들이 관리 접대를 위해 술집을 드나드는 묘사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중국 현지에서 컴퓨터, 네트워크 장비 등 정보기술(IT) 하드웨어 전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백현종 스카이네트웍스 동사장은 “비즈니스 접대 문화는 중국이라고 해서 한국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며 “한국은 영업적인 부분 말고도 술자리 문화가 일반화돼 있지만, 중국은 사교와 비즈니스로 술자리가 상대적으로 국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에는 광둥성 둥관(東莞)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대대적인 성매매 단속을 진행하는 등 오히려 ‘술자리는 되도록 피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한다. 둥관은 공업 시설과 외국 기업들이 몰려 있어 성매매가 만연한 대표적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원장석 동사장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자리 접대는 다른 사람도 하니 나도 하는 일종의 관행처럼 여겨졌다면 지금은 달라지고 있다”며 “중국의 관리들 또한 젊어지고 있기 때문에 운동(골프), 한류 체험 등으로 접대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SPECIAL REPORT] ‘정글만리’로 읽은 중국, 오해와 진실
key word 3 일상화된 부패
“ 시는 중국 문화, 로비 수단 아냐”


#1. 샹신원, 그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그의 욕심이 큰 만큼 그는 좋은 시다. 좋은 학벌과 높은 직책과 많은 돈으로 안 통하는 데가 거의 없다. 전혀 낌새를 보이고 있지 않지만 그는 나의 시 노릇만 하는 게 아니다. 돈 욕심이 많은 만큼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있을 것이다.(2권 303쪽 중에서)


소설 속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시(關係)’일 것이다. 만만디가 몸에 밴 중국 관리들을 움직이기 위해선 시가 필수적이고, 그러니 소설 속 등장인물들 역시 시 덕분에 사업에 성공하거나 상대편의 시에 밀려 실패하곤 한다.

중국 현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라고 말한다. 시라는 것이 중국인들의 삶과 연결된 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도 비즈니스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 부딪치는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시’로 연결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법보다 앞서는 시’를 통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이창영 대표는 “중국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화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1960년대부터 10년에 걸친 문화혁명은 마오쩌둥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이다. 당시 시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오지에 노동자로 보내지기 일쑤였고, 이 과정을 겪으며 시는 중국인들에게 ‘생명’을 지키는 방어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인은 자신의 운전기사와도 시를 잘 맺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이는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시를 통해 법무, 노무, 세무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시를 잘 이용하는 것이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특히 기반산업처럼 국가 관리들의 역할이 큰 분야일수록 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게 사실이다.

김선우 대표는 “중국에서 시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됐다는 의미가 크다”며 “시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방어해 줄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쩌면 중국과 같이 큰 나라에서 생존을 위해 학연, 지연 등 더욱 다양한 시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문화가 아닐까 싶다”며 “저 사람을 활용하기 위해서 시를 맺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 나도 무언가 해 줄 수 있을 때 시를 맺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창표 단장은 “시는 잘만 활용한다면 중국 사업에 분명 도움이 되는 요소”라면서도 “하지만 일부 기업이 시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것을 믿고 탈법·불법 경영을 하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시를 부패의 근원으로 바라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시를 근간으로 한 관계맺음 자체가 중국 공직자들의 부정부패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른 한편 중국 전문가들은 최근 시진핑 정부에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부패 척결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공직자 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8500만 명이 넘는 중국 공직자들의 부패가 얼마나 빨리 사라질지는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백현종 동사장은 “중국 정부의 부패 척결 이후 현지 중국 명주 가격이 급락하고 선물지급용 백화점 카드가 줄어드는 등 사치품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며 “사람들끼리 회자되는 얘기로 누가 뇌물수수로 몇 년을 구형 받았다는 둥 예전처럼 공공연히 뇌물을 주고받기가 확실히 힘들어진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그는 “요즘 같은 분위기로는 오히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사람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강하다”며 “다른 사회가 걸어간 길을 중국도 신속하게 따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표는 “중국 정부, 공산당의 리더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며 “보시라이 사건과 저우융캉(周永康) 사건이 대표적인데, 중국 최고위층조차 그 칼을 빗겨나갈 수 없다는 걸 보여줄 만큼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 전반적인 부패를 모두 근절하기는 어렵겠지만 정경유착, 부익부 빈익빈의 부패 등 중국에서 중대하게 여기는 문제만큼은 어떻게든 해결하려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key word 4 한국 기업의 무덤
“현지화·콘텐츠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1. 한국의 제조업들은 서로 앞다퉈 중국의 싼 인건비 바다로 뛰어들었다. 싼 인건비를 뜯어먹고 금방 치부를 하려는 황홀한 꿈들을 품고서. 그러나 그것은 황금의 바다가 아니라 익사의 바다였다. 왜냐하면 중국은 단순 기술을 재빨리 습득해서 역공의 인해전술을 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권 148쪽 중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거듭난 중국이라는 거대한 전쟁터. 이곳에서는 대한민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승리를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소설에서는 특히 각국을 대표하는 주재원 중에서 한국인들만이 유일하게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익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한국 주재원들의 노력은 그만큼 치열하고 간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한국 주재원들은 일하는 모습을 ‘핑밍(죽기 살기로 매달리다)’이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한다. 백현종 동사장은 “비즈니스 방식이 매뉴얼화돼 있는 일본이나 서구의 기업들과 달리 한국인들은 말 그대로 현지에 적응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며 “비즈니스 상대와의 지칠 줄 모르는 술자리 등으로 한국 주재원들은 녹초가 돼 있다”고 표현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는 한국인의 근면과 열정은 중국 시장에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 중에서도 중국 시장에서 실패를 맛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홍창표 단장은 “중국은 최근 기존 국부 위주의 양적인 성장 정책 대신 민부를 중심으로 하는 질적인 성장 정책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 과정에서 많은 제도와 법규가 재개정되고 있어, 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원장석 동사장은 “글로벌 브랜드와 중국 로컬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 높아만 가는 중국의 임금 상승률 등으로 인해 특히 제조업의 경우 제3국으로의 이전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며 “자주 변하는 중국 법규와, 강화되는 현지 노무 조건 등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선우 대표는 “특히 중소기업들뿐 아니라 자본이 뒷받침되는 대기업들마저 시행착오를 겪은 데는 이들이 진출한 사업 분야가 석유, 화학, 통신, 부동산 등 국가 기반사업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사업 모델이기는 하지만, 중국 정부에서 엄격하게 자국 기업들에 프리미엄을 주는 산업들이다. 그는 “그러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현재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하드웨어 중심의 기반사업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콘텐츠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고 있다”고 최근의 흐름을 전했다. 김 대표는 “중국의 기술 경쟁력은 이미 우리를 따라잡았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라며 “하지만 소프트웨어 콘텐츠 부분에서는 확실히 우리가 중국보다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분야”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중국 진출 기업의 현지화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 중국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창영 대표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들은 대부분 현지 은행의 최고책임자를 주재원으로 앉힌다”며 “이와 비교해 글로벌 은행들은 현지 최고책임자를 중국인으로 임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경우 직원 개개인의 역량은 높지만, 기업 경영의 차원에서 보자면 현장 영업과 관리를 총괄하는 지점장급 인사를 현지 인력으로 채용하는 데는 그만큼 인색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런 여건하에서 선진 글로벌 은행이 국내 은행보다 중국 내수시장 개척에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며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선결 과제는 현지화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key word 5 명품 홀릭·한류 홀릭
“명품을 본인 신분과 동급으로 여겨”


