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소농의 시대 행복과 건강을 짓다

씨를 받을 수 있고 같은 품종이라도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돼 있는 토종 농산물은 크고 잘생긴 것, 작고 못생긴 것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열매를 맺는다. 10년 가까이 농촌과 소농을 관찰해 왔기에 소농의 의미와 가치를 관찰하고 조사한 바에 근거해 간단히 나누어보고자 한다.
김정희 가배울 상임 이사
소농은 온전한 생태적 삶에 가깝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도시에서의 취업도 연애도 별 신통치 않은 주인공이 농촌인 집으로 와서 텃밭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야기다. 영화의 3분의 2가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다. 그런데 신기한 게 영화 보는 내내 잔잔하게 평화로울 뿐 단순한 영화 구조로 인한 지겨움이나 답답함은 없었다. 관객들이 대부분 느꼈을 이 평화에 소농의 의미와 가치가 다 담겨 있다.

도시 텃밭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나이지만, 그나마 10년 가까이 농촌과 소농을 관찰해 왔기에 영화가 전하고 있는 소농의 의미와 가치를 관찰하고 조사한 바에 근거해 간단히 나누어보고자 한다.

한 번은 음식물 쓰레기를 뒷마당의 스티로폼 박스에 넣고 그 위에 흙을 덮어주고 이엠 효소를 뿌려 주변에 냄새가 안 나게 했다. 이렇게 해서 발효된 퇴비는 다음 해 봄에 실내 화분들의 분갈이 거름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는 대여섯 번에 한 번 정도고 대부분은 비닐봉지에 담아 수거함에 내놓는다. 수거함으로 간 음식물 쓰레기가 자원화 시설까지 가서 얼마나 적정 퇴비로 만들어져 재활용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한국은 2014년 이전까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해양에 투기한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었으니 필자가 내보낸 음식물 쓰레기가 지구 생태계를 얼마나 오염시켰을까? 시골에 산다면 일체의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가 된다.

요즘은 똥을 누면 똥물은 정화시켜 강으로 가고, 똥 슬러지는 자원화된다고 한다. 많은 시설과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농촌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고 똥에 왕겨를 덮어주는 생태 화장실은 어마어마한 시설과 비용 없이 똥을 자원화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생태적 소농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 없이 지구 생태계를 푸르게, 푸르게 유지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자급자족 소농으로 토종 지킨다
생물종 다양성의 사라짐이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환경 파괴의 심각한 양상이라는 것에 대한 인류의 공감대 속에서 1992년 유엔은 ‘생물 다양성 협약’을 채택했다. 생물 다양성의 핵심 중 하나가 종의 다양성이다.

근대 농업이 상업농으로 발전하면서 농민은 더 이상 씨를 받지도 않고 받을 수도 없는 한두 품종의 다수확 개량종만을 심어 왔다. 그 결과 종자의 80~90% 이상이 사라졌다. 상업농이 가져온 단작화는 생물 다양성 파괴의 주범이다. 씨를 받을 수 있고 맛이 있고 같은 품종이라도 각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돼 있는 토종 농산물은 크고 잘생긴 것, 작고 못생긴 것 등 다양한 모습으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토종 농산물은 ‘약식동원(藥食同原) 음식’이면서도 크고 좋은 것만을 선택하는 소비자 기호에 맞출 수 없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농산물이 됐다. 농협도 수매하지 않고 팔 수 없으니 농민들도 점점 더 토종을 심지 않는다. 그러나 토종의 맛을 아는 농민들은 자급용으로 토종을 심는다. 종자를 개량하기 위해서라도 원종은 필요하다.

기후 변화가 심해질수록 제 구실을 하는 원종은 국가나 씨앗 도서관 냉동실에 보관된 것보다는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끊임없이 적응해 온 종자일 것이다. 토종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심는 소농 농민(대개가 여성 농민이다)은 자기 가족이 먹기 위해 토종을 심지만, 그 자체로 인류를 위한 ‘노아의 방주’를 지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 소득제가 실시된다면, 이 제도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자급자족 토종 농가에게 제일 먼저 적용돼야 할 것이다.

소농은 문화 다양성의 보고다
21세기 들어와 문화 자본의 주도에 따라 문화 역시 획일화, 종속화되고 있다. 패스트푸드 대자본으로 대변되는 음식 문화의 획일화는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다. 볼리비아 고원에 사는 에마라(Amara) 인디언은 감자를 주식으로 한다. 그들이 감자를 부르는 명칭은 감자의 다양한 품종과 요리법에 따라 200개가 넘는다.

마이클 캐롤런은 패스트푸드의 획일적 맛에 길들여지면 우리는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 지식도 상실하고, 한두 세대 이후에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영원히 전통 음식 문화를 상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소농 여성 농민은 토종이 맛이 있고 자기와 가족이 그 맛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씨를 받아 토종 종자를 심는다.

한류의 여파로 한식의 글로벌화를 겨냥하며 ‘케이 푸드(K-food)’ 붐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역대 정부의 관심사였다. ‘케이 푸드’의 모태는 김치나 된장을 담아본 적이 없다고 추측되는 TV 브라운관의 셰프들에게 있지 않다. 토종의 맛을 아는 소농 농가에 있다. 농가에서 밥을 먹어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나이 든 전통 소농 여남 농민들은 농장이나 산판 일, 계절 막노동 등으로 고생하며 돈을 벌어 겨우 자식들을 키워냈다. 아주 가난했다. 그러나 그 집의 밥상은 제철 자연을 옮겨다 놓았다 할 만큼 풍성하다. 어떤 집은 밥 하나에 잡곡이 10여 가지가 들어간다. 인류의 통합을 위해 문화 다양성은 보존돼야 한다고 할 때, 소농은 전통적인 음식 문화를 보전해 오고 있는 중요 단위다.

이런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 소농이지만, 소농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아이들 교육은 시킬 수 있을까? 현실적인 질문이 뒤따른다. 획일적으로 답하기 쉽지 않지만,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가능하다고 보인다. 우선 부부가 건강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그리고 정직하게 농사를 짓고 그 과정을 진솔하게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계속 소비자에게 보여주면, 똑똑한 소비자들은 이런 농민들을 찾아낸다.

40~50대 중년의 나이에 귀농·귀촌한 이들 중에서도 이런 강소 소농이 발견되곤 한다. 이들은 때로 단기적 품을 사기도 하지만 주로 부부 중심 노동력으로 연간 억대의 농산물과 가공품을 직거래로 판매한다. 이들이 한국 농업의 희망이고 종 다양성, 문화 다양성을 지키자는 인류의 염원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장은 아닐 것이다.
소농은 온전한 생태적 삶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