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우리나라에서 상속 관련 소송 건수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이 중 세간의 화제가 됐던 판례를 통해 세대 간, 가족 간 갈등을 정리해봤다.
[big story]상속 관련 판례로 본 세대유감
우리나라에서도 상속·증여 이슈가 재벌 등 특정 계급에만 준한 것이 아니라 점점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 고민’으로 퍼져 가고 있다. 실제로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끼리 상속재산을 두고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최근 9년간 약 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상속재산 분할청구 접수 건수는 2008년 279건에서 2016년 1223건으로 증가했다.

특히 효도 계약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도 적잖이 발생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15년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5. 12. 10.선고 2015다236141)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2003년 12월 A씨는 아들에게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옥촌에 위치한 시가 20억 원 상당의 2층 단독주택을 물려주며 ‘효도 각서’를 받았다. 같은 집에 살며 부모를 잘 봉양하고 제대로 모시지 않으면 재산을 모두 되돌려 받겠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집 외에도 아들의 빚을 갚아주고 아들 회사를 위해 자신의 부동산을 내놓는 등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재산을 물려받은 후 아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아들은 같은 주택의 2층에 살고 있는 A씨 부부를 자주 찾아가지 않았고, 어머니가 건강이 악화됐는데도 “요양원에 가시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실망한 A씨는 따로 나가 살겠다며 집을 다시 돌려달라고 하자 아들은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아파트가 왜 필요하냐, 맘대로 한번 해보시지”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결국 A씨는 아들을 상대로 부동산 소유권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A씨가 부동산을 넘긴 행위는 단순증여가 아니라 (효도라는) 의무 이행을 전제로 한 ‘부담부(負擔附)증여’로 조건을 불이행하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민경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 사건은 부모가 자식에게 증여를 하면서 부양의무를 내용으로 하는 조건을 붙인 ‘부담부(조건부)증여’를 한 경우인데, 자식이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증여자인 부모는 증여 계약을 해제해 당초 증여했던 재산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음을 확인한 사례다”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재산 승계 시 부모와 자식 간, 자식과 자식 간, 그리고 세무당국과의 분쟁 등 갈등 요인이 발생하는데, 생각보다 그 갈등의 골이 깊은 경우가 많다”며 “이런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증여, 유언, 신탁 등 재산 승계에 관한 고려사항을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효도계약서는 단순증여가 아니라 효도라는 의무이행을 전제로 한 부담부증여 계약이다. 민법은 증여 계약의 무상성을 고려해 증여 계약에 특수한 해제 사유들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중 자녀가 재산을 물려받은 뒤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경우와 관련해 민법 제556조에서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한 부양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때 증여 계약을 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령, 부모가 자녀에게 매년 5회 이상 부모 집 방문, 입원 시 병원비 지급 등의 효도를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준다. 따라서 증여를 고려한다면 효도 계약을 준비하는 것도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대해 안전한 대응책이 될 수 있다.

평생 배우자 사전증여
‘배우자 상속 지위 개선 논쟁’도 수년째 식지 않고 있다. 이 사안이 뜨겁게 떠오른 이유는 무엇보다 고령화와 관련이 깊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부부가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기간이 과거에 비해 늘었고, 자녀와 동거하지 않고 부부만 따로 사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겨진 배우자와 자녀들 사이 적잖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B씨와 C씨는 죽음이 둘을 갈라놓기 전까지 43년 4개월 남짓 혼인생활을 유지해 온 부부다. 둘 사이에는 딸 D와 아들 E를 두고 있었는데 C씨는 사망 7년 전에 아내인 B씨에게 부동산 사전증여를 했다. 이에 대해 자식들이 어머니가 사전증여 받은 부동산은 특별이익이라며,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사실 증여는 원칙적으로 상속 개시 전 1년간 행한 것에 한해 가산하는데 피상속인이 공동상속인에게 증여한 것은 기간 제한 없이 모두 산입된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의 원칙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원심도 이를 따라 통상의 부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속재산을 미리 준 것이라며 특별이익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어떤 사전증여가 특별이익에 해당하는지는 피상속인의 생전 자산, 수입, 생활수준, 가정 상황 등을 참작하고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형평을 고려해 그 사전증여가 장차 상속인이 될 자에게 돌아갈 상속재산 중 그의 몫 일부를 미리 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해야 한다”며 “원심 판결에는 배우자의 특별이익에 관한 법리 오해가 있다”고 봤다.

