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부의 추월차선

[big story] 부자의 꿈이 행동과 미래를 바꾼다

[한경 머니 기고 =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


“믿고 구하면 이미 얻은 줄로 알라.” 유명한 성경 구절이다.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말이다. 그런데 ‘믿으면 이루어진다’라는 성경 구절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학자가 있었다. 거의 100년 전 일이다.


믿음의 효과와 로젠탈 효과


1928년 사회학자 윌리엄 아이작 토머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상황을 사실이라고 규정하면, 정말 그런 결과를 낳는 사실이 일어난다.” 이를 흔히 ‘토머스의 정리’라고 한다. 상황에 대한 해석이 상황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 현상은 바꿀 수 없다. 공중부양에 대한 믿음이 아무리 강력해도 인간이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수는 없다. 팥으로 된장을 만든다고 규정해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 현상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은행이 파산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두 은행에 몰려가 인출을 요구할 것이다. 경제 공황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공황의 결과로 멀쩡한 은행이 파산한다. 반대로 어떤 회사의 주식이 오른다고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는다면 너도나도 주식을 매수할 것이고, 정말로 주가가 오르게 된다. 미래에 대한 특정한 믿음이 그러한 결과를 낳는 것이다. 자기충족적 예언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사회적 현상은 물리적 법칙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삶의 길흉화복은 대부분 인간,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다. 느닷없이 벼락에 맞는 일은 있기 어렵지만, 느닷없이 사람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 각자의 작은 변화가 합쳐지며 뜻밖의 창발 현상을 낳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이 바꿀 수 있다.


사회적인 현상이야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분명 경제나 정치의 여러 상황은 자기충족적 예언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의 운명도 믿음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나 혼자 믿는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가.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 ‘부자가 되려면, 일단 그렇게 믿어라’라는 말은 순진한 사람을 현혹하는 사이비 주장처럼 느껴진다.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로젠탈은 독일 태생의 미국 심리학자인데, 30년 넘게 하버드대에서 자기 암시의 효과에 관해 연구했다. 한 실험에서 그는 초등학교 학생을 모아 놓고 지능검사를 했다. 그리고 상위 20%의 학생을 골라 교사들에게 알려주었다. 검사 결과 앞으로 특히 큰 발전이 있을 소수의 학생을 골라준 것이다.


하지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무 학생이나 대충 무작위로 뽑아서 알려준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다시 지능검사를 시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머리가 좋은 20%의 학생’으로 분류된 학생들은 지능검사 점수가 정말 올랐다. 학교 성적도 올랐다. 교사의 기대, 그리고 학생의 자기 기대감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를 ‘로젠탈 효과’라고 한다.


‘나는 안 될 거야’ 골렘 효과와 부정적 믿음


키프로스섬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했다. 상아로 만든 여성을 마치 진짜 사람인 것처럼 다루었다. 조각상이 진짜 여자가 되게 해달라는 피그말리온의 청을 들은 여신 아프로디테는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래서 종종 로젠탈 효과를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름다운 신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반대의 일이 더 많이 일어난다. 소망을 이루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같다. 하지만 민망해서, 욕심내는 것이 좀 점잖지 않아서, 남들이 듣고 웃을까 봐, 분수를 지켜야 해서 등 여러 이유로 우리는 자신의 소망을 엄격하게 검열한다. 키프로스에는 조각상을 연인으로 만든 피그말리온도 있었건만,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살아 있는 연인마저 제 손으로 내치는 일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혹시 겸손한 마음일까. 사실 겸손도 뭘 좀 가져야 할 수 있는 미덕이라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우리가 미래에 대한 희망,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겸손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일단 그렇다고 치자. 동방예의지국이니 남들 앞에서는 좀 ‘부족한 제가 뭘 감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속으로도 그렇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런 것은 언행일치가 안 돼도 괜찮다.


‘나는 아마 잘 안 될’ 것이라는 부정적 믿음은 타인에 대한 부정적 태도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자신에 대한 타인의 부정적 믿음으로 굳어진다. ‘거 봐.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잖아’라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실현되는 것이다. 로젠탈 박사는 이를 ‘골렘 효과’라고 불렀다. 멍청한 괴물을 뜻하는 말이다.


성공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바람인데, 왜 우리는 부정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사실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운 상황이라면 부정적인 예상이 더 유리하다. 밑도 끝도 없는 희망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보다는 작은 위험이라도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오늘 죽으면 내일도 없다. 험난한 진화사가 빚어낸 마음의 부산물이다.


