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e 2 슈퍼 싱글 대표 女  권태일 조 말론 런던 부장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 곧 미래에 대한 준비라는 말은,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나 권태일 조 말론 런던 부장의 싱글 라이프는 딱 그 말 그대로다. 먼 미래를 위한 막연한 준비가 아닌 당장의 만족, 현재 삶의 질을 위해 일도 여가도 열심히 꾸리고 있는 것. 세상의 시선쯤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당당한 슈퍼 싱글의 표본이 여기 있다.
[슈퍼 싱글의 세계] 주중·주말 분리된 일상, 분산투자로 경제 관리
한때 모든 싱글 여성들의 ‘워너비’였던 미국 드라마(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사라 제시카 파커 분)는 일도 사랑도 열심인 화려한 싱글의 전형이었다. 더없이 자유로운 데다 패션과 쇼핑마저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분명했던 캐리는 분명 많은 여자들이 동경하거나 혹은 대리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캐리는 어디까지나 상상 속의 인물일 뿐 보다 현실적인 ‘캐리’였다면 어떻게 달랐을까.

모르긴 해도, 노후의 삶을 고민하며 경제적인 계획을 세우고, ‘절친’인 세 친구 외 다양한 인간관계로 커뮤니티를 다지고, 건강을 위한 운동과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키는 자기개발을 통해 오랫동안 반짝반짝 빛나게 살 수 있는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아, 물론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건 있다. 미래를 위한 준비도 좋지만, 현재를 희생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삶의 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글로벌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의 권태일 부장은 딱 ‘현실적인 캐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매거진 에디터 출신이란 이력까지 보태지니 더더욱.


주중에는 일, 주말에는 액티비티
에스티로더, 바비브라운, 맥, 크리니크 등 수입 화장품 전문 회사인 엘카코리아(Elca Korea)에서 9년째 일하고 있는 권 부장은 현재 조 말론 런던 브랜드를 담당하며 마케팅과 세일즈를 함께 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엘카의 한국 지사인 엘카코리아에 처음 조인할 당시, 바비브라운 커뮤니케이션 매니저였던 그는 3년 전 신규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을 국내에 론칭하면서 업무 영역을 확장했다. 론칭 당시 어시스트 한 명과 함께 브랜드 관련 전체 업무를 맡았던 그는 3년 만에 전국에 매장을 5개로 늘리고, 담당 직원도 3배 가까이 늘어나는 등 눈부신 성장을 주도해 엘카코리아 오픈 이래 가장 성공적인 한국 론칭의 베스트 사례로 꼽히는 영예도 얻었다. 그만큼 일에 몰두해 역량을 집중한 결과였다.

“매거진 에디터를 8년 하고 그 후 2년간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에서 패션 마케팅을 수학한 뒤 돌아와 뷰티 브랜드로 옮겼는데, 현재 하고 있는 일도 보상의 수준 등에 만족하며 해피한 편이에요.”

비슷하고도 다른 패션·뷰티 에디터에서 브랜드 전문가로 갈아탄 데는 경제적인 이유와 ‘롱런’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고백한다. 다른 직종에 근무하는 친구들과 비교해 연봉 수준도 낮았고 더 나이 들어서까지 안정적으로 일하기엔 에디터라는 직업이 합격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직을 하고 자리를 잡느라 결혼할 ‘때’를 놓친 것도 분명 있겠지만, 분명한 건 싱글만을 고집했다거나 그렇다고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단 점이다.

사실 따지고 들자면 지금도 여전히 일이 우선순위이기는 하다.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보람도 크고, 일의 대가로 누리고 있는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소위 모두가 어렵다고 말하는 ‘일과 여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주중과 주말, 철저히 우선순위를 다르게 두었기 때문이다.

