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에도 서양 못지않은 역사적인 정원(historical garden)들이 존재한다. 동북아시아 문화를 선도해 온 한·중·일 삼국은 같은 한자 문화권이지만 자연환경의 차이와 철학에 따라 각기 다른 전통 정원을 가꾸어 왔다. 이미 널리 알려진 중국과 일본 정원의 경우 자연을 옮겨놓고 응축한 것이 특징이라면, 양국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한국 정원은 단순미를 바탕으로 가장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정원이다. 이제 오래된 두루마리 속에 숨겨져 있던 삼국 정원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이원호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태호석이 연출한 빛과 어둠의 대비 : 중국 원림 박물관.
태호석이 연출한 빛과 어둠의 대비 : 중국 원림 박물관.
한·중·일은 예로부터 한자문화권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문화를 이끌어 온 문화대국들이다. 고대 중국의 대륙 문화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지는 관계망 속에서도 이들은 자국의 풍토에 맞는 문화를 일으키고 발전시켜 왔다.
중국 진한시대 우주와 하늘과 땅의 모양을 모방한 데서 시작된 궁원인 ‘상림원’은 한반도의 삼국시대 ‘동궁월지’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일본에 전해져 ‘평성궁’의 정원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들은 중국의 아류가 아닌 자기 나라만의 고유성을 지닌 동양의 대표적 정원으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비교적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국의 교두보 역할을 했던 한국 정원의 실체는 아는 이가 드물다. 삼국 정원이 가진 특성을 언뜻 보면 중국에서 비롯된 축경식 정원을 더 줄여 놓은 것이 일본의 정원인 듯하고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삼국의 정원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은 무엇일까? 하나의 사상만이 온전하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겠지만 중국과 일본은 신선사상과 관련되는 도교를 중심 원리로 두었고 한국의 경우는 조선시대 유행했던 유교의 영향이 더 컸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종교적 수행에 걸맞은 수련도구로써의 대상이 요구됐기에 신선의 세계를 연출하거나 괴석 등 상징적인 것들이 정원에 놓였다. 한국의 경우는 유교에서 주장하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곧 인격의 아름다움으로 삼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정원은 산수의 경치를 그대로 닮아야 했고 정원을 꾸미는 것도 최소화했다.

한국 정원은 인격의 아름다움
최초의 중국 정원, 즉 원림은 문헌 기록에 의하면 황제의 사냥터인 ‘유(囿)’와 자연숭배사상의 영향으로 황제가 산을 모방해서 ‘대(臺)’를 짓는 것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대’는 ‘높고 평평한 곳’으로 통치자만이 천신의 뜻을 대표하기 때문에 황제가 이 ‘대’를 통해서 천지 간을 왕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중국 원림은 도교사상을 기반으로 신선 세계를 표현하고 있고 태호석(太湖石) 등 기암괴석을 통해 독특하고 신비적인 세계를 연출했다. 원림을 감상하는 사람들은 거대한 괴석들로 장식된 호안과 못을 정자와 회랑을 오가면서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중국의 정원 풍경을 특징짓는 것은 신비적 풍경식 정원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또 원림 설계가들은 고대의 시(詩)·서(書)·화(畵)와 접목시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시화 속 정취와 각 명승지의 장점을 원림 속에 표현했다. 그래서 중국의 원림은 문인들의 시와 그림 속에 살아 있고 그림 속 풍경은 원림이 돼 생명을 얻게 된다.
대부분의 사가 원림은 조정 관리나 부유한 상인, 문인들이 소유했는데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공적 연출에 시적 정취와 조영자의 내면세계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했다. 황제로부터 귀족층에 이르기까지 이 공간에서 정치를 논하고 연회를 열었으며 사냥, 오락, 독서, 글짓기, 예술 감상 등 다양한 취미의 무대였다.
