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무기, 말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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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文章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지금까지 했던 성취 중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들고, 왜 그런지 설명하라.”
“일하는 동안 부딪히게 될 윤리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설명하라.”

당신이라면 위와 같은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는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학위(MBA) 입학을 위한 에세이 질문의 예들이다. 어떤 사고와 경험, 가치를 가진 사람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 등 해외 명문 대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교육의 핵심 분야로 교육해 왔다. 하버드대의 글쓰기 프로그램은 1872년 시작됐다. 15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한다. 글쓰기 능력이 사회적 성취를 결정짓는 중요 요건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할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이메일 등 ‘쓰기 폭발’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되레 글쓰기 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 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으로 상징되는 서울대 학생들의 ‘글쓰기 성적표’는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이 지난 2~3월 자연과학대학 신입생 253명을 대상으로 글쓰기 능력 평가를 시범 실시한 결과, 전체 응시자의 약 10명 중 4명(38.7%)이 70점 미만을 받았다. 심지어 4명 중 1명은 서울대의 정규 글쓰기 과목을 수강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쓰기 능력이 부족했다. 논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했고, 비문(非文)이 많았다. 암기식,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서울대는 글쓰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낙제 점수를 받은 학생들에 대해 ‘1:1 글쓰기’ 첨삭지도에 나서는가 하면,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글쓰기 지원센터’ 설립을 추진키로 했다. 글쓰기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능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와 읽기는 ‘사고력’이라는 생각의 근육을 키워준다. 창의성이 경쟁력의 핵심인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글쓰기 교육이 시급한 까닭이다.

스테판 레터 포틀랜드주립대 교수는 미국 교육부와 공동으로 ‘미국 성인의 언어적 숙련도가 평생에 걸친 경제적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글쓰기 능력을 5분위로 나눴을 때 최고와 최저 간 소득의 차이가 3배 이상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재적소에 맞는 효율적인 언어 구사, 체계적인 사고가 성공과 관련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글쓰기의 축복’

글은 살 수 있어도, 글 쓰는 능력은 살 수 없다. ‘글쓰기는 축복’이라는 유시민 작가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은 대단한 축복이고 특권이다.

다음은 배우 유아인의 기부 호소문이다.

“저는 아동생활시설 급식비 1420원에 반대합니다. 올해 100원 올린 1520원짜리 식단도 역시 반대합니다. 사치스러운 식단을 만들어주지는 못할지라도 아동생활시설 아이들이 끼니마다 적정 단가 수준의 식단을 지원받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중략)…전 부자이길 원하고, 성공하길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전 제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동생활시설에 있는 아동의 불평등한 급식비에 반대하는 내용의 캠페인에 7700만 원을 기부하며, 주변의 동참을 독려했던 글이다. 실제 그의 호소문으로 캠페인은 100% 목표액을 채웠으며, 아동 급식비 예산의 증액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됐다.

그가 2015년 1월에 남긴 편지는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관련 기사는 수없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으며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네요. 정말 훌륭해요’, ‘멋진 신념을 지닌 분이군요. 앞으로 연기가 더욱 빛나 보일 것 같습니다’라는 호감과 지지의 반응이 잇따랐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 칼럼에서는 ‘유아인을 국회로 보내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좋은 글은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그 자신의 가치도 높여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히구치 유이치는 “글은 ‘보이고 싶은 자신’을 연출하는 것이다. 리더라면 문장을 연구하며 보다 지적인 자신, 솔직한 자신, 개성 있는 자신을 연출함으로써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성신 출판문화평론가는 “빌 게이츠처럼 바쁜 사람이 직접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것은 자기 브랜드화의 가장 유용한 도구이기 때문”이라며 “대중과 구성원들의 기대치를 높임으로써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의 동력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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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을 준비하는 '명함'

말단 직원에서 중견기업의 고위직 임원에 오른 김정원(가명) 씨는 지난해 30여 년 직장 생활을 담은 자서전을 펴냈다. 지나온 삶을 갈무리하고, 암 투병 중인 아내와의 소중한 시간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시도였다. 김 씨는 “은퇴를 앞두고 지나온 길을 정리하고자 자서전 작업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주변의 소중한 분들을 위해서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계획하는 ‘미래를 향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글쓰기의 정점에는 책 쓰기가 있다. 특히 지나온 삶의 포트폴리오를 닮은 자서전 쓰기는 고령화 시대와 맞물리며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다. 박세진 대한민국 CEO연구소 실장은 “글쓰기와 인문학 열풍이 확산되면서 자서전 쓰기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며 “종전에는 자서전이 국회의원 등 일부 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근래에는 리더에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서전 쓰기를 고령화 시대, 행복한 은퇴를 위한 필수 코스로 추천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은퇴 후 진짜 중요한 것은 무너진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라며 “자서전 쓰기는 은퇴 후 자존감을 회복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과거를 돌아보며 ‘지금껏 잘 살아왔다’는 과거에 대한 긍정성이 올라갈수록 ‘나는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자존감이 올라가고 이는 미래도 활기차게 맞을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서전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성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인 강원국 전북대 초빙교수는 “지나온 포트폴리오를 담은 책은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귀중한 ‘명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쌓은 전문 지식과 현장의 내공을 그대로 담은 책 쓰기는 그 자체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행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송숙희 글쓰기 코치의 제안은 참으로 솔깃하다. 그는 <진정한 리더는 직접 쓰고 직접 말한다>는 저서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인생의 어느 한 철, 당신의 포트폴리오에 ‘글쓰기’를 추가한다면 워런 버핏이나 피터 드러커처럼 당신이 원하는 그날까지 현역은 계속된다. 어떤 노후 대책이 ‘현역으로 사는 일’을 능가할 수 있을까.”

책을 잘 쓰면 서점에서 기를 쓰고 팔아주며, 책을 본 기업에서 강연을 청하고, 책을 읽은 독자들이 컨설팅을 청하는 신기한 일들이 마법처럼 줄줄이 일어난다는 것. 그는 이를 “글쓰기 투자가 안겨주는, 기적이라고 칭할 만한 복리이자”라고 말했다.

[TIP] 역대 대통령 자서전 ‘최고가’는 오바마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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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말솜씨와 리더십으로 수많은 ‘오바마 어록’을 남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이 ‘역대 최고가’로 2018년 출간된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미국 CNBC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각각 집필하는 두 권의 자서전 판권료는 6000만 달러(약 685억 원) 이상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높은 가격으로 알려졌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판권료를 살펴보면,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4년 발간해 140만 부 이상 팔린 <마이 라이프>의 판권료는 1500만 달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2010년 펴내 200만 부 이상 판매된 <결정의 순간(Decision Points)>은 1000만 달러였다.

경매로 진행된 오바마 자서전의 전 세계 판권 계약을 따낸 곳은 미국 펭귄랜덤하우스 출판사다. 펭귄랜덤하우스는 2018년 5월 미셸 오바마 여사 자서전을 먼저 펴낸 후, 연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신간을 펴낼 예정이다. 국내에선 웅진씽크빅 단행본부가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자서전의 국내 출판권을 획득했다. 오바마 부부의 판권료 중 일부는 자선 단체에 기부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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