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44호 (2017년 05월)

인류는 왜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고 사랑했을까?

왜 사람들은 정원을 만들까? 시대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철학이 다른 사람들이 그들만의 정원을 조성하고 사랑했다. 정원은 도대체 인류에게 무엇인가?
오경아 가든디자이너·작가

시인 비타 색빌웨스트의 정원,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임종기



다른 세상·다른 사람·다른 정원들
# 런던 템스 강가
배를 주거지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든 육지에 걸린 줄을 풀어 버리면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 화분에 식물을 심어 정원을 만든다. 정착하지도 않고 떠다닐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배 안에 정원을 만들까?
# 일본 교토의 료안지 사찰 정원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데 반드시 오케스트라가 모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선 하나를 활로 긁어내는 첼로의 선율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하다. 식물조차 최소화시키려 했던 작은 정원엔 자갈과 바위와 담장이 있을 뿐이다. 수행에 임했을 수도자에게 첼로의 선율만으로 채워진 듯한 이 최소한의 정원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 그라나다, 알함브라의 헤네랄리페 정원
200년이 넘도록 산중턱 요새 알함브라에서 무슬림들은 항쟁했다. 기독교 스페인에 대한 목숨을 건 저항이었다. 산악의 날씨는 척박했다. 비 한 방울 제대로 내려 주지 않는 기후를 원망치 않고 그들은 수십 km로부터 물을 끌어와 영원히 지지 않을 듯한 꽃밭을 만들었다. 요새 안에 태연하게도 찬란한 정원을 만들었던 이들의 마음은 또 무엇이었을까?
# 담양 소쇄원
1519년 기묘년에 사화가 일어났다. 혁신적 사상의 스승 조광조가 모함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이제 막 관직에 올랐던 젊은 양산보는 관직으로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의(義)’로써 세상을 지키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라 여기며 살았다. 그가 평생에 걸쳐 만들었던 정원의 이름은 ‘소쇄원’이다. 중종과 명종은 여러 차례 그를 다시 관직으로 불렀지만 그는 끝내 정치로 나가지 않고 이 소쇄원에서 1557년 세상을 떴다. 그가 지키려고 했던 의와 그가 남긴 정원은 무슨 의미일까?

너의 정원을 보여 달라!
서양에는 ‘너의 정원을 보여 달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겠다’라는 격언이 있다. 정원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군가의 정원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 정원을 가꾼 이의 성격과 마음이 보인다. 영국의 시인 비타 색빌웨스트의 정원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꽃들을 모아놓은 듯 화려하다. 생각을 말로 드러내기보다는 삭혀서 글로 표현했을 그녀가 자신의 정원에 이토록 많은 식물을 심어 놓은 건 단지 미적 관상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그녀의 생각들이 정원의 수많은 식물 속에 담겨 있지는 않았을까?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 속에서 부딪치는 정신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헤아릴 길 없는 정신의 처절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이 상황을 이겨 내기 위해 누군가는 술과 마약에 빠지고, 누군가는 운동을, 누군가는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런데 누군가는 정원을 가꾸며 지친 정신을 위로한다. 어쩌면 비타 색빌웨스트에게도 정원은 이런 의미였을지 모른다.
코란을 따르고 신을 신봉하는 무슬림들은 정원을 ‘파라다이스’라 불렀다. 그리고 이 파라다이스는 ‘평화(peace)’의 다른 말이고 곧 ‘정원’이기도 하다. 아랍어를 쓰는 이들의 인사인 ‘아살무라이쿰(Assalāmu’ alaykum)’은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이다. 그 대답인 ‘와라쿰아살람(Wa’alaykum al-salaam) 역시도 ‘평화가 너에게 내려지기를’이라는 같은 의미다. 이슬람의 경전 코란에서는 정원을 우리의 정신과 영혼이 평화로워지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이들에게 정원은 극단으로 치닫는 삶의 끝자락 공포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안간힘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통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소쇄원에 담겨 있는 양산보가 그린 마음의 그늘도 그러하다. 자신의 정의와 이상을 허무하게 무너뜨린 정치를 원망하며 양산보는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그래도 삶의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붙잡고자 했던 세상이 바로 정원, 소쇄원이었다. 소쇄원으로 가는 길은 짙은 대나무 숲 입구를 따라간다. 숨기고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이를 위해 작게 열어 두었던 그 통로를 통해 자신이 꿈꾸는 이상의 세계로 누군가 와 달라고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 4대 정원 중에 하나로 꼽히는 쑤저우(蘇州) 시의 졸정원(拙政園)은 1513년 왕실 행정관이었던 왕 시안청의 정원이다. 그는 평생 동안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쳐 온 정치인이었다. 그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510년 그는 아버지의 상(喪)을 핑계로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인 쑤저우로 돌아온다. 그리고 3년여에 걸쳐 정원을 만들었고 그 이름을 ‘초라한 정치인의 정원’이라는 의미로 ‘졸정원’이라 칭했다. 물론 4만9586㎡ 규모가 넘는 거대한 규모의 정원이지만 그는 당시 잘 알려진 시인의 시에서 ‘졸정’이라는 뜻을 가져왔다. 극심한 정치의 소용돌이 가운데 늘 긴장 속에 좌절과 힘겨운 성취를 반복하며 살았던 그가 자신이 한때 지녔던 권력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반성하는 의미로 택한 단어였던 셈이다. 자신을 들볶고 할퀴는 영욕이 아니라 고요히 자신을 내려놓고 가려고 했던 마음, 그건 분명 정신과 육체의 편안함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끝 마지막 희망의 장소, 정원
인류는 생긴 얼굴만큼이나 제각각 다른 형태로 정원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 정원을 만들고자 했던 이유만큼은 하나로 모아진다는 결론이 보인다. 정원이 인류가 누렸던 호사스러운 취미거나 사치일 뿐이었다면 이 문화가 이렇게 살아남아 있을 리가 없다. 영국의 정원학자 톰 터너는 우리가 정원을 만드는 이유는 우리의 몸과 정신이 건전하게 활동하도록 돕기 위해서라고 봤다. 채소와 과실수를 기르는 것이 우리의 몸을 위한 것이라면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서도 정원을 만든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돌아 인구의 5분의 1이 죽어갈 때, 사람들은 마지막 생존의 희망을 안고 도시를 떠나 시골로, 그리고 정원으로 도망쳤다. 그곳에서라면 병든 우리를 치료해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오늘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끝자락에 서 있다면 나는 어디로 도망을 칠까? 아마 나 역시도 그 희망의 장소는 바로 ‘정원’이 아닐까 싶다.

