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착한 소비가 투자생태계도 바꾼다
[한경 머니=이종수 IFK임팩트금융 대표] 새로운 형태의 투자 움직임이 투자생태계를 뒤바꾸고 있다. ‘착한 소비’로 ‘착한 투자처’에 주목한 사람들의 이야기.

#1. ‘곰이 만들어 가는 더 나은 세상(Bear makes the world better)’이라는 슬로건을 가진 베어베터(BearBetter)는 발달장애인이 전 직원의 80% 이상으로 구성돼 있는 사회적 기업이다. 2012년 창업해 5명의 발달장애인에게 명함 제작과 인쇄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마다 발달장애인을 추가로 채용해 일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교육 훈련과 직업 경험을 통해 이들이 준비된 사회인으로 일반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취업이 힘든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라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가진 사용자에게 일정 비율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부담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연계고용제도는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지 않더라도 장애인이 만든 물건을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을 고용한 걸로 인정해준다.

베어베터는 이러한 제도를 비즈니스 모델에 녹여내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만들어서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편견을 깨고 시장에서 경쟁해 이길 수 있을 정도의 품질을 관리한다. 기업들은 베어베터의 상품을 구입했다는 점을 기업 이미지 향상을 위해 활용한다. 일반 소비자들도 착한 구매에 앞장서서 참여한다. 일반 유명 브랜드 카페에 베어쿠키를 납품하고, 발달장애인 직원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등 일반 고객을 착한 소비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베어베터의 시작은 쉽지 않았다. 어떠한 금융기관도 담보가 없는 취약한 장애인 기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초기 기반이 없었던 베어베터에 (재)한국사회투자가 운영하던 사회투자기금은 큰 도움이 됐다. 2014년 한국사회투자로부터 1억3400만 원을 저리로 융자 받았고, 이 자금은 쿠키 생산라인, 위생 설비 구축과 온라인 명함 주문 시스템을 만드는 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이를 통해 1년 후인 2015년에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3억 원이 증가했고, 48명의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었다. 현재 베어베터는 220명의 장애인을 고용해 연간 8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2. 나무를 심는 게임으로 알려진 트리플래닛(Tree Planet)은 ‘세상 모든 사람이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만든다’라는 미션을 가진 소셜벤처 기업이다. 스타의 이름으로 숲을 만들고,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의미가 담긴 추모 숲을 조성하고, 저개발 국가에 과실수를 심어주며, 사막에 나무를 심는 캠페인성 사업들을 수행하고 있다. 반려나무를 입양하는 사업을 도입하면서 일반 고객들이 윤리적 소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모바일 게임으로 가상나무를 심으면 실제 숲에 나무가 심기는 나무 게임을 개발해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즐기면서 환경을 보호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기업들은 게임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를 통해 홍보를 하는데, 이는 트리플래닛의 수익모델이 된다.

트리플래닛은 설립 당시 임팩트투자자의 역할을 해내던 크레비스에서 초기 투자를 받고 공간과 인큐베이팅까지 제공받을 수 있었다. 또한 2013년부터 텀블벅, 와디즈, 해피빈 등의 크라우드펀딩 회사를 활용해 개인투자자의 특별한 의미가 담긴 숲들을 조성해냈다.

크라우드펀딩의 조성 과정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투자자들에게 물질적 보상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는 데 충분했다. 트리플래닛은 해당 투자를 바탕으로 네팔, 브라질 등에 농장형 숲을 조성하는 크라우드파밍 사업을 기획하기도 했다. 트리플래닛은 2010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세계 13개국, 262개 숲에 약 86만 그루를 심었다. 이 과정에서 착한 소비를 만들어내는 일에 동의하는 다양한 소비자들과 임팩트투자자들이 투자에 참여했다.

[big story] 착한 소비가 투자생태계도 바꾼다


착한 투자처에 주목하는 사람들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사회문제. 무분별한 환경 훼손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 점점 더 심각해지고 다양해져 가는 사회·환경문제는 사회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시민들의 사회문제와 환경에 대한 인식과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착한 소비는 이제 우리 사회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환경을 훼손하는 기업, 갑질을 하는 기업주에 대한 보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돼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결국에는 기업이 문을 닫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한·일 관계의 악화는 일본 제품에 대한 수입을 급격하게 떨어뜨리기도 한다. 이제는 가격만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유일한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의 질과 함께 그 안에 내재돼 있는 윤리성이 중요한 가치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의식구조 변화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투자자들에게 재원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사회의 구성원인 소비자들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의식구조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제 투자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착한 생산을 하거나 윤리적인 경영을 하는 기업으로 점점 더 눈을 돌리고 있다.