#1. “일본 손님은 10명 중 2명, 한국 손님은 10명 중 5명, 중국 손님은 10명 중 9명이 명품을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은 빗나갔소. 놀랄 것 없소. 좋은 쪽으로 빗나간 거니까. 10명 중에 15가지도 사고 20가지도 사니까 말이오.” “아 알았습니다. 싹쓸이 말씀이군요. 아하하하….”(3권 50쪽 중에서)


소설 등장인물 중 하나인 프랑스 명품 업체 직원. 그 직원이 중국에 수출하기 위한 명품 상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장과 나누는 대화의 일부다. 이 장면뿐 아니라 소설에는 ‘중국 부유층이 명품에 사족을 못 쓴다’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특히 빈부 격차가 뚜렷한 중국사회에서 명품은 부유층들이 멘쯔(체면)를 세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원장석 동사장은 “중국 사람들이 체면을 중히 여기는 것은 사실이다”며 “아파트나 자가용, 화장품, 명품 백 등을 본인의 신분과 등급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과시욕이 상당히 강하다”고 전했다. 이 역시 과거 문화혁명과 맞닿아 있는데, 당시 중국인의 가장 큰 삶의 목표는 ‘성공’이었다.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만큼 성공했음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품에 대한 욕구와 직결된다는 설명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이 같은 명품을 구매하는 계층이 확대되고 있다. 김선우 대표는 “부유층들만이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과시욕으로 명품 구매를 스스럼없이 하는 편”이라며 “연령층도 상당히 젊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은 중국 내 한국 브랜드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류와 맞물리며 그 폭발력이 상당하다. TV 드라마를 통해 보이는 한국 배우들의 패션과 드라마에 나오는 집의 인테리어, 가구, 통신 기기 등은 이미 중국 내에서도 명품 브랜드라는 인지도를 높여 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최근 중국 내 반일 감정이 격해지면서 오히려 한국 브랜드, 한국 상품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한국 여배우들이 사용하는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등은 고가임에도 선호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중국인들에게는 100원짜리 연필 13억 개를 파는 것보다 프리미엄급 브랜드 상품으로 타기팅된 고객층을 공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처음 한류가 불었을 때는 대도시들을 거점으로 퍼져나갔던 반면, 지금은 지방의 중소도시는 물론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것이 특징이다. 이로 인해 한국 사람이 드문 지역에서도 한국 제품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퍼져나가는 중이다.

원 동사장은 “실제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방영 이후 상하이의 홍취엔루 한국 거리는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치맥(치킨과 맥주)을 먹기 위해 2~3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배우 김수현의 브로마이드를 얻기 위해 10시간이 넘는 거리의 여행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한류를 단순히 연예인 마케팅이 아니라 ‘코리아 브랜딩’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류를 단기적 현상이 아닌 장기적 우리 문화, 우리 경제성장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전략과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정흔 기자 ver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