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배정식 KEB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시대가 변하면서 세대 간 갈등의 모습도 변모하고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상속을 둘러싼 가족 간 세대별 시각 차이는 어떤 모습일까. 또한 이러한 고민거리들을 어떤 제도를 통해 풀어낼 수 있을까.
[big story]세대유감 상속, ‘신탁’으로 푼다
한국 경제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다. 복지국가 선진국을 꿈꾸는 정도가 됐다. 2018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11위 수준이니 말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 간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 가며 사람들의 정신적 여유로움이 엷어지고 있다. 돈과 관련된 개인들의 갈등은 늘고 엷어지는 여유로움에 비례해 그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간다.

여기에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이 흔들리고, 세대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소위 ‘막장드라마’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대립하게 됐으며, 어떤 제도들이 이러한 사회적 난제의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올해도 어버이날을 맞아 어머님을 모시고 형과 누나네 식구들과 저녁식사 모임을 다녀온 김남호(가명) 씨. 예기치 않은 일로 형제들과 돈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다 보니 저녁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살고 계시는 어머니. 80대 중반이지만 비교적 건강하셨는데, 지난해 검진에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저녁 자리에서 형은 어머니께 경기가 어려우니 사업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 씨와 누나는 어머니 건강도 좋지 않은데 어머니 노후를 걱정해야 한다며 작은 신경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머니 집으로 들어와 모시겠다는 형의 의도가 과연 진정성이 있는 건지 마음에 걸린다.

김 씨는 형의 개인 형편이 더 나아지지 않으면 어머니의 뜻과 관계없이 모신다는 명분으로 어머니 아파트로 입주할 것이고 어머니 치매가 점점 심해지면 제대로 모실지 마음이 답답해진다.
누나와도 연락을 하며 방안을 모색하던 중 객관적인 제3자에 의해 어머니 재산을 관리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노후 생활도 지켜질 것이고, 형제들끼리도 더 이상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든 어르신들 특히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 늘면서 그 자녀들 간에 겪는 흔한 모습이다. 부모보다는 자신의 가정을 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면 부모의 노후 생활은 예상보다 뒷전으로 밀려 삶은 고달파질 수 있다. 국가도 노년의 생활 지원을 위해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부터 치매국가책임제 시행 등 다양한 복지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 현금 지원도 하고 있다. 돈이 있어야 제대로 치료도 받고 손주들에게 용돈도 주며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big story]세대유감 상속, ‘신탁’으로 푼다
고령사회 또 하나의 플랜, 신탁
그러나 국가가 그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적 기능들이 있어야 하는데 신탁제도가 대표적이다. 신탁은 재산을 맡기는 사람과 관리해주는 사람 간 신뢰를 바탕으로 어떻게 재산을 관리하고 유지할지에 대한 서로의 합의 내용을 계약으로 담아내는 제도다. 그러한 법률관계를 ‘신탁법’에서 정하고 있는데,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 즉 수탁자는 개인도 가능하고 금융기관도 가능하다. 법적 제약은 없지만 신탁제도와 계약이 익숙하지 않고, 당사자 간의 문제를 좀 더 객관적으로 해결하자면 개인보다는 금융기관의 신뢰가 좀 더 의미 있을 것 같다.

