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하수정 북유럽연구소장]흔히 ‘복지천국’이라고 불리는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노인 복지에서도 선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중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스웨덴 사례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자.
[big story]초고령사회 스웨덴의 노인 행복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블로그(http://www.123minsida.se/Bojan/)가 있다. 블로거 이름은 보얀, 본명은 다그니 카를손이다.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블로거 중 한 사람이다. 1912년 5월 8일생으로 올해 나이 108세, 최고령 블로거다. 99세에 한국으로 치자면 복지관 격인 커뮤니티센터에서 컴퓨터를 배운 후 블로깅을 시작했다.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카를손의 포스트 중에는 ‘오늘도 장례식에 다녀왔다’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 스웨덴은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다. 공감하는 이가 많아서인지 카를손의 블로그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인구 1000만 스웨덴에서 구독자가 100만 명이 넘으니 인구의 10% 이상이 구독하는 셈이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들었는데 카를손에 따르면 인생은 100세부터란다. 매일 밤 일기처럼 기록하기 시작한 그의 블로그는 그저 평범한 삶의 기록이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어린 시절 이야기, 좋아하는 디저트와 요리법, 101세의 나이에 마음에 드는 청바지를 산 이야기와 쇼핑 팁, 절세법과 연금에 대한 조언, 갖가지 종류의 꽃과 나무 사진, 맛집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등이다. 그의 평범한 이야기와 삶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없는 위로가 찾아왔다.

카를손은 타이타닉이 대서양을 건너다 침몰했던 그 해에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막내 동생은 아기 티를 씻기도 전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 중 하나인 디프테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모는 지금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비견되는 스페인독감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바빴고, 어머니는 차가운 성격으로 자식을 잘 보살피지 않았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카를손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꿈을 접고 공장에 들어가 재봉사로 일했다. 알코올중독에 질투까지 많았던 첫 남편과의 결혼생활로 마음고생도 많았다. 보다 못한 친구들의 도움으로 도망치듯 남편을 떠났다. 그때가 서른일곱이었다. 첫 남편과 헤어진 일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이라는 그는 마음을 다잡고 직물을 공부한 후 수도 스톡홀름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했다.
마흔에 무도회장(때는 1951년, 진짜 무도회장이다)에서 신들린 듯 춤을 추는 남자를 만나 재혼했다. 두 사람은 1978년 은퇴한 이후에도 함께 복지관에서 춤을 배우며 행복하게 지냈다. 2004년 90세에 두 번째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53년을 해로했다. 영혼의 짝이라 여겼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모든 일에 의욕을 잃은 카를손은 한동안 시름에 잠겨 지냈다.
[big story]초고령사회 스웨덴의 노인 행복은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어느 날 아흔이 넘은 나이에 컴퓨터를 1대 샀다. 뒤늦게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법을 배워 블로깅을 시작했다. 100세가 넘은 나이에도 틈틈이 커뮤니티 센터에 나가 65세 이상 노인에게 컴퓨터와 블로깅을 가르친다. 인기가 늘자 강연 요청은 물론 TV와 라디오 출연이 쇄도했다. 그는 스웨덴의 베스트셀러인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속편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가끔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괜찮은 노인 없나 살펴보기도 한다. 열다섯 살 연하이며 음악을 좋아하는 남자 친구와 공개연애를 하기도 했다. 얼마 전 108번째 생일을 맞은 카를손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머릿속에 가족의 모습을 그려 보자. 아빠와 엄마, 토끼 같은 아이 한둘 정도로 이루어진 가족이 아마도 오랫동안 한국의 이상적인 가족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의 가족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지난해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반적인 가족 구성이라 여겨 온 ‘부부+자녀’ 가구를 넘어선 것이다. 2019년 기준 1인 가구 가운데 65세 이상의 이른바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150만 가구), 노인 1인 가구는 점차 늘어 2047년에는 전체 1인 가구의 절반을 차지할 전망이다.

노인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
혼자 사는 노인은 행복할까. 수치로만 보자면 한국에서 나이 먹고 혼자 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층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7년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자살 통계를 보면 10만 명당 58.6명이다.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다.

청춘을 바쳐 일하고 자녀들을 다 결혼시킨 후에도 노년을 즐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적 어려움(27.7%)이 가장 크고, 건강 문제(27.6%), 배우자·가족·지인과의 갈등(18.6%), 외로움(12.4%) 순이다.

