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곽재혁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전문위원] 1931년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인간이 노동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는 것보다 노동을 절약하는 방법을 더 빨리 찾아내기 때문에 기술적 실업이 발생한다고 했다. 금융업에서의 기술적 실업도 사업구조 재편이라는 명분 아래서 현재 진행형이다.
[big story] 금융권 新직종 키워드 ‘핀테크’
지난 2016년 세계 1위 바둑기사 이세돌이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에 패배한 이후 많은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술 혁신과 더불어 ‘기계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범위’와 그 정도가 예상 외로 빨라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도 향후 10~20년 사이에 미국 내 직업 중 47%가 자동화로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금융업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미 많은 금융사들이 중장기 경영 방향을 ‘디지털 금융’ 확대와 연계한 점포 축소 등 구조조정으로 잡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고용정보원이 실시한 23개 직종 재직자 대상 설문 결과에서는 금융·보험직 종사자 중 약 82%가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시중은행들은 기존의 모바일뱅킹과 더불어 24시간 100여 개의 창구 업무를 365일 볼 수 있는 무인뱅킹 시스템을 발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 단순 입출금 외에 예금이나 펀드 투자, 외화 환전 등 텔러 고유의 업무 영역이 기계로 빠르게 대체되는 이면에 오프라인 점포 및 인력 수는 명예퇴직 등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더욱 빠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이를 감안할 때 향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융업은 크게 ‘스마트 & 디지털’화 되는 트렌드에 맞는 핀테크(FinTech) 서비스 분야와 당분간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의 심리 또는 사회적 측면에 기반을 둔 자산관리(WM) 및 투자금융(IB)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 관련 직종 역시 이와 관련된 일자리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 금융·ICT 융합, 핀테크 서비스
2017년 4월과 7월,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K뱅크)와 카카오뱅크가 각각 출범과 동시에 시중은행보다 더 높은 예금금리와 낮은 대출금리를 파격적으로 제시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중(mass) 고객들의 대규모 이탈을 막기 위해 기존 금융기관들 또한 핀테크 서비스 구축 및 고도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핀테크란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스(finance)’와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가 하나로 합쳐진 단어다. 핀테크의 범위는 최초의 온라인 결제에서 예금, 대출, 환전·송금, 최근에는 자산관리 등의 복합적인 맞춤형 서비스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외에 금융 관련 소프트웨어, 솔루션 및 플랫폼 개발과 의사결정, 위험관리, 성과 관리 등 금융 시스템 개선을 위한 기술도 이에 포함된다.

앞서 카카오뱅크의 사례와 같이 핀테크는 인터넷·모바일뱅킹처럼 기존 금융기관의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 등 비금융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핵심 역량을 가지고 기존의 금융기관과 협업 또는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서 새로운 유형의 금융 서비스를 기획하고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핀테크 전문가’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많은 금융기관들은 기존의 젊은 인력들 중 일부를 빅데이터 처리나 AI 이해도가 높은 IT 전문가로 양성하고 있으며 IT 기업들은 금융기관의 마케팅 전략기획 경험자들을 경력직으로 스카우트하고 있다.

이러한 핀테크 관련 직종은 핀테크에 대한 정의만큼이나 넓고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래의 세 가지 업종이 특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첫째는 자산관리 알고리즘(로보어드바이저) 개발 및 관리다. 금융 WM에서 중요한 두 가지 과제는 인간의 공포와 탐욕을 제어해 투자에 대한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것과 최대한 많은 고객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AI를 활용한 상담 시스템(챗봇 등) 및 로보어드바이저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금융 WM과 알고리즘 구축 모두에 정통할수록 경쟁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한 맞춤형 마케팅 기획 및 개발이다. 최근 부각 중인 패턴 분석을 통한 맞춤형 금융 마케팅 등을 금융기관에서 경쟁적으로 도입 및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및 인터넷에서의 행동 및 구매 패턴 데이터를 분석해서 현재 고객의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개발 및 관리하는 실무 업무와 기획, 전략을 수립하는 전문가들의 주가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지급결제 및 사이버 보안 시스템 관리다. 핀테크 시장이 커지는 만큼 그 이면에 해킹 등 사이버테러 및 사고 등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그만큼 개인정보보호 등 보안에 대한 중요성은 앞으로도 더욱 부각될 예정이다. 최근에는 생체인식 기법 고도화 및 가상화폐에 쓰이는 ‘블록체인’ 기반의 지급결제 시스템 적용이 보안 효율성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부각되면서 이와 관련된 IT 인력들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big story] 금융권 新직종 키워드 ‘핀테크’
◆ WM·IB 분야도 신규 채용 늘 듯
수년 전 A기업이 해외 진출을 위한 현지 업체의 인수자금 조달을 위해 거래 금융기관들에 대출금리 제안을 요청했는데 대부분 비슷해서 고민을 하던 중 한 기관이 연 0.5%포인트 낮은 금리를 파격적으로 제시해 최종 선정됐다. 비결은 IB에 있었는데 A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의 자산담보부증권(ABS)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전 세계가 고성장을 구가하던 20세기만 해도 금융은 그저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를 빨리 연결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글로벌 고령화 등의 요인으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성장을 하지 못하고 초저금리와 저성장이 사회적 흐름이 돼 버린 가운데 금융업도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이 상황에서 보다 높은 운용 수익을 내기 위한, 그리고 가급적 낮은 비용 부담으로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고객들의 니즈가 점차 커지면서 WM과 IB가 금융기관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경쟁 우위의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온라인에서 핀테크 서비스 확대와 더불어 많은 금융기관들은 오프라인에서의 IB와 WM 역량 강화를 사업의 이원화(two-track) 전략으로 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앞서 언급한 금융 IT의 발전으로 금융기관들의 인력 구조조정이 지속되는 가운데에서도 WM과 IB 관련 인력은 신규 채용과 재교육을 통해 되레 그 비중을 늘리고 있다.

WM 분야의 직종으로는 VIP 고객들을 중심으로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주는 프라이빗뱅커(PB)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금융상품 외에도 세무, 부동산, 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 정통하며 고객의 고민을 원스톱(one-stop) 서비스로 해결해주는 컨설턴트 및 개인 집사의 역할을 겸하는 직업이라고 볼 수 있으며, 최근 부유층의 수가 증가하고 니즈가 복잡, 다양화되는 만큼 향후 전망도 밝다고 볼 수 있다.

IB 분야의 직종은 기업 및 프로젝트의 자금조달 방식이 워낙 다양한 만큼 특정 짓기가 매우 어렵지만 대표적으로는 기업공개(IPO) 및 회사채 발행, 인수·합병(M&A) 전문가 등이 있다. 이외에 자금조달을 위한 구조화금융, 금융기관의 자산 위험관리 및 알파수익 창출을 위한 헤지 운용 전문 인력 등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높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