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인도어(indoor) 라이프’가 강제 정착됐다. ‘코로나블루(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우울감을 나타내는 신조어)’에도 불구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무궁무진한 하루의 시작이다. 인도어 라이프는 코로나19로 갑자기 찾아온 일상이 아닌, 새 시대가 가져온 삶의 변화다.

[big story] 집에서 즐긴다…은둔 아닌 트렌디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의 행복 비결은 무엇일까. 핀란드의 저널리스트 미스카 란타넨은 2018년 말 세계인이 주목할 만한 핀란드의 문화와 행복 비결을 담은 책을 펴내 전 세계 14개국에서 출간 계약을 맺었다. 출판사 측은 BBC, 가디언, 워싱턴포스트 등 언론 매체의 추천을 받았다고 소개하며 ‘가장 트렌디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그 화제의 저서 <팬츠드렁크>에 담긴 행복 비법은 “어디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가장 편한 옷차림으로 혼자 술을 마신다”,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한다” 등이다. 이 책이 주장하는 ‘핀란드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이유’는 소박하기 그지없다. 기성세대에게는 ‘허무 개그’로 들릴 수도 있다.


과거 ‘집돌이·집순이’가 사회에서 소외된 부정적 이미지였다면, <팬츠드렁크>에 투영된 홈족(Home族)은 오히려 트렌드 리더다. 집이라는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자발적 선택을 중시한다.


집돌이·집순이의 ‘분화’ , MZ세대는 집에서 논다

자료: 잡코리아, 알바몬 '홈족' 관련 설문조사
자료: 잡코리아, 알바몬 '홈족' 관련 설문조사
아직도 ‘홈족’ 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떠오른다면, 기성세대 혹은 ‘꼰대’라는 인증일 수 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홈족’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40대 이상 응답자의 50.7%는 ‘홈족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인식은 달랐다. 20대와 30대는 각각 82.4%, 79.7%가 ‘홈족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스스로를 홈족이라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도 40대 이상 응답자의 경우 29.6%만이 스스로를 홈족이라 답했지만, 20대(68.5%)와 30대(62.0%)는 3명 중 2명이 스스로 홈족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현상은 MZ세대(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변화한 가치관과도 맞물려 있다. ‘집’은 잠자는 공간, 가족을 위한 공간, 쉼터 등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세대에 따라 집에 해석도 달라졌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2016)에 따르면, 50대는 집을 가족 그 자체로 연상하는 경우가 77.8%였으나, 20대 57.2%에 그쳤다. 반면 집을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시각은 20대에게서 두드러졌다(20대 55%, 30대 45.4%, 40대 41.2%, 50대 46.6%).


‘나다움’을 중시하는 MZ세대는 단순히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순이와 집돌이의 개념에서 나아가, 주거공간에서 다양한 활동을 즐기려는 홈족 문화의 원동력이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는 <빅데이터, 사람을 읽다>를 통해 “집 안에서의 니즈가 다양화됨에 따라 집순이와 집돌이가 여러 형태로 분화하고 있다. 편안하게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휘게(hygge)족, 나 홀로 즐길 거리에 집중하는 홀로(H-YOLO)족, 집 안에서 경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스피리언스(in-experience)족이 인테리어, 반려동물, 커피머신, 홈시어터 등 고급 가전과 DIY(Do It Yourself) 제품의 적극적 소비 지출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문명의 전환


14세기 죽음의 사신 흑사병(페스트)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삼켰다. 그러나 흑사병은 당시 전쟁으로 얼룩 진 중세 암흑의 역사를 종결시키고 새로운 문명을 여는 단초가 됐다. 유럽의 문화혁신 운동, 르네상스의 시작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전염병은 수많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끝내고 새 문명을 여는 기폭제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다. 코로나19는 인도어 라이프를 확산하는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유연근무와 온라인 교육, 언택트(untact) 문화가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된 이후에는 다시 사회적 거리 두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국내에 유연근무제가 어젠다로 설정된 것은 2000년이다. 그러나 20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유연근무제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급물살을 타게 됐다. 지난 2월 24일 이전 재택근무제로 고용노동부에 간접 노무비를 신청한 근로자 수는 전체 신청의 1.8%에 불과했지만, 2월 25일 이후에는 재택근무제 신청 비율이 무려 52.5%에 달했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코로나19 상황이 끝난 다음에도 유연근무제에 대해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가지며, 업무 분위기가 바뀔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비대면 서비스는 수년 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19는 언택트 확산의 도화선이 됐다.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간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불러온 중국 소비시장의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사스 사태 이후엔 1980~1990년대생 중심으로 패션, 화장품 등의 온라인 구매가 이뤄졌으나, 코로나19 이후 중년층, 소도시 소비자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형태의 온라인 소비 형태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무인배송과 스마트 물류 시스템 구축 등 항바이러스, 고효율적 상품 배송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기술 접목을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얼론(alone) 세대와 언택트 마케팅’ 보고서에서 “언택트는 나 홀로의 삶 혹은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며, 일행이 있더라도 원치 않는 타인과의 접촉을 회피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수단이다”라고 분석했다. 기존 오프라인 고객에게 온라인 기술을 활용해 무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타인에게 간섭받기 싫어하는 소비자 심리도 증가하고 있어 향후 비대면 비즈니스가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외로움과 단절에 대한 새로운 정의

자료: 마크로밀 엠브레인
자료: 마크로밀 엠브레인
코로나19 사태로 ‘코로나블루’라는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으로 장기간 집 안에 머물며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운동이나 사교적 만남 등이 원활하지 않으면서 관계가 느슨해지는 영향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느슨해지는 관계에 대한 우려는 있다.


외로움과 고독은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선 어쩌면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언택트 문화로 파생되는 단절과 고립 현상에 대해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항상 타인과 연결돼 있다고 믿는 Z세대는 관태기(관계권태기)를 느끼는 대표적 세대이지만, 역설적으로 사회적 욕구에 대한 결핍을 가장 크게 호소하기도 한다. 마크로밀 엠브레인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20대(67.2%)와 30대(64%)는 50대(49.6%)보다 상대적으로 더 외로움을 느꼈다. 윤대현 서울대 교수는 “인간은 독립성과 친밀함이라는 욕구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며 “SNS로 주로 소통하다보면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좋은데, 친밀함은 떨어져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