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개인 취향 시대 힙하게 핫하게

[한경 머니=이현주 기자 | 사진 김기남 기자] 힙스터와 스몰 브랜드를 주제로 전문가 3인이 좌담을 열었다. 비주류로 취급받던 것들이 주류로 떠오르게 된 배경과 성공 노하우는 뭘까.
“힙하다는 건 자기다움의 표현이죠”
전문가 좌담 참석자 명단
염재승 텀블벅(크라우드 펀딩) 대표
차상우 더.워터멜론 대표·전 인터브랜드 컨설턴트, <창업가의 브랜딩> 저자
문희언 여름의 숲 대표·<후 이즈 힙스터> 저자·<힙한 생활 혁명> 역자


이현주 한경 머니 기자(이하 이 기자) 먼저, 힙스터가 주목받는 이유랄까요. 비주류의 주류화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문희언 여름의 숲 대표(이하 문 대표) 미국에서 왜 힙스터 문화가 꽃피었는지를 보면 젊은 친구들의 각성이 있습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그리고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큰 배경이죠. 엘리트들이 대거 실직을 했고 그 후로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가 나오면서 또 다른 인생의 롤모델들이 등장했는데, 포틀랜드에서 킨포크 잡지가 성공한 것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문과 출신으로도 이렇게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 자연친화적인 라이프스타일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번지면서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이죠. 한국의 힙스터 문화는 인터넷을 초창기에 접하고 어학연수나 유학을 다녀온 지금의 30대를 중심으로 퍼졌습니다. 또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20대들도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한 인생이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취업하고, 결혼을 해서 30평대 아파트를 사는 것이었거든요. 딱 거기까지, 그다음 인생은 생각하지 않았죠. 우스갯소리로 퇴직하면 치킨집이나 차리겠다고 말하죠. 그리고 자기 인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런 인생이 또 재미없게 느껴지고요.

차상우 더.워터멜론 대표(이하 차 대표) 힙스터라는 용어가 1940년대 미국에서 대중문화에 반대되는 것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번지기 시작했어요. 대중적인 흐름이나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친구들을 힙스터라 불렀다면 이제는 그 유행을 따라가지 않는 게 유행이 되는 트렌드가 됐다는 지점이 재밌는 것 같아요. 또 하나 살펴볼 건 한국에서 힙하다는 단어는 진짜 많이 쓰는 데 비해 힙스터라는 용어는 많이 안 쓴다는 거예요. 이미 힙하다는 단어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한 것이고, 브랜드 관점에서 볼 때는 힙스터 자리를 선점한 다른 용어가 있는 것으로 보여요. 그건 바로 ‘자기다움’이라는 표현이에요. 나만의 정체성과 다른 사람과의 차별점을 강조하면서 자기다움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고 굳이 힙스터라는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자기다움을 찾으면 힙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죠. 그럼 왜 많은 사람들이 자기다움을 이야기할까. 사회경제적 맥락에서 보면 세대 간의 차이가 배경으로 보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는 한 직장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이후에는 연금을 받으면서 살 수 있었어요. 즉, 조직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자 나를 희생해서 조직에 모든 에너지를 투여하면 그 과실이 나와 가족에게 돌아오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경제 위기가 오면서 그 평생직장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마흔 살에도 쫓겨날 수 있고, 그렇다면 아직 초등학생, 중학생인 자녀들은 무엇을 해서 먹여 살려야 할까. 이러한 위기감을 처음으로 느끼게 된 거예요.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똑같아선 살 수 없어. 대기업에 있더라도 남과 달라야 해.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봐야지’라는 생각에 이른 게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불을 지핀 건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열풍이죠. 퇴근 이후 제2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서 각종 소모임들에 참여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회사가 아닌 회사 이후의 삶에서 찾기 시작하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려서 ‘좋아요’를 받는 것도 중요하고, 다시 말하면 회사에서 돈은 벌지만 실제 삶은 다른 데서 찾는 이원화 구조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게 결국 자기다움을 소구하는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

염재승 텀블벅 대표(이하 염 대표) 테크놀로지의 발달을 중요하게 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10년 전 영화학도일 때 체감한 변화입니다. 당시 영화를 제작하거나 소비하는 방식이 급변하던 시기였는데, 고가의 필름을 쓰지 않아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생겼고 소비 매체로도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우리가 만든 영상과 비디오를 보여줄 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주변의 친구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이유에서 크라우드 펀딩, 텀블벅을 시작하게 됐어요. 실제로 이런 현상들이 영화뿐만 아니라 출판, 음악 거의 모든 창작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운 좋게 목격해 온 것 같습니다.

