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환율조작국 지정될까
[Big Story]
안갯속 환율을 읽는 키워드 ①
[한경 머니 =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첫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로 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침없이 중국과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했다. 같은 시점에 트럼프 정부 들어 신설된 국가무역위원회(NTC)의 피터 나바로 위원장은 독일이 유로화의 저평가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3대 교역국을 대상으로 환율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네덜란드 총선(3월), 중국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회의, 3월), 미국 재무부 환율보고서(4월), 프랑스 대선(4〜5월),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5월). 증시 참여자를 중심으로 올해 상반기에 반드시 챙겨봐야 할 굵직굵직한 현안들이다. 단연 관심이 높은 것은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다.

한·중·일 3국의 공통점은 지난해 미국 재무부가 발표했던 상하반기 환율보고서에서 환율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된 국가다. 1988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이 보고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교역국이 최우선순위를 둬 대책을 강구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환율조작국에 대해 100% 보복관세 부과까지 불사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조치에 힘입어 무역적자가 개선되자 1995년 4월 ‘역플라자 합의(선진국 간 달러 강세 유도 협약)’ 이후 미국의 외환정책이 달러 강세를 용인하는 방향(루빈 독트린)으로 바뀌었다. 2015년까지 이어졌던 이 시기에 교역국 통화가치의 평가절하가 문제되지 않음에 따라 환율보고서는 무의미해졌고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됐다.

미국 경제는 무역적자가 확대되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되는 ‘쌍둥이 적자’라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이클 베넷, 오린 해치, 톰 카퍼 등 3인의 의원이 주도가 돼 <무역촉진법 2015> 중 교역국 환율에 관한 규정(BHC 법안)을 대폭 강화했다. 이 법안이 지난해 2월에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그해 보고서부터 적용됐다.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3가지
한국은 환율조작국 지정될까
BHC법에 따르면 대미국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3% 이상, 외환시장 개입이 지속적이며 개입 비용이 GDP의 2% 넘는 요건 순으로 이를 모두 충족하는 국가는 ‘환율심층대상국(종전의 환율조작국)’, 두 가지 요건만 충족하는 국가는 ‘환율감시대상국’에 지정된다.

지정 요건에 따라 판별해보면 트럼프 정부 들어 처음 발표되는 올해 4월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에 지정될 만한 국가는 없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환율 조작 발언은 1988년 <종합무역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법에서는 대미국 흑자와 경상흑자가 많다고 판단될 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자의적이고 예외적인 규정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 중국 등과 같은 경험국에서 보듯이 환율조작국에 걸리면 행정명령으로 발동되는 ‘슈퍼 301조’에 의해 강력한 보복 조치를 당한다. 오죽했으면 ‘전가의 보도’에 비유될 정도였다. 올해 4월 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 지정’ 못지않게 ‘지정 국가에 어떤 보복 조치가 따를까’ 궁금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에 환율 조작에 언급되지 않은 것을 근거로 안도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지정 요건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국보다 더 안 좋은 경우다.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중국은 한 가지 조건(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만 걸렸으나, 우리는 두 가지 요건(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과 GDP 대비 경상흑자 3% 이상)이 걸려 있다.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실질적으로는 경상흑자 비율이 독일, 일본, 중국보다 훨씬 높은 한국과 대만을 겨냥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담에서 ‘경상흑자 4% 룰’을 주도한 국가다. ‘4% 룰’이란 금융위기 이후 해가 갈수록 심화되는 국제수지 불균형과 글로벌 환율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GDP 대비 경상흑자가 4%를 넘는 국가는 원칙적으로 시장 개입을 못하도록 한 국제 간 합의를 말한다. 합의 당시에는 독일과 중국이 해당됐으나 오히려 우리가 2013년 이후 4년 연속 이 룰을 위배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 들어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에서 환율감시대상국으로 지정된 6개국의 태도는 서로 다르다. 독일은 트럼프의 환율 조작 발언에 환율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스위스는 아직까지 미온적이다. 대중국 전략의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대만은 트럼프 집권 기간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4월 동반 위기설’까지 나돌고 있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에서는 트럼프 정부와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도의 협상 전략가다. 성공한 기업인 출신답게 참가자 모두가 이익을 취하는 ‘샤프리-로스식 공생적 게임(non zero-sum game)’보다는 참가자별 이해득실이 분명히 판가름 나는 ‘노이먼-내시식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즐긴다. 급부상한 ‘한·중·일 동반 4월 위기설’을 트럼프식 게임으로 그 가능성과 게임 결과(pay off: 선물보따리 크기)를 추정해본다.

