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 사이, 음악가의 편지
[한경 머니 =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작곡가의 생각은 악보에 나와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에 묻어난다. 작곡가의 편지는 연주자뿐 아니라 감상자에게도 명곡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힌트를 주기도 한다. 작곡가들이 남긴 수많은 편지 가운데 ‘사랑’과 ‘죽음’을 주제로 삶과 예술의 단면을 살펴본다.

사랑 베토벤과 브람스
브람스와 베토벤
브람스와 베토벤
작곡가에게 사랑은 영감의 원천이다. 사랑의 열정은 창작의 충동으로 이어지곤 한다. 베토벤도 그랬다. 그의 일생은 여성들과의 연애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강한 개성으로 많은 여성을 매료시켰던 베토벤은 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 상대는 대개 귀족 여성이었다. 네덜란드계에 평민 신분이었던 베토벤이 오스트리아 귀족 여성과 결혼하는 건 당시 사회 통념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한 제한 때문에 베토벤이 귀족 여성을 동경하고 연애 감정을 갖게 됐는지도 모른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헌정한 테레제 말파티, ‘월광’을 헌정한 줄리에타 귀차르디, 가곡 ‘희망에 부쳐’ Op.32를 헌정한 요제피네 등 여러 여성에게 베토벤은 사랑을 속삭였고, 그들과의 결혼을 꿈꿨다.

베토벤이 사랑을 고백한 수많은 편지들 가운데 충격적인 부분은 베토벤의 유품 속에서 발견된 ‘불멸의 연인에게’라는 3통의 편지다. 각각 ‘7월 6일 아침’, ‘월요일 밤, 7월 6일’, 그리고 ‘7월 7일 이른 아침’이라고 날짜가 기록돼 있다.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 왜 이렇게 슬픈 거요? 우리의 사랑은 희생을 감내하고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성립되는 건가요? 우리의 마음이 늘 굳게 하나로 맺어져 있다면 굳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두 번째 편지는 같은 날 밤이다. 베토벤은 이렇게 썼다.
“당신은 괴로워하고 있소. 아아, 내 마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오. 당신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노력하겠소. 당신과 함께하는 인생은 과연 어떨까요.”

이튿날 아침에 쓴 세 번째 편지에는 ‘불멸의 연인’이란 말이 등장한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소. 내 불멸의 연인이여. 운명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바라면서. 당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이 편지들이 누구에게 보내는 것이었는지 학자들은 추측만 할 뿐이다. 제자인 쉰들러는 줄리에타 귀차르디라고 했다. 타이어와 로맹 롤랑은 테레제 브룬스비크를, 라 마라는 테레제의 동생 요제피네를 그 주인공으로 추정한다. 영화 <불멸의 연인>에서는 조카 칼의 어머니였던 제수 요한나 라이스를 불멸의 연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시기도 논란거리인데, 베토벤 연구가 메이너드 솔로몬은 베토벤이 1812년에 안토니아 브렌타노에게 보낸 편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결론을 내렸다. 안토니아 브렌타노와 그 남편 프란츠는 둘 다 베토벤의 평생 친구였다.

슈만과 클라라 부부, 그리고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도 빼놓을 수 없다. 1854년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21세의 브람스는 35세의 클라라와 아이들을 돌보며 연모의 정이 깊어갔다. 급기야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낸다.

“오! 여인이여, 당신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움과 열망으로 괴로워하던 영혼에 향료를 따르고 찢겨 아픈 가슴을 치료해줬습니다. 당신의 지친 노예는 그 안에 깃든 모든 사랑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당신의 머리로 나의 마음은 시인이 되었습니다. 마음은 답답하고 괴로움은 더 커지고, 잠자려 해도 눈은 감기지 않고, 지친 육신에 참을성도 없어졌어요. 우리 사이 거리는 여전히 멀고 이성은 혼탁하고 마음은 복잡해졌군요. 비록 슬픔은 근심의 불꽃을 없애진 못하지만, 욕망 때문에 멀리 있어야 하는 고통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 사람에게는 위안이 됩니다. 오늘 나는 이 편지를 보내는 대신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죽고 싶다고 계속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습니다.”
(1854년 겨울, 함부르크에서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죽음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년)의 음악은 ‘천의무봉’에 비유된다. 이음새가 없는 하늘에서 지은 옷 같다는 얘기다. 기막힌 선율과 자연스런 화성, 천재적인 대위법이 감동을 준다. 모차르트의 편지는 음악보다 소소하고 직접적이며, 신변잡기적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나오는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갈등을 빚고 매도당했을 때 주교와 나눈 대화를 아버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세세하게 ‘일러바치고’ 있다. 편지 중에는 아버지가 반대한 결혼 상대인 콘스탄체를 찬양하는 것도, 자신이 인정받지 못할 때의 초조함을 토로한 것도 있다. 친구에게 돈을 빌리려는 내용이나 누나의 결혼생활에 참견하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모차르트는 35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모차르트가 사망하던 해인 1791년 여름, 회색 옷을 입은 사나이가 나타나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인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했다. 작곡료는 50두카덴이고 선불로 그 절반인 25두카덴을 지불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오페라 한 편의 작곡료가 100두카덴이고 궁정작곡가 모차르트의 연봉이 180두카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단 의뢰자는 비밀에 부친다는 조건이 있었다. 현재 밝혀진 의뢰자는 프란츠 폰 발제크 슈투파흐 백작이다. 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자신을 작곡가로 보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1791년 2월에 20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부인을 위해 이 곡을 바치려 했다. 모차르트의 작품을 돈으로 사 자기 작품처럼 만들려 한 것이다. 모차르트의 편지를 보면 슈투파흐 백작의 의뢰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도 작곡을 계속한 그에게 연민이 느껴진다.