게다가 부정적인 믿음은 최소한 헛된 소망에 빠지지는 않았다는 위안을 준다. ‘그래도 터무니없는 희망을 품지는 않았지. 잘 안 될 걸 알고 있었다니까’라는 식이다. 실패자가 쟁취하는 소박한 위안이다. 다른 사람이 위로도 해준다. 어두운 표정의 친구에게 ‘그래. 정말 네 말대로 너는 평생 가난하게 살다 죽을 거야’라고 대꾸하기는 어렵다. 값싼 동정을 위해 자기 확신을 팔아넘기는 것이다. 실패하면 실패할수록 더 따뜻한 위로를 받을 것이다. 부자를 욕하기는 쉬워도 가난뱅이를 욕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자기혐오에 빠진 음침한 인간은 좀처럼 인기가 없는 법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들에게는 적도 없다.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한다. 시기심에 못 견디는 사람일수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타인의 시기를 피하려고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인생 실패자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고 실제로 인생에서 실패하면 된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최소한 나를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워하는 사람이 될 수 없다

[big story] 부자의 꿈이 행동과 미래를 바꾼다
부자는 모두 도둑놈이라고 믿는 사내가 있었다.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이라면 다 미웠다. 삶은 지옥같이 고통스러웠다. 다만 얄미운 부자가 파산해 길거리에 나앉는 상상을 할 때만 유일하게 웃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사내는 벌써 10년째 길에서 노숙하고 있었다. 자신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걸어야 마땅할 미래를 스스로 먼저 걷고 있었던 셈이다. 이런 이상한 심리적 방어를 통해서 ‘결국 노숙자가 될 운명’을 지닌 부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었다.


시기의 칼은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시기심이 강한 사람은 심지어 자신의 성공마저 시기한다. 성공한 사람에게 가졌던 평소의 미움을 정당화하려면,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도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없다. 부자는 나쁜 사람이요, 나쁜 사람은 패배해야 마땅하다는 평소의 지론을 위해서, 작은 성공을 거둔 자신도 역시 나쁜 사람이요, 패배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성공을 미워하는 습관적인 생각과 행동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이 성공해도 말이다.


부자가 되기 어려운 세상이란다. 유산을 물려받은 금수저나 부자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이다. 세상이 팍팍한 것은 사실이지만, 태초 이래 세상은 늘 팍팍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자가 바로 실패한 자다. 능력주의 세상에서 각자의 어깨가 무거운 것은 몹시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봉건사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언제나 성공은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어느 사회나 부자보다 빈자가 많다. 어쩌다 보는 주변인의 성공마저 우격다짐으로 끌어내리며, 신자유주의를 탓하고 정부나 욕하다가 생애를 마칠 계획이 아니라면 마음을 고쳐먹자.
타인의 정당한 성공이 부러울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몹시 밉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곤란하다.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미 이룬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부자를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부자가 된 자신이 혐오스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당한 부를 얻은 때에만 말이다. 우리 마음은 미워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막는다. 부자를 미워한다면, 부자가 되긴 어렵다.


부자를 향한 믿음은 강력한 원동력


자신에 대한 믿음은 소망을 실현하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부자가 되겠다”라고 10번씩 복창하면 부자가 된다는 식의 싸구려 이야기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자기 확신의 효과는 초자연적 현상이 아니다. 믿고 구하면 이미 얻은 줄로 알라는 이야기는, 이미 얻은 자가 된 자신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어쩌다 찾아오는 기회를 바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부자가 되겠다고, 그래서 부자가 된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흐뭇해하는 사람은 없다. 부자라면 응당 가지는 건전하고 생산적인 삶의 습관을 미리 연습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잘해야 과도한 소비 경향이나 흉내 내면서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진다. 이건 정확하게 말하면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저 부자가 부러운 것이다.


믿음이 행동을 바꾼다. 그리고 행동이 미래를 결정한다. 원하는 미래가 있다면, 믿음부터 바꾸어야 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정말? 그렇다면 부자가 된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믿음을 나의 믿음으로 바꾸자. 믿고 구하면 이미 얻은 줄로 알라.


박한선 전문의는…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같은 대학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을 지내고 있다. 저술한 책으로 <정신과 사용설명서>, <재난과 정신건강>, 옮긴 책으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등이 있다. 타인의 정당한 성공이 부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이미 이룬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5호(2019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