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개인 취향 시대 힙하게 핫하게

힙스터, 자신의 취향을 쌓아 올리다
최근 많은 사람이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만의 취향을 살려 집을 꾸미고, 옷을 입고, 책을 읽고 쓰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떠난다. 취향은 취미생활이나 여가생활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활동에도 영향을 끼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일로 삼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소량 생산과 소량 소비를 추구하는 이들이 바로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힙스터’다.
문희언 여름의 숲 대표·<후 이즈 힙스터> 저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1인 출판사나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작은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고, 옷이나 소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벼룩시장 형식으로 팝업 가게를 열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뮤지션이 되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행사를 연다. 이렇게 개인의 취향을 살린 경제활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진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뮤지션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요조는 제주도에서 ‘책방무사’라는 작은 서점을 운영하며, 여전히 음악 활동도 하면서 최근에는 <오늘도, 무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코우너스(corners.kr)는 디자인 스튜디오 겸 리소 인쇄소로 디자인 작업뿐만 아니라 리소 인쇄소로서의 작업도 진행하고 여러 굿즈도 만들어 판매한다.

트위터의 밀리언아카이브(@millionarchive)라는 계정은 품목을 정해 수천 벌의 빈티지 옷을 모아서 팝업 가게를 여는 밀리언아카이브 마켓을 운영하기도 하고, 여성 창작자들이 모이는 토요 플리마켓도 운영하며, 한 달에 한 번씩 리소 포스터(리소 인쇄 방식)를 발행하는 저스트 프린트도 운영한다. 트위터의 홈그라운드(@ara_homeground)는 식재료와 요리, 요리책, 음식과 이야기가 있는 각종 모임을 위한 비주얼이 돋보이는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한다. 트위터의 재영책수선(@pencilpenbooks)은 망가진 책들을 손으로 수선하는 곳이다.

모두 그리 많이 알려진 일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은 알던 일이며 이미 존재하던 일이다. 우리가 평소 쉽게 접하던 대형 서점 건너편에 독립서점이 있고, 패스트 패션 브랜드 건너편에 빈티지 팝업 가게가 있고, 옵셋 인쇄 건너편에는 리소 인쇄가 있고,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케이터링 건너편에 홈그라운드의 케이터링이 있고, 망가지면 폐기되던 책 건너편에는 손으로 수선해 재활용하는 책이 있다.

전자는 지금까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누리던 대량 생산, 대량 소비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소량 생산, 소량 소비와 연결된다. 후자에서 추구하는 소량 생산과 소량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서 이야기하려는 ‘힙스터’다.

힙스터의 원류는
최근 사람들 입에서 ‘힙스터’나 ‘힙하다’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지만 힙스터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힙스터는 1940년대 미국 재즈 팬을 지칭하는 ‘힙(hip)’에서 나왔다는 것이 통설이며 유래를 이야기할 때 그 모태가 되는 것으로 많은 사람이 비트 세대를 꼽는다. 비트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과도한 자본주의가 인간 정신을 파괴하고 사회적 평등에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소비 중심 문화를 반대하며 부모 세대의 혐오감에 맞서 싸운 카운터컬처 문화다.

이후 비트 세대의 이러한 정신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외치던 1960년대 말의 히피 세대를 지나 히피 세대의 자녀인 힙스터 세대로 이어졌다. 전 세계 모든 젊은이의 선망의 도시인 미국 뉴욕에서는 1990년대부터 맨해튼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서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이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로 이주했다. 그들은 주로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업계에서 종사하는 20~30대 젊은이들로 사상적으로는 독립적인 가치와 생각을 중요시하며,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지녔고, 자연 친화적이며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고, 비주류 예술을 지지했다.

그때까지 이들을 특별히 가리키는 말은 없었으나, 윌리엄스버그에 살던 로버트 랜햄이 2004년에 <힙스터 핸드북(The Hipster Handbook)>이라는 책을 발표한 이후로 ‘힙스터’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미국의 문화 평론가들이 힙스터에 대한 논의를 내놓았고 그들은 대체로 뉴욕의 젊은 힙스터는 ‘문화적 자본’을 갖고 있으며 그 자본을 다른 계층과 차별을 두기 위해 사용한다고 했다. 문화적 자본이란 그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쌓아올린 남과 다른 자신만의 취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힙스터가 물건을 선택할 때 가장 고려하는 것은 가격이나 양이 아니고 질이며, 누가 만든 것인지 생산지가 어디인지를 따지며, 명품보다는 싸면서도 대량 생산된 상품보다는 비싸서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갈 수 있는 적절한 가격의 물건을 소비한다. 남과 다른 소비생활을 지향하던 힙스터들은 어느새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고, 같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며 비슷한 소비 성향을 보이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생활양식의 선택 기호가 그들만의 계급 지표를 보여주게 됐다.

