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장의 조건' 나를 물들이는 문장과의 만남
[big story] 리더의 文章


[한경 머니 = 장석주 시인]

나는 글을 써서 밥을 버는 전업작가이다. 글을 써서 생계를 꾸리는 처지니 날마다 문장을 쓴다. 모든 글은 문장에서 시작해서 문장으로 끝난다. 아주 단순한 진리다. 문장이란 본디 쓴 이의 뜻을 전달하는 게 그 소임이다. 다음은 빈센트 밀레이의 시 ‘비가’ 중 일부다.

“들어라, 얘들아./ 너희 아버지가 죽었단다./ 그의 낡은 코트들로/ 너희에게 작은 재킷을 만들어주마./ 그의 낡은 바지들로/ 너희에게 작은 바지를 만들어주마.” 나는 이렇듯 에두르지 않고, 뜻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쉬운 문장을 좋아한다.

글을 쓰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글은 쓸 수 없다는 불가능성에서 비롯된 불안을 뚫고 나온다. 이 불안은 문장의 필수 성분인 것만 같다. 훌륭한 작가들도 백지 앞의 불안과 공포를 피하지는 못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20대를 프랑스 파리에서 기자로 보낸다. 그때 소설 습작을 시작했는데, 글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도 잘 써 왔으니 앞으로도 잘 쓸 거야. 일단 정직한 문장 하나를 쓰면 돼. 네가 아는 가장 정직한 문장을 써봐. 그러면 거기서부터 글을 써 나갈 수 있을 거야. 그것은 어렵지 않아.’ 정말 그렇다. 자기가 잘 아는 것에 대해 정직하게 쓰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때 정직한 태도는 겪지 않아 모르는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자기가 겪어서 잘 아는 것을 쓴다는 뜻이다.

20대에는 꿈과 육체, 가난과 젊음의 오만과 희망이 전 재산이었다. 나는 그 시절을 시립도서관의 구석진 자리에서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 따위를 필사하며 여름을 보내곤 했다. 가슴에 꽃과 태양과 맹수를 품고 질주하던 그때 언젠가 이런 단편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은 채 필사를 했다.

내가 만일 20대에 니체와 콜린 윌슨, 알베르 카뮈와 프란츠 카프카, 가스통 바슐라르와 사르트르, 발터 베냐민과 롤랑 바르트의 책들을 읽지 않았다면 오늘의 글 쓰는 나는 없었을 테다. 나는 니체에게서 은유와 비유로 문장을 쓰는 방식을, 문체가 곧 몸이며 정신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니체의 책에서 “나는 모든 글 가운데서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는 문장을 처음 읽은 뒤 지금까지 가슴에 새긴 채 살았다.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추수밭, 2015년)이란 필사 책을 내면서 나는 이렇게 썼다. “명문장을 베껴 쓰는 일은 그 작가에 대한 오마주다. 베껴 쓰기는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아울러 문장에 깃든 정신과 기품을 닮으려는 능동적인 마음의 발로를 보여준다. 베껴 쓰는 사람은 문장의 정수 속으로 스민다. 자아와 문장의 혼융! 영리하고 명료한 명문장들이 내 안으로 흘러들어와 뼈와 살을 이룬다.” 필사는 느린 꿈꾸기이고, 나를 돌아보는 성찰이며, 행복한 몽상의 계기를 준다.

나는 필사의 좋은 점을 열 가지도 넘게 말할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고 그것을 읽고, 또 읽으며 여러 계절을 흘려보내는 것은 좋은 문장을 쓰는 훈련이다. 많은 작가들이 선배 작가들의 글을 베껴 쓰면서 문장 쓰는 법을 배운다. 나는 김승옥 말고도 한창기, 김우창, 김현, 고은, 고종석의 책들을 읽으면서 내밀한 사유를 한국어다운 문장으로 옮기는 방법을 배운다. 이것은 아주 정직한 얘기다. 내가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을 적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육체노동이다. 나는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을 오랜 체험으로 터득했다. 몸으로 쓰는 것은 직관, 영감, 체험 이런 것들이 자기 몸의 숨결과 피의 맥동을 뚫고 나와야 한다는 뜻이다. 장미꽃에 대해 쓰려면 장미꽃이 되고, 별에 대해 쓰려면 별이 돼야 한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 쓰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믿을 수 있게 됐을 때, 그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곧장 나가라”라고 조언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말없이 집중하는 가운데 책상 앞에 앉아서 오랜 시간을 버텨야 겨우 몇 문장을 건진다. 그 거친 문장을 마음이 들 때까지 썼다 지웠다 하며 다듬는다. 문장의 퇴고는 거친 원석을 깎고 다듬어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닮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글쓰기 역시 끊임없는 자기 단련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품는다. 그렇다면 좋은 문장이란 어떤 것일까? 나는 담백하게 뜻을 전달하는 문장을 좋아한다. ‘담백하게’라는 것은 꾸밈이 없다는 뜻이다. 문장이 담백하려면 형용사나 부사, 그리고 접속사를 줄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쉽게 써라. 쉽고 리듬감이 있는 문장에 자기만의 창의적인 사유와 성찰을 담아라.

