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56호 (2018년 05월)

[‘보나팜’의 공동체 라이프] 20년째 이어온 소농들의 행복공동체 실험

[big story] 소농의 시대 행복과 건강을 짓다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오르면 농촌 공동체 보나팜에 도착한다. 속리산 자락 청정지역을 배경으로 자연을 벗 삼으며 마을을 이루어 살아가는 사람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는 농사일을 하며 흙냄새와 새소리와 바람과 햇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농부들을 만나러 갔다. 그곳에서 ‘같이의 가치’가 왜 중요한지를 들여다봤다.   

보나팜의 식구들이 갓 수확한 쌈채소를 손에 들고 미소를 지었다. 서로 마주보니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핀다.


시골에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고 지방 소멸의 위기가 찾아온다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예외일 듯하다.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 위치한 보나팜에선 갓 태어난 아기부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하다. 산과 밭을 배경으로 한적한 마을에 젊은 부부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세대가 힘을 모아 농사를 짓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주며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품앗이로 대표되는 농촌 기반의 공동체 문화가 많이 사라진 가운데, 최근 시골에서 다시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뜻 맞는 사람들이 공동체 마을로 함께 귀농을 시도하거나 협동조합의 형태로 경제활동을 하는 식이다. 보나팜은 영농조합법인으로 기독교의 가치를 공유하면서 가정 단위로 모여 기존의 마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30대의 나이에 도시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온 부부들이라고 한다. 농촌을 기회의 터전으로 바라본 이들이 땅을 살리고 가정을 세우고 농사를 통해 자립하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처음 마음 맞는 두 가정이 함께 살기를 시작했고, 모집공고를 낸 적이 없는데도 한 가정, 한 가정씩 문을 두드려 왔다. 현재는 열네 가구가 모여 있다.

젊은 나이에 삶의 환경을 바꿔 시골마을 농부가 돼 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혼자라면 어려웠지만 함께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하는 그들은 그렇게 지속 가능한 공동체 실험을 20년째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 첫 번째 가정을 세운 김용수(54), 이은경(51) 부부는 어느덧 50대 중반의 중년이 됐다.

여느 농촌과 같이 노인들만이 남아 비어 가던 마을에도 변화가 찾아 왔다. 집집마다 돌담을 쌓고 꽃이 핀 정자가 생기는 등 마을 풍경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동네를 가로지르며 활력을  불러오자 마음을 열지 않던 동네 어르신들도 점차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였다. 몇몇 어르신은 평생을 고수해 온 농사법을 버리고 초보 농부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농법으로 바꾸기도 했는데, 이 또한 눈여겨볼 점이다.

최근에는 열네 가구 중 다섯 가구가 경북 의성으로 건너갔다. ‘분리 개척’이라고 표현했다. 또 하나의 공동체 실험을 하기 위해서라고. 헛개나무, 블루베리를 심으며 새로운 터전을 일구는 중이다. 지방 소멸 최우선 지역으로 꼽히는 그곳 의성에서 다시 한 번 오래된 마을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쌈채소 농장에 한데 모인 사람들. 이들은 순번을 정해 매일 오전 쌈채소를 돌본다.

     
시골살이 정착을 위한 또 하나의 길 ‘공동체’
보나팜에선 모든 게 공동의 작업이다. 크게 양계팀, 쌈채소팀, 농사팀, 유통팀 네 개의 팀으로 일을 나누고 있다. 수익은 각자의 몫으로 배분한다. 특이한 점은 모든 의사 결정을 회의를 통해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손님을 맞는 일부터 농사의 작물을 선택하는 문제, 공동체의 예산을 사용하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을 상의한다. 짧게는 귀농 6년 차부터 20년 차까지 다양한 경력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모두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 모임을 대표하는 리더는 있어도 권한은 모두에게 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홈스쿨링의 방식을 선택한다. 귀농을 선택할 때 많은 이들이 교육의 문제로 고민을 한다. 보나팜에선 자녀를 따로 떼어 놓지 않고 도시에서 학교에 다니던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온다. 진정한 가족농의 형태다. 공동체 안에서 자기주도 학습으로 고교 과정까지 마치는 게 원칙인데, 최근엔 중고등학교 과정부턴 각 가정이 자율적으로 선택을 하고 있다.