중국 황가 원림의 대표적인 이화원은 뛰어난 경관과 화려한 궁궐 건축으로 황실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고 사가 원림 중에서도 강남 일대의 차경과 태호석의 진수를 보여 주는 유원(留園), 개방된 수상 풍경으로 건축과 수경의 변화무쌍한 결합을 보여 주는 졸정원(拙政園), 괴석들이 사자를 닮은 화가의 정원 사자림(獅子林), 작고 복잡한 구조에서도 넓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망사원(罔師園) 등은 빼어난 산수와 수목을 사용한 것으로 이름 높다.
쑤저우 사자림의 태호석과 정자.
쑤저우 사자림의 태호석과 정자.
일본 정원은 한마디로 일축하면, 자연을 소재로 한 야외 예술이며 공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사상과 연출 기법이 있고, 정원술은 건축이나 다도, 꽃꽂이, 불교와 도교사상 등과 함께 발전해 온 것이다. 다도의 발달로 인해 다정이 발달하게 된 것은 그 좋은 예다.
일본의 정원 양식은 자연을 그대로 구현화한 것이 아닌 상징적으로 추상화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정원술은 자연의 경관과 신선의 세계, 정토 세계 등을 축경(縮景)시켜 정원을 꾸며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정원은 상징적 축경식 정원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원림이 현세에서 신선의 세계를 직접 유람하며 신선이 되길 바랐다면 일본은 그 세계를 축소해 하나의 시각 틀 안에 담아 놓고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수도자의 정적인 자세를 유도했던 셈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성한 제호사 삼보원의 마루에 앉아 마주하는 정원은 이 세상을 축소시킨 듯 대장부의 호연지기를 기르기에 충분했을 듯하다.
일본 정원의 대표적 양식으로는 고산수식이 있다. 이는 무로마치시대(1336〜1573년) 말기에 출현한 정원 양식으로 일체 물을 쓰지 않은 정원의 총칭으로, 모래, 작은 돌, 이끼 등을 이용해서 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양식이다. 이 정원들은 일본 정원의 특색으로 현대에도 응용되고 사랑받고 있다.
지천(池泉) 정원은 연못이 포함돼 있는 정원의 총칭으로서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양식이라는 점과 함께 디자인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다양성을 가진 양식이다. 다정(茶庭)은 차를 마시는 공간인 다실에 부수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으로 불심암(不審庵) 오모테센케(表千家) 정원 등이 있다.
일본의 대표적 정원으로는 서방정토를 의식해 세워진 건물 좌우에 날개를 단 듯한 좌우익랑 형식의 아미타당(불교의 아미타불을 모신 곳)과 그 전방에 원지가 인상적인 평등원, 이끼 정원으로 유명하고 상단은 고산수식 하단은 황금지를 중심으로 한 지천회유식 정원인 서방사, 용안사 방장 앞의 석정, 하나의 못을 다수의 서원조 건물에서 감상하도록 꾸며진 제호사 삼보원 등이 남아 있다.
교토의 평등원 정원.
교토의 평등원 정원.
용안사 석정의 고산수식 정원.
용안사 석정의 고산수식 정원.
한국의 정원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교사상과 조경 문화가 유입되고 모방과 발전, 재창조를 거듭하며 발전해 온 공간으로 고대의 자연숭배사상에서부터 중국과의 직·간접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삼국시대(4~5세기)를 거쳐 조선시대 후기(18~19세기) 최전성기를 이룬 자연 풍경식 정원에 해당한다. 한국 정원의 조영 원리를 말할 때 흔히 자연의 순리를 기본 질서로 꼽는다. 정원을 조성할 때 지형을 최대한 변형하지 않는 것으로, 지리도참설의 지기(地氣)를 손상시키지 않는 것과 상통한다. 이러한 한국 정원의 지형 처리 요소로 대표적인 화계가 있다. 화계는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조경 시설로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건축물이 입지할 터를 잡는 과정에서 옹벽과 화단을 겸해 만들어지는데, 경사면의 침식을 예방하고 차경(借景)이 발달한 정원 풍경을 동적으로 연출하는 효과도 있다. 경복궁의 교태전 후원 화계가 대표적이다.
