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당신을 위한 위로와 치유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2018년 한 해의 끝자락에서 위로와 치유가 절실한 이들은 누구일까. 정신건강 관련 주요 지표들의 위험 신호는 ‘흔들리는 중년’을 주목한다.
웃지만 울고 있는 중년, 정말 괜찮나
당신의 멘탈은 괜찮습니까?

“등대지기 같아요. 미래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혼자 생각할 때가 많아요. 몇 년 전부터는 지방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상대하는 사람들이 주로 밑에 직원들이나 거래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주로 혼자 고민해야 해요.”
기술용역기업 상무, 50세


“집에선 늘 인자하게 웃고 있죠. 애들 보면서 흐뭇해하고, 야단치는 거 전혀 없어요. 그런데 그게 서먹해서 그래요. 몇 마디를 하고 나면 서로 할 얘기가 없거든요.”
관광 관련 기업 상무, 54세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지난해 발간한 저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진심>을 통해서 직장인 1000명을 설문조사하고, 관리직급 40~50대 직장인 3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들여다본 40~50대 중년의 속마음은 한 마디로 ‘결의가 깃든 외로움’이었다고 연구소 측은 정의했다.

직장에 속해 있으나 정작 자신의 미래는 홀로 책임져야 하는, 집에서는 잔소리만 해대는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애써 웃는 외로운 배우자이자 자식이자 부모. 그러면서도 개성을 상실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독을 느끼는 자아. 대한민국 중년의 자화상은 비장하고 처연했다. 연구소는 “40~50대 중년들의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켜졌다면, 우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봐야 할 시점”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왜 중년엔 심리적으로 바닥에 이르는가

#1. 중견기업 간부인 K씨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실적에 대한 미련에 새해 목표에 대한 부담감, 불안한 인사 등에 가슴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갑갑함을 느낀다. K씨는 “한 해가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보람보다는 불안한 앞날에 대한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고 토로했다.

#2. 치매 노모를 부양하는 L씨. 퇴직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앞날을 준비할 여력은 없다. 자녀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마땅한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부모의 얘기를 잔소리로만 듣는 통에 갈등을 겪고 있다. L씨는 “요즘은 자녀에게 우리가 그러했듯 부양까지 바라지는 않는데, 과거처럼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마음까지 더 힘들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18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자살자 수는 40~50대에서 최대였다. 40~50대의 경우 하루 평균 7~8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국의 중년은 왜 이토록 신음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위 세대를 책임지고 아래 세대에 도전받는 ‘낀 세대’의 부담에 주목한다. 부모와 자녀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과 불안한 앞날에 대한 정신적 문제가 공존한다.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41~50세는 경제적 문제, 51~60세 정신적 문제가 세상을 등진 주요 원인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조울증 관련 진료 인원 3명 중 1명 이상이 40~50대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비율이 높았다. 김진세 고려제일신경정신과 원장은 “젊은 사람들의 우울증은 주로 감정적인 변화가 많다면,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육체적 증상(지침, 피로 등)과 인지적 증상(건망증 등)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장년의 경우 여전히 우울증과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도 많아 치료도 늦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웃지만 울고 있는 중년, 정말 괜찮나
삶을 리커넥트하라

‘사추기(思秋期)’라고도 불리는 중년기는 팍팍한 일상에서 그동안 지나쳐 왔던 ‘나’와의 진지한 만남을 요구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흔이 되면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진정한 당신이 되라는 내면의 신호다”는 카를 융의 당부처럼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열어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중년 세대는 달리 스트레스를 해소할 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앞만 보고 경쟁하며 숨 가쁘게 달려 왔다”며 “인생의 전환점에 선 중년은 이제 삶의 질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의무와 희생, 책임이 주로 강조되는 역할을 일부 내려놓고, 자기만의 취미나 가족과의 유대관계에 더 관심을 기울여보라는 당부다.

실제 우리나라 중년들이 롤러코스터 같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유대관계에 뿌리를 둔다. 무엇보다 가족, 그중에서도 배우자는 영향이 가장 컸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중년들에게 ‘현재 가장 큰 위로를 주는 대상’으로는 배우자(44.7%)가 첫손에 꼽혔다. 자녀(20.5%), 부모(10.4%), 친구(7.4%), 지인(3.8%)의 위로를 압도한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은 대상’ 역시 배우자가 63.6%에 이를 정도로 단연 으뜸이었다.

가족과 같은 긴밀한 유대 못지않게 느슨한 유대도 중년의 행복에 중요 요소다. 연구소는 이른바 ‘3-2-1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언제든 그 자리에서 맞아주는 친구 3명, 휴식과 활력을 주는 커뮤니티 2개, 여럿이 함께 가는 기쁨을 주는 기부 1회를 실천해보라는 것이다. 비단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커뮤니티를 만든다기보다 재연결(reconnect)을 시도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는 관점이다.

개인적 변화와 성찰을 넘어 사회의 질적 수준도 함께 향상돼야 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년층이 정신건강 면에서 취약하다면 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사회적 환경에서도 개선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봤다.

윤 교수는 “불안정한 고용이나 노후의 불안 문제 등을 고스란히 개인이 짊어져야 한다면 중년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며 “복지 제도의 확충을 다각적으로 챙겨볼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웃지만 울고 있는 중년, 정말 괜찮나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3호(2018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