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제 158호 (2018년 07월)

[big story]‘장비병’이라는 ‘행복한’ 마음의 병

[한경 머니 기고 = 박한선 정신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아름다운 물방울 모양의 아슐리안 석기의 일부는 좀 이상했다. 어떤 것은 두 손으로 들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고 어떤 것은 쓸모없이 작았다. 왜 불필요한 석기를 만들어냈을까. 인류학자는 혼란스러웠다. 유력한 가설은 과시용이다. 멋진 장비와 도구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인지도 모른다.

분명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을 만끽하려고 떠난 캠핑이다. 그런데 정작 새파란 하늘과 푸른 숲이 아니라 주변에 설치된 텐트 로고에 자연스럽게 눈이 향한다. ‘저 브랜드는 전문 알파인이 선호하는 것이고, 저 타프(tarp)는 최신형 삼각 타프로 방수와 차광 기능이 우수하며.’ 심지어는 테이블에 놓인 캠핑용 은색 잔을 보면서, ‘우와. 티타늄 잔이군. 10만 원도 넘는 고급형인데’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캠핑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장비 경쟁이 본 목적이다. 도대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왜 인간은 도구에 집착하는가
‘장비병’은 물론 실재하는 의학적 질병은 아니다. 취미생활을 하면서 활동의 본질보다 관련 장비에 집착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이다. 수천만 원짜리 오디오를 구비하고도 정작 음악은 잘 듣지 않는다든가, 일단 고가의 골프클럽부터 구입하고는 필드에는 딱 한 번 나가고 마는 풍조를 비꼬는 것이다.

취미생활을 위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장비가 필요하다. 특히 고가의 장비가 필요한 자동차 튜닝이나 오디오, 사진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둑이나 명상과 같이 ‘청빈한’ 취미생활에도 장비가 필요하다. ‘통~’ 소리가 은은한 바둑판과 상아로 깎은 바둑알, 티베트에서 수입한 명상용 놋주발의 가격을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과연 장비가 필요하지 않은 취미생활이 있을까.

물론 단지 장비의 가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 낚싯대를 고집하던 조사(釣士)의 이야기가 있다. 한 낚시꾼이 카본과 유리섬유, 텅스텐으로 만든 최첨단 낚싯대를 사용하고도 허탕을 쳤는데, 멀리서 어떤 백발이 성성한 강태공이 연신 물고기를 낚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까이 가보니 손수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였다는 이야기다. 진정한 동호인은 장비의 가격보다는 도구의 본질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인다.

장비가 취미생활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제법 중요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한 달에 한 번이나 갈까 싶은 암벽 등반을 위해, 매일같이 등반 장비를 손질하는 산악인이 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산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대상에 에고(ego)의 일부가 카텍시스(cathexis) 즉, 부착됐다고 설명한다.

애지중지하는 장비는 이미 자신의 일부이며, 도구는 전체를 포괄하는 상징물이다. 심지어 장비가 고장 나면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니 ‘장비병’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귀여운 애칭으로 보는 것이 좋겠다. 사랑에 푹 빠진 사람에게 ‘열병’이 났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터무니없이 비싼 장비만 고집하고, 정작 취미 자체에는 관심도 없는 과시형 장비병은 예외다.

쓰이지 않는 마음의 절반
인간의 뇌는 왜 이렇게 크고, 인간의 마음은 왜 이렇게 복잡할까. 물론 냉장고에서 TV 리모콘을 발견할 때마다 뇌에 대한 실망감이 들곤 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동물의 뇌보다도 우수하다. 사실 인간의 뇌는 크기가 클 뿐 아니라 에너지 소모량은 더욱 엄청나다. 중량은 체중의 2%, 열량 소모량은 20%에 달한다. 도대체 이렇게 ‘사치스러운’ 뇌를 가진 이유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다. 첫째, 인간관계가 너무 복잡하니, 이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사회적 뇌 가설(Social Brain Hypothesis)’이라고 한다. 둘째, 복잡한 도구를 만들고, 자연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기술적 뇌 가설(Technological Brain Hypothesis)’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기술적 뇌 가설이 유력했는데, 한동안 사회적 뇌 가설이 크게 유행했다. 하지만 최근에 기술적 뇌 가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학문의 세계도 종종 복고풍이다. 아무튼 인류의 뇌는 사회적 관계도 조율하고, 생태적 환경에도 적응하려는 여러 이유로 고도로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의 삶은 상당 부분 사회적 관계에 매몰돼 있다. 사무직 직장인이 하는 일은 사실상 전부 ‘사회적 관계’에 관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료 직원이든, 거래처든 외부 고객이든 마찬가지다.

기술적인 업무는 점점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창의적이며 전문적인 일은 극소수의 사람이 전담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은 하루 종일 주로 사람을 상대하며 살아간다. 심지어 집안일도 각종 기계가 전담한다.