비윤리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에는 투자를 회피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착한 기업들을 찾아 나서는 투자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착한 소비는 직접적으로 혹은 투자자를 통해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은 이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운용자산 1조 달러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노르웨이의 국부펀드는 술이나 도박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기업에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투자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기업의 재무적 측면뿐 아니라 비재무적 측면을 고려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는 방식인 사회책임투자가 확산되고 있다.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고,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기업지배구조가 투명하고, 윤리경영을 실천하며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에 사회책임투자의 개념이 소개됐고 아직은 초보 단계이기는 하지만 연금기금을 중심으로 서서히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민연금이 투자 대상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고, 관련 사항을 위탁자금의 주인인 국민이나 고객에게 투명하게 보고하는 스튜어드십코드 제도를 도입했다.

취약계층의 노동력을 착취해 제품을 생산하거나, 골목상권을 점유해 중소상인의 생계를 위협하거나, 종업원에게 갑질을 하는 기업은 투자를 유치하기가 어렵다. 기업이 만들어낸 생산품이나 서비스가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주는 기업에도 투자하지 않는다.

기업의 대표이사가 비윤리적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불매운동에 이어 상장폐지까지 이르고 재벌 총수가 퇴출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장기적인 성장과 필요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이 배경에는 기업의 활동과 투자자의 의사결정을 지켜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착한 소비자가 있다.

‘임팩트금융’은 이러한 사회적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재원을 공급하는 금융이다. 일반적인 금융은 투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수익이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기존 금융 체계에 대한 불신이 증대되고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만 추구하는 투자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금융이 사회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대되면서 임팩트금융은 본격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 이외에 임팩트투자, 크라우드펀딩, 사회성과연계채권(Social Impact Bond, SIB), 지역금융, 사회적 은행 등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금융 기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임팩트금융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2020년에는 그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40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임팩트금융의 재무적 성과가 기존의 상업금융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리 투자자도 관심, ‘착한 투자’의 확장

우리 사회가 단기간 내 성취한 산업화와 고도성장 뒷면에는 수많은 사회문제가 놓여 있다. 저출산, 고령화, 일자리, 환경 파괴, 지방 소멸, 사회적 격차 등 풀어야 할 사회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적 기업, 사회적 경제와 임팩트금융이 탄생했다. 역사는 길지 않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적극적으로 ‘착한 기업과 프로젝트’를 발굴해 재원을 공급하면서 재무적 성과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임팩트금융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사회를 이롭게 하는 투자처를 찾기 위해 사회현상을 연구하고 발굴한 투자 대상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함께 일한다. 진정한 의미의 관계금융을 실행하는 사람들이다. 투자수익에 앞서서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혁신적으로 그 문제들을 풀어 가는 사회혁신가들이다. 어떻게 하면 금융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임팩트투자자뿐만 아니라 영리 부문의 투자자들도 임팩트금융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대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종래의 사회공헌을 넘어서서 직접 임팩트금융을 시현하기도 한다. 모태펀드, 한국성장금융과 같은 공공부문의 기금들도 재원을 조성해 적극적으로 시장에 재원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착한 소비’를 만들어내는 ‘착한 투자’에 대한 관심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투자도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하는 대상을 찾아서 투자하고, 이로 인해 세상이 가치 있는 모습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력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착한 소비’와 맥락을 같이 한다. 아직은 초창기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임팩트금융이 착한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내고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을까를 단정 짓기는 아직 이르지만, 실험과 경험이 누적되면서 해외 사례들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내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기법들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종수 대표는…


1954년생. 1979년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1979년 체이스맨해튼은행에 입사해 근무하다가 2001년 에이온코리아 부사장·사장, 2002년 사회연대은행 대표상임이사, 2012년 한국사회투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9년 현재 IFK임팩트금융 대표를 맡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