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가정도 ‘목표항구’가 없으면 표류한다
[한경 머니 = 엄정희 서울사이버대 가족상담학과 교수·연합가족상담연구소장]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행복해야 한다. 세계 46개국이 참여한 4차례에 걸친 종단적 연구(세계가치관 조사)에서 ‘행복을 이끄는 빅7’이 발표됐다. 가족은 단연 1위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땅의 많은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영국 런던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대형 화재, 런던 텐더데일 화재 시 모든 이가 살려고 호텔 밖으로 튀어나오느라 아비규환이었다. 그런데 유독 한 여인만이 미친 듯 불붙는 호텔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 안에 어린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흡사한 경험이 있다.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아들, 생명보다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죽음이 삶보다 1~2배 아니고 7~8배 쉬워서 죽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었다. 살 수가 없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졸도를 해 119구급차에 실려 가게 된 것이다. 이때 다섯 살 어린 딸도 119구급차에 함께 타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의식이 들어 ‘다섯 살 어린 딸이 엄마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애원하며 울부짖는데 눈 뜨고는 못 보겠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그때부터 어떻게든 살아보겠노라 다짐하며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르게 먹기 시작했다. 그랬다. 가족은 생사여탈의 힘을 갖고 있다.

생명을 대신 내어줄 만큼 사랑하는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삶이다. 사랑받는 사람은 물론이고 생명보다 더 사랑하는 사랑의 대상이 있는 그 사람도 엔도르핀이 매일 샘솟는 삶을 살게 된다.

목적지가 있는 ‘가족 항해는 행복하다’

미국의 한 신문사에서 현상금을 걸고 퀴즈를 내었다. 가장 빨리 여행지에 도착하는 길은 무엇일까? 상을 받은 답은 “가족과 함께 간다면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다”였다. 과연 가족이란 무엇이라 정의해볼 수 있을까?

우리네 인간이 운명적으로 덧입게 된 원초적 고독, 이 실존적 고독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 가정이다. 아파치 인디언 추장은 결혼하는 신랑신부에게 “이제 너희 둘은 더 이상 비 맞지 않으리. 더 이상 추워하지 않으리”라는 결혼 축시를 읽어준다고 한다. 마틴 부버는 인생은 만남이라 했는데 가정에서는 우리의 관계가 사물과 사물과의 만남(ich und es)이 아니라 너와 나(ich und du)의 만남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추운 겨울 난로 앞에서 손을 굽어가며 따뜻한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었던 난로, 그것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무너지는 가정을 위해 홈빌더의 꿈을 꾸며, 또한 비전을 못 만나 힘들어하는 청소년을 위해 비전빌더의 꿈을 꾸며, 힘들어하는 어르신을 위해 실버빌더의 꿈을 꾸며 재능기부 무료상담소를 설립했다.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새 한 마리 다시 나무 위에 올려줄 수 있다면 내 삶은 헛되지 않으리’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구를 가슴에 품으며 죽을 만큼 힘들어하는 내담자를 만나면서 매일매일 임상에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느끼며 배우고 있다.
신이 내려주신 최고의 선물인 가정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던 중 수많은 임상 결과로 깨달음을 얻게 됐다. 가족 항해가 아무리 난항이라도

‘목표항구’가 있다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순항이라도 목표항구가 없다면 표류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꿈을 꾸며 10여 년 전부터 출강하는 대학의 학생들에게 ‘우리 집 비전선언문’이라는 과제를 내곤 했다. 비전은 각 개인에게도 중요하겠지만 개인이 모인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가족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선언(宣言)과 같은 공개적으로 알리는 말을 선언문(宣言文)처럼 문서로 만든다는 것은 결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자신과의 약속을 타인에게도 알리며 타인과 약속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언문을 볼 때마다 계약서를 볼 때처럼 지키려는 마음이 환기되고, 결국 그 마음이 행동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반복적으로 접하는 말과 글이 개인의 자동적인 생각(automatic thinking)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가족의 비전선언문은 가족 구성원들의 마음과 행동에 깊이 파고들어 영향을 줄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도 시선을 가족에게로 돌리게 해주며 위기를 경험하는 가족에게 힘이 되길 소망한다.

엄정희 교수는…
대학에서 가족학을 강의하는 가족학자로서, 홈빌더의 꿈을 품고 설립한 연합가족상담연구소에서 10대부터 80대까지의 내담자들의 가족 문제를 매일매일 다루는 가족 문제 임상가로서 또한 결혼 45년 차의 주부로서, 이 시대에 ‘왜 가족인가’를 함께 얘기하고자 한다. 무너져 가는 이 땅의 가정을 세우는 데 미력하나마 돕고 싶어서 건강한 가족을 꿈꾸며 <17일간의 부부항해>, <가족의 사계>를 집필했으며, 최근에는 모든 가족이 비전선언문을 가지고 있으면 건강한 가족 항해를 할 수 있음을 임상에서 절실히 느끼고 <우리 집 비전선언문>을 집필, 모든 가족 비전선언문 갖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 가족 비전선언문 만들기 우수 사례]

+-×÷ 가족
김미영

+ 날마다 서로에게 “사랑해”라는
사랑의 언어를 더하고
서로의 단점은 살짝 빼고
× 세워주는 말과 서로 칭찬하는 것은
두 배로 곱하고
÷ 힘들 때 서로를 신뢰함으로 함께 나누어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우리 가정을 만들자

아나바다
지승호

아껴주자
서로를 아껴주자. 원석을 가꾸어 보석을 만드는 것처럼
서로를 아끼어 보석이 되는 삶을 살아보자 (중략)

나누자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가까이서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삶을 살자 (중략)

바라보자
부부는 한 방향을 함께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서로의 장점만을 바라보려 노력하면 싸울 일도 없으니
서로의 단점을 찾더라도 보완해주며
서로의 좋은 점만 찾으며 살자

다름을 인정하자
수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살자
서로의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서로의 마음은 같음을 잊지 말고
각자의 감정보다는 약속한 미래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삶에 집중하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