의외로 3040 젊은 세대가 보나팜에 합류하게 된 주요한 이유에 교육 문제가 있었다. 2009년 이곳에 내려온 성석현(51) 씨는 “예전부터 자녀들에게 경쟁 위주의 교육을 시키지 않겠다는 교육관이 있었고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며 “자기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자녀가 향후에 판단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경훈(43) 씨는 “교육의 우선순위나 삶의 목표가 대학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건강하게 지내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 길을 갔으면 좋겠다”며 “차가 별로 없어 아무 때가 나가 놀 수 있고, 매어 있지 않은 생활을 하다 보니 자유로움이 많은 아이들로 크고 있는 것 같아 엄마로서의 삶의 만족도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세 살짜리 아이가 처음 이곳에 오자마자 닭들을 안고 다니는 것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됐다고.

과거에는 자녀들을 시골에서 서울로 보냈다. 이제 배운 엄마들의 선택은 서울에서 다시 시골로 향한다. 이 씨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지금 자연과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도 시골은 최적의 환경이라고 한다. 김용수 씨는 “경험적으로 봤을 때 고령사회에 노인문제의 해답이 공동체에 있다고 본다”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되셨을 때 시골에 모셔서 8년을 함께 살았어요. 우리만 모시면 힘들었을 텐데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아버지로 모시면서 연초가 되면 세배하고, 바닷가에 다 같이 놀러가고 아이들 웃음소리도 있고 청년들이 있는 곳에 어울려 사시니까 제일 행복하신 것 같아요. 먼저 모셔봤기 때문에 다른 가정에도 ‘부모를 모시는 게 너희에게 복이다’며 적극 추천해요. 그래서 이번에도 한 가정이 부모님을 모시기로 했어요.”

농촌 환경의 장점은 나이 들어서도 늦게까지 일할 수 있는 터전이 있다는 것이다. 동네에서 여든 살이 넘은 한 어르신은 새로운 작물을 지어보겠다며 현재 땅을 일구고 있다고 한다. 성석현 씨는 “도시에선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기 일이 없어지는 데 비해 여기선 내가 원하는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다”고 했다.

생산적인 삶. 그것이 시골살이의 큰 기쁨이다. 생산을 하는 보람 가운데 살면 소비를 할 시간도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게 목적이었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보나팜 라이프라고 소개한다. 비록 손에 쥐는 수익은 많지 않지만 그만큼 소비할 일이 없기에 자녀 교육을 포함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김용수 씨는 “실제로 서울에서 친구들을 만나보면 경제적 규모에선 많은 것을 누리지만 시골에 사는 저희보다 더 힘들어하곤 한다”며 “점차 50대 중반이 되면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시골에서 생산적인 삶을 사는 게 더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나팜의 닭들은 암수가 정답게 뛰어 놀고 음악을 들으며 자라난다. 그래서인지 양계 농장 특유의 냄새가 없다.

달걀을 세척하고 포장하는 곳. 표정이 진지하다.

친환경 쌈채소와 유정란은 직거래와 꾸러미를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보나팜에서 생산되는 가공 식품들.



소비적인 삶에서 생산적인 삶으로

보나팜의 슬로건은 ‘좋은 땅, 좋은 사람, 좋은 열매’다. 주요 생산품으로는 자연 유정란과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쌀, 그리고 친환경 쌈채소 등이 있다.

왜 공동체가 중요한가는 농사를 하는 데도 유효한 질문이다. 노동력을 분배할 수 있을뿐더러, 자연 친화적인 방식을 지속하는 끈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공동체인 보나팜에선 땅과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되는 가치다. 그래서 처음부터 모든 농사의 기본은 친환경이었다. 