그들이 문화적 자본을 이용해 이룩한 취향과 기호는 다른 계급에 이질적이면서 위화감을 주었고 힙스터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유형의 재화와 무형의 문화를 소비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한 집단의 획일적인 소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서 선택한 힙스터의 라이프스타일이 결국에는 힙스터끼리 서로 비슷해지면서 비웃음을 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힙스터가 보여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전 세계 젊은이에게로 퍼져 나갔다.

한국의 힙스터, 왜 주목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2009년부터 패션 잡지를 통해 힙스터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기 시작해 2011년에 처음으로 힙스터에 관한 책 <힙스터에 주의하라>가 출간됐다. 이 책이 나왔을 무렵은 아직 힙스터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해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2014년 홍대를 비롯한 이태원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심해지고, 소설가 김사과가 2011년 프레시안에 기고한 이 책의 리뷰 ‘홍대 앞 좀먹은 힙스터들, 다음 타깃은 이태원?’이 알려지면서 힙스터라는 말이 여러 곳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김사과는 “힙스터는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최신 유행의 자본주의를 소비하는 젊은이며, 힙스터는 삶의 모든 영역을 소비자로서 대하고 결국엔 삶의 모든 영역이 패션이 돼 버리고, 새로운 패션을 위해서 현실을 액세서리로 만든다”고 했다. 그가 말한 힙스터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생각하는 힙스터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힙스터는 그의 말대로 소비를 통해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국내로 들여왔다. 인터넷을 통해 영화, 책, 드라마, 음악, 디자인 같은 예술문화와 운송 산업의 발달로 맥주, 식품, 옷, 액세서리 같은 물질재화는 물론이고 한창 유행 중인 인더스트리얼 혹은 빈티지 인테리어도 국내에 들여왔다. 한국의 힙스터는 서로 비슷한 예술문화를 즐기고, 비슷한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먹고 마시고, 비슷한 패션을 추구하며 점점 더 비슷해졌지만, 그들이 SNS에 올리는 사진들은 쿨했다. 패션 잡지에서는 연예인이나 성공한 자영업자 혹은 패션이나 음악 관련 종사자 중 그러한 사람들을 소개하며 ‘힙스터’, ‘힙하다’라는 말을 사용했고 힙스터의 이미지는 ‘잘 노는 젊은이’라는 이미지로 대중에게 인식됐다.

사람들에게 힙스터가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렌지족, X세대처럼 잘 놀고 쿨한 요즘 애들 무리를 지칭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들이 힙스터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그들만의 획일적인 소비는 SNS를 통해 널리 퍼져나갔고, 부정적인 인식이 굳어져 갔다.

왜냐하면 힙스터를 이야기할 때 힙스터가 소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주체성이 없어 보이는 소비집단 힙스터를 비웃고 놀리는 데 정신이 팔려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힙스터는 단순히 새로 생긴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기획 전시회에 가서 멋져 보이는 옷을 입고 수천 장의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리는 젊은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없고 그들이 하는 일이 모두 경제성이나 생산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유흥문화의 하나로 취급할 뿐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특히 힙스터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서 소비하는 형태를 비웃었다.

힙스터를 비웃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들이 즐기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힙스터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드는 사람이 바로 힙스터이기 때문이다.

힙스터가 좋아하는 것들을 살펴보면 힙스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앞에서 예를 든 힙스터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하는 일들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 눈에 띄는 일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심지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을 행동으로 가져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힙스터는 남과 다른 것을 즐기기 때문에 실천력이 남다르다. 물론 그들이 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현재 힙스터가 여기저기에서 만들고 있는 작은 변화가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계속 새로운 것을 제안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들 중에 분명 좋은 것이 있다. 새롭고 좋은 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힙스터다. 개개인이 좋아하는 것과 취향에 맞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직접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일들이 여러 분야에서 많이 이루어지면 이루어질수록 우리의 생활이 좀 더 풍부해질 것은 확실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고 비주류를 찾는 힙스터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겠지만, 그런 그들을 인정하고 응원한다면 우리의 생활이 좀 더 풍부해질 것이다.
힙스터, 자신의 취향을 쌓아 올리다
문희언 대표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일본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출판편집기획자로 다수의 인기 서적을 기획했으며, 독립출판사 ‘여름의 숲’을 차려 특히,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힙스터’를 탐구 중이다. <힙한 생활 혁명>의 역자이며 <후 이즈 힙스터?>의 저자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