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 고대 그리스 잠언에 “노인은 두 번째로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아이가 상징하는 ‘시작’이란 키워드에 주목해보려 한다. 어떤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향한 순수한 동기, 모험심에서 비롯될 터. 100세 시대 60대의 도전은 새로운 삶의 이유이자 세 번째 스무 살의 또 다른 표식이다. 20대보다 더 화끈한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중년들의 특별한 도전기를 통해 나만의 설레는 노년을 대비해보는 건 어떨까.
도전과 배움을 즐기니 다시 청춘을 경험하다
최근 40~50대 중년들 중 다가올 노년을 인생의 ‘엔드(end)’가 아닌 ‘앤드(and)’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에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견되는 등 100세 시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100세 시대에서 노년의 기대수명은 짧게는 20~30년에서 길게는 40~50년에 이른다.

따라서 늘어난 노년기를 ‘어떻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인지가 현대인의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노년의 시기를 ‘잉여의 시간’이 아닌 또 다른 ‘도전의 시기’로 직면해야 할 시대가 온 것이다. 발달심리학자들은 노년기에도 잠재력은 계속 계발될 수 있는 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우라고 충고한다.

특히, 중년의 경우, 풍부한 사회적 경험과 지식과 경륜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안목과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만큼 자기실현의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노년, 더 ‘익스트림’하게 도전하라
이런 흐름에 따라 요즘 청년들보다 더 과감하게 새로운 모험에 뛰어드는 중년들의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간혹, 이들의 패기 넘치는 도전기는 또래 중년을 포함, 청년들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익스트림 아웃도어 스포츠다. 고산 암벽등반, 사막 트레킹, 모터사이클 바이크 등 젊은 세대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스릴만점 취미활동에 중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도전과 배움을 즐기니 다시 청춘을 경험하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송인순(53, 여) 씨는 올가을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 전 세계 트레킹 마니아들의 성지 중 하나로 꼽히는 페루 트레킹 코스를 다소 특별한 계기를 통해 경험한 것이다. 사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송 씨는 페루 트레킹은커녕 여유시간이 생길 때면 남편과 함께 여행을 즐기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산을 오르면서 등산이 주는 ‘성취감’에 빠져들었다. 좀 더 도전의식이 생긴 그는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가 주최하는 산 탐방 프로그램 ‘명산40 도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명산40 도전’ (현재는 ‘명산100 도전’)은 현재까지 전국에서 2만6000여 명의 도전자가 참여해 693명이 100대 명산을 완주했다.

그리고 올해 이들 중 단 6명만이 블랙야크가 페루관광청과 준비한 페루 트레킹 프로그램의 기회를 얻게 됐다. 송 씨도 그 행운의 6명 중 한 사람이었다. 지난 9월 25일 출발해 페루 수도 리마에 도착한 6인의 참가자들은 대표 트레킹 코스로 손꼽히는 잉카 트레킹, 페루의 마스코트인 라마와 함께 3900m 고산지대를 걷는 라마 트레킹 등 9박 11일간의 일정을 완수했다. 손 씨는 아직도 트레킹 당시의 설렘과 성취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 보였다.

“예나 지금이나 산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등산은 늘 힘이 들어요. 하지만 정상에 올랐을 때의 희열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벅차죠. 이번 페루 트레킹뿐만 아니라 2년 전 히말라야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등정했을 때 느낀 성취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무엇보다 남편과 항상 같이 산행하니 부부 사이도 좋고, 남편이 산행 전보다 건강해져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래서인지 곧 60대를 앞두고 있지만 마음이 헛헛하거나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어요. 오히려 아직도 다리보다 심장이 더 떨리는 거 자체만으로 앞으로의 인생이 무척 기대됩니다.”
도전과 배움을 즐기니 다시 청춘을 경험하다
등산, 트레킹 외에도 거친 탈것을 향한 중장년들의 관심도 뜨겁다. 바이크로 불리는 고가 레저용 오토바이가 그 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새 국내에서도 모터사이클 라이딩이 당당히 아웃도어 레저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고, 브랜드나 오토바이 종류별로 각종 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다양한 통로가 있지만 가장 유명한 바이크 동호회는 역시 대형 모터사이클의 대명사인 미국의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 관련 동호회들이다. 1983년 할리데이비슨 오너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동호회인 호그(Harley Owners Group, H.O.G.Ⓡ)가 대표적이다. 호그는 인종과 성별, 나이를 불문한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의 회원이 소속된 세계 최대 모터사이클 커뮤니티다.

한국의 경우 1999년 호그 코리아챕터(H.O.G. Korea Chapter)가 300여 명의 회원으로 시작, 지난해 기준 1300여 명으로 국내에서 최대 규모의 모터사이클 동호회로 꼽힌다. 호그 코리아챕터 회원들은 모터사이클을 즐기고 느끼며, 함께 숨 쉬는 라이딩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밖에도 매년 일본 호그 멤버들과의 교류를 통해 민간 외교의 장을 펼치고, 법과 규범을 준수하는 라이딩을 선도하며 한국 모터사이클 문화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중이다. 호그 회원이 되고 싶다면 호그 코리아챕터 홈페이지인 www.hog-korea.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할리데이비슨코리아 관계자는 “최근 국내에서도 모터사이클이 건전한 레저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중년 회원들도 늘고 있다. 라이딩을 통해 젊은 시절의 향수도 느끼고, 오롯이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등 삶의 여유를 되찾는다는 것이 큰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움 통해 삶의 새 의미를 부여하라
비단, 세 번째 스무 살을 준비하는 중년들의 도전은 익스트림 취미활동에만 쏠리는 것은 아니다. 아웃도어 스포츠처럼 동적인 취미는 아니지만, 평생 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를 탐닉하는 중년들도 적지 않다.
도전과 배움을 즐기니 다시 청춘을 경험하다
이미 각종 사설학원 등을 통해 요리나 외국어 공부, 전통공예, 숲해설가 등 그간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배우려는 중년들의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중 몇 년 새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요리하는 중년 남성들이다. 사실, 전통적으로 가정에서 요리는 대개 ‘아내의 몫’으로 치부되곤 했다. 물론, 우리 사회도 점차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맞벌이 가구,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가사노동의 성 구별이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주방은 중년 남성들에겐 낯설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엔 중년 남성들도 앞치마를 두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돈만 벌던 아버지가 아니라, 은퇴 후 가족들에게 직접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이들의 학습 욕구를 자극한다. 그뿐만 아니라 ‘요섹남(요리하는 남자가 섹시하다)’ 풍토에 걸맞게 이제 남성들에게도 요리를 하는 것은 큰 경쟁력이 되기도 한다.

