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53호 (2018년 02월)

[big story]초콜릿, 달콤한 선물 또는 쌉싸래한 눈물

[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누군가는 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라고 노래했다.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달하려면 초콜릿을 선물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초콜릿만큼 공감각적인 선물도 없기 때문이다. 초콜릿은 어떻게 선물의 대명사가 됐고, 그 속에 숨겨진 희로애락은 무엇일까. 참고 문헌 <카카오>(안드레아 더리·토마스 쉬퍼 지음)

바야흐로 2월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비롯해 연인들의 밸런타인데이, 각종 졸업식과 입학식까지 사랑하는 이들과 온정을 주고받기 딱 좋은 시즌이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그 마음을 전할지 생각하면 으레 고민이 된다. 물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일 터다.

‘사랑한다’, ‘감사하다’,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나 따뜻한 스킨십이 그 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어딘지 부족하게 느껴지거나 상대와 대면해서 고백할 용기가 없을 때 필요한 것이 선물이다. 그중 초콜릿은 실패율 ‘제로(0)’에 가까운 아이템이다. 왜 그럴까. 

흔히, 초콜릿 선물을 생각하면 밸런타인데이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가설은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결혼이 금지됐다. 여인과 사랑에 빠진 한 병사를 안타까워한 발렌티누스 신부가 이들 사이의 혼약을 위해 주례를 섰다가 사형을 당했다.

이후 신부를 기리기 위해 그가 사형을 당한 2월 14일을 ‘밸런타인데이’로 부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이를 기념해 밸런타인데이에 연인 간에 사랑을 고백하는 풍습이 유럽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초콜릿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때만 해도 초콜릿은 존재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밸런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상술로 접목시킨 것은 일본이다. 1936년 고베의 한 제과업체가 벌인 밸런타인 초콜릿 광고를 시작으로 ‘밸런타인데이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이라는 이미지가 일본에서 싹텄다. 1960년 일본 모리나가제과(森永製菓)가 여성들에게 초콜릿 선물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일본식 밸런타인데이가 정착됐다.

비단,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 선물 문화가 제과업체들의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선물로 초콜릿이 지닌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맛은 기본이며 향과 질감, 모양, 그리고 적당량을 섭취하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는 알칼로이드계 성분인 테오브로민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뇌와 신경 기능에 작용해 집중력을 높이거나 사고력을 증진한다. 자율신경계에 작용해 신체의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으므로 시험 전 긴장 해소 및 정신적인 진정 효과도 있다.
 
여기에 대체 불가한 특유의 감미로운 향기와 설탕, 분유, 향료 등 다양한 재료들이 첨가돼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지는 초콜릿은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최근에는 직접 초콜릿이나 포장지를 꾸미는 DIY 초콜릿이나 프리미엄 커스텀 메이드 초콜릿 선물도 확대되고 있다. 
김자경 옥션 마케팅실 팀장은 “최근에는 밸런타인데이에 연인뿐만 아니라 직장동료, 가족 등 지인 누구에게나 초콜릿을 부담 없이 주고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선물용 초콜릿으로 DIY나 수제 초콜릿 등 찾는 품목도 이전보다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선물로 초콜릿이 좋은 이유는 또 있다.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초콜릿이 대개 ‘꼭 필요한’ 품목이 아니라는 점이다. 살다 보면 모든 선물이 꼭 쓸모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연인에게 주는 장미꽃이 그렇지 않은가. 되레 ‘평소에 갖고는 싶었지만 내 돈 주고 사기는 아까운 것’들이 선물로 빛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초콜릿도 그렇다.

이는 최근 장기 불황 속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등 미래보다 현실의 즐거움을 중요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불면서 프리미엄 초콜릿 시장이 확산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성취주의에서 향유주의로 가치가 이동하며 크고 멀리 있는 행복보다 작고 가까운 곳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심리가 소확행적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초콜릿만으로도 ‘최고의 성찬’을 누리려는 소비자들의 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초콜릿 페스티벌인 ‘제4회 서울 살롱 뒤 쇼콜라’에서 만난 강지연(33) 씨도 “확실히 요즘 회사 주변에 프리미엄 초콜릿 가게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며 “이런 초콜릿들은 맛도 있고,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지만 한 조각에 2000~4000원을 호가하기 때문에 자주 사 먹기엔 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 고급 초콜릿을 선물로 받으면 무척 반갑다”고 말했다. 

강 씨처럼 프리미엄 초콜릿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초콜릿을 선물하는 문화도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보다 초콜릿 소비가 월등히 높은 스위스,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유럽 국가에서는 초콜릿을 선물하는 것이 일상 속에서 굉장히 흔한 일이라고 한다.

