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나난했던 한 해가 저물었다. 세계경제는 잠잠한 날이 없었고, ‘한국경제호’는 심한 풍랑에 요동쳤다.

최근엔 슈퍼달러와 엔저로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른다는 우려감이 팽배해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일본의 2차 아베노믹스, 중국 위안화의 국제화, 휴화산 상태인 유로존, 자금 이탈에 시달리는 신흥국의 고난 등 올 한 해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되돌아보면서 2015년을 전망해본다.
[SPECIAL REPORT] 세계경제를 읽는 6가지 키포인트
6년 전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세계경제는 위기극복 과정에서 제로(0) 금리, 양적완화(QE) 등으로 대변되는 비정상적 대책이 실행되면서 종전의 인식과 이론이 통하지 않는 ‘뉴 앱노멀’ 시대로 변했다.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이전은 ‘노멀’, 이후의 새로운 경제질서를 뜻하는 ‘뉴 노멀’에 이어 등장한 용어가 ‘뉴 앱노멀’이다. 뉴 앱노멀은 대표적인 경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처음 언급한 용어다. 양적완화 종료 이후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루비니 교수가 보는 뉴 앱노멀은 저성장, 긴축에 따른 피로감, 지나친 소유권 등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현상이다. 뉴 노멀 시대에는 경제발전이 쉽지는 않지만 예측할 수 있었던 반면에 뉴 앱노멀 시대에는 예측이 힘들어 대응이 더 어려워진다.

기존 인식과 이론도 통하지 않고 미래 예측도 어렵다면 경제 상황은 불확실성과 불안전성으로 대표되는 뉴 앱노멀로 전개된다는 의미다. 지나친 변동성이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지난 6년간 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나타난 정치, 경제, 재정 문제 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세계경제도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보다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추가 금융완화책에 의해 지탱해 나가는 국면이 지속됐다. 세계경제가 금융위기와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설비투자가 이뤄져야 하나 이 부문에 대한 노력은 부족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이후 대부분 예측기관들이 매 예측 시마다 거품이 우려되는 자산 가격과 관계없이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하향 수정해 왔다. 세계 경기 회복이 완전치 못한 상황에서 양적완화가 종료됨에 따라 금융위기 이후 어렵게 마련된 회복 기반이 다시 약화되고, 신흥국들은 자금 이탈에 시달리면서 ‘저성장’ 혹은 ‘복합불황’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서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14년과 2015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이전(7월 전망)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는 금융위기로부터 파생된 과잉 채무와 고실업률 문제가 잔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잠재성장률 저하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세계경제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 미국 양적완화 종료
금융위기 이후 ‘제로 금리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통화정책의 양대 축으로 추진해왔던 ‘양적완화 정책’이 올해 10월에 열렸던 Fed 회의에서 종료됐다. 올해 초부터 매 Fed 회의 때마다 100억 달러씩 축소해온 테이퍼링이 마지막 남은 150억 달러를 한꺼번에 축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적완화 정책은 규모가 크지만 시한을 정해뒀던 1차·2차 일몰조항(sunset clause) 정책과, 규모는 작지만 시한을 두지 않았던 무기한 정책인 3차로 나눠 추진됐다. 테이퍼링은 양적완화 규모가 축소됐다는 의미에서 달리 보는 시각이 있으나 정책 자금이 공급되는 면에서는 성격이 같아 3차 양적완화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순수하게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로 볼 수 없지만 본래의 목적인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정국의 금융위기를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극복한다고 볼 때 현재 약 8부 능선에 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이 8부 능선에 달할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산 가격은 거품이 우려할 정도로 높으나 실물경기 회복세는 미약해 자산 시장과 실물경기가 따로 노는 현상이다.
[SPECIAL REPORT] 세계경제를 읽는 6가지 키포인트
자산 가격과 실물경기가 따로 놀 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놓고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 종료를 의미하는 양적완화 종료 이후 출구전략 추진 시 자산 시장에 낀 거품 제거에만 우선순위를 둘 경우 실물경기의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는 ‘역자산 효과(anti wealth effect)’까지 가세돼 ‘복합불황’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물경기 회복에만 우선순위를 둘 경우 자산 시장에 긴 거품이 더 심화돼 나중에 더 큰 후유증(after crisis or after shock)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양적완화, 제로 금리 등 비상대책보다 출구전략을 추진하기가 더 어렵고, 실제로 정책 시기와 수단을 잘못 판단해 경기가 재둔화되고 위기가 재발된 사례가 많다. 앞으로 추진될 출구전략의 벤치마크국인 일본도 2006년 이후 출구전략 추진 시 정책 수단을 잘못 선택해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장기화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30년대에도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대공황을 야기시킨 당시 Fed 의장의 이름을 딴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양적완화 종료 이후 출구전략이 본격화될 경우 ‘저성장→출구전략 추진→자산 가격 하락→역자산 효과→추가 경기 침체’로 자산 시장과 실물경기 간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복합불황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내년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SPECIAL REPORT] 세계경제를 읽는 6가지 키포인트
2 위안화의 국제화
올해 중국의 시진핑 정부는 출범 이후 대외 정책의 핵심 과제로 추진해온 ‘위안화 국제화 과제’에 주력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중국의 무역 결제, 위안화 예금,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 등에서 당초 계획이 상당히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이 때문에 홍콩, 대만 등 화인경제권에 속한 국가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 주요국들도 위안화 거래 관련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 국가의 통화가 국제화되기 위해서는 기능별, 용도별, 지역별로 각각 3단계의 국제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기능별로는 교환수단, 계산단위, 가치저장수단 등 3가지 기능을 수행해야 가능하다. 용도별로는 결제통화, 투자통화, 보유통화 단계를 거쳐야 하며 지역적으로는 주변국에서 지역권을 걸쳐 전 세계적으로 통용돼야 한다.

