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편지 쓴다, 고로 존재한다
[한경 머니 =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첫사랑처럼 첫 편지를 생각하곤 한다. 나는 언제부터 편지를 썼을까. 그때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나는 단 하루도 편지를 쓰지 않고는 그냥 흘려보내는 날이 없을 정도로 편지를 쓰며 살아왔다.

생애 첫 편지에 대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로 올라간다. 뜻밖에도 친구에게서 받은 내밀한 속마음 편지가 아니라, 바다 건너 원양 실습을 떠난 큰오라버니가 이국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버지 없는 집안의 다섯 남매 중 막내였고, 나와 열한 살 터울의 큰오라버니는 아버지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상징적인 존재였다.

의대를 지망했던 큰오라버니는 줄줄이 이어질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해군사관학교 생도가 됐고, 북아메리카 해안의 항구 도시들을 순항하면서 어린 동생들에게 낯선 세계를 향한 꿈과 격려의 편지를 보내주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큰오라버니는 갓 스물을 넘긴 청춘이었고, 이국의 밤, 고단한 잠자리에서 잠을 쫓으며 한 문장 한 문장 동생들에게 편지를 써 보낸 것이었다. 그때 그 편지가 아니었으면 나는 큰오라버니의 감성과 포부,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생각하는 속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 생애 첫 편지는 큰오라버니로부터 이국에서 온 편지였으나, 항구에서 항구로 순항 중이었으므로 낯선 항구의 풍광을 상상할 뿐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편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여고 1학년 때, 국어 선생님들의 주선으로 같은 도시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 문학스터디에 참가했다. 그때 만난 남학생과 무려 7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외국어, 특히 영어를 몹시 좋아하는 여학생이었다. 영어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이 꿈이었다.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백일장에 나가곤 했지만, 정식으로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았고, 밤낮없이 심지어 점심시간까지 영어사전을 펼쳐놓고 밥을 먹는 좀 유별난 학생이었다.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도 늘 무엇인가를 노트 한 귀퉁이에 끄적거렸지만, 모국어로 글을 쓰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한국 문학의 작가로 평생 살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내밀함과 간절함

“작가란 자기가 선택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명문 콜롬비아대 출신이면서 월스트리트의 정규직을 마다하고 생계가 불분명한 작가의 길을 선택해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거듭난 폴 오스터가 훗날 무모했던 젊은 날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아무리 글 쓰는 직업을 미래의 꿈으로 삼지 않더라도, 자기 안에 있는 생래적인 에너지(氣)나 기질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고, 그것을 주체할 수 없어 끊임없이 써야만 한다면, 그래서 그 지속적이고도 응집된 결과물이 한 편의 글로 세상에 던져지게 된다면, 그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또 다른 글을 계속 읽어보고 싶도록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어쩌면 내가 열렬하게 꿈꾸지는 않았지만 일찍 작가가 된 것은 누군가에게 내 속마음을 표현하고, 그 누군가로부터 속마음을 전달받는 매개체로 편지 쓰기를 지속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편지의 속성은 이 세상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것이고, 그 집중력은 내밀함과 간절함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편지 쓰기로 다져진 내공이 글쓰기에서 발휘될 때 세상은 그 글의 밀도와 흡인력에 반응하고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여고 1학년 겨울방학부터 시작해 7년간 지속한 이웃 학교 남학생과의 편지 쓰기는 생애 처음 쓴 단편소설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뽑혀 작가가 되면서 끝이 났다. 사교육이 금지된 시절이었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이 주선을 해서 만났던 학생들의 스터디 모임이었기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같은 인문학 책들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그런 만큼 그와의 편지 내용은 매우 건전하고 모범적(?)이었다.

나보다 한 학년 위였던 그는 한 해 먼저 신촌에 있는 대학 치의대에 진학했고, 강의가 끝난 텅 빈 강의실에서 고등학교 3학년인 나에게 편지를 보내주곤 했다. 1년 뒤 나 역시 신촌에 있는 여대 불문과에 진학했고,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1년에 몇 번 만났다. 거리로 치면, 1km가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편지로 공명하고 지속된 만남이었기에 현실의 실체가 편지 속에 구축된 플라토닉한 관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그와 주고받은 7년간의 편지가 나를 비롯해 인물의 내면을 촘촘히 들여다보고 드러내고 교감할 수 있는, 소설 쓰기 이전의 습작기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그로부터 대상만 바뀌었을 뿐 세상 누군가를 향한 편지 행위의 연장이다. 나의 하루는 아침 책상에 앉아 편지를 읽거나 답장을 쓰면서 시작한다. 편지 쓰기는 의식이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나는 편지 쓴다, 고로 존재한다.

함정임 교수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이 뽑혀 등단했으며,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장편 <춘하추동>, <내 남자의 책> 등 다수를 출간했다.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고, 동아대 한국어문학과에서 소설 창작과 이론 연구,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big story] 편지의 인문학

- 편지, 사람과 시대를 잇다
- 작가의 편지를 보면 그림이 보인다!

- 사랑과 죽음 사이, 음악가의 편지
- 내 아들, 딸들에게 편지를 쓰다
- 편지의 저편에는 늘 나를 향한 누군가가 있다
- 나는 편지 쓴다, 고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