“일에 투자하는 시간이 분명히 더 많죠. 야근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사생활이 먼저일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주중에는 되도록 약속을 잡지 않는 편이에요. 회사 일을 처리하다 보면 약속 시간을 넘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초조한 채로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죠. 다만 주말에는 오로지 저를 위한 시간을 보내요.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다 보면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도 풀리니, 그게 곧 자기 관리죠. 건강이 좋아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운동을 하면서 소셜라이징하는 것도 저 같은 싱글들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낭랑한 목소리에 지극히 여성적인 외모를 자랑하는 그는 보기와 달리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활동파’다. 테니스, 요가, 등산, 크로스 핏은 물론 가끔 즐기는 골프 같은 운동은 물론이고, 친구들과 함께 캠핑을 떠나기도 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른 골드미스들과 달리 운동과 체력 관리에 쓰는 돈이 많은 편. 마흔 넷이라는 나이가 그야말로 물리적인 숫자에 불과해 보이는 데는 그렇듯 자기 관리에 철저한 배경이 있었다.


1년에 한 번 연봉 조정에 맞춰 금융 계획 수정
권 부장은 액티비티 활동만큼이나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다양한’ 경험치를 갖고 있다. 대학 졸업 후 6개월간 증권회사에서 일한 덕분에 남들보다 일찍 눈을 떴고 관심도 높다.
[슈퍼 싱글의 세계] 주중·주말 분리된 일상, 분산투자로 경제 관리
“부동산을 제외하고 은행이나 제2금융기관 등을 두루 거치며 연금, 펀드, 보험,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투자를 조금씩 다 경험해봤어요. 물론 확실하게 ‘이거다’할 만큼 재미를 보지는 못했지만요.(웃음) 지금껏 경험해 오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현재의 급여 수준에서 정확한 금융 플랜이 필요하다는 점이에요. 저희 회사는 외국계라 6월에 회기 마감을 하기 때문에 그 즈음 새로운 연봉 수준에 맞춰 금융 계획을 세우고 있죠. 분산 관리를 하면서 요즘처럼 저금리일 때는 감당이 되는 선 안에서 적절히 대출을 활용한 재테크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주변의 싱글 친구들을 보면 부동산 투자도 많이 하는데, 부동산을 사서 월세나 임대료를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고요.”

현재 부모님과 함께 거주 중인 그는 덕분에 연봉의 절반 이상은 저축하는 편이다. 대체로 싱글들이 불안함을 느끼는 노후 경제에 대한 대비 성격도 분명 있지만, 솔직히 그는 현재의 삶이 얼마나 만족스럽고 행복한가가 중요할 뿐 노후에 대한 불안감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요즘만 해도 주변에 싱글들이 너무 많고 또 많아질 것이라고 하잖아요. 벌써 셰어하우스 같은 새로운 거주 형태도 생겨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새로운 문화들이 생겨나겠죠. 그래서 미래를 크게 걱정하진 않아요. 조 말론 런던만 해도 삶의 질을 따지는 사람들이 옷이나 가방 대신 자기 자신에게 투자하기 시작하는 흐름과 맞물려 성장한 브랜드거든요. 주말엔 자신만을 위해 비싼 목욕 제품을 소비하고 향초를 피우고 좋은 배스 오일을 쓰면서 나를 위한 작은 사치를 누리는 거죠. 저를 비롯해 아직 싱글인 제 친구들을 보더라도 나만의 경험, 나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꾸미는 데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하며 살아요. 현재 내 삶의 퀄리티가 더 중요하니까요.”

다만, 노후를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게 있다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즉 커뮤니티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권 부장은 이미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 및 동문 모임을 비롯해 속해 있는 회사 밖 커뮤니티 활동에 열심일 뿐만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자기개발을 통해 오래 오래 현역으로 활동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도 차근차근 실천 중이다.

아직은 일에 더 비중이 실려 있는 라이프스타일이 좀 더 밸런스를 맞춘다면 현재 ‘만족’인 싱글 라이프가 ‘매우 만족’이 될 것 같다는 권 부장은, 끝으로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싱글세’ 이야기에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싱글로 살면서 남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데, 모든 제도나 생활환경이 결혼한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는 건 좀 아쉬워요. 세제 혜택만 해도 그렇잖아요. 여전히 싱글은 사회의 소수이고 마이너이기 때문에 아무런 배려도 받지 못할 때면 화가 나더라고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