통화 국제화를 위해선 △경제규모 확대 △외환시장의 거래 증대 △자본시장의 개방△결제통화로서의 수요 확대 등의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 통화 국제화 평가는 △경제규모 △외환 거래 △자본시장 개방 △결제통화 수요 △통화가치의 안정성 등 다섯 가지 여건 면에서 미 달러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첫 단계인 중국이 속한 아시아 지역에서 위안화 국제화 정도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국제화 시기가 다르므로 엔화는 1980~1999년, 위안화는 2009~2013년, 원화는 1998~2013년을 국제화 과정으로 봐야 한다. 분석 결과 1980년대 일본의 엔화와 최근 2009~2013년 사이 중국의 위안화는 이런 국제통화 필요조건을 빠르게 충족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위안화 국제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주변국을 중심으로 시작돼 2009년 7월 위안화 역외 무역결제의 시범 시행이 시작된 이후 범위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위안화 국제화 수준은 △중국의 경제성장 △무역규모의 증가 △금리 개혁 △역외 위안화 시장의 발전 등에 힘입어 안정적인 성장 단계에 진입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위안화 수용도가 커지고 중국과 다른 국가 및 지역의 통화스와프 계약이 증가했으며, 글로벌 외환거래소에서 위안화의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위안화의 역외시장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올해는 위안화 역외 무역결제가 증가하고 위안화 국제채권과 어음의 규모가 급등했으며 위안화 파생금융상품의 종류도 확대됐다.
[SPECIAL REPORT] 세계경제를 읽는 6가지 키포인트
중국이 세계 최대의 무역국으로 부상하면서 실물경제 분야에서 위안화 수요가 꾸준히 확대된 것도 위안화 국제화 지수의 제고에 일조하고 있다. 중국의 금리 시장화 개혁 추진과 위안화 자본계정 태환 가능성 확대 등 일련의 체제 개혁 조치로 인해 제도적 보너스가 대량 방출되면서 시장 위안화에 대한 신뢰도 높아졌다. 하지만 현재 중심통화인 미국 달러화을 제외하고 주요 통화의 중심통화 가능성을 평가해보면 위안화는 크게 취약한 상황이다. 중심통화 요건 가운데 경제규모, 무역 네트워크, 투자 적격성, 양적 금융 심화 정도 면에서는 위안화가 중심통화가 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춰진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자본거래 개방성, 외환시장 사용도, 각국 외환보유와 자본 및 무역거래 사용도 면에서는 크게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 만큼 내년에도 시진핑 정부는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더 속도 있게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3 유로존 위기 2.0
한동안 잠잠했던 그리스가 다시 유로존의 문제아로 떠오름에 따라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데자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스 국채금리가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연 7%를 넘어섰다. 2011년에 발생했던 ‘유로존 위기 1.0’ 때에도 그리스 국채금리가 7%를 넘어선 뒤 주변 재정 취약국으로 확산되면서 위기가 발생했다. 그리스 금융시장이 흔들리면서 유로존에 ‘제2의 재정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그리스 164.2%, 이탈리아 141.7%, 포르투갈 127.9%, 스페인 92.8%, 아일랜드 125.8% 등 높은 수준이다. 유로존 위기 1.0을 거치면서 국가채무는 더 늘어났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구제금융 조기 졸업 기대감에 부풀었던 그리스 금융시장이 갑자기 불안해진 것은 주로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는 2010~2011년 재정위기 때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IMF 등 트로이카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24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그리스 정부는 더 이상 혹독한 긴축을 하지 않고 경제 주권을 회복하겠다는 취지로 올해 말이나 내년 3월 구제금융을 조기 졸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들어서는 PIGS(포르투갈·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국가 중 구제금융을 받지 않은 스페인을 제외하고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이미 구제금융을 졸업한 것이 그리스 정부를 서두르게 한 요인이다. 잊을 만하면 그리스 등 취약 회원국을 중심으로 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유럽통합이 갖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점이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유럽통합처럼 정치적 주권과 사회문화 문제가 결부된 국가 간의 통합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돼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만에 하나 특정 단계에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면 성공했다고 평가되던 이전 단계도 그동안 잠복돼 왔던 내부적인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통합이 후퇴하거나 위기가 발생한다. 3년 전 유럽 재정위기도 유럽정치통합(EPU)이 주춤거리는 것을 계기로 유럽경제통합(EMU)과 유럽통합의 내부적인 문제가 드러나면서 발생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유럽통합이 그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20세기 초 ‘하나의 유럽’이 구상된 이후 100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 유럽통합, 특히 유로랜드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내재적인 문제점 가운데 올해 5월에 치러졌던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와 반EU 정당이 득세하면서 더 심하게 노출됐다. 유럽통합이 갖고 있는 내부 결함이 ‘유로존 위기 1.0’, ‘유로존 위기 2.0’ 등에서 잇달아 노출되고 있는 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럽위기는 언제든지 재연되고 유럽통합을 멈추게 하거나 후퇴시키는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에도 ‘유로존 위기 3.0’은 언제든지 제기될 수 있다. 내년 유로 경기도 유럽통합 행로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4 2차 아베노믹스
아베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일본 경제를 재탄생시키기 위해 ‘아베노믹스’와 ‘소비세 인상’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정책을 구상했다. 출범 직후 아베노믹스를 추진한 데 이어 올해 4월 1일부터 종전 5%의 소비세를 8%로 인상했다. 계획대로라면 2015년 10월에는 10%로 또 한 차례 올려 2020년에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시킨다는 목표다. 경제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세 인상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일본의 재정수지와 국가채무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릴 만큼 장기간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와 경기 부양 차원에서 대대적인 재정 지출로 일본의 재정수지는 급속히 악화됐다. 현재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50%로 세계 모든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재정위기의 상징국인 그리스보다 높다. 최근에는 국가채무의 최후 버팀목이었던 민간의 보유 자산이 디레버리지로 감소되고 있어 시급히 개선되지 않으면 국가신용등급 악화까지 몰리는 상황이다.

