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가 법정단체 출범 1주년을 맞았다. 위상이 한 단계 높아진 중견련은 명문장수기업센터와 인수·합병(M&A)지원센터, 중견기업연구원을 잇달아 설립하는 등 중견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중견련이 한국 경제의 또 다른 주역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이 모든 일을 성사시킨 인물이 바로 강호갑 중견련 회장이다.
[Special interview]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명문장수기업 육성해 가업승계 고민 풀어야죠”
서울 마포구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서 만난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은 특유의 친화력과 논리정연한 달변이 인상적이었다. 강 회장을 만나 1시간여 대담을 하는 동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제 위상을 찾지 못했던 중견련을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법정단체로 성장시킨 강한 추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견련 회장이기 이전에 그는 성공한 기업가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때 부도난 자동차부품 회사 신아금속을 인수해 지금의 글로벌 기업 신영으로 키웠다. 매출액 198억 원, 직원 수 120명이던 회사는 그의 손을 거쳐 매출액 1조 원, 직원 수 3000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중견기업으로 거듭났다.

사실 외환위기 이후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기업의 성장세가 정점을 지난 데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구조로 굳어져 가는 상황에서 중견기업의 성장과 글로벌화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강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중견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철폐, 명문장수기업 발굴과 육성, M&A 활성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 등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지난 7월 말 중견련 법정단체 출범 1주년을 맞았는데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회장을 맡은 지 2년 6개월 정도 지났습니다. 지난해에 법정단체로 출범했고, 대통령 해외 방문 사절단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만큼 중견련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또 중소기업, 대기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 의한 불합리한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지난 5월 말 정부에 건의한 ‘중견기업 성장저해 규제과제’ 총 54건 중 21건이 개선됐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보람은 있었습니다.”

중견기업이 잘 되면 뭐가 좋습니까.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의존도가 높고 중소기업 성장세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견기업의 육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중견기업이 늘어나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가장 많이 창출할 수 있는 기업군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중견기업은 3846개, 전체 기업의 0.12%에 그치고 있지만 경제 기여도는 작지 않습니다. 지난해 국내 중견기업은 전체 일자리의 10%인 120만 명을 고용했습니다. 중견기업이 1%만 돼도 일자리 3만여 개가 생깁니다. 글로벌 전문 중견기업이 많아지면 우리 경제는 더 튼튼해질 것입니다.”

‘중견기업특별법’ 제정은 그 의미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증여세 과세특례 적용 한도가 기존 30억 원에서 100억 원으로 늘어났고, 중소기업 취업자에 대한 소득세 감면과 정규직 근로자 전환에 따른 세액공제도 일부 중견기업까지 확대됐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전봇대 뽑기도 아니고, 손톱 및 가시 뽑기도 아니다. ‘신발 속 돌멩이’를 없애는 일이라고요. 단지 덩치가 커졌다는 이유로 공공시장 참여를 제한받고, 민간시장에서도 적합 업종으로 판로를 규제당해서야 되겠습니까.”

대기업의 상속 분쟁으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중견기업도 예외가 아닐 것 같은데요.
“중견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지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도 문제인데다, 매끄러운 상속을 위한 프로그램도 부족한 현실입니다. 사실 ‘가업승계’보다는 ‘기업승계’란 말이 더 적절합니다.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술과 경영 노하우 같은 무형자산과 기업 헤리티지의 대물림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에 100년 넘은 기업이 딱 7개입니다, 7개. 당장 이웃나라인 일본은 200년 넘은 기업이 무려 3000개가 넘어요. 독일은 1500개, 프랑스는 300개나 됩니다. 제가 회장을 맡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명문장수기업센터’를 만든 겁니다. 명문장수 기업을 통해 상속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중견기업을 어떻게 명문장수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인지요.
“우선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재정비하려고 합니다. 가업승계에 대한 주장들이 상당히 상반돼 있어요. 더불어 해외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하려 합니다. 독일 중견기업 3분의 2가 가족기업입니다. 자질 있는 젊은 후계자를 발굴해 최고경영자(CEO)에 임명하고, 경영 철학을 승계해 ‘연속성’을 확보하고 있지요.
CEO의 취임 연령이 30~40대 초반으로 젊은 편이고, 평균 재직 기간도 20년 정도로 깁니다. 자녀가 상속하지 않으면 신탁재단 형태로 기업 활동을 지속할 수 있고요. 경영진의 연속성을 통해 ‘집중과 세계화’라는 중장기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창업자와 달리 2, 3세들은 기업가 정신이 부족할 수밖에 없죠. 후계자 육성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주문이 많은데요.
“그래서 명문장수기업센터 프로그램에 2세들을 적극 초청하고 있지요. 우리가 그저 성장을 위해 달려 왔다면, 2세들은 힘든 것과 좋은 것을 동시에 봤기 때문에 사회적, 세계적 일원으로서의 시각을 좀 더 넓혀야 할 겁니다. 후계가 여의치 않다면 전문경영인을 끌어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요. 그래서 ‘M&A지원센터’를 만든 겁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미리 준비한 자만이 승리한다는 사실입니다.”
[Special interview]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명문장수기업 육성해 가업승계 고민 풀어야죠”
현재 신영그룹 대표이사 회장을 겸하고 계신 거잖아요. 두 가지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나요.
“아이고, 왜 안 힘들겠습니까. 지금도 지인들이 ‘뭣 하러 사서 고생하느냐’며 말리기 바빠요. (웃음) 그럴 때마다 이것이 내 시대적 소명이려니 하고 웃어넘깁니다. 직접 중견기업의 역차별을 겪어 보니 정말 남 일이 아니더군요. 남이 망하면 나도 망한다는 걸 배웠다는 거 아닙니까. 하하.”