“당신은 아침에 제일 먼저 눈을 뜬다. 인디언 보초병처럼 살그머니 옷을 꿰어 입고, 방과 방을 가로지른다. 시계공처럼 조심조심 현관문을 닫는다. 됐다. 이제 밖이다. 당신은 가장자리가 장밋빛으로 물든 새벽의 푸르름 속에 서 있다. 모든 것을 정화시키는 차가운 공기도 빼놓지 말고 언급해야 한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연기 같은 구름이 후후, 빠져 나온다. 당신은 새벽 보도 위에 자유롭게, 가볍게 존재한다. 빵집이 조금 먼 거리에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다.”
-필립 들레름, <새벽 거리에서 먹는 크루아상>(1998년) 중 ‘첫 맥주 한 모금 그리고 다른 잔잔한 기쁨들’

이 문장은 새벽의 빛 속에 선 행복한 기분을 묘사하는데, 무엇보다도 어느 한 군데 복잡한 구석이나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다. 마치 찬물로 세수를 막 마친 얼굴을 마주쳤을 때와 같은 순정하고 상큼한 느낌을 준다. 필립 들레름의 문장은 가볍고 경쾌하되 경박하거나 공허하지 않다. 자기가 겪은 것을 바탕으로 꾸밈없이 쓰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은 아름답고 간결하고 힘차다. 문장은 언어의 통사론적 규칙과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 정해진 기율이 무너지면 좋은 문장이 나올 수가 없다. 좋은 문장은 ‘꾸밈없이 정확하게’ 쓰되 뜻과 소리가 어우러지며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고려속요 ‘청산별곡’ 속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아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라는 문장을 눈으로만 읽지 말고 소리 내어 읽어보라. 문장의 뜻도 소중하지만 맑은 울림소리로 인해 그 문장에 깊이와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좋은 문장은 우리 말 공부에서 시작한다. 풍부한 어휘들을 습득하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가려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

좋은 문장을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전업작가로 사는 지금도 나는 새로운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배운다. 헛소리나 푸념 따위를 쓰지 마라. 자기가 모르는 것을 쓰지 마라.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마라. 문장의 규범을 함부로 파괴하지 마라. 좋은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벽하기보다는 문법과 사유와 자연스럽게 녹아 어우러진 문장, 생명의 리듬을 품은 문장, 흐르고 스쳐 가는 절대의 찰나를 날렵하게 잡아낸 문장, 감각적인 기쁨과 충만을 담은 문장, 영혼을 울리면서 강렬한 존재 쇄신의 느낌을 주는 문장이다. 반면 나쁜 문장은 정직하지 않고, 꾸밈이 많고, 형용사나 부사를 남발하고, 질척이는 감상이 넘친다. 또한 쓸데없이 길게 늘어지며 중언부언하고, 뻔한 지식들을 늘어놓으면 신선한 자극이 없다. 이런 글을 하품하면서 읽는 것은 인생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낮잠을 자는 게 더 낫
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가? 문장은 수사학과 논리학의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지만 이런 것을 반드시 알아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집들과 작가들의 좋은 문장을 많이 읽어라. 읽고, 읽고, 읽어서 자기 것으로 소화하면서 수사학과 논리학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빈센트 밀레이의 <죽음의 엘레지>, 노르웨이의 국민 시인 하우게의 <내게 진실의 전부를 보여주지 마세요>, 파블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쉼 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같은 시집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알베르 카뮈의 <결혼·여름>,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같은 책들은 늘 곁에 두고 읽는 책들이다. 좋은 문장을 배울 수 있는 텍스트들이다.

장석주 시인은…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독서광·인문학 저술가. 정독도서관에서 시와 철학을 혼자 공부하던 스무 살 때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하고,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입선해 시와 비평을 겸업해 오고 있다.
<몽해항로>, <오랫동안>, <일요일과 나쁜 날씨> 등 시집을 내고, <소설-장석주의 소설창작 특강>, <풍경의 탄생>, <마흔의 서재>,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 등 여러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