김 씨의 어머니 건강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현금 등의 재산을 신탁에 맡겨 노후 생활을 위한 자금 인출 및 관리 방법을 정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됐다. 만약 어머니 치매가 더 심해지면 형은 극단적으로 어머니의 성년후견인이 되겠다고 가정법원에 신청해 자신의 뜻대로 현금을 쓰거나 아파트를 매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신탁계약을 위한 상담을 했다.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비록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자신의 노후를 위해 재산 관리 방법을 정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어머니 자신이 신탁계약을 했다. 매월 자신에게 필요한 자금만큼 인출하거나 의료비나 간병비 등의 지급 절차도 자신의 뜻대로 계약에 반영했다. 또 치매가 심해져서 형의 손을 잡고 와 해지하는 불상사도 막겠다는 뜻도 정했다. 어느 누군가에 의한 임의 인출은 불가능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우리 사회는 2026년이 되면 지금의 일본처럼 초고령사회가 된다 고 한다. 더불어 우리는 현재 75만 명의 치매 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그로 인해 겪게 되는 불화와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외에도 치매 이후 노후 생활을 위한 자금 관리 방법을 신탁제도와 결합함으로써 자금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지킴으로써 김 씨와 같이 가족 간 돈 문제로 서로 다투고 반목하는 고민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위해 그런 목적의 자금 관리 신탁에는 일정 부분의 세제 지원이 주어진다면 부모의 재산을 미리 관리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big story]세대유감 상속, ‘신탁’으로 푼다
신탁, 세대 간 안전장치로 기능
가족 내 갈등을 겪는 70대 부부가 있었다. 딸이 이혼하면서 그 외손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최준수(가명) 씨 부부. 그러던 어느 날 싹싹하고 마음 착한 딸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가슴이 무너졌다. 하지만 어린 손주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49재를 치른 뒤, 재혼한 사위로부터 서류 하나를 받았다. 본인이 친권자이니 아이들 앞으로 나온 보험금과 딸의 퇴직금 등 남겨진 모든 재산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재혼한 지 몇 년이 된 사위는 재혼한 부인과의 사이에서 자녀도 낳았다는데 친권자 주장을 하는 걸 보니 자신들이 돌보던 외손자들도 데려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우리 애들이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 분명한데, 딸의 얼굴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변호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아이들의 양육은 친권자 주장을 하는 재혼한 아빠보다는 지금처럼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도 딸이 남겨 놓은 재산과 퇴직금 등은 고스란히 아이들을 위해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간청했다.
[big story]세대유감 상속, ‘신탁’으로 푼다
법률 상담 과정에서 리빙트러스트센터로 문의가 왔다. 동시에 법원에서는 후견인 지정 신청과 아이들에게 남겨진 엄마의 재산을 투명하게 관리할 방안에 대해 협의가 진행됐다.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최 씨 부부가 양육하고 재산은 신탁을 통해 관리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법원 결정의 후속 조치로 후견인인 최 씨 부부는 아이들을 위한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후견인도 아이들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인출할 수 없으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생활비와 교육비 등 단계별로 필요 자금은 신탁계약에서 정해 놓은 대로 지급되며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 지급될 것이다.

신탁은 노후의 재산 관리 외에도 매년 이혼 가정이 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정장치 역할을 한다. 특히 딸의 재산을 아이의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가져가겠다는 사위와 갈등이 생기면서 그로 인해 외손주들의 미래를 염려했는데, 신탁제도를 통해 가정의 행복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 생활 속에 가정의 갈등은 또 다른 모습으로 표출된다. 부모가 남긴 상속재산에 대한 형제들의 동상이몽. 점점 늙어 가는 사회 흐름 앞에서 미래를 대비하지 않은 채 사망하는 노령 인구의 증가 현상은 이미 우리 가정과 사회에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을지 모른다. 깊어 가는 형제들의 불신은 또 이렇게 우리에게 숙제를 던진다.

부동산 상속의 치트키, 신탁
이미선(가명) 씨는 오늘도 오빠에게 문자를 보낸다. 아버지의 상속재산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몇 차례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눈 후로는 전화통화도 아닌 이제 문자만 주고받고 있다. 80대 중반이지만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은 남은 가족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을 불러왔다. 원래 삼남매 중 큰오빠가 병으로 어린 나이에 사망하면서 둘째 오빠를 부모님은 끔찍하게 챙기셨다. 어려선 늘 그러려니 하고 살았다. 결혼하고 애 낳고 부모를 찾아도 부모님은 늘 오빠 걱정이셨다.

아버지는 10여 년 전 오빠에게 서울의 작은 건물을 증여했다. 본인에게도 물론 아파트를 사주셨으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보유하고 있는 지방의 땅마저 오빠에게 상속한다는 유언공증을 해 놓으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빠는 생전에 큰 재산을 증여받았을 뿐 아니라 상속도 받았다. 남들 부럽지 않은 재산을 보유하게 됐지만, 자신에게 작은 배려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이 씨의 경우처럼 부모가 절세 목적으로 부동산을 자녀에게 오래전에 증여한 경우가 많다. 부모는 절세 측면에서는 참 현명한 선택이었지만 한편으로 그게 오히려 사후 상속 분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모 사후 형제자매는 자신들의 유류분을 놓고 다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상속 분쟁은 오빠와의 관계나 부모 사후 오빠의 태도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부모 생전에 증여받은 재산의 가치 평가를 해보고 부모 사후에 여동생과 동일하게 나누자고 하면 좋겠지만, 자발적으로 그런 제안을 하는 오빠는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형제간 상속 분쟁은 서운함이라는 단순한 감정에서 시작될 수 있다. 그 서운함이 커지고 시간이 흐르면 하지 말아야 하는 말도 주고받게 된다. 그 갈등은 격해지며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게 되기도 한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도 오빠와의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라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는 시점에는 2차 상속의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다.