그러고 보니 회장님께서도 처음부터 ‘중견기업’ 문제를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러니까 2008년이었을 거예요. 우리가 차체를 만들지 않습니까. 당시 ‘핫프레스포밍(HPF: 뜨겁게 달군 철에 급냉 처리를 하는 금형 공법)’이란 신기술을 개발했단 말입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새 라인을 깔려면 초기 비용이 어마어마해요. 한 200억 원 정도를 대출하러 은행에 갔지요.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웬걸요. 우리가 대기업이라서 안 된다는 거예요.”

제조업은 매출 1500억 원 이상이면 대기업으로 분류되죠. 그전까지 중소기업 기준으로 심사를 받으셨다가 갑자기 대기업 기준을 요구받으신 거군요.
“바로 그겁니다. 1499억 원이나 1501억 원이나 차이는 2억 원밖에 안 나는데 규제는 하늘과 땅 차이였어요. 오죽하면 중견기업 10개 중 3개가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고민하겠습니까. 이미 필요한 기계를 해외 업체에 발주한 상태라 그야말로 하늘이 노랬지요.
결국 사채까지 끌어 쓰며 어찌어찌 위기는 넘겼는데, 화가 가라앉지 않더군요. ‘우린 분명 대기업이 아닌데, 왜 현대자동차와 같은 조건에서 여러 가지 규제를 받아야 하나’ 하면서요. 그래서 알아보니 ‘중견기업연합회’라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고, 그 길로 당시 회장을 찾아갔더랬죠.(웃음)”

그런데 아직 ‘중견기업’이란 단어가 생소하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거쳐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드문 탓도 있겠지요.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중소기업-대기업’이란 이분법이 너무나도 강합니다. 무작정 지원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밑거름을 달라는 것입니다. 중견련의 목표는 크게 2가지지요. 첫째는 ‘성장사다리’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글로벌 전문 기업으로 커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렇게 성장한 글로벌 전문 기업이 명문장수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제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피터팬 신드롬’이란 말 아십니까?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넘어갈 때 생기는 역차별을 피하고자 일부러 중소기업에 머무르는 기업을 말합니다. 중견기업특별법이 탄력을 받으면, 이런 피터팬 신드롬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숨통이 확 트일 겁니다.”

향후 계획을 말씀해 주시죠.
“우선 70여 개 달하는 중견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야 하고요. 중견기업들의 가업승계에도 도움이 돼야 합니다. 상속공제 한도와 독일식 가업승계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겠죠. 3846개 회원사 중 중견기업 회원사는 530개뿐입니다. 회원사를 늘리는 것도 과제입니다. 회원사가 되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늘려 회원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죠.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강호갑 회장은…
1954년 8월 15일 출생. 진주고등학교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아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를 이수했다. 1989년, 형의 요청으로 회계사의 꿈을 접고 귀국한 뒤 (주)부영사 부사장, 미래엔지니어링 대표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9년 부도 난 자동차부품 업체를 인수해 17년 만에 계열사를 6개로 늘리는 등 오늘까지 (주)신영그룹을 이끌어 왔다. 2012년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글로벌전문기업포럼 회장으로 활약했으며, 2013년부터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대담 권오준 편집장│사진 서범세 기자
이현화 기자 lee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