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혁명,삶을 바꾼다-생활의 공간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공간들이 있다. 카페, 공방, 서점 등이다. 이와 같은 마을의 작은 공간들은 주거공간의 확장으로 읽을 수도 있다. 더 정확하게는 ‘거실의 확장’이다.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생활공간들이 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김종대 건축가·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 사진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big story] 사랑방 된 골목카페, 마을을 바꾸다
[big story] 사랑방 된 골목카페, 마을을 바꾸다
1980년대 사회상을 그린 인기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 되는 서울 쌍문동 골목은 평상에 모여 콩나물이나 멸치를 다듬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사는 이야기, 이웃 이야기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비단 드라마에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골목길은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파트가 주거공간의 주된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골목이 사라졌다. 골목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동차로 가득한 주차장으로 채워졌다. 요즘 짓는 아파트는 독서실, 헬스센터 같은 주민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다양한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주택 내부 공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마루 중심이던 내부 공간은 서구식 거실로 대체됐고 고급 주택에서도 전통적인 개념의 사랑방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거공간의 거실은 서구와는 달리 가족 중심의 열린 공간이어서 손님을 초대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사랑방과 골목길이 사라진 마을에서 잃어버린 사랑방과 기능이 약화된 거실을 대신해 찾아낸 것이 골목카페다. 동네에는 하루가 다르게 카페들이 늘어나고 있고 늦은 밤까지 카페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로 어두웠던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골목카페가 활성화하면서 마을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양천구 목2동 마을이다. 올해로 7회를 맞는 ‘모기동 마을축제’는 목2동의 주민들이 열고 있는 마을축제로 동네 주민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찾아올 만큼 유명한 축제가 됐다.

하지만 ‘모기동 마을축제’가 처음부터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2010년 2명의 예술가가 작업실을 찾아 이 동네로 들어와 골목카페 ‘숙영원’을 시작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 카페에 모여 들면서 마을축제를 준비하게 됐다. 너무 심심해서 축제를 생각했다는 그들의 말처럼 1회 마을축제의 이름은 ‘모기동 궁여지책’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마을축제에 예상외로 많은 주민들이 환호했고 그 열기가 오늘까지 이어져 7회에 이르렀다. ‘모기동 마을축제’는 주민의 손으로 준비하고 운영한다. 지역의 3개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청소년 문화공간, 녹색어머니회, 공동육아모임 같은 지역의 단체들이 힘을 모은다. 축제에서 공연을 맡은 공연 팀들도 지역의 아동들과 청소년들이고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행사를 치러낸다. 이렇게 ‘모기동 마을축제’는 온 동네가 함께 치루는 축제다.

거실의 확장, 동네카페
이들이 카페에 모여 축제만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인문학 강의와 영화 감상,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동네의 고민거리를 함께 나누었다. 이 고민에 동참하는 주민들도 하나둘 늘어 가면서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를 고민하던 마을 사람들은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어 학교 방과 후 수업과 대안교실을 운영하는 ‘모기동 마을학교’를 만들었고 집세를 걱정하던 주민들은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협동조합을 결성하고 동네에 ‘함께 사는 집 뜨락’을 마련했다. 지하 공용 공간과 옥상 테라스까지 갖춘 일곱 가구가 모여 사는 이 집은 골목카페가 만들어낸 놀라운 성과 중 하나다.

카페 ‘숙영원’을 중심으로 마을의 변하기 시작하자 이 카페가 마을 공동 자산으로 인식됐고 2016년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카페마을협동조합’이 운영을 맡아 ‘카페마을’로 재탄생하게 됐다.
[big story] 사랑방 된 골목카페, 마을을 바꾸다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마을 학교’
‘카페마을’이 마을의 공동체 자산으로 정착될 즈음에 모기동 뒷산인 용왕산에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공유 공간인 ‘청춘마루’는 1인 청년창작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하는 곳으로 ‘카페마을’의 시작이 된 숙영원 운영자들이 모기동의 커뮤니티 확장을 위해 시작했다.

