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이창원 미래일자리연구소 대표] 작금의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의 향연으로 모든 사물이 연결된 초지능 사회로 쉼 없이 달려가고 있다. 과거 기계와의 공생에 성공한 인간들은 인공지능(AI)이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났다. 직업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big story] 지적 노동까지 대체, 직업의 미래는
지난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바프 의장의 입에서 시작된 ‘4차 산업혁명’이 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지도 벌써 2년여의 시간이 다 됐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경영연구소와 관련 기관, 그리고 학계에서는 앞 다퉈 혁신의 아이콘임을 자처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과 이 기술들이 엮어내는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해 왔다.

이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선 인공지능 기술은 눈부신 진화에 힘입어 이미 수많은 기업들이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실전 배치를 서두르고 있다. IDC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까지 모든 상업용 기업 애플리케이션의 85%가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하고, 고객 응대 기업의 55%는 생체인식 센서를 이용해 고객 경험의 개별화를 구현하게 될 전망이라고 하니 가히 ‘AI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본격화된 초기 산업혁명 이래로 지금껏 우리 인류는 생산성 향상과 인간 노동의 가치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두고 깊은 고민과 성찰을 반복해 왔다. 당시에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함에 따른 일자리 상실에 저항하기 위해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일어나기도 했고, 19세기 들어서는 아예 기계 자체를 거부하는 ‘네오 러다이트 운동(neo-luddite movement)’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자리의 의미를 단순히 생계를 위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을 대변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초입에 들어선 지금, 많은 유통업체 및 물류·운송 서비스에까지 무인화(無人化) 바람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자율주행 택시와 버스가 본격 운행을 시작했고, 3D프린터는 제조업의 인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온다.

앞서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2018년은 무인화 열풍이 걷잡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것이다”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지난한 ‘기술적 실업(technical unemployment)’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직업의 소멸과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 과정을 지켜봐 왔다.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한 시대적 트렌드에 맞는 신(新)직업들이 새로운 판을 이끌어 온 것이다.

물론 증기기관, 전기, 디지털 기술이 노동의 성격을 변화시켜 기술적 실업을 야기한 것은 역사적 사실로 증명됐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부분은 일시적 실업에 그쳤을 뿐 새로운 고용시장의 탄생과 성장을 통해 기술적 실업이 해소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다만 인간의 육체를 넘어 ‘지능’까지 거의 모사해 버린 인공지능의 출현이 가져올 상황에 대해서는 쉽게 예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근 서점가를 비롯해 매스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일자리 전망도 극과 극을 향할 정도로 극단적 패턴을 보이고 있다. 한쪽에서는 단순·반복 노동은 물론 지적 노동까지 포괄하는 광의의 인간 노동의 완전 상실을 이야기하는 비관론이 득세하는가 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직무 다변화를 통해 기존 일자리는 새롭게 분화할 것이며, 기술 발전에 따른 신직업이 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심심찮게 나온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만을 놓고 ‘앞으로 사라질 직업 ○○개’ 식으로 위험 직업군을 특정 짓는 것은 매우 편협한 시각이다. 직업은 수많은 작업과 업무가 하나로 합쳐진 다면적이고 다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직업(job)이 아닌 직무(task: 작업과 업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직업’을 기준으로 일자리 감소를 예상한 비관론의 경우 과도한 추정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직업(job)이 아닌 직무(task)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그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판매원의 경우 직업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체 위험도가 92%지만 직무(혹은 업무)를 기준으로 한다면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경우가 96%다. 즉, 수행하는 업무의 고유성이나 특수성 등을 감안했을 때 기계가 대체할 수 있는 판매원의 직무 정도는 고작 4%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기술 진보로 인한 일자리 변화의 핵심은 기계의 역할 변화가 아닌 인간의 역할 변화로 접근해야 한다. 새로운 수요에 적합한 새 업무의 공급자로서 기계보다 인간이 우위에 있을 수 있을지를 판단하는 것이 관건이다.
[big story] 지적 노동까지 대체, 직업의 미래는
◆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
지난 14~16세기 서구를 관통했던 르네상스 시대와 현 시대 사이에는 일견 유사점이 있어 보인다. ‘신(神)에게 속한 것은 신(神)에게로, 그리고 그 나머지는 인간에게’를 외치며 근대 인간 정신의 부흥을 꾀한 그때처럼 인공지능과 기계가 우위에 있는 고된 반복 작업은 그것에게 맡겨두고, 보다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인간 고유의 업무를 준비해야 한다.

신체를 가진 인간이기에 지치기 마련이며,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싫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런 피곤과 싫증이 오히려 독창적인 사고와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면 이것은 인간의 강점이자 우월함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동화 기술로 인해 여러 산업이 영향을 받게 되겠지만 인공지능과 기계가 우위에 있는 업무들, 예컨대 단순 반복 작업, 매뉴얼화한 작업, 그리고 뚜렷한 목표와 통계에 기반을 둔 업무 및 일거리들은 대체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소외된 많은 이들은 교육과 취업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기존에 습득한 기술의 연한이 만료되기 전에 서둘러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등교육을 받고 열정적이며 의지가 강한 10~15%의 근로자는 새로운 경제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이나, 나머지 85~90%는 의미 있는 일이나 고임금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질 수 있다.

아울러 기계의 지능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될수록 그에 따라 소유주가 가져가는 이윤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알고리즘과 기계를 소유하는 자들이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것은 당연하다.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는 타일러 코헨의 경고처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평균 중간층의 해체에 따른 양극화의 질적, 양적 변혁에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바야흐로 과도기이며, 커다란 변혁기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볼 때 가장 고통을 받았던 시기가 대변혁의 과도기였음을 감안해보면 닥쳐올 인간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커다란 숙제다.

끝없이 진화해 나갈 인공지능 기술은 기업의 업무 처리 방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근본적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며, 더 나아가 ‘일’과 ‘업무’의 정의마저 바꿔놓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패러다임 체인저로서 인공지능, 기계와 함께 협업하는 인간의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로 진입할 것이다. 일자리를 잃게 하고 생계를 위협하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더 쉽게 만들어주는 기술로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계와의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생 능력,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간 고유의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야말로 변혁의 시대에 살아남는 미래 일자리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는 분명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미래의 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