트럼프 입장에서 한·중·일 3국을 대상으로 ‘환율 조작’ 카드는 충분히 승산이 있는 게임이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 직후부터 추진해 온 ‘아베노믹스’의 골간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는 인위적으로 엔저를 유도하지 못하면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주장한 ‘엔고의 저주(경기 침체→엔고→수출 감소→추가 경기 침체)’에 걸리는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아베 총리의 장기적 기반도 약화된다.

중국도 여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위안화 환율로 본다면 현 수준(달러당 6.8위안대)이 ‘스위트 스폿(최적점)’이다. 트럼프의 위안화 절상 요구를 받아들이면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 우려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발해 위안화가 추가 절하되면 외환보유고가 3조 달러 밑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금융위기가 불거질 소지가 있다. 시진핑의 계획을 감안한다면 위안화 절상보다는 절하가 더 부담스러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도 일본보다는 중국과 비슷한 처지다. 원화 가치가 현 수준(달러당 1150원 내외)보다 더 절상되면 가뜩이나 지난해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구조적 장기 침체론(L자형 장기 침체,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혹은 중진국 함정, 샌드위치 위기론)’이 급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원화 가치가 절하되면 자금 이탈 우려와 증시 등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으나 절상될 때보다는 여유가 있다.
한국은 환율조작국 지정될까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달러 강세’보다는 ‘약세’가 돼야 한다. 국익 확보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최우선순위를 두고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는 보호주의 정책의 주목적은 무역적자를 축소시키는 데 있다. 미국 무역적자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중·일 3국의 자국통화 가치가 절하(달러 강세)되면 취임 초부터 트럼프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정부 들어 달러 가치는 미국 경제 여건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선진 6개 통화에 대해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0’대에 움직이고 있다. 호드릭-프레스콧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3% 이상 고평가됐다.

1980년대 이후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경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달러 강세로 보호주의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해 무역적자가 커지면 재정적자까지 확대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악의 시나리오인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국의 재건’을 목표로 계획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인 ‘뉴딜’과 ‘감세 정책’도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 트럼프 정부의 실패인 셈이다.

트럼프로서도 부담이 큰 달러 강세를 용인해주는 대가로 가장 많이 받아야 할 국가는 일본이다. 엔저가 되면 아베노믹스도 살리고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기반도 튼튼해진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미국을 방문한 지 3개월 만에 가졌던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가 풀어놓은 선물보따리 크기가 4500억 달러(517조 원)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과 우리는 위안화와 원화가 절하되면 부담이 있다. 트럼프가 달러 강세를 용인해준 대가로 치러야 할 선물보따리가 엔저를 바라는 일본보다 작아도 된다. 하지만 환율 조작에 걸려 위안화와 원화가 절상되면 부담은 절하 때보다 훨씬 크다.

지난해 이후 수출이 극도로 부진함에 따라 원화 가치 절하에 대한 요구가 높았는데도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서둘러 시장 개입에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BHC법에 따라 첫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화 약세를 방지하기 위한 시장 개입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세 가지 지정 여건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과다한 경상흑자부터 줄여 나가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불황형 흑자’일수록 그렇다.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기업과 금융사의 글로벌 투자를 적극 권장해야 한다.

경기 부양 차원에서 요구하는 추가 금리 인하 방안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켜 자금 이탈과 환율 조작 지정 가능성을 높이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경상흑자 축소 등과 같은 한국의 노력이 없어 환율로만 시정해 나갈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50〜1080원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달러 투자자도 ‘구성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 달러 강세(원화 약세)를 노리다간 국가 차원에서 환율조작국에 걸려 엄청난 피해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경 머니 =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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