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딸들에게 편지를 쓰다
[한경 머니 =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예전의 젊은이들은 훌륭한 학자를 찾아가서 공부하고, 생원시나 진사시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해 공부했으므로 오래 집을 떠나 살았다. 자식이 집을 떠나 사는 동안 부모와 자식 사이에 많은 편지가 오가고, 부모들은 편지를 통해 가정교육을 했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편지를 통해서 이런 것들을 가르쳤다.

과거에는 편지를 통해 자식들에게 사랑을 전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썼는데, 그들은 한 집안을 다스리는 임금이면서, 자식들을 가르치는 스승이었고, 자상한 아버지였다.

도산 안창호가 아들 필립에게
“이 아비보다 나은 사람이 되거라”

도산 안창호는 8세부터 목동 일을 하며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16세에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한문 시대가 끝난 것을 알고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구세학당에 입학했다. 학교를 마치고 조교가 됐는데, 19세 되던 해에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13세 된 이혜련과 약혼했다. 어릴 적 서당 훈장의 딸이었는데, 장인은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딸에게도 신식 학문을 배우게 했다.

안창호는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미국에 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했다.

“내 아들 필립아. 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나이가 점점 들어 키가 자라고 몸이 굵어지니, 전날 나이가 어리고 몸이 작을 때보다 스스로 좋은 사람 되기에 힘쓸 줄 안다. 내 눈으로 네가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힘쓰는 모습을 매우 보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됨에는 진실하고 깨끗한 것이 첫째이다. 너는 스스로 부지런하고 어려운 것을 잘 견디는 것을 연습하여라. 너는 책을 부지런히 보느냐? 쉬지 말고 보아라.

두 종류의 책을 택하여라. 첫째는 좋은 사람들의 사적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 관한 책이 좋은 책이요, 둘째는 네가 목적하고 배우고 지식을 얻는 데 관한 책이다. 이 두 가지 내용을 기준으로 해 책을 보고, 한국 글과 책을 잘 익혀라. 내가 하는 말을 네가 즐거운 마음으로 따를 줄 믿는다.

네 아버지가, 중국 홍콩에서”


아버지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동안, 아들은 중학생이 됐다. 이 편지에는 아들을 믿는 마음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잘 그려져 있다. 아버지가 사춘기 아들 옆에 없으니 아들을 굳게 믿으면서, 자신의 빈자리에 좋은 책과 좋은 친구를 권했다. 이 편지는 아버지 안창호가 아들 필립에게 보내는 편지이면서, 도산 선생이 흥사단 단원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아들, 딸과 함께 살았던 시간이 별로 없던 안창호는 자녀 교육을 늘 아내와 함께 의논했다. 13세 시골 소녀에게 신학문을 배우게 해 평생의 반려자로 삼았던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지금은 아이들을 교육함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나는 집에 있지도 못하고 당신에게만 맡겼으니 미안하오. 당신은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것들로 하여금 이 아비보다 나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여섯 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존칭을 쓰면서 나보다 나은 아들이 되게 해달라는 당부 또한 아버지의 편지다. 집이 가난해 대학도 다니지 못한 아들 필립이 미국 영화와 TV에서 비중 있는 인물로 성장한 힘이 바로 아버지의 편지였다.

김수항이 아들들에게 보낸 유서
“내가 실패한 자취를 교훈으로 삼거라”

김수항은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복을 반대했던 김상헌의 손자로 1651년 문과에 장원한 수재였다. 52세에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는 데 반대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고, 진도로 유배됐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사약을 받게 된 김수항은 자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서 다섯 아들에게 전했다.

“나는 벼슬이 정승에 올랐고 나이도 육순을 넘겼으니, 이제 왕명을 받아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다. 그래도 뉘우치고 한스러워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째, 내가 세 분의 임금을 섬겼는데, 나라의 은혜에 대하여 조그만 공도 세우지 못하고 큰 벌을 받아 죽게 되었다. 초지일관 나라에 충성하겠다는 결심이 열매를 이루지 못했구나.
둘째, 내가 젊었을 때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인간으로서의 올바른 도리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다. 그러나 못난 성품과 게으른 습관이 굳어져서, 학문에서 얻은 힘을 실생활에 적용하지 못하고, 이렇게 이뤄 놓은 일도 없이 죽게 되었구나.