이 기자 힙스터 혹은 힙하다라고 했을 때 갖는 특징들이 있을까요.
문 대표
2008~2009년 우리나라에서도 인디밴드들이 홍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힙스터라는 말을 자주 쓰기 시작했어요. 거의 죽은 동네나 다름없던 홍대에 젊은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인근에 1인 카페나 식당이 늘어났는데 홍대 인디신에서 뮤지션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 사람들이 힙스터 문화를 선도했다고 봐요.

염 대표 힙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인 것 같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다닐 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밴드를 좋아했어요. 주류 음악을 안 좋아했죠.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가요를 좋아하는 게 힙하게 느껴지죠. 구별 짓고 싶은 욕구의 발현인 것 같아요. 최근 ‘벤쯔’와 같이 ‘먹방(먹는 방송)’을 찍는 유튜브 스타들이 많은데 저는 그 사람들이 힙하다고 생각해요. 방청객 한 명에서 시작해 꿋꿋하게 여기까지 와서 지금은 공중파에도 나오고 있잖아요.

차 대표 나 자신이 속한 생태계 안에서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른 희귀하고 희소한 것을 추구할 때 힙하다는 얘기를 하는데, 여기서 힙한 것과 이상한 것의 차이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힙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매력이 있어야 해요. 희소한 데 배우고 싶은 부분이 없다면 그냥 이상한 거죠.

이 기자 독립 가게가 늘고 있고, 또 온라인 플랫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도 많습니다. 최근 주목해서 본 사례가 있을까요.

문 대표 트위터에서 ‘밀레니얼 아카이브’라는 계정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를 꼽고 싶어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아이디어가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전 세계에서 빈티지 옷을 수천 벌을 수입해요. 그리고 비어 있는 공간들을 보증금 없이 싸게 빌려서 옷들을 행거에 걸어 놓고 판매하는데 물론 가격은 5000원, 1만 원씩 저렴하죠. 분기별로 장을 열어서 원피스, 바지, 셔츠 이런 식으로 한 아이템씩 판매하는데 반응이 엄청납니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동네에서 열어도 입장하기 위해 번호표를 받아야 하고 12시 오픈인데 9시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요. 또 리소 인쇄 방식으로 포스터도 만들고 친구들끼리 플리마켓도 열고 있어요. 요즘 힙스터들은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게 또 특징인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한 가지 일만 해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플리마켓이나 페어(fair)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에서 ‘띵굴마님’으로 유명한 이혜선 님의 플리마켓이 정말 성공적이라고 생각하고, 특히 독립출판계에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개인 창작자가 지명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든요. 저 개인적으도 올해 상반기에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맞춰서 출간을 했을 정도예요. 이러한 페어가 언더나 마이너 문화를 살리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 대표 띵굴마님이 여는 띵굴마켓은 각각의 개인 브랜드들을 알리는 채널로 공헌을 했고 전국의 많은 지역을 돌면서 대단히 성공을 했죠. 그 외에도 다양한 페어들이 열리는데,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본질적인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특유의 개성과 힙함을 어느 규모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한 거예요. 페어들이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대중화된 형태로 힙한 문화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는 게 딜레마죠. 최근에 OTD라는 셀렉트 다이닝 업체에서 띵굴마님과 합작법인으로 성수동에 ‘성수연방’이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는데요. 과연 상설매장이 생겼을 때 ‘희소성’으로 대변되는 힙함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입장에서도 궁금합니다.

이 기자 힙스터가 젊은 창작자들이나 밀레니얼 세대에게만 유효한 키워드일까요. 중년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차 대표 힙하다는 단어가 10, 20대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은 40대 사람들도 스스로 힙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이에 관계없이 그 나이 또래와 차별되는 나만의 것을 한다면 힙한 것이겠죠. 브랜드 조사 설계를 할 때에도 과거에는 단순히 40세 이상으로 잡았다면 점차 조사 설계 타깃이 세분되고 있긴 합니다. 실제로 퇴근 후 디제잉을 배우거나 레고에 집중하는 중년들이 늘고 있잖아요.