일본 유명 초콜릿인 로이스의 신세계 명동점 관계자는 “요즘은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시즌 외에도 초콜릿을 선물하려는 고객들이 늘고 있다”며 “보기에도 예쁘고 맛도 좋은 초콜릿이야말로 누군가로부터 선물받기 좋은 아이템이다. 무엇보다 최근에는 초콜릿이 건강에도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4060중장년층 손님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초콜릿이 지닌 고급스러운 분위기도 선물로써의 매력을 배가시킨다. 따라서 종종 럭셔리 주얼리나 시계, 자동차 관련 기업들도 특별한 고객들이나 홍보용으로 자사 로고를 새긴 수제 초콜릿을 제작하기도 한다. 초콜릿이 지닌 고급스러운 맛과 감성이 프리미엄 제품군들의 이미지와도 이질감 없이 녹아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명차 마세라티 관계자는 “초콜릿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선물”이라며 “특히 초콜릿 보디 등에 (로고) 브랜딩이 용이하고, 포장에 따라서 콤팩트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연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들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초콜릿, 윤리적 소비의 시작
이처럼 신들의 열매 카카오가 만든 초콜릿이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달콤 쌉싸래한 초콜릿 맛 속에 숨겨진 카카오 농부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간 초콜릿 시장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은 수십 년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러나 카카오 생산자와 최종 초콜릿 제조업체 간 뿌리 깊게 박힌 불공정 구조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 설명 : 세계 최고 카카오 생산지인 코트디부아르의 어린이 약 60만 명은 카카오 농장에서 일한다. 그중 98%의 어린이들이 가족농장에서 일하며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 사진 속 13세 피르민 카우시(Firmin Kouassi) 역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채 바시·사산드라 지역, 무사두구(Moussadougou) 마을 근처에 있는 삼촌의 농장에서 카카오를 수확한다. 사진 출처 및 제공 : 유니세프] 

[사진 출처 및 제공 = 유니세프]

2009년 기준 100g 초콜릿 한 판 가격은 유로로 평균 69센트(당시 환율 기준 960원)다. 이 중 카카오 원두, 설탕, 우유분말, 향료 등 재료 구매가 대략 18센트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8센트는 광고와 마케팅 비용, 생산비와 포장비용이 각각 4센트가 들어간다. 농민에게 들어가는 몫은 단 3센트다. 결국, 69센트 중 전체 생산비용 37센트를 제외한 32센트는 오롯이 최종 판매자인 거대 기업들의 몫인 셈이다.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세계 카카오 수출액은 약 203억 달러(21조 원)에 달하지만, 정작 카카오 생산의 90%를 책임지고 있는 영세농들 약 600만 명은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카카오 농장에서 자행되는 강제적 아동 노동은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많은 카카오 생산 농민은 자식들과 함께 농장에서 일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노동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현실은 참담했다.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 중에는 5세 어린이도 포함돼 있고 어린이들은 무거운 짐 나르기, 살충제 혹은 기타 화학물질 유포 등에 참여하며 아동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것.

초콜릿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카카오는 카카오 생산 농가와 대형 기업들의 브로커 사이에서 거래가 이뤄지는데 주로 브로커들이 카카오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요. 카카오 1kg당 약 1.5달러라는 비현실적으로 싼 가격으로 책정되는데 이는 곧 네슬레와 같은 다국적기업의 마진으로 직결되죠. 이처럼 카카오 생산자들이 가격결정권을 갖지 못한 채 거대 기업(판매자)들의 요구에 가격을 맞춰야 하니 아동노동 착취, 만성적 가난 등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사진 출처 및 제공 = 유니세프]

이에 1990년대부터 국제노동기구(ILO) 및 각국 비정부기구(NGO)들은 어린이 노동 근절을 위한 감시 활동 및 초콜릿 제품에 대한 공정무역(fair trade) 운동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공정무역기구(FL)가 지난 2016년에 발행한 ‘공정무역과 코코아(Fair trade and Cocoa)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 20개국에 거쳐 129개의 공정무역 인증 카카오 생산자단체가 있으며, 약 17만9800명의 농부들이 공정무역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단체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원은 카카오농부협동조합의 공용 창고 건립, 운송 수단 마련 및 카카오 건조시설 재건 등 소농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발전기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초콜릿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 가고 있다. 조금 더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공정무역 초콜릿을 구입함으로써 카카오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돌려주고, 구매 행위 자체가 곧 나눔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공정무역 초콜릿인 마루초콜릿, 이퀄초콜릿, 카발리에초콜릿 등 관련 판매거래처도 늘고 있다. 여기에 올해 소비 트렌드로 지목된 ‘미닝아웃(meaning out: 소비 행위로 자신의 취향과 철학을 알리는 것)’ 기조가 더해지면서 앞으로 공정무역 초콜릿에 대한 인식이 더욱 확산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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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2-0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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