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g story] 나 홀로 전성시대, 복지 확대 시급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이미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가족 형태로 자리 잡은 ‘나 홀로’ 가구의 급증세와 달리 정부와 기업의 복지 혜택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을 중심으로 복지 차별을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산업계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싱글세(single tax)’는 매년 연말정산 시즌마다 반복돼 온 논란거리 중 하나다. 정부의 세금정책이 전통적인 다인 가구 중심으로 짜여 있다 보니, 1인 가구는 매번 상대적 불이익을 넘어 ‘징벌적’ 세금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주거정책의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청약가점제 시행으로 부양가족이 없는 독신 가구는 사실상 청약 당첨이 불가능하며, 국민임대주택과 장기전세주택 등 공공지원 분야에서도 철저히 외면을 받고 있다.


모든 행정 지원이 결혼 장려와 출산율 제고에 초점이 맞춰진 탓인데, 정부의 오랜 기대와 달리 1인 가구의 증가세는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결국 저출산 현상에 대한 근시안적 시각과 단발성 대책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의 복지 혜택이 전통적인 다인 가구 중심으로 제공되다 보니, 국내 기업들 역시 별다른 대응에 나서지 않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대표 복지 혜택인 교육비, 학자금, 휴가, 축의금 등은 여전히 기혼 직원들에게 집중돼 있다. 혼식, 혼행, 펫팸족 등으로 대변되는 1인 가구의 소비 트렌드에는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도 정작 미혼·비혼 직원들에 대한 혜택 확대에는 인색한 것이다.


복지 차별 해소에 나선 은행권

올해부터 신한은행의 미혼 직원들은 자신의 생일이 되면 ‘욜로비(욜로지원비)’를 지급받을 수 있다. 지난해 신한은행 노사가 기혼 중심 복지 체계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도입된 제도다. 욜로비는 기존 기혼 직원들의 결혼기념일 축하비와 동일한 금액으로 책정됐다. 욜로(You Only Live Once, YOLO)는 최근 수년간 밀레니얼 세대들의 생활 트렌드를 반영한 신조어로, 신한은행의 욜로비 도입은 과거 가족 중심의 복지 혜택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 눈에 띄는 변화는 건강검진 대상을 ‘본인과 배우자 1인’에서 ‘본인과 가족 1인’으로 변경한 부분이다. 그동안 기혼자들의 경우 2인 모두 혜택을 받았지만 미혼자는 사실상 혜택이 1인으로 한정되는 불이익을 받았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미혼·비혼 직원들이 늘어나면서 차별적인 복지 혜택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며 “올해가 비혼·미혼 직원들에 대한 선택적 복지를 시행하는 첫해다”라고 소개했다.


신한은행 외에 IBK기업은행도 결혼기념일에 제공했던 축하선물을 미혼 직원들의 생일에 동일하게 제공하기로 했으며, 종전에는 기혼 직원들에게만 지급했던 단신 격지부임 여비(타지 발령 시 지급하는 비용)도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하기로 했다.
복지 차별의 해소를 넘어 미혼 직원들의 여가생활을 직접 지원하는 곳도 있다. 우리은행은 필라테스, 드론 등 미혼 직원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별 클래스를 운영 중이며, 건강검진 추가 대상자 역시 본인 외 가족 1인으로 변경해 운영 중이다.


이처럼 일부 은행들을 중심으로 복지 혜택의 차별을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기업들은 비용 문제와 사회적 공감대를 이유로 가족 중심의 복지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개인화에 초점 맞춘 복지 플랫폼
국내와 달리 개인화 트렌드에 맞춘 선택적 복지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특히 일찍부터 독신 가구가 보편화된 미국과 유럽 국가의 경우 1인 가구라는 이유로 정부 복지에서 소외되는 사례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며, 가까운 일본 역시 취약층 1인 가구의 안정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공공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더욱 주목되는 부분은 기업들의 복지 혜택 역시 철저히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마케팅회사 니나헤일(Nina hale)은 출산이 아닌 반려동물을 입양해도 일주일간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으며, 아마존 본사는 반려동물을 위한 간식, 식수대를 비치해 두고 있다.


직원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취향을 수용해 모바일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려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많은 기업들은 직원 개개인의 취향과 니즈를 고려해 기업의 복지 향상 플랫폼인 ‘퍼크박스(Perks Box)’를 이용하고 있다.


지난 2010년 등장한 퍼크박스는 각 기업의 직원 수에 따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 플랫폼으로 일반 슈퍼마켓부터 영화관, 백화점 할인권, 여행자보험, 피트니스, 자기계발 프로그램까지 무려 250가지에 이르는 맞춤형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임직원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혜택을 골라 사용할 수 있어 직원 복지 분야의 소셜커머스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또 최근 불가리아 기업들 사이에서는 ‘멀티스포츠카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서비스는 폴란드 기반의 다국적기업인 ‘베네피트시스템(Benefit System International)’의 직원 복지 프로그램이다. 이 카드만 소지하면 승마, 피트니스, 수영, 요가, 필라테스, 복싱 등 불가리아 전 지역에 있는 800여 개 이상의 스포츠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주 고객들은 직원 복지를 확대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대상이다. 멀티스포츠카드는 2015년 출시 한 해 동안 60만 건 이상이 발급됐으며, 폴란드에 이어 체코공화국,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반영해 성공을 거둔 채용 플랫폼도 있다. 말레이시아의 WOBB (Working on Bean Bags)는 일반 채용 플랫폼과 달리 조직문화를 주요 가치로 두고 있다.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찾아 2~3년 만에 이직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WOBB를 통해 구직 홍보를 하는 기업들은 회사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복지 혜택, 자기계발 지원 정책 등을 내세우고 있으며, 다양한 사진과 직원 인터뷰 동영상 등을 활용해 구직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8호(2020년 03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