과거의 이곳은 용왕산의 지하배수지를 관리하던 사무소였는데 그 기능이 다해서 수년간 사용하지 않던 곳을 청년들의 창작플랫폼으로 변화시켰다. 이곳에 모인 젊은이들은 ‘모기동 별 헤는 밤’을 공동 주관하는 등 활발한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7년 전 작은 골목카페에서 시작된 모기동의 변화는 실로 눈부시다. 마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생겼고 사람들이 모이자 마을 축제로, 마을 학교로, 공동체 주거로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못했을 일들이다. 모기동의 골목카페인 ‘카페마을’은 마을에서 공동체 공간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해 가고 있다.
[big story] 사랑방 된 골목카페, 마을을 바꾸다
[big story] 사랑방 된 골목카페, 마을을 바꾸다
[big story] 사랑방 된 골목카페, 마을을 바꾸다
쓰레기장과 동네 헌책방의 화려한 변신
쓰레기장에서 피어난 문화 공간, 미아리 미인도
미아리고개라 불리는 서울 성북구 동선동. 마을을 가로지르는 동선고가차도 하부는 낮에도 그늘로 인해 음습한 공간으로 몰래 버리는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고가도로 밑 공간을 정비해 문화 공간으로 만들면서 마을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곳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자율방범대가 있었던 자리에는 밝은 조명으로 단장한 주민쉼터를 설치했다. 늦은 시간까지 사람들이 주민쉼터를 찾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어두웠던 골목길의 취약했던 보안 기능이 몰려든 사람으로 인해 해소됐다.
이곳을 처음 와본 사람은 이곳이 쓰레기 수거 및 분류를 했던 어둡고 냄새나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한다. 고가도로 하부에 예쁜 창과 밝은 전시공간을 갖춘 ‘미인도’는 동선동의 마을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역주민들과 공연 단체들이 준비한 전시와 공연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열리고 있는 시민장터 ‘고개장’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미인도’를 즐겨 찾는 가족들과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동네 분위기도 밝아졌다. 몰래 쓰레기를 버리는 일도 몰라보게 줄어들었다. ‘미인도’는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생활 문화 지원 활동을 준비 중이다.

공유와 공감을 나누는 배다리 요일가게 다 괜찮아
TV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이 됐던 배다리마을은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1998년, 주민들과 지역 문화인들이 이 마을을 둘로 나누는 산업도로 건설에 반대하면서 배다리마을은 지역의 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로 변하기 시작했다. 헌책방거리를 보존하고 낡은 마을 담장에 그림을 입히고 옛 양조장을 전시장으로 만든 덕분에 시공을 넘나드는 드라마처럼 헌책방 거리를 포함한 마을 전체가 세월을 비껴간 것처럼 드라마틱한 분위기로 남을 수 있었다.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에 동네만큼이나 드라마틱한 높은 층고의 벽돌 건물이 길고 수상한 이름의 ‘요일가게 다 괜찮아’다. 33㎡가 채 안 되는 공간을 여러 명이 공유하면서 생겨난 이름인데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글쓰기, 영화 보기, 소셜다이닝, 카페 등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다. 적은 임대료가 장점인 이 가게는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 더 큰 가계를 준비하는 거점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공간의 공유를 통해 연대감을 높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 가게 운영자들에게 더 큰 소득이다. 요일가게는 공간 공유의 새로운 사례로 그 가능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위에서 공간들은 마을과 사람들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온 작지만 큰 영향력을 가진 공간들이다. 마을카페는 마을 공동체의 중심이 돼 마을의 변화를 유도했고 버려져 있던 공간을 활용한 소규모 문화공간은 마을의 물리적 환경과 함께 마을 안전까지 책임지고 있다. 요일가게의 공간 공유는 자원의 효과적 사용과 함께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공감까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의 변신이 우리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