이어 재판부는 “C씨가 부동산을 B씨에게 사전증여 한 데에는 B씨가 C씨의 처로서 평생을 함께하면서 재산을 형성·유지하는 과정에서 기울인 노력과 기여에 대한 보상 내지 평가, 청산, 부양의무 이행 등의 취지가 포함돼 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고, 이를 반드시 공동상속인 중 1인에 지나지 않는 C씨에 대한 상속분의 선급이라고 볼 것만은 아니다”라며 원심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대법원 2011. 12. 8. 선고 2010다66644).

배인구 로고스 변호사는 “이 같은 판시가 있었다고 해서 배우자가 피상속인으로부터 받은 부동산에서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현행 제도와 별개로 생존배우자가 계속해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웃 일본은 2018년 7월 6일 ‘상속법’을 개정했는데 이 법에 의해 비로소 상속에서 혼인 외의 자녀와 혼인 중 자녀의 차별을 없앴다. 그런데 이렇게 상속분이 개정됨으로써 혼인 외의 자녀가 생존배우자를 종전 주거지에서 축출할 수도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배우자의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 결과로 우선 상속재산을 분할할 때까지는 동일한 거주지에서 거주할 수 있는 단기거주권을 보장하는 방법과 상속재산 분할 종료 후에도 장기적인 거주권을 보호할 방안이 마련됐다.

증여로 본 세대 간 분쟁
인기리에 방영된 막장드라마마다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바로 출생의 비밀과 불륜, 그리고 상속 분쟁이다. 사람들은 으레 “저게 현실에서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혀를 차기도 하지만 오히려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 잔혹하게 발생하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 한평생 희생하며 살아온 어머니가 적지 않은 상속재산을 남기고 사망하자, 가족을 돌보기는커녕, 폭력을 일삼았던 아버지가 아들 F씨를 배제한 채 딸과 함께 상속재산을 분할해 가졌다. 아버지는 이를 숨기기 위해 F씨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려 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자 F씨가 아버지를 상대로 어머니의 상속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소송을 했다.

소송 과정에서 법원의 조정권고에 따라 아버지와 F씨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빌딩의 지분을 F씨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F씨가 자신의 점포 임차권을 아버지에게 넘기도록 하는 조정이 이뤄졌다. 당시 아들에 대한 위자료 명목으로 아들에게 귀속된 빌딩 지분이 좀 더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빌딩 지분 양도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미납했던 관계로 국세청의 조사를 받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빌딩 지분을 아들에게 양도한 것이 아니라 증여했다고 주장한 것. 국세청은 이를 믿고 아들에게 증여세를 부과했다. 분노한 아들 F씨는 자신에게 부과된 증여세에 대해 소송을 냈고, 조세심판원은 아버지의 빌딩 지분 이전은 F씨에 대한 위자료 지급과 관련된 교환으로 증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해 아들의 억울함을 덜어줬다(조세심판원 2015중1143 결정).

가족의 변화, 유류분 갈등↑

가족 간 갈등은 유류분 전쟁에서 극에 달한다. 유류분은 균등한 상속재산 분배라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가족 간 재산 분쟁의 하나인 유류분반환청구는 2005년 158건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 911건으로 5.8배가 넘게 늘어났고 소송까지 진행되지 않은 분쟁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자식들 간 재산 다툼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혼과 재혼 등 가족 형태는 다양해지는데 부모들은 유류분 비율대로 재산을 배분하지 않아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기도 한다.

특히 재혼이 늘면서 전처와 이혼 후 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에 대한 재산 분배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비단, 과거에는 계모가 사망한 경우 계모자 관계에 따른 상속이 가능했다. 그런데 1991년 민법이 개정된 이후로 계모자 간의 상속은 인정되지 않게 됐다. 아무리 계모이지만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정말로 부모처럼 모셨는데 상속이 되지 않는다면 적잖이 억울한 측면도 있을 터다.

물론 이 경우 입양을 해서 계모의 양자가 돼 상속을 받을 수 있지만 또다시 파혼할 경우 그 경우의 수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이처럼 세대와 가족 구성의 급격한 변화는 상속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치열하게 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령의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