“내 머리는 혼란해지고 기력도 다 빠져 버렸어요. 그 알 수 없는 사내의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내게 부탁하고 간청하고, 초조한 듯 독촉하던 그의 모습이 자꾸 나타납니다. 휴식하는 것보다 작곡하는 편이 덜 피로해 계속 쓰고만 있습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습니다. 최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사소한 일에도 느낍니다. 지금은 숨쉬기조차 허덕입니다. 제 재능을 즐기기 전에 떠나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아름다웠고, 여러 다행스런 징조로 미뤄보니 길이 열렸다고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자기 운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수명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고, 체념해야만 합니다. 신의 섭리대로 될 것입니다. 이것은 내 자신의 장례식을 위한 노래입니다. 미완성인 채로는 둘 수가 없습니다.”
(1791년 빈, 모차르트가 다 폰테에게)

그러나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그의 진혼곡은 제자인 쥐스마이어가 완성했다.
슈베르트(1797~1828년)는 31세로 세상을 떠났다. 1824년 그가 작곡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그 한 해 전 빈의 악기 제작자인 게오르크 슈타우퍼가 고안해 제작한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악기를 위한 작품이다. 첼로, 기타와 비슷한 아르페지오네는 기타처럼 6개의 현을 가졌는데 활로 켜서 연주한다. 악기의 발명자와 함께 지상에서 사라졌으니 수명이 짧았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된 거의 유일한 곡이다.
당시 슈베르트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1823년 여름에 매독에 감염된 데다 우울증까지 겹쳤다. 몇 달간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매독 치료로 머리카락마저 빠져 버렸다. 슈베르트가 1824년 3월 친구인 레오폴트 쿠펠비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심경이 드러난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네. 건강이 영원히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그로 인해 절망하고 있는 한 인간을 상상해보게나. 매일 잠에 들 때마다 나는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란다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이 또 엄습한다네. 기쁨도 편안함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네. 슬픔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다네. 슬픔은 정신을 강하게 한다네.”

‘아르페지오 소나타’는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다. 1824년 11월에 곡을 완성해 그 해가 가기 전에 아르페지오네 연주자였던 빈센초 슈스터(Vincenz Schuster)와 슈베르트가 함께 연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악보로 출판된 시기는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뒤인 1871년이었다. 일종의 유작이었던 셈이다. 슈베르트가 토로한 절망과 슬픔은 맑게 응결돼 걸작으로 빚어졌다. 죽음의 유한함은 예술의 영원성을 가리지 못했다.

편지 속 ‘사랑’과 ‘죽음’의 감성을 담은 불후의 명반

영화 <불멸의 연인> OST
버나드 로즈 감독의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다.
베토벤의 죽음과 사랑하는 연인의 삶이 잘 표현됐다. 게리 올드만이 열정이 용솟음치며 불행에 괴로워하는 베토벤 역을 잘 소화했다. 영화 내내 흐르는 베토벤의 음악은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게오르그 숄티의 지휘 아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담당하고 있다. 머레이 페라이어, 엠마누엘 액스 등 정상급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도 아울러 감상할 수 있다.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
브람스 현악 6중주 1번은 그의 생애를 통해 가장 행복하고 수확도 많았던 시기의 작품이다.
현악 4중주에 비올라와 첼로를 첨가시켜 현악 6중주다. 현악 6중주 1번은 1859년 가을부터 다음 해 여름에 걸쳐 작곡했는데, 전원적이고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 명작이다. ‘브람스의 눈물’이라 불리는 2악장이 유명하다. 브람스는 이 곡을 클라라의 41번째 생일에 그녀를 위해 피아노곡으로 편곡해 헌정했다. 빈 콘체르트하우스 4중주단의 연주는 전아한 빈 풍의 현에 텁텁한 브람스 음악의 특징을 잘 살렸다.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가을에는 중후한 첼로가 잘 들린다. 첼로의 명곡 중 명곡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다. 첼로의 거장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작곡가로도 유명한 벤저민 브리튼의 명연이다. 깊은 저편에서 길어내는 듯한 저음이 폐부를 찌른다. 붉은 단풍이 낙엽이 돼 뚝뚝 떨어지는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음반이 아닐 수 없다. 쓸쓸한 정서 사이를 두툼한 첼로가 파고든다.

<모차르트 레퀴엠>
카를 뵘이 빈 필을 지휘한 음반. 중년의 애호가들이 유년기부터 들었던 시대의 명반이자 고전적인 연주다. 뵘은 묵직한 헤비급 지휘자다. 모차르트 해석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우직함과 무뚝뚝함이 모차르트의 해맑은 순수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 아닐까. 망자를 기리는 진혼곡답게 느리고 장중하게 연주했다. 슬픔이 뚝뚝 묻어 떨어지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월간 객석 기자 및 편집장을 역임했고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을 거쳤으며 현재 동 재단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KBS 클래식FM <출발 FM과 함께> 토요일 코너 ‘클래식 탐구생활’에 출연 중이며, 저서로 <한국인의 열정으로 세계를 지휘하라>(명진출판)와 공저 <클래식 튠>(모노폴리),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그책)이 있다.

[big story] 편지의 인문학

- 편지, 사람과 시대를 잇다
- 작가의 편지를 보면 그림이 보인다!

- 사랑과 죽음 사이, 음악가의 편지
- 내 아들, 딸들에게 편지를 쓰다
- 편지의 저편에는 늘 나를 향한 누군가가 있다
- 나는 편지 쓴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