전문 요리가로서 제2의 인생을 꿈꾸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런 추세에 따라 사설학원 외에도 몇 년 새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중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요리교실을 적극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서울 구로구는 지난해부터 중년 남성들의 의미 있는 여가 생활 지원과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돕기 위해 남성요리교실 ‘삼시세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모집 대상은 관내 50대 이상 남자 20명으로 올 하반기 수업 참가 신청은 이미 동이 났다. 지난 9월 28일부터 매주 수요일, 총 10회에 걸쳐 펼쳐지는 이 수업의 주요 테마는 ‘건강한 가정식’이다. 참여자들은 김치찌개, 소고기무국, 두부조림, 고등어찌개 등 집에서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집밥 메뉴들을 배울 뿐만 아니라 칼질부터 양념장 만들기까지 기본 조리 기술도 배울 수 있다.

참가하는 중년 남성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맛있는 것을 해주겠다는 중년 남성부터 손자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는 사연, 요리교실에서 만든 반찬으로 일주일을 지내는 1인 가구 참가자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60대 박석원(가명) 씨도 요리수업을 통해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노년의 삶을 구상 중이다.

“은퇴 후 시작한 농장 운영에 도움이 될까 해서 약용식물 발효식품 교실을 참여하던 중 흥미가 생겨 요리교실까지 참여하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요리하는 아내의 노고도 알게 됐고, 앞으로 가족과 함께 행복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남자도 요리를 할 줄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종종 아이들이 제가 만든 음식이 엄마가 만든 것보다 맛있다고 칭찬해주기도 한답니다. 아울러, 요리교실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도 무척 즐거웠어요. 요리가 제 삶의 새로운 큰 원동력이 된 셈이죠.”

중년, 자연과 예술·인문학에 빠지다
요리를 배우는 것 외에도 자연을 벗 삼아 배움에 나선 중년들도 있다. 숲해설가가 대표적인 예다. 숲해설가는 숲에 관한 문화, 교육, 역사 등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자로서 숲을 찾는 국민들에게 산림 문화·휴양에 관한 활동을 통해 산림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며 숲을 해설하거나 지도, 교육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도전과 배움을 즐기니 다시 청춘을 경험하다
숲해설가 양성기관은 전국에 33곳이 있고, 경기도에는 수원, 양평, 남양주에서 진행된다. 숲해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산림교육의 활성화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산림청장 인증 숲해설가 교육과정 운영기관이나 기타 공공기관, 대학 등에서 운영하는 숲해설가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만큼 이론과 실기공부가 필수다. 각 기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4~8개월 코스가 기관별로 있으며 비용은 100만~150만 원 내외 정도다. 이렇게 숲해설가 양성 교육을 이수하면 자격증이 주어진다.

한국숲해설가협회 차기철(56) 상임대표도 노년의 삶을 대비하며 숲해설가에 입문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중소기업 회장직을 역임할 정도로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차 대표지만 그도 종종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인생의 공허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숲 해설 관련 수업을 접한 그는 서서히 숲의 매력에 젖었다고 했다.

“숲은 매일 새로운 모험을 하게 합니다. 나무를 따라가면 나무의 세상이 있고, 곤충을 따라가면 곤충의 세상이 있죠. 숲해설가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전에 하던 일을 잊고, 나이를 잊고 뜨겁게 뛰는 열정적인 가슴을 갖게 됐어요. 어떤 철학자가 ‘여행을 떠나라.

그곳에서 너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독서를 하라. 책 속에서 너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죠. 결국, 여행이나 독서를 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에 있지 않고 자기 내면으로 향해 있다는 의미겠죠. 제게 숲해설가는 숲에서 만나는 숲의 이야기와 사람과 함께 떠나는 내면으로의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여행길이 제 노년을 더욱 설레게 할 것 같습니다.”

이 밖에도 공연장, 미술관에서 예술에 대해 공부하는 중장년들도 적잖이 늘고 있다. 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일뿐더러 그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재미에 중년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지난 8월 말 가을 학기 정규 강좌를 시작한 예술의전당 아카데미는 2100여 명이 일찌감치 등록을 마칠 정도다.

한 학기 수업이 100% 무료인 곳도 있다. 바로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시민 예술대학’이다. 15주에 걸쳐 각 장르별로 ‘체험형 강좌’를 진행하는데, 20명 정원이 하루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만 19세 이상 서울 시민 누구나 문학, 연극, 음악, 무용 등 순수예술을 중심으로 예술 체험을 할 수 있어 중장년들에게 좋은 배움 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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