북유럽의 스웨덴은 이미 2014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기대수명이 남자 81세, 여자 84세니 65세면 젊은 축에 속한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15%인 것을 감안하면 스웨덴은 훨씬 더 늙은 사회다. 스웨덴 역시 1인 가구의 비중이 높다.

모든 연령대에 1인 가구가 고르게 분포해 전체 가구 중 40%에 이른다. 카를손도 그중 하나로 스웨덴의 전형적인 독거노인, 나 혼자 가족이다. 슬하에 자녀가 없는 그는 100세가 넘었지만 움직이거나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 요양원이나 노인 공동주택 대신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는 그는 대신 방문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는다.

한국의 평범한 노인 한 분을 모셔다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젊은 시절은 카를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이 다르다. 108세 블로거라는 점을 빼면 카를손이 생활하는 모습은 스웨덴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그가 블로그에 올리는 음식, 평소 옷차림, 요양보호사들과 나누는 이야기, 연금과 세금에 대한 내용을 보면 나이가 좀 많을 뿐 그저 평범한 스웨덴의 노인이다.

스톡홀름을 걷다 보면 빨간 바지 할아버지와 화사한 옷차림의 백발 할머니가 팔짱을 끼고 데이트하는 모습도, 철없어 보이는 할아버지 둘이 한껏 멋을 내고 걷는 모습도,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야외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 할머니도 흔하다. 하긴 늘어난 인류의 평균수명을 고려해 유엔이 2015년 새로 정한 연령 기준에 따르면 65세까지가 청년이고,
79세까지는 중년(0~17세는 ‘미성년자’,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99세 ‘노년’,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이니, 환갑이 지나 고희 정도면 이제 은퇴도 했겠다, 인생을 즐기기 딱 좋은 나이다.

한국에 청년주택이 있다면 스웨덴에는 노인주택이 있다. 55세 이상이면 원할 경우 노인주택에서 살 수 있다. 물론 자신의 집이 편하면 집에서 도움을 받으면 된다. 장애가 있거나 중병을 앓는 경우 집에 머무르기를 원하면 간병인이 출퇴근해 돌본다.

65세 이상이라면 장을 보거나 집안일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다. 한국에서 몇 년 전부터 유행 중인 밀키트가 스웨덴에서는 노인용으로 먼저 나왔다. 집에 거주하는 노인에게 지방자치단체가 데우기만 하면 되는 반조리 음식을 배달해 주는 것이다.

스웨덴 노인정책의 목표는 단순하다. 나이가 들거나 기력이 떨어져 장애가 와도 남들처럼 일상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 서울시 등 지자체가 빈집을 사서 인테리어를 새로 하거나 재건축해 청년 주거 용도로 제공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스웨덴은 같은 서비스를 노인을 위해 한다. 새로 짓기도 하고 또는 빈집을 사서 걷기 좋고 휠체어가 다니기 편하도록 계단을 없애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화장실 등에 손잡이를 다는 등 노약자가 거주할 수 있도록 고쳐 노인주택으로 바꾼다.

정신은 또렷하지만 기력이 약하거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집안일을 하기 힘들 때, 낮 동안 도우미가 집에 와서 살림을 돕고 산책도 시켜 준다면 그때 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한 달 자택 방문 서비스 비용으로 개인이 내는 금액은 한화로 최대 22만 원(1772크로나) 수준으로 전체 노인 요양 비용의 96%를 국가와 지자체가 부담한다.

한국의 복지관처럼 낮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물론, 그룹 홈이나 요양보호소, 치매나 정신질환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곳곳에 있어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다.

치매 등 여러 질환을 앓는 노인이 비용 걱정 없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은 자식 역시 부모를 직접 모시거나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할 의무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다. 자식이 없어도 시스템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노인이 돼서도 누구에게 기대거나 부담이 될 일이 없이 자신의 삶을 즐긴다. 스웨덴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가족이 아닌 개인을 단위로 디자인돼 있다. 자식이 있든 없든, 재산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누구나 지불 가능한 수준의 비용으로 요양원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평범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다.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 돈보다 소중한 것이다. 청년도 힘들다지만, 대한민국에서 노인으로 살기도 쉽지 않다. 대한민국은 노인 취업률도 1위, 빈곤율도 1위다. 나이 들어도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고,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다. 여기에 노인 자살률 1위까지 더해진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 낼 수 있을까. 언제쯤 대한민국의 평범한 노인이 은퇴할 날만 기다리며 춤도 추고 블로깅도 하면서 편안히 살 수 있을까. 시간이 별로 없다. 인구절벽과 초고령사회가 머지않았다.
[big story]초고령사회 스웨덴의 노인 행복은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