이 기자 브랜드 관점에서 힙한 문화를 들여다보면, 어떤 소구 포인트가 있습니까.

차 대표
스몰 브랜드가 최근 인기를 끄는 이유는 비즈니스적으로 리스크가 적어서라고 봅니다. 브랜드가 영속하기 위한 조건 중 ‘일관성’과 ‘진정성’이 중요한데, 메가 브랜드에 비해 스몰 브랜드는 단일 채널을 통해 일관되게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부분이 있어요. 오프라인 매장 하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 하나를 운영한다면 단 한 명의 핵심 타깃이라 하더라도 일관된 모습이 전달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거죠. 예전에 메가 브랜드라 하면 ‘멜팅 포트’ 같았어요. 보글보글 끓는 솥에 이것저것 다 넣고 섞어서 하나의 맛이 나게 하는 전략이죠. 스몰 브랜드는 ‘샐러드 볼’에 비유할 수 있어요. 그 안에 야채나 치즈, 견과류 등이 다 각각의 맛을 내는데 샐러드 볼 자체로도 포괄적인 맛이 느껴져요. 각각의 개성을 추구하면서 사업의 규모도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텀블벅이 인기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염 대표 적은 채널에서 소통하는 게 훨씬 더 임팩트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텀블벅 펀딩 사례 가운데 무대 의상을 전공한 두 명의 친구들이 겨울 옷 한텐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300만 원으로 시작해서 시즌마다 펀딩을 하며 최근에는 1억5000만 원 이상이 모였어요. 작게 시작했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가면서 진화하다 보니 그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거죠. 자신의 팬덤, 슈퍼 팬을 만드는 기술이 중요한 것 같은데, 핵심은 신뢰인 것 같아요. 또 자신의 본질을 전달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져야 하죠.
차 대표 두 가지 포인트를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왜 나여야만 하는가’ 이 두 가지 차원에서 진정성을 만들고 일관되게 전달한다면 팬덤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이 기자 힙스터로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독립 가게를 한다는 게 멋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생계가 유지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들도 있습니다. 조언 한 말씀 부탁합니다.

문 대표
그래서 젊은 힙스터들은 많은 경우 한 가지 일만 하진 않습니다. 저도 독립출판을 하지만, 평소에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낙담하기에는 잘된 사례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요. 그래서 그 롤모델을 보면서 젊은 친구들이 계속 따라 들어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염 대표 텀블벅 자체가 일회성 프로젝트로 시작한 거였어요.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스물세 살 때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그때는 비즈니스로 지속한다는 생각을 아예 못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생기면서 점차 할 일이 많아지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처음엔 우스갯소리로 한 달에 100만 원이 모이면 잘된 거라는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프로젝트 하나에 10억 원이 넘어가는 것도 있고 연간 400억 원 이상이 모이거든요. 제가 속한 밀레니얼 세대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게 ‘얼마나 잘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정말 흥분시킬 수 있는 주제인가를 찾는 게 중요하고, 그것에 몰두해서 일을 하다 보면 70억 인구 중에 비슷한 공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의 반응의 차원은 분명 다를 것이라고 봅니다.

문 대표 출판 시장을 놓고 보면, 분명 비주류의 주류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비주류와 주류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어요. 대형 출판사뿐만 아니라 독립출판사의 책들도 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봅니다. <언어의 온도>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은 책들이 1위를 차지하기도 하죠. 업계에서도 향후 10년 후에는 대형 출판사와 5인 미만의 소형 출판사로 양극화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해요. 사람들이 책을 고를 때 명작은 큰 출판사의 것을 찾을 수 있지만 필요해서 읽고 싶은 책을 살 때는 굳이 출판사 이름을 보지 않고 ‘이 책 재밌겠다’로 선택하거든요. 출판계가 이미 이렇게 변했기 때문에 다른 업계도 이렇게 비슷해지지 않을까요. 특히 창작이 들어가는 업계라면 더욱 그렇다고 봅니다. 이미 호텔업계는 영향을 받고 있고요. 미국 포틀랜드의 에이스 호텔 이후 전 세계의 부티크 호텔이 각광을 받았고, 최근 홍대에서도 부티크 호텔 거리가 생겼잖아요. 서점이나 카페, 술집 등이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고 접근이 쉽기 때문에 먼저 눈에 띄는 것이고 유통이나 제조 쪽으로 그 흐름이 넘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0호(2018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