KEB하나은행의 리빙트러스트센터에서는 상속을 고민하는 부모들을 자주 뵙게 된다. 부모는 늘 말씀하신다. 우리 자식들은 다른 집처럼 그렇게 문제는 없다고. 하지만 이 씨의 경우가 특별히 문제가 있는 집은 아니다. 작은 갈등의 씨앗이 부모 사후 서로 만나지도 않는 관계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상속에 대한 법적·세무적 지식을 정확히 이해하고 가정의 상황에 맞는 해결 방안에 대한 조언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일생에 몇 번 겪지 않는 일이 상속이다. 현명한 대비를 위해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신탁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유언장은 내 재산을 누구에게 주겠다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하는 정확한 방법이다. 하지만 상속 집행을 상속인 중 한 사람이 진행하는 것이 통상의 경우인데 이 과정에서 상속인 간 갈등과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대개는 상속집행인이 되는 큰아들, 큰딸 또는 그동안 간호했던 자녀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준다고 하면 더 큰 혼란과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오해와 갈등 요소를 신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신탁은 위탁자의 재산을 맡아 현 상태를 잘 유지·관리거나 재산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개발 등의 업무도 수행하지만, 재산을 맡긴 위탁자가 사망할 경우 위탁자가 생전에 정해 놓은 사람 또는 기관에 재산을 이전해주는 실질적인 상속집행자 역할도 한다.

실제 상속 집행 사례를 통해 필자가 느낀 점은 상속인 중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상속인들에게 부모의 유지를 알리고 상속을 집행하는 것보다는 금융기관과 같은 제3자가 투명한 절차를 진행할 경우 상속인들의 갈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상속 집행이 이루어진 여러 건들의 경우 상속 후에도 형제들 간의 긴장감, 불신 등을 신탁을 통해 정확한 지식과 정보 공유를 통해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한 상속 발생 후 부동산 자산에 대한 관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박필수(가명) 씨가 있다. 4층짜리 건물에서 노후 생활을 하시던 부모님은 지난해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그런데 부모님에겐 효자였던 그 건물은 형제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되고 있다.

4층짜리 건물은 삼형제에게 공동 지분으로 상속됐다. 관리는 퇴직 후 비교적 시간 여유가 큰 형이 하고 있는데 그로 인한 다른 형제들의 불만이 계속 쌓여 가기만 한다. 분명 임차인들은 다 있는 데도 형은 몇 달째 임대료 분배를 하고 있지 않다. 이유는 경기가 어려워 임차인들이 제대로 돈을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 현 수준에서라도 분배를 하자고 하면 지출경비가 만만치 않아 나눠줄 돈이 없다는 답변뿐이다. 객관적인 관리를 하자고 형과 오랜 대화를 통해 겨우 협의를 한 상태다.
[big story]세대유감 상속, ‘신탁’으로 푼다
신탁은 부동산 비율이 특히 높은 우리에게 매우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다. 신탁을 통해 객관적인 관리를 하고 소유자들에게 그 관리 내용과 임대료를 투명하게 안내함으로써 박 씨 형제들과 같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바로 부동산관리신탁이다. 많은 금융기관에서 관리신탁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는 못한 게 현실이지만 관리신탁계약을 통해 임대료 수납관리, 건물관리 지출내역관리, 임차인과의 행정적 업무 수행 등 다양한 지원을 하게 된다. 신뢰성 있는 금융기관이 부동산 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그 내용을 소유자들에게 공정하게 안내함으로써 박 씨 가족 사례와 같은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신탁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가능성이 높은 미성년자와 장애인을 위해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발달장애인 앞으로 증여된 재산을 평생토록 관리함으로써 가족 간 케어의 부담과 자금 관리로 인한 갈등 요소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며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의 경우 저축한 재산을 사기 당하거나 유용하는 문제도 신탁의 지킴이 기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이들의 재산이 안전하게 지켜지지 못할 경우 가족은 물론 사회계층 간 갈등은 증폭될 수 있다. 또한 신탁은 범죄피해자를 지원하는 국가의 구조금이나 군인, 경찰, 소방관 등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사망할 경우 가족들의 돈으로 인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된다.
범죄피해자 구조금을 받는 사람이 만약 미성년자이거나 발달장애가 있다면 그 주변 친척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은 서로 관리인을 자처할 수도 있다. 신상의 후견인제도와 함께 재산에 대한 관리를 신탁을 활용할 경우 그들의 재산은 안전하게 계속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신탁은 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겪게 될 돈으로 인한 고통을 줄일 수 있다. 안전하게 보살핀다는 명분하에 우리 사회가 돌보아야 할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신탁제도가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와야 하는 이유다.
[big story]세대유감 상속, ‘신탁’으로 푼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9호(2019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