소비세는 간접세로서 조세 기반이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같이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는 고령화 국가에서는 다른 세목에 비해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재정 적자와 국가채무가 문제가 될 때마다 실제 단행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세 인상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돼 왔다. 하지만 일본의 1997년 소비세율 인상은 장기간에 걸쳐 디플레이션을 초래한 종전의 경험이 소비세율 인상의 당위성을 대체하면서 무려 17년 동안 연기돼 왔다. 총수요 항목별 국민소득 기여도가 70%에 가까운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여건에서 소비세 인상을 단행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올해 4월 조치도 아베노믹스가 의도했던 대로 효과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까지 가세할 경우 일본 경제가 다시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지고 아베 정부에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현 상황에서 아베노믹스가 지향하고 있는 2015년 초반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 2%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2%의 물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인플레이션 갭’과 이에 따른 ‘기대인플레이션’인데 이것들의 대폭적인 상승을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 건전화 목표도 계획대로 내년 10월에 10% 추가로 올린다 하더라도 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낮아지겠지만 2020년 흑자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각부가 향후 10년간 연평균 성장률 2%, 소비세율 10%를 전제로 추정한 결과를 보면 소득 대비 재정수지 비율은 2015년도 -3.3%, 2020년도 -2.0%로 적자가 지속될 것이다.