또 한국 정원은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효와도 관련된다. 효는 신분 질서에 따른 상하존비의 윤리다. 효는 단순히 부모를 섬기고 봉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직분에 따라 이상적으로 몸소 정진하는 것을 일컫는다. 정원은 요산요수(樂山樂水)하는 자연의 섭리를 체득하는 공간이었다. 또 신분에 따라 채를 나누고 공간의 열림과 닫힘의 미학을 적용해 정원을 조성했다. 대표적인 효의 정원으로는 담양 소쇄원이 있다. 소쇄원은 효의 기본 정신인 상하의 위계를 고려해 석축단으로 단차를 두어 공간을 조성했고 양산보가 세상을 떠난 후, 정원이 퇴락한 후에도 양천운 등 후손들이 정원의 재건을 위해 입신양명을 꾀했으며 선조의 공간을 존중해 정원 내부를 피해 담장 밖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확장해 간 지극한 효심이 드러나는 곳이다.
한국 정원의 공간 배치는 자연지형을 고려하고 공간의 유형에 따라 공간 구성의 특성이 정해진다. 학자들은 조선 후기에 와서 장소에 따른 한국적 조경 양식이 완성됐다고 보고 있다. 궁궐의 경우는 도시계획 차원의 입지에서부터 궁궐 내 건축물과 공간의 용도에 따라 공간 연출의 특성이 다르게 적용됐다. 즉 정치적 공간의 정원 시설과 후원 공간의 정원 시설은 성격이 달랐으며 연못과 화계 등을 중심으로 위계에 따라 정원이 꾸며지며 자연지형을 적극 고려하고 단순함의 미학을 지향했다. 별서의 경우는 차경을 중심으로 한 자연경관에서의 조망과 지형지물의 상징성을 통한 장소성에 가치를 두어 별다른 조경적 수식이 없는 자연경관을 통한 시·서·화 창작 활동의 장이 됐다.
사찰의 정원은 수계와 자연수림을 연계로 종교적 상징성을 부각하는 성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서원의 정원은 학문과 사색의 공간을 형성하고 정형식 식재로 구성된다는 특징을 가진다. 대표적 정원으로는 파격적 궁궐의 배치와 자연을 이용한 비밀의 정원 창덕궁 후원,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는 처사의 공간인 별서 소쇄원, 섬이라는 공간을 하나의 정원으로 승화시킨 고산 선생의 보길도 윤선도 원림 등은 한국 전통 정원을 대표하는 정원 유산들이다.
하늘에서 본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세연정 (명승 제34호).
하늘에서 본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세연정 (명승 제34호).
오래된 그림 속 풍경, 동양 삼국의 정원
정원과 가든의 차이는?
▶ 정원은 서양의 가든(garden), 즉 ‘울타리로 둘러싸인 열락(悅樂)의 공간’을 지칭한다. 정원은 본래 자연으로부터 경계를 설정하고, 자연을 문명화하는 행위의 소산이며 가장 오래된 문명의 표현 방식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박석, 2013년). 중국은 이곳을 원림(園林)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은 일본식 한자어를 함께 써서 정원(庭園)이라 한다.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인 만큼 의미도 조금씩 다르다.
▶ 가든(garden)은 서양의 경우 울타리를 가진 인공적으로 구획된 공간이고 동양의 원림은 정원에 특별한 경계를 두기보다는 자연을 자신의 공간 안에 포함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정원이 주택과 뗄 수 없는 공간이라면 동양의 정원은 자연에 의미를 극대화한 곳이다.

이원호 박사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전통 조경과 명승 분야를 연구하고 있으며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학 박사다. (사)한국전통조경학회 편집위원장과 저술위원장을 지내는 등 한국 전통정원과 관련한 일에 특히 욕심이 많다. 저서로 <동양조경문화사>(공저), <중국 정원, 원림>(공역), <전통문화환경에 새겨진 의미와 가치>(공저), <창의적 조경설계>(공역), <자연성지>(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