셋째, 내 비록 젊은 나이에 벼슬길에 올랐지만 벼슬에 뜻이 없었고, 오로지 자연과 산수를 좋아하였다. 벼슬을 그만두고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서 노년을 보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끝내 이 벼슬이라는 족쇄를 벗어 버리지 못하고, 애초에 다짐했던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구나.
오늘 이렇게 된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만두고 물러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실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아무리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나의 자손들은 내가 실패한 자취를 늘 생각하여 교훈으로 삼고, 늘 겸손한 자세로 물러날 줄을 알아야 한다. 손자들의 이름을 지을 때에 돌림자를 ‘겸손할 겸(謙)’자로 한 것도 바로 이러한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손자들이 자라거든 이 글을 전해주어라.”

김수항의 아들 5형제는 이 유서의 뜻을 받들며 살았고, 모두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창(昌)자 돌림의 이들 형제를 가리켜 육창(六昌)이라 불렀다.
<주역>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으니, 하늘 높이 올라간 용이 후회한다는 뜻이다. 40대에 재상에 올라 17년이나 정권을 잡은 김수항도 죽음을 앞두고 후회가 생겼다. 그 편지를 읽은 아들들이 아버지의 실수를 본받지 않아, 그의 자손들이 200년이나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송강 정철이 아들 진명에게
“너는 술 조심해라”

우리나라 인물 가운데 술을 가장 즐겼던 시인이 바로 송강 정철이다. <관동별곡>과 <사미인곡>이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온 국민이 그의 가사를 배웠는데, 그가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라는 노래가 당대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주당들의 권주가로 많이 불리고 있다.

송강의 아들 진명도 아버지를 닮아서 술을 몹시 좋아했다. 큰아들은 이미 과거시험 초장에 합격했는데, 진명은 아직도 주색에 빠져 살고 있으니 송강은 걱정이 됐다. 죽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살았을 때에 무진 먹자고 노래했던 주선(酒仙) 송강이지만 자기 아들이 신색이 고달플 정도로 술 마시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경계하는 편지를 써 보냈다.

“진명에게. 너는 신색이 날로 고달프다고 하면서 아직도 조심할 줄 모르니, 이 때문에 나는 언제나 마음이 초조할 뿐이다. 천만 조심하여라. 나머지는 마음이 바빠서 다하지 못한다.”

진명이 “아버님께서도 술 조심하시라”고 답장을 올리자, 정철이 “너는 네 병이나 걱정하고,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은 염려하지 말라. 이후로는 행동을 한결같이 조심하며 지내라” 하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그다음 편지에서 “나 역시 술이 두려운 것을 알았기에, 앞으로는 단연코 끊으려 한다”라고 한 것을 보면, 부자가 모두 술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 수 있다. 부자유친(父子有親)이라고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술 때문에 병을 앓다가, 서로 술을 조심하라고 권면한 것이다.

받으면 반가우면서도 쓰기는 귀찮은 것이 편지다. 마주앉아 이야기할 시간이 없고, 멋쩍어 못할 말도 있지만, 아이들이 아버지의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좋아할 것인가. 아이들의 얼굴도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우리네 아버지들이 이따금 한번쯤은 시간을 내어, 아니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보면 우리 모두 행복할 것이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허균평전>, <중인>, <한시 이야기> 등을 쓰며 조선시대 문학과 생활을 쉽게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요즘에는 조선통신사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big story] 편지의 인문학

- 편지, 사람과 시대를 잇다
- 작가의 편지를 보면 그림이 보인다!

- 사랑과 죽음 사이, 음악가의 편지
- 내 아들, 딸들에게 편지를 쓰다
- 편지의 저편에는 늘 나를 향한 누군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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