당초 기대했던 대로 아베노믹스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세 인상의 후폭풍마저 크게 나타남에 따라 일본 경제의 앞날에 대한 비관론과 함께 아베 정부의 책임론이 거세게 불고 있다. 벌써부터 일본 야당을 중심으로 아베 정부의 실패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조기 하야를 주장하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비세 인상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추가적인 금융완화 정책이 일찍부터 예상돼 왔다.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이후 이틀 만인 올해 10월 말에 기습적으로 단행한 ‘2차 아베노믹스’가 바로 그것이다. 내년 일본 경제는 이 조치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실패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궁지에 몰리고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 우려가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5 자금 이탈에 시달렸던 신흥국
사상 초유의 충격에도 미국이 금융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데에는 미국 정책당국의 힘이 가장 크다. 하지만 각국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당사국인 미국은 가장 반기는 국가이지만 새로운 부담도 동시에 안게 된다. 지난 6년 동안 풀린 돈이 무려 4조 달러를 웃돌아 후유증에 해당하는 ‘애프터 크라이시스’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등 대부분 신흥국들은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경제가 정상을 되찾아 신흥국의 대미 수출이 증가하는 좋은 점이 있지만, 제로 금리와 양적완화로 유입됐던 달러캐리 자금 등 외국 자금 이탈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양적완화 종료를 전후로 일부 신흥국들은 ‘2차 테이퍼 텐트럼(taper tantrum·긴급 발작)’에 시달려 왔다. 올해 9월 중순 이후 한국 등 신흥국에서 이탈되는 글로벌 자금은 금리 차와 환차손, 특히 환차손에 대한 우려로 이른바 ‘캐리자금의 성격’이 짙다. 양적완화 종료를 전후로 미국의 시장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기대로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저금리와 달러 약세를 바탕으로 유입됐던 신흥국 글로벌 자금의 이탈 요인(push factors)이 직접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SPECIAL REPORT] 세계경제를 읽는 6가지 키포인트
[SPECIAL REPORT] 세계경제를 읽는 6가지 키포인트
외환보유고 등 위기지표를 토대로 신흥국별 외환위기 가능성을 점검하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가장 외환위기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국가’로는 외환보유고에 비해 경상적자와 재정적자가 심한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터키로 나타났으나, 인도의 경우 올해 5월 니헨디라 모디 정부가 출범한 이후 ‘모디노믹스’에 대한 기대로 외국 자금이 꾸준히 유입돼 외환위기 가능성이 낮아졌다. 지금 당장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으나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쉽게 전염될 수 있는 ‘중위험 국가’로는 외환보유고는 적정 수준 이상 쌓아 놓고 있지만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러시아, 체코, 태국, 멕시코 등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고 오히려 출구전략이 추진될 경우 기회요인이 더 많을 수 있는 ‘저위험 국가’로는 경상수지와 재정수지가 건전하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히 쌓아 놓고 있는 한국, 중국 등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내년에는 신흥국 간의 차별화 현상이 올해보다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6 ‘슈퍼 사이클 국면’ 원자재 시장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제 원자재 시장의 추세적으로 하락세가 지속됐다. 그럼에 따라 국제 원자재 시장은 지난해 초 이후 지속돼온 ‘슈퍼 사이클’ 종료 논쟁이 더 가열되면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경우 이미 종료가 아니라 사망했다고 선언했다.

1990년대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은 네 번의 슈퍼 사이클 국면을 경험했다. 2000년대 들어 강하게 상승하던 원자재 가격이 2013년을 기점으로 세계경제 저성장 위기가 확산되며 하락세로 반전돼 이를 두고 원자재 가격 상승 국면이 끝났다는 주장과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이란 주장이 동시에 제기돼 왔다.

슈퍼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주장하는 측은 선진국의 경기 침체, 중국의 성장률 둔화, 비전통 원유 생산 증가 등을 주된 논거로 삼는다. 하지만 중국, 인도 등 신흥국의 도시화에 따른 지속적인 원자재 수요와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이유로 슈퍼 사이클의 종료를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있다. 슈퍼 사이클 국면이란 자원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 후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현상으로 통상 20년 이상의 상승과 하락 주기를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쟁특수를 기반으로 한 2차 슈퍼 사이클과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시작된 3차 슈퍼 사이클 등 20세기 들어 세 차례의 슈퍼 사이클이 발생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4차 슈퍼 사이클은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성장으로 촉발됐는데, 기상이변, 바이오연료 생산, 투기성 자본의 유입 등 공급 및 금융 요인 등 복합적인 요인이 결부됐다. 올해 들어서는 우크라이나와 이라크 사태 등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지정학적 위험도 가세하고 있다.국제 원자재 시장이 장기적으로 하락 국면에 진입했느냐의 여부는 경기와 자원 시장 이슈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원자재 시장의 큰 흐름을 세계 경기 침체라는 거시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하락 국면의 속도와 기울기는 자원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 요인들로 판단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미시적 요인으로 셰일가스, 신·재생에너지, 바이오연료, 중국 자원 수요, 기상이변 등이 있는데, 자원 가격 하락 국면에서 세계 자원 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에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동참하면서 국제 원자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예의 주시되고 있다.

두 가지 요인을 토대로 IMF 등이 발표한 국제 원자재 가격 전망을 보면 내년에는 FT 등이 진단한 대로 슈퍼 사이클 국면이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부존자원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신흥국들이 인도처럼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대체 성장 동인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극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