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거래 딜레마

작년 11월 차명거래 금지를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부자들의 현금흐름은 급속한 변화를 타게 된다. 일부 금융기관에서 뭉칫돈들이 빠져 나가기도 하고 골드바 수요가 급증한 사례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현재도 여러 가지 말 못할 사정으로 차명계좌를 유지하고 있는 자산가들이 남아 있는데 이는 상속을 앞두고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BIG STORY] 자녀 명의 예금 계좌 들통나면 처벌 수위는?
작년 11월 29일에 일명 차명금지법이라고 불리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법 개정 전에는 소위 합의 차명이라고 불리는 자녀 명의 및 친인척 명의로 차명을 쓰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나 앞으로 불법 차명거래를 한 경우 예금 및 금융상품의 명의자와 실제 소유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 것이다.

법 개정과 관련해 차명계좌를 보유한 사람의 고민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유형은 세금을 내지 않은 현금 자산(일명 자금 출처가 없는 자금)에 대해서 차명으로 관리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서울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이 모 씨가 있다고 하자. 이 모 씨는 세금 신고를 하지 않고 받은 현금을 직원 명의 계좌로 관리해 오고 있는데 어느 날 병원에 출근해보니 해당 직원이 나오지 않는 거다. 이내 이 모 씨는 아차 싶었다. 평소 직원 이름으로 관리해 온 비자금 통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금융기관에서는 예금 및 금융상품의 소유자를 명의자로 추정하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명의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경우 해당 직원이 금융기관을 방문해 신분증을 제시하고 예금을 인출해 갈 수 있다. 이 경우는 차명금지법으로 인한 처벌도 문제이지만 본인 소유의 재산에 대해서 제3자와 분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아직도 차명계좌 갖고 있다면?
둘째 유형은 본인의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피하기 위해 자녀 명의를 빌려서 예금을 한 경우다. 50억 원 정도의 금융 재산과 연 2억 원의 임대수입이 발생하는 김 모(59) 씨는 금융소득종합과세(이자 배당소득이 연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다른 소득과 합산해 세금을 납부함) 대상자다.

현행 세법상으로는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종합소득 금액이 발생하면 종합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인 41.8%(지방소득세 포함)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김 모 씨의 경우에는 정기예금 이자율 2%를 가정하면 1억 원의 금융소득이 발생하게 된다. 1억 원에 대해서 약 420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더 납부해야 하고 지역가입자로 돼 있는 건강보험료도 올라가게 된다.

이를 고민하던 김 모 씨는 금융소득종합과세가 되지 않기 위해 배우자 및 자녀 이름으로 예금의 명의를 분산시켜 놓았다. 하지만 자녀는 아직 30대 초반으로 나이가 어려서 자금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먼저 증여할 경우 자식이 부모에 대한 효심이 없어진다고 지인들이 충고해주어 자녀 명의로 한 예금 10억 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증여할 생각이 없다.
[BIG STORY] 자녀 명의 예금 계좌 들통나면 처벌 수위는?
이 경우 실질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차명에 해당되므로 차명계좌로 발각되면 계좌의 명의자(자녀) 및 실질 소유자(김 씨)가 모두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

만약 금융기관 직원이 이러한 거래를 알선하거나 중재한 경우에는 동일한 형사처벌 및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받게 되고 해당 금융기관 내부적으로 감봉이나 정직을 당할 수 있다. 본인은 물론 자녀, 해당 금융기관까지 된서리를 맞게 되는 것이다.

세금 측면에서 보면 실질 거래자인 김 씨가 차명거래를 해 종합소득세를 그만큼 내지 않았으므로, 해당 종합소득세(약 4200만 원)와 그 소득세에 40%의 신고불성실가산세 및 납부를 늦게 한 부분에 대해서 적용받은 납부불성실가산세(연 10.95%)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만약 김 씨가 자녀 이름으로 해 놓은 금융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한 것으로 판정될 경우에는 어떻게 달라질까. 자녀 명의로 한 예금이 10억 원이라고 가정하면, 자녀는 10억 원에 해당하는 재산을 아버지인 김 씨에게 증여받은 것으로 보아 2억2500만 원의 증여세와 그 증여세액의 40% 신고불성실가산세 및 납부불성실가산세(연 10.95%)를 납부해야 한다. 증여로 판명 날 경우에는 명의자(자녀)와 실제 소유자(자녀)로 일치하게 되므로 차명의 이슈는 사라지게 된다.

셋째 사례는 둘째 사례와는 반대다. 자녀가 부모님 이름으로 금융 재산을 운영한 사례다. 강남에 거주하는 박 모(45) 씨는 프로그램 개발업으로 자수성가해 본인 명의로 금융 재산이 30억 원과 2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박 씨는 본인이 사업에 종사해 혹시 파산하게 될 경우 박 씨 재산에 대한 채권자의 강제집행 행위를 피하기 위해서 본인 금융 재산 중 20억 원 정도를 5년째 어머니(80) 앞으로 옮겨 놓고 관리를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요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신 어머니가 맘에 걸린다. 특별한 상황이 없는 한 어머니가 사망하실 경우 20억 원은 어머니 명의 상속 재산으로 분류돼 상속세가 발생한다. 실질은 박 씨의 자금이지만 어머니 명의로 된 재산이기 때문에 상속세로 약 3억2000만 원 정도가 부과될 수 있다.

더불어 박 씨는 동생이 2명이 있는데 만약 어머니가 유언장 없이 돌아가시게 되면 20억 원의 금융 재산이 어머니 명의 재산이므로 상속 재산에 해당돼 법정상속비율인 1대1대1로 동생들과 나누어 받게 돼 실제 본인의 재산을 동생들에게 증여하는 황당한 경우도 겪을 수 있다.

만약 실제 박 씨 본인 재산임을 주장하고 이를 과세관청에서 받아들어 준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 경우도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된다.

차명금지법 시행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고, 5년 동안 발생한 종합소득세 누락분인 약 8400만 원에 신고불성실가산세(40%)와 5년 치 납부불성실가산세(연 10.95%)가 부과된다.

이와 같은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차명계좌를 사용할 경우에는 현행법을 위반한 것임은 물론 세금 이슈에 있어서도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 그러나 모든 차명거래가 금지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계, 부녀회, 동창회 등의 친목모임 회비를 관리하기 위해 대표자(회장, 총무 등) 명의의 계좌를 개설하거나 문중, 교회 등 임의단체 금융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대표자 명의로 계좌를 관리하는 것, 미성년 자녀의 금융 자산을 관리하기 위해 부모 명의 계좌에 예금하는 행위는 차명거래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

위에 있는 거래를 제외하고는 차명으로 거래하는 금융거래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올바른 금융거래를 위해서 차명거래를 하지 않고, 실질 소유자 명의로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 특히 자녀가 외국에 있는 경우 등 부득이한 상황으로 명의자 본인이 금융거래를 직접 할 수 없을 때에는 위임장 거래를 통해 특정 금융거래를 자녀로부터 위임받아야 분쟁에 노출되지 않은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김태희 하나은행 상속증여센터 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