“제초제나 살균제, 살충제와 같은 농약을 쓰지 말고 농사를 지어보자고 해서 처음부터 손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마을 분들이 볼 때는 이해를 잘 못하셨죠. 논도 그렇고 밭도 그렇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비가 오면 풀과의 전쟁이거든요. 제초제 한 번 쫙 뿌리면 되는데 저희는 손으로 다 뽑았으니까요. 처음에는 저만치 뽑고 뒤돌아보면 다시 풀이 올라올 정도였으니까.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같이 와서 일했고, 그러다가 우렁이 농법이라는 것을 알게 돼서 우렁이를 키우고 있어요. 몇 년 후에는 어르신 몇 분이 따라 했어요. 마을에서 농사를 크게 지으시는 두 분이 우렁이 농법을 같이 하고 계시고 친환경 인증도 같이 받았어요. 우리가 재배하는 쌀은 가격을 두 배 정도 받아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그것은 팔고 우리가 먹는 쌀은 사다가 먹고 그렇게도 했었어요.” 김용수 씨

보나팜의 주 수익원인 양계 농장을 운영하는 데도 원칙이 있다. 양보다 질, 그리고 잘하는 것을 특화시키는 것이다.

알을 낳는 산란계를 운영하는데, 닭을 키우는 방식이 설득력이 있다. “태초에 닭이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저희가 접근한 것은 닭이 살았던 곳은 숲이었다. 숲에는 맑은 공기가 있고 햇볕도 있어야 하고 또 그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앞과 뒤, 옆과 천장까지 사방으로 창을 내서 환기가 잘 이뤄지게 했다. 자연의 원리에 따라 볏짚과 나뭇가지를 놓은 흙바닥에서 암수가 함께 자라게 하고 풀이 자랄 때는 방사해서 키운다.” 김용수 씨

보나팜을 방문한 4월 중순에는 ‘양계학교’가 진행 중이었다. 1년에 세 차례 운영하는 보나팜 양계학교는 2009년 시작한 이후로 매년 성황을 이루고 있다. 3박 4일 동안 숙박을 하며 닭을 건강하게 키우는 법에 대해 A부터 Z까지 배운다.

보나팜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은 별도의 유통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모두 직거래와 꾸러미를 통해 도시의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광고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알음알음 입소문을 통해 달걀의 경우 생산과 동시에 판매되고 있다. 또 단골 고객은 많은 경우 직접 농장에 찾아와 실제로 작업하는 과정을 둘러보는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가장 신기해한다”고 한다.

보나팜에선 좋은 땅을 가꾸는 것 뿐만 아니라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의 가치도 중요하다. “욕심을 내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양계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양계가 나를 끌고 가는 상황이 온다”고 한다. 성장하는 중에도, 적정 수준에서 멈추는 법을 알고 있다. 이곳에는 안식년의 개념도 있다. 5년을 살면 6년째 되는 해에 3~4개월 쉴 수 있게 한다. 한 가정이 빠지면 다른 가정이 자리를 채워주는 식이다. 모두 공동체로 모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접 만든 풍력발전기. 보나팜 입구에 걸려 있다.

마을에 생긴 정자. 주민들의 포토존으로 활용된다.



공동체 라이프에 장점만 있을 리는 없다.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긴장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가까이 공동체를 지속하고, 여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도시에서의 삶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목적이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욕심이 없어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 이곳에 내려올 때 조금 벌고 조금 쓰자는 생각으로 왔어요. 도시에서 소비가 너무 많아서 지치고 힘들었어요. 저는 자연을 아이들에게 선물해주는 것, 자연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으로 큰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요. 가끔 도시 사람을 만나면 말하는 단위가 여기와는 다르기 때문에 살짝 위축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많이 벌어도 늘 지쳤던 그때보다 저는 자연 속에서 사는 것에 더 만족합니다.” 김윤희 씨

“시골에서 배운 것은 밥상 먹을거리의 회복이에요. 처음에는 전문 영역을 내려놓고 매일같이 밥을 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우리가 만든 소산물로 건강한 먹을거리를 먹는 것, 콩 농사부터 지어서 메주를 쑤고 간장과 된장을 담가 먹고 갓 수확해서 먹는 즐거움이 있어요. 주부로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내 밥상에 올린다는 것, 거기서부터 아픈 사람이나 아픈 땅을 회복시키는 동력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부자죠. 돈을 많이 벌어서가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부자.” 이은경 씨

직접 콩 농사를 지어 간장, 된장 등을 담근다.


보나팜에서 생산되는 자연 유정란. 좋은 땅, 좋은 사람, 좋은 열매의 가치에 따라 자연 친화적인 방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찬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하는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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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5-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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