애써 진화한 뇌의 절반은 그냥 허비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싯돌로 불도 피우고, 진흙으로 벽돌을 만드는 일도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물론 세상은 바뀌어도, 마음은 아직 원시인이다. 산 속에 혼자 사는 사람이, 어쩌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아주 기쁠 것이다. 마찬가지다. 도구를 통 쓰지 않던 사람이 어쩌다 그런 일을 접하면 흥분할 수밖에 없다. 장비병에 폭 빠지는 이유다.

쓰이지 않는 몸
마음은 그래도 절반을 활용하고 있지만, 몸은 더 절망적이다. 도통 움직일 일도 없고, 뭔가를 만지작댈 시간도 없다. 기껏해야 햄스터 쳇바퀴 같은 러닝머신에서 헐레벌떡 뛰다 오는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부지런한 사람 이야기다. 현대인의 몸은 극도로 ‘놀고’ 있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만 타닥타닥 댈 뿐이다.

뼈에 붙어 있는 근육 자체보다도, 근육을 움직일 때 사용하는 신경회로가 더 문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신체 이론 모듈(Theory of Body Module)을 타고난다. 혹시 마음 이론 모듈(Theory of Mind Module)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그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마음 이론이 다른 이의 생각에 대한 공감 능력이라면, 신체 이론은 세상의 물리적 질서를 읽는 능력이다. 예를 들면 중력이나 바람의 방향, 물질의 탄성이나 속도, 위치 등에 대한 선험적 지식이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고, 움직이면,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온종일 반복된 육체노동에 시달리면 절대 행복할 리 없겠지만, 어떤 창의적인 과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며 끝내 성취해낼 때 인간은 큰 희열을 느낀다.

작게는 플라스틱 블록을 조립해 모형 우주선을 만드는 것부터 크게는 목조주택을 직접 설계해 지어 나가는 것이다. 등반용 자일의 매듭법을 마스터하는 것, 드론을 정확하게 조종해 목표한 곳에 이동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수의 취미 활동은 이러한 신체의 움직임, 그리고 마음 속 신체 이론과 관련된다. 마음  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도구에 작용하며, 도구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마음과 몸, 그리고 도구를 완벽하게 조율해 나갈 때 인간은 가장 높은 수준의 몰입감을 경험한다.

중년의 기쁨, 도구 만들기
인류가 도구를 처음 사용한 것은 최소 350만 년 전이다. 호모하빌리스는 손을 쓴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사실 그 이전 오스트랄로피테신 무렵부터 인간은 도구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돌을 깬 수준에 불과한 올도완 석기는, 곧 아름다운 물방울 모양의 아슐리안 석기로 진화했다.

그런데 아슐리안 석기 중 일부는 좀 이상했다. 어떤 것은 두 손으로도 들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했고, 어떤 것은 쓸모없이 작았다. 상당수의 아슐리안 석기는 전혀 사용한 흔적이 없었다. 인류학자는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우리의 선조는 왜 ‘불필요한’ 석기를 만들어냈던 것일까.

유력한 가설에 의하면, 아슐리안 석기의 또 다른 목적은 과시다. 자신이 이렇게 멋진 석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뽐내려는 것이다. 이를 ‘섹시한 손도끼 가설’이라 하는데, 주로 남성 간의 과시 경쟁, 혹은 남성들이 여성의 환심을 사려했다는 주장이다. 논란은 있지만, 그럴듯한 가설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모두 그들의 후손이다. 더 멋진 장비와 도구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인지도 모른다.

찰스 다윈은 인간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도구라고 생각했다. 도구를 만들고 사용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도구를 사용하기만 할 뿐 도통 만들 일이 없다. 장비병에 한번 걸리면 가격과 기능, 소재 등에 집착하게 된다. 심지어 한국 캠핑 장비에 쓰이는 티타늄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사용하는 티타늄보다 질이 좋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모든 동호인이 고개를 숙이는 장비는, 비싼 장비가 아니라 바로 ‘수제 장비’다.

모든 취미의 끝은, 결국 직접 대상을 만드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사실 흔히 명품으로 알고 있는 취미용 장비는, 기원을 따져보면 이러한 ‘정상급’ 동호인의 수제 장비를 양산한 경우가 많다. 도구를 직접 고안, 개량하는 것이야말로 정신적 측면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인 ‘장비병’이라고 하겠다.

특히 가정과 직장에서 어느 정도 성취를 얻은 중년이라면, 기성 장비를 무조건 사 모을 것이 아니라 차라리 도구 만들기에 직접 뛰어드는 것도 좋겠다. 꼭 비싼 장비가 최선은 아니다. 도구의 사용법을 숙련한 후에는 가능하면 자신만의 도구를 만들어보자. 무엇이 돼도 상관없다. 프라모델도 좋고, 수제 야구배트도 좋고, 수제 오디오도 좋다. 기나긴 진화사 동안 우리 인류가 해 오던 일이며, 지금도 인간 정신의 절반이 담당하는 일이다. 지금껏 잊고 있었던 태곳적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박한선 전문의는…
현재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강의하며, 같은 대학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있다. 집필 도서로는 <정신과 사용설명서>, <재난과 정신건강>, 옮긴 책으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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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7-0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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