가볼만한 세계 정원들

중국의 쑤저우 시의 정원들
중국의 양쯔 강 남쪽 쑤저우는 명·청시대의 화려했던 전통 정원이 원형에 가깝게 잘 남아 있다. 졸정원, 유원, 오원, 사자원, 망사원 등을 골고루 살펴 볼 수 있다. 중국 정원의 관람 포인트는 정자와 연못의 어울림이다. 또 우리와는 다르게 괴암괴석을 이용해 낯선 돌 정원을 만들었는데 이는 현실과는 다른 이상향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중국 쑤저우의 졸정원.©임종기


일본의 교토 정원
천년의 수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교토는 정원의 메카이기도 하다. 특히 식물을 거의 쓰지 않고, 쓰더라도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 식물로만 구성된 사찰 정원은 일본만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 준다. 료안지, 난젠지, 대덕사, 금각사, 은각사의 정원이 각각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 정원이다. 사찰 정원은 수도자들에 의해 디자인된 정원이기에 화려함보다는 명상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을 쓰지 않고 돌이나 자갈 등을 이용한 까닭도 불멸할 수 있는 오롯한 정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일본 사찰 료안지(龍安寺)의 작은 자갈 정원 모습.©임종기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정원들
이슬람 문화가 일궈낸 서양 정원의 모태 사분할 정원의 진수를 만날 수 있다. 유럽, 아프리카, 중동 대륙이 지리적으로 만나는 이 지역은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도 가장 격동적인 문화의 충돌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 탄생한 이슬람 정원은 훗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을 거쳐 서양 정원의 모태가 돼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라나다의 헤네랄리페 정원, 코르도바의 알카자르 정원, 세비야의 레알 알카자르 정원이 대표적이다.

화려한 꽃의 정원, 스페인 그라나다 헤네랄리페 정원. ©임종기


영국의 아트 앤 크래프트 정원들
20세기를 지나면서 영국은 획일적인 대량 생산의 산업혁명을 거부하고 중세의 장인정신을 다시 강조하는 아트 앤 크래프트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이 일어난다. 이 운동과 함께 정원에서도 수목이 아니라 초본식물이 피워 내는 꽃과 잎 등 식물 본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식물의 정원이 출현한다. 초본식물의 형형색색 화려한 꽃의 정원을 감상하려면 영국의 정원을 방문해 보자. 히드코트매너 정원, 시싱허스트 캐슬 정원, 더 그레이트 딕스터 정원 등.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정원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정원은 이슬람의 사분할 정원을 받아들인 뒤 이탈리아 특유의 예술성을 더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이 이탈리아 정원이 프랑스로 전해져 17세기 파리에서 역사상 가장 크고 화려한 정원이라고 일컬어지는 베르사유 궁전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의 빌라 데스테, 빌라 란테, 프랑스의 베르사유, 보르 비콩트 정원이 압권이다.

오경아 가든디자이너는?
방송작가 출신으로 2005년부터 영국 에식스대에서 7년 동안 조경학을 공부하고,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의 인턴 정원사로 1년간 일하며 정원 디자인과 가드닝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전해 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정원설계 회사 오가든스를 설립하고 강원도 속초에 자리한 ‘오경아의 정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원의 발견>, <가든 디자인의 발견>, <시골의 발견>, <소박한 정원>,  